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28화 (10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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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인생 - 128

    실리콘밸리에 가기 전 샌디에이고를 먼저 방문한 경환은 래리, 세르게이와 함께 SHJ-퀄컴에 들어섰다. 독자 OS를 확보하고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경환은 두 회사의 원활한 협조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래리, 우리는 언제 이렇게 번듯한 건물에서 일할 수 있을까? 부럽다. 부러워.”

    “우리 아직 시작도 안했잖아. 우선 구글부터 완료하고 생각을 해 보자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경환은 두 사람을 슬쩍 쳐다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구글의 성장은 퀄컴을 능가하는 것이었지만, 아직은 사업체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실체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래리, 세르게이. 내가 장담하건데 SHJ-퀄컴보다 더 큰 사업체를 두 사람에게 만들어 줄 테니 너무 부러워하지 말도록 해. 그러기 위해선 에릭 슈미트를 반드시 전문경영인으로 합류를 시켜야 된다는 거 명심하고.”

    두 사람을 다독이며 SHJ-퀄컴에 들어서자 어윈과 리챠드가 세 사람을 반겨 주었다. 사장실에 들어선 경환은 매출증가로 수익이 개선되고 있다는 리챠드의 보고를 받은 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이콥스 사장님, 장성공사와 원만한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먼저 접촉하지 마시고 놔두십시오. 급한 건 중국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다른 상황은 없나요?”

    “중국은 사장님의 지시대로 서둘지 않겠습니다. 홍콩에 이어 러시아 동유럽으로 방향을 전환할 생각입니다. 사실은 무선인터넷프로토콜 개발과 관련해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발 중인 CDMA 2000 1X와도 연관이 있는 터라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영과 사업이 아닌 IT 전문분야에 대한 용어가 어윈의 입에서 나오자 경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급격하게 진화하는 IT 기술에 대한 용어는 경환을 항상 힘들게 만들었다.

    “혹시 모바일 단말기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말하나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경환은 정확한 뜻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휴대폰의 성장과정을 알고 있는 터라 상당히 중요한 연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IT분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경환으로써는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이 기술로 휴대폰 시장의 큰 변화가 도래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어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현재 에릭슨과 노키아, 모토롤라 등 단말기 업체들이 공동연구를 위해 뭉치고 있습니다. 내년에 포럼을 개최해 표준방식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마침 MS에서 공동개발을 제안해 왔는데 에릭슨 진영보다는 영향력이 적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경환은 자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기술을 선도하지 못하고 끌려가야 되는 상황이 영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스마트폰이 나오려면 적어도 10년은 기다려야 된다는 생각에 여유 있게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스마트폰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은 이미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경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이콥스 사장님. 우린 MS와 같이 갑시다. GSM의 대표주자인 에릭슨, 노키아와 함께 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거 같네요. 오성전자와 금성전자 등 한국 단말기 업체들을 참여시킨다면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MS와의 협상으로 최대한 우리의 이득을 챙기셔야 됩니다.”

    “저도 사장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GSM의 시장을 파고들어야 되는 우리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결정이 늦어지면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경환은 본능적으로 MS와의 공동연구를 지시를 내렸다. MS 역시 넘어야 될 벽이기 하지만, 지금은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는 처지가 경환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참, 두 분께 소개를 시켜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검색엔진을 개발한다는 소식은 들으셨을 겁니다. 여기 있는 래리와 세르게이가 개발팀장으로 있습니다. 곧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고 앞으로 SHJ-퀄컴과 함께 많은 기술을 연구 개발하셔야 됩니다.”

    경환의 소개에 각 자 인사를 나누었고 회의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무선인터넷이 활성화 된다면 노트북과 PDA, 비디오 폰의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 모든 것이 일체화 된다면 스마트폰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에 경환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우선 휴대용 단말기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됩니다. 이미 개발된 기술이라면 인수나 합병을 통해 확보를 해야 되고요. 가전제품을 디지털화하여 인터넷과 연결하는 기술이나 음성인식 등 다방면의 기술을 확보 하십시오. 최종 우리의 목표는 퍼스널 컴퓨터와 휴대폰, 비디오 폰, 게임기 등을 총 망라하는 단일 휴대기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에 따른 OS는 여기 있는 래리와 세르게이가 담당을 하겠지만, SHJ-퀄컴과 상호 긴밀한 동조체제를 구축하는 게 시급할 거 같습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서로 눈을 맞추며 놀라고 있었다. 그동안 궁금해 하던 경환의 계획을 이 자리에서 듣게 될 줄 몰랐다. 단순하게 SHJ-퀄컴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생각한 내용보다 훨씬 큰 계획이었다.

    “사장님, 그래서 QCP 라인을 정리하는 걸 반대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산한 단말기의 단점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편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 접목된 제품이라도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경환은 손에 들고 있는 뭉툭한 모토롤라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을 이어갔다.

    “이 제품은 지금 가장 잘 나가는 모델이지만, 두껍고 크다보니 휴대가 불편합니다. 총도 아닌데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모습도 보기 안 좋고요. 만약 얇고 작아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제품이나 접히는 휴대폰이 나오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칼라액정을 장착하게 되면 어떨까요? 혹은 디지털 카메라를 부착한 휴대폰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휴대폰의 기술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우선 휴대폰 제작과 관련해 디자인팀을 만드시고 기술 연구를 해 보도록 하세요.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 정리를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들 경환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멍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획기적인 경환의 아이디어를 들은 사람들은 거칠고 선이 굵은 플랜트 업계의 오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아이디어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환은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무선인터넷 기술에 초조해 하며 한 번에 자신의 계획을 토해내고 말았다. 넋 놓고 있다가는 단말기는 오성전자 스마트폰은 애플에 선점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경환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래리, 나 제임스가 갑자기 무서워진다. 우리는 단지 검색엔진을 개발하고 있을 뿐인데, 제임스는 이미 다른 것을 보고 있잖아.”

    회의를 마치고 경환이 어윈과 리챠드와 장성공사와 오성전자 건을 협의하기 위해 자리를 이탈하자 세르게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래리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제임스는 즉흥적으로 한 얘기가 아닌 거 같아.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을 하고 있었던 느낌이 들더라고. 제임스가 원하는 기술이 접목된 제품이 나온다면 세계시장을 흔들 수 있을 거 같지 않냐?”

    “폭발력이 엄청나겠지. 결국 제임스가 우리에게 원한 것은 자신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OS를 개발하라는 거잖아. 난 아까 소름이 다 돋더라고.”

    “두 사람 거기서 뭐해? 오늘 중으로 실리콘밸리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되니 빨리 와.”

    경환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서둘러 움직였고, 세 사람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쿡 부사장님 오랜 만이네요.”

    “김 부장님,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쉬게 해드리지도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금 사장님께서 벌려놓으신 일 때문에 제대로 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북경사무소를 정리한 김창동은 직원들의 의사에 따라 배치를 완료한 후 가장 늦게 휴스턴에 도착했다. 페이퍼컴퍼니이긴 했지만, 홍콩의 법인까지 폐쇄시키면서 장성궈의 비자금까지 깔끔하게 처리를 한 상태였다.

    “아닙니다. 북경에서 그동안 잘 놀았으면 이젠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죠. 사실 저도 휴대폰 판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어 걱정이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본적인 안은 본사에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실질적으로 계획을 실행시킬 조직이 필요한 거니 힘들긴 하겠지만,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오성전자와 금성전자의 휴대폰 판매독점권을 챙긴 SHJ는 미국과 캐나다의 판매망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한국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상태이고 휴대폰 시장에선 빅3인 노키아, 모토롤라, 에릭슨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총판을 맡을 대리상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우선 본사의 기획서를 살펴보고 움직여 보겠습니다. 여담이긴 합니다만 본사는 올 때마다 층수가 늘어나네요.”

    그동안 늘어나는 조직과 인원들로 인해 한 개 층을 늘려 빌딩의 세 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이미 포화 상태였다.

    “그만큼 우리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 아니겠어요? 기업도 공개하지 않고 펀드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확장을 하는 우리를 각계에서 주목을 할 정도니까요. 만약 SHJ타운이 건설되기 시작하면 다시 한 번 시선을 받게 될 거예요.”

    “타운까지 조성을 한다고요?”

    “사장님은 사업체가 분산되길 바라시지 않아요. 지금 SHJ타운을 유치하기 위해 각 도시에서 쟁탈전이 벌어진 사실을 아시면 더 놀라시겠네요.”

    린다는 김창동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직급은 낮지만, 김창동은 SHJ의 초기 멤버이었고 SHJ의 초기 운영자금까지 맡았었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 린다는 휴대폰 판매망 조성과 관련된 기획서를 건네며 김창동과 긴 얘기를 주고받았다.

    오성전자 사장실로 한재웅 상무가 바쁜 걸음으로 들어갔다. 인수 문제로 경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이후부터 오성전자와 SHJ와의 관계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오히려 이 문제로 인해 경쟁업체인 금성전자와 모토롤라만 어부지리를 본 상황은 한재웅의 입지를 좁히게 만들었다.

    “사장님, SHJ-퀄컴이 무선인터넷프로토콜 개발을 MS와 손을 잡고 연구하기로 했답니다. 우리에게 참여를 요청해 왔는데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네요.”

    “SHJ-퀄컴 입장에선 에릭슨이 주도하는 WAP은 껄끄러운 수도 있겠죠. MS와 손을 잡은 건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WAP과 WIP의 싸움이 재미있게 흘러가겠군요.”

    이세일 사장은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었지만, 어느 진영에 오성전자가 참여해야 될 지에 대해서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WAP진영의 참여를 주저해 GSM 시장을 등한시할 수도 없었고 WIP 진영의 요청을 거절해 SHJ-퀄컴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갈 수도 없었다.

    “금성전자에게도 제안이 갔을 텐데, 그쪽 반응은 어떻습니까?”

    “금성전자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거 같습니다. 주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직 WAP 진영에서의 정식요청은 받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내년 포럼을 시작으로 무선인터넷프로토콜의 표준화를 결정한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오성전자는 이 포럼에 초점을 맞춰 WAP 진영에 가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SHJ-퀄컴의 제안은 이세일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SHJ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제안을 거절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젊은 이경환 사장에게 우리가 얼마나 끌려 다녔습니까? 아주 치가 떨립니다.”

    이세일은 경환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꼼수를 부린 것은 경환이 아닌 자신들이었지만, 이세일의 머리에는 자신들이 가해자란 생각보단 피해자란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사장님, 저도 같은 생각이지만, 앞으로 성장할 휴대폰 시장을 생각한다면 SHJ-퀄컴의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우선 WIP 진영에 가담해 SHJ-퀄컴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WAP 진영과도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을 찾는 게 어떻습니까? 우리는 GSM과 CDMA 단말기를 모두 생산하니 두 진영의 이해를 얻는데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지만, 그 여우같은 이경환 사장이 뒤끝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이경환 사장의 잔재주에 우리가 한두 번 당했습니까?”

    SHJ와 관련된 일을 추진하면서 그룹 회장의 문책을 수도 없이 당한 이세일은 경환과 다시 부딪힐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니 이번 일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시작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경환 사장이 나이는 어리지만, 의외로 통찰력이 상당하더군요. 이런 사람은 꽁수보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성건설부터 시작한 악연을 한재웅은 끊고 싶었다. 항상 뒤에서 작업을 하다 경환에게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이 한재웅은 상기하고 있었다. 여러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땐 정석으로 접근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었다.

    “한 상무의 말대로 진행을 해 봅시다. SHJ-퀄컴에 WIP 개발에 참여를 하겠다고 통보를 하시고, 직접 우리의 입장에 대해 설명을 해 주세요. 결정을 했으면 금성전자보다 빨리 접근을 합시다.”

    한재웅은 즉시 WIP 개발에 참여를 통보했고 WIP 개발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성전자와 SHJ와의 충돌로 어부지리를 봤던 금성전자는 WAP 진영의 눈치를 보느라 휴대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호기를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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