39화. 스탬프
발렌티아 최고의 대장간인 ‘렌돌의 망치’의 주인, 드워프 렌돌은 공작의 명령서를 들고 온 꼬마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새하얀 피부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까만 머리칼과 눈을 가진 희한한 외모의 꼬마를.
“너 같은 꼬마한테 맞춰 다시 조율하라고? 슈페리어급 기사를 위해 이미 반년 가까이 공들인 내 작품을?”
“예, 명령서 보시면 아실 텐데요?”
고개를 쳐들고 뻣뻣하게 대꾸하는 모습이 더 어이가 없었다.
문제는 이 명령서가 진짜라는 거다.
공작의 가신이 아닌 렌돌에게 이 작업은 계약상의 업무일 뿐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드워프 장인의 자존심이 담긴 작품이 애들 장난감으로 전락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위약금을…… 어으으, 젠장.”
그런데 물건이 물건이다 보니, 위약금의 액수 또한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작업물이 가장 인기가 없는 전투 망치다.
아티팩트라고는 해도, 이걸 재료비라도 주고 사 갈 사람이 있을까?
“……미치겠네.”
머릿속이 한없이 복잡해진 렌돌의 안중에 이미 눈앞의 소년은 없었다.
그때.
“제가 슈페리어급 기사보다 나을 텐데요?”
소년이 어이없는 말로 그의 이목을 끌었다.
“꼬마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렌돌은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구겼지만.
우우웅.
꼬마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푸른 마나의 아지랑이를 봤을 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실력을 증명하자 렌돌의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이미 완성된 중년의 슈페리어급 기사보다는 열세 살짜리 천재에게 자신의 작품을 쥐여 주는 것이 더욱 뿌듯하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익스퍼트? 너 혹시 보기보다 나이가 많냐? 키가 작은 건, 혹시 우리 종족 혼혈……?”
“끔찍한 소리 하지 마시고!”
잡음이 좀 섞이긴 했지만, 아티팩트를 얻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워해머를 쓰려고 하냐? 아무리 마나유저라도 근육에 무리가 가면 성장에 안 좋다. 키가 안 큰다고.”
“전 클 겁니다. 그리고 손에 익어서 충분합니다.”
“손에 익어? 뭐, 대장장이 집안 출신이라도 되나? 쇠 좀 두드려 봤어?”
……쇠는 모르겠고, 사람이나 몬스터는 많이 두드려 봤습니다.
속으로 너스레를 떨며 피식 웃은 타이니가 고개를 저었다.
“실없는 소리 마시고, 물건이나 보여 주십시오. 어느 정도 완성은 됐을 거라고 들었는데요?”
“드렉슬러 경에게 맞춘 거라 거의 네 키만 할 텐데?”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휘두를 맛이 나죠.”
“아무리 마나유저라도, 보통은 사람이 무기보다 최소 30cm는 커야 해. 괴물을 상대하려는 게 아닌 이상 무기가 쓸데없이 커 봐야…….”
“괴물을 상대할 겁니다.”
“……소용 없……. 거참, 어린놈이 눈빛 흉흉한 거 보면 진짜 괴물 좀 잡아 본 거 같기도 하고…….”
“잡아 봤습니다.”
……전생 얘기지만.
“그 나이에? 하, 진짜 같은데? 정말 희한한 놈일세.”
“진짭니다.”
“그래,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긴 하는데…… 믿기 힘드네.”
드워프는 종족의 특성상 그들 기준으로 성인이 될 때쯤 자연스럽게 정안(正眼)이 발현된다. 말에 실린 감정의 파동을 감지해서, 어느 정도 진실과 거짓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드워프들이 보통 인간과 엘프를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인간들은 거짓을 너무 많이 말하고, 엘프들은 감정의 동요가 약해 잘 읽히지 않으니까.
전생에 타이니와 엮인 적 있던 드워프들도 나중엔 그를 굉장히 꺼리곤 했었다.
- 끄응, 너 같은 스타일이 우리한테는 정말 최악의 인간이야. 워낙 당당하게 개소리를 해 대니까 다 진짜 같아서.
동료였던 드워프의 첫 번째 망치, 하이넨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면에서 인간의 대도시에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 드워프는 정말 특이한 경우였다.
“뭐, 일단 계약은 계약이니……. 따라오거라.”
드르륵.
렌돌의 작업대 위에서 스스로 옅은 푸른빛을 발하고 있는 커다란 망치를 보는 순간, 타이니는 눈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멋지군요. 벌써 완성되어 가는 겁니까?”
“아직 조율이 안 끝났다. 자동 수복 기능에 충격 증폭……. 그리고 드렉슬러 경의 특기를 살릴 수 있게 방어력 증폭을 위한 방호 마법이…… 음? 왜 그러냐, 꼬마야?”
“……아, 아닙니다.”
“아니긴, 딱 보이는구먼. 무식한 무기 쓰는 놈답게 방어엔 관심 없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와서 룬 각인을 바꾸면 마력 균형이 다 틀어져.”
“알고 있습니다. 흠, 어쩔 수 없지요. 아티팩트 워해머가 흔한 것도 아니고…….”
이 대륙에서 전투 망치는 드워프들이나 다루는 무기지, 다른 종족들에겐 비주류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아티팩트도 희귀한 편에 속했다.
전생의 기억을 얼추 더듬어 봐도 던전 보물로 워해머 아티팩트가 발견되었다는 소식 따위는 없을 정도로.
그러니 대미궁에서 녹턴을 발견했을 때 정말 미친 듯이 기뻐했었던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워해머는…….
“4서클 마법이 3개나 새겨진 아티팩트를 거절할 바보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시점의 그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무기였다.
그런데 그 순간, 렌돌이 의외의 말을 꺼내 들었다.
“……사실 우리 대장간에 아티팩트 워해머가 하나 더 있기는 한데.”
“……예?”
“아, 아니. 못 들은 거로 해라. 아들놈이 만든 건데, 못 써먹을 물건이야. 지가 쓰려고 만들어 놓고는 못 들어서 놓고 갔을 정도니까.”
전생에도 몇 개 보지 못한 워해머 아티팩트가 이곳에만 두 개나 있다고?
그게 쓸 만할지 어떨지를 떠나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좀 볼 수 있을까요?”
“그게…… 무겁기로 유명한 흑강철을 압축해서 만든 거라 들기도 힘들어. 거기다 적을 한 방에 보내겠다고 무게 증폭 룬까지 달아서, 무기로 써먹긴 아예 글러 먹은 놈이야.”
호오?!
“……더더욱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꼭 보여 주십시오.”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흑강철을 압축한 데다 무게 증폭 룬까지 달았다니까? 네 키만 한 전투 망치가 100kg을 훌쩍 넘는단 말이다.”
렌돌이 이렇게까지 말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의 키만 한 워해머라고 해도 보통은 10kg을 넘지 않는다. 그 이상 무거워 봤자 휘두르기만 힘들고 체력 소모도 심할 테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큰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힘에 자신이 있는 마나유저라 해도 보통 30kg을 넘는 무기는 들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다.
어차피 고수들의 격전에서는 무기의 무게보다는 마나의 힘과 그 활용이 파괴력을 결정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타이니는 100kg을 넘는 워해머 얘기에 오히려 눈을 번쩍 떴다.
“와, 그거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다른 스펙은요?”
“충격 증폭과 자가 수복……이 있긴 한데, 그거 정말 써먹을 게 못 되는데?”
“이야! 진짜 소름 끼치게 마음에 드는군요. 그놈 좀 보여 주십시오!”
“……네 녀석도 정상은 아니로구나. 일단 따라와 봐라.”
렌돌은 괜히 말을 꺼냈다고 후회를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값비싼 주문 제작 물품은 아껴 둔 채, 창고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애물단지를 처분할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창고로 향했다.
끼이이익.
렌돌이 견고한 자물쇠를 풀고 육중한 문을 밀어내는 순간.
“저 안에…….”
“오!”
창고 깊숙한 곳에서 검은 광택이 번뜩이는 워해머를 발견한 타이니는 렌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그극.
“우와아, 묵직하군요.”
사람 머리만 한 망치는 그 머리 중심 부분에 뾰족한 뿔이 창처럼 튀어나와 있었고, 좌우의 망치면은 톱니처럼 조각되어 있었다.
그 살벌한 생김새에서 적을 확실하게 박살 내 버리겠다는 의지가 물씬 느껴졌다.
‘……녹턴과 비슷해. 크기만 좀 작지.’
놀랍게도 모양이 전생의 애병과 비슷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마음에 쏙 들었다.
“정말, 정말 멋집니다.”
타이니로서는 진심 가득한 찬사였지만, 그 모습을 본 렌돌은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허, 역시……. 들어 올리기도 힘든 무기를 어찌 휘두르겠느냐? 그냥 내려놔라. 하던 작업이나…….”
렌돌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데, 이내 그의 눈에 기함을 토할 만한 광경이 들어왔다.
“……헐!?”
부우웅.
부웅.
파아아앙!
워해머를 몇 차례 휘둘러 보던 소년이 이내 한 손으로 해머를 휘둘러 잔영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 것이다.
거기다.
꽈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야, 야 인마!! 그러다 무너진다!!”
가볍게 바닥을 후려친 워해머의 일격에 창고의 바닥이 푹 꺼졌다.
렌돌이 펄쩍 뛰며 비명을 지르는데.
“역시, 멋져!!”
하마터면 창고를 무너트릴 뻔한 타이니는 망치 머리에 자신의 볼을 비비적거리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변태 새낀가’
렌돌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나도 중간에 소유주를 변경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다.”
다행히도 자신이 튼튼하게 지은 대장간은 갑작스러운 날벼락에도 바닥만 꺼지는 데에서 그쳤으니, 지금은 저 애물단지를 넘기는 일이 우선이었다.
다만, 타이니는 그의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여기에 같은 길이의 자루를 조립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뭐?”
“제 키가 더 자란 후에도 쓸 수 있게, 혹은 대형 괴수를 상대할 때를 대비해 길이를 늘일 수 있게 해 주셨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재질과 마나 조율은 똑같이 해 주셔야 하고요.”
날로 먹으려다가 괜히 추가 노동 건수가 생겼다.
‘……그래도 저걸 치우고 보상까지 챙기면 그게 다 얼마냐!’
렌돌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손익을 계산해 봤다.
“……그럼 그것과 잔금은 공작가에?”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렌돌이 조심스레 흥정에 나서 보려 하는데.
“예, 그러십시오.”
타이니는 아예 금액을 묻지도 않고 호쾌하게 대답했다.
그에 렌돌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와하하하! 역시, 내가 잘 봤어! 네 녀석은 크게 될 놈이야! 푸하하하!”
팡, 팡.
등을 두드리는 드워프의 두꺼운 손.
아플 만도 했건만, 그래도 타이니에겐 이 순간이 기껍기만 했다.
‘녹턴을 다시 찾기 전까지는 쓸 수 있겠어.’
모처럼 마음에 드는 병기를 구한 데다가, 드렉슬러의 무기를 빼앗지 않아도 되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또 주문한 것보다 더 좋은 무기를 구했다고 하면 공작도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을 터였다.
“근데 너, 그거 잘 가지고 다닐 수 있겠냐?”
“물론이죠!”
호언장담했지만, 사실 약간의 문제는 있었다.
그그그극.
바로 망치가 지금 그의 키보다 크다는 것.
“푸하하하! 거봐라, 이놈아. 끌리잖아!”
뭐가 그리 우스운지 배를 잡고 웃는 렌돌을 무시한 채, 타이니는 창고 구석에서 워해머 전용 밸트를 찾아 착용했다.
등 뒤에 달린 금속 버클에 망치의 목 부분을 걸자, 망치 머리는 엉덩이에 닿고 손잡이는 머리 위로 솟아오르는 모양이 되었다.
어깨 위로 손을 뻗어도 망치 자루의 끝부분을 쥘 수는 없었지만, 중간 부분을 잡아서 망치를 꺼내는 것도 금세 익숙해졌다.
휘두르는 동시에 손아귀에서 슬쩍 힘을 빼면 자루 끝의 무게추 부분에 손이 걸리게 되니, 자연스레 손잡이를 쥘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 추가로 말씀드린 사항도 잘 부탁합니다.”
자연스럽게 망치를 내미는 타이니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렌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슬쩍 물었다.
“……정말 많이 써 봤니?”
“그렇다니까요.”
“그 나이, 그 덩치에 그럴 리가……? 말이 안 되는데? ……근데 진짜 같긴 하네.”
혼란스러운 표정의 렌돌과는 달리 타이니는 정말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더 커진 월랑 위에서라면, 주문대로 2m짜리 무기가 되더라도 충분히 쓸 수 있을 테니까.’
이만한 무기에 월랑까지 함께한다면 두 단계 이상 차이 나는 강자도 너끈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아니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자루가 추가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음? 아, 적어도 한 달은 잡아야…….”
“2주 내로 부탁드립니다.”
“……야 인마! 누구 마음대로 기간을 줄이는…….”
“자루뿐이니 세공은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형태만 잡고 나면, 나머진 온전히 세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하, 이놈……. 너, 나 말고 다른 드워프 장인도 만나 본 적 있냐?”
“예.”
“허? 이번에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나이에 말이 되나?”
“무기가 제대로 주인을 찾았으니, 가격이나 좀 깎아 주세요. 어차피 애물단지를 치운 셈이지 않습니까?”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 인마.”
렌돌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드워프 장인은 대개 무기가 제 주인을 만났다 싶으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판다.
세상 물정 모르는 호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물건이 더욱 빛을 발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라고 전생에 하이넨은 변명했었다.
‘그게 호구지, 뭐야 싶긴 했지만.’
그 호의의 대상이 나라면 호구가 아니라 친구다.
그래서 그는 전생에도 드워프들을 좋아했었는데, 다행히 이번 생에도 드워프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물론 그 친구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거냐?”
“아니요, 좋은 물건을 얻어 기분이 좋아서요. 부품이 완성되면 다시 찾으러 오겠습니다.”
“……진심 같은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렌돌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짧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대장간 입구까지 그를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타이니는, 문을 나서기 직전에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데, 이 워해머 이름이 뭡니까?”
평범한 무구도 아니고 아티팩트라면 따로 붙인 이름이 있기 마련.
혹시 없다면 직접 지을 생각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렌돌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스탬프.”
“도장(Stamp)이요? ……참 일차원적인 이름이군요.”
사람을 찍어 버리는 무기 이름이 스탬프라니!
타이니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리자, 렌돌이 갑자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내 아들 그란돌이 지은 이름이다.”
쿨럭.
“……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역시 단순한 게 최고죠!”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황급히 말을 바꿔 보는데, 문득 렌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까 분명, 아들이 워해머를 못 들고 ‘갔다’고…….’
“저, 혹시…… 아드님은 어쩌다가……?”
렌돌이 우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가출했어.”
“……예?”
“아까 말했잖아. 지가 쓰려다 못 들어서 놓고 갔다고.”
“그러니까, 죽은 게 아니라…… 그냥 여기 없는 겁니까?”
“뭔 소리야? 내 아들이 죽었으면 좋겠냐?”
“에헤이, 무슨 그런 소리를! 그저 건강히 잘 있으면 된 거죠, 뭐! 아. 하. 하.”
어색하게 웃는 타이니를 슬쩍 노려보던 렌돌이 이내 피식 웃으며 그의 등을 툭 쳤다.
“그래, 뭐.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라도 내 아들 만나면 소식이나 전해 줘.”
“……제가 드워프 얼굴은 잘 못 알아봅니다.”
“이놈아, 말이라도……! 끄응, 내 아들이 그 워해머를 알아볼 거다. 자기가 만든 물건이니까.”
“드워프의 직감입니까?”
“……그것도 알아? 그래, 맞다.”
드워프의 직감은 논리를 뛰어넘는 정확성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타이니는 직감을 믿고 멋대로 행동하다 크게 삽질하는 하이넨을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그저 정안과 직감에 크게 의존하는 드워프의 행동 방식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돌았겠거니 하고 말았었는데, 왜인지 지금 렌돌이 하는 말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란돌이라…….’
뭐 호구…… 아니, 드워프 장인은 많이 알아 둬서 나쁠 게 없으니까.
“예, 혹시 만나게 되면 소식 전할게요. 그럼 전 2주 뒤에 들르겠습니다. 2주입니다, 2주!”
“에잉, 건방진 꼬마 같으니. 알겠으니까 후딱 꺼져!”
“하하. 예, 수고하십쇼.”
퉁명스러운 인사를 끝으로 돌아선 작달막한 드워프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마찬가지로 작달막한 소년.
그들의 얼굴에는 비슷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