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IF 외전 : 주민이 길들기 전에 현덕이 크게 다치게 되면
현덕이 스무 살이 되어 맞이하는 봄. 유독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맹덕은 기다렸던 신간 만화책을 사러 나갔다. 나간 김에 친구들과 놀고 온다고 했다. 어머니는 친구분들과 등산을 가셨다. 모처럼 주말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평일에 못 챙겨 본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현덕은 아버지에게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자고 오겠다 말하며 집을 나섰다.
운동 삼아 계단으로 내려가며,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가기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뭐 하고 있어.]
귀가 녹을 듯 달콤한 목소리. 주민이었다.
“형네 집 가는 중.”
[이렇게 일찍?]
“미리 가서 혼자 놀고 있게.”
귓가에 웃음소리가 닿았다. 요즘 주민은 부쩍, 이렇게 잘 웃었다. 현덕은 좀 더 듣고 싶어서 핸드폰을 귓가에 바짝 가져다댔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아, 나도 일찍 가고 싶다. 현덕아, 너무 보고 싶어.]
“우린 어제도 만났어.”
[그래, 우린 벌써 열 시간째 못 만나고 있잖아.]
“아이고, 예전에 일주일 동안 못 만났을 땐 어떻게 버텼대?”
[죽을 뻔했지. 그래도 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텼지.]
“그럼 오늘 남은 시간도 그 믿음으로 버티세요. 우주민 씨.”
[아, 나 방금 설 뻔했어.]
“……끊을게.”
[안 돼, 안 돼. 미안, 현덕아. 하지만 농담 아닌데, 진짜 그럴 뻔했어.]
다급하게 말하고서는, 또 마지막엔 꿀을 바른 듯 달콤해졌다. 현덕이 그런 제 목소리를 못 견뎌 하는 줄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였다.
현덕은 주변을 둘러보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보이는 건 시멘트벽과 계단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귓가에 닿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제 옆에 없다는 걸 실감할 수 있으니까.
‘약았어, 완전 약았어. 우주민.’
속절없이 끌려갔다간 큰일난다. 저 목소리에 취하면 어디 건물의 화장실에라도 뛰어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귀에 닿는 저 달콤한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제 손으로 지퍼를 내리고, 제 성기를 손으로 비벼야 할 테니까.
귓가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 손으로 자위하는 주민의 숨소리가 들리겠지.
소리를 내라고, 들려달라고 말하는 주민의 말에 반항하려 애써야 할 것이다. 혹여나 밖으로 신음이 새 나갈까 입을 꽉 다물어도,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고 신음하며 사정하고야 말 테고. 공중 도덕, 상식, 사회 질서 따윈 다 잊은 채로.
주민은 언제나 현덕에게만은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나 요즘 들어 더더욱 달콤해졌다. 꽃샘추위마저 지나간 봄 날씨 같았다. 한창때의 피 끓는 현덕에게 그런 주민은 너무 위험했다.
‘아마도 그날 이후지?’
어느새 계단을 다 내려온 현덕은 아파트 건물을 나와 대로를 걸으며 ‘그날’을 떠올렸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에 열이 올랐다.
얼마 전, 현덕은 스무 살이 되었다.
대부분의 열아홉 살에게 스무 살이 되는 날은 의미 있는 날이다. 현덕에게도 그날은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2년이나 저를 기다려준 주민과 몸을 겹친 날이기 때문이다.
감질나는 입맞춤만으로 주민과 현덕은 장장 2년을 버텼다. 그마저도 자주 하진 못했다. 주민과 현덕 모두 정신없이 바빴고, 언제나 주변엔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으니까.
남들의 눈을 피해 구석에서 잠깐씩 입을 맞추고, 그것만으로 행복해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다시 숨결을 나누고. 그렇게 2년을 함께했다.
스무 살이 되던 날, 주민은 두 살 연상의 위엄으로 기다림을 조금 더 연장했다. 이런 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거라며 현덕을 얌전히 집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게 고마워서, 또 얄미워서, 현덕은 밤중에 몰래 집을 탈출하여 주민에게로 갔다. 주민은 현덕을 기다렸다는 듯, 아니, 그저 홀로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듯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동안 참고 있던 건 형만이 아니야.”
포도 맛이 나는 입술을 덮친 건 현덕이었다.
“맞아. 그런데 넌 내가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모를 거야.”
이내, 현덕을 먹어치운 건 주민이었다. 주민은 기다렸다는 듯 제게 달려든 현덕을 끌어안았다.
침대로 갈 여유 따윈 없었다. 두 사람은 와인을 엎질러 축축해진 소파 위에서 주민과 처음으로 몸을 섞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주민은 와인에 젖은 셔츠를 벗었으나 바지는 벗지 못했다. 바지 버클만 겨우 풀고는 바로 현덕의 위에 올라탔다.
주민은 현덕이 입고 있는 재킷을 벗어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셔츠는 아예 찢어버렸다.
어쩔 줄 몰라 숨만 내뱉는 입술을 집어삼켰다. 씹어 먹을 듯 입술을 깨물고, 겨우 열리는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현덕이 혀가 뽑힐까 무서워할 정도로 세게 빨아 당겼다. 현덕의 혀를 아예 제 입안으로 빨아들여 핥았다. 현덕이 숨이 막혀 헐떡여도 놓아주지 않았다.
주민의 두 손이 하얗게 드러난 몸을 더듬었다. 허리를 붙잡고 바지와 팬츠를 함께 벗겼다.
주민이 현덕의 입술을 살짝 놓아주었다.
현덕은 겨우 숨을 몰아쉬었으나 곧 그 숨은 다시 끊겼다.
“아, 말도 안 돼, 헉!”
주민은 현덕의 성기를 단번에 입안에 넣었다. 현덕은 숨 쉬는 방법을 잊었다.
주민은 도망가려는 현덕의 다리를 두 손으로 벌리고, 허벅지를 짓누르고, 현덕의 것을 빨았다.
“윽…… 읏…….”
뜨겁고, 축축하고, 이상했다. 몸서리쳐지게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어 허리를 뒤틀었지만 그마저 주민의 입안으로 제 것을 밀어 넣는 꼴이었다.
주민은 사탕을 빨듯 쪽쪽, 일부러 소리를 내어 핥았다.
귀두가 주민의 목구멍에 닿았다. 그 감촉이 너무 적나라해서 현덕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이미 숨이 막힌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신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내뱉으면 정말 나쁜 일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을 막았다.
“읏…… 으, 읏!”
현덕은 금세 사정했다. 주민을 밀쳐내지도 못했다.
주민은 혀를 내밀어 현덕에게 그걸 보여주었다. 제 혀에서 흘러내리는 하얗고 끈적한 것을.
“형-”
그제야 숨이 터져 나왔다.
현덕은 다급히, 주민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손으로라도 그걸 닦아내려 했는데, 주민이 좀 더 빨랐다. 주민은 현덕의 것을 입에 문 채 다시 현덕에게 입을 맞추었다.
키스는 시큼했다.
주민은 현덕의 냄새가 나는 혀로, 현덕의 몸을 핥았다. 두 손으론 현덕의 성기를 쥐어 흔들고, 현덕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혀가 유두를 간지럽게 핥을 때, 현덕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그사이의 단단히 맞물린 틈을 갈랐다.
남자끼리 섹스를 할 때 어떻게 한다는 건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군대에서 농담 삼아 비누를 주워 달라고 떠드는 걸 듣기도 했다. 남자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떠드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직접 몸으로 겪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제가 받아들이는 위치가 될 거란 건 짐작하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하려니 무서웠다.
현덕의 몸이 굳자 주민은 현덕을 자상히 달래주었다.
“괜찮아, 절대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현덕아, 사랑해. 날 받아줘. 응?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미칠 거 같아.”
입으로만, 혀로만, 상냥하게 꾸민 표정으로만.
길고 마디 진, 현덕이 좋아하는 주민의 손은 현덕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았다. 현덕이 주민의 손안에서 다시 사정했을 때, 현덕의 안에는 주민의 손가락이 세 개나 들어가 있었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살아 있는 게 맞긴 하지만. 아무튼 제멋대로 현덕의 안을 헤집었다.
주민은 간간이 숨을 억누른 듯한 소리를 냈다. 그건 그르렁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목울대에서 나는 소리는 현덕이 숨과 함께 토해내는 신음과 달랐다. 더 낮고, 묵직했다. 애써 참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참아?”
현덕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현덕은 엉망이었다. 온통 주민의 마음대로였다. 입술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번들거렸고, 유두는 부어 있었다. 하얀 몸은 여기저기가 빨리고 씹혀 시뻘게져 있었다. 그리고 현덕의 안에는 주민의 손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흑……윽…….”
현덕은 주민에게 깔려, 그가 주는 쾌락에 휩쓸리고 있었다. 미칠 것 같은데. 이미 미쳐버린 것 같은데. 주민은 그것만으로도 모자란다는 듯 참고 있었다.
‘뭘? 대체 뭘?’
그걸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민의 손가락이 현덕의 몸 안, 깊은 곳의 어느 한 점을 꾹 눌렀다. 살짝 도드라진 그곳에서 짜릿하게 전기가 올랐다.
“아!”
현덕의 몸이 튀어 올랐다. 무조건적 반응이었다. 주민이 누르고 있지 않았다면 소파 아래로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자극이 지나간 자리에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이 반응을 주민에게 보이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현덕의 몸 안에 그런 쾌락이 숨어 있다는 걸 발견한 건 우주민이었다. 그리고 현덕은 속절없이, 제 반응을 우주민에게 내보였고.
“혀, 형…….”
현덕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응, 현덕아.”
주민은 예쁘게 웃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사악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현덕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우주민은 사악했다.
“아흑, 형, 잠깐만. 자……아아……잠, 깐만!”
“현덕아, 괜찮아. 좀 더 보여줘. 나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그치? 그러니까 괜찮아. 좀 더 해보자. 응?”
주민의 아름다운 손가락이 현덕을 극으로 몰고 갔다. 다른 손은 자극을 받아 선 현덕의 성기를 붙잡고 흔들었다.
현덕은 온몸이 벗겨진 채, 주민의 아래에 깔려 주민의 손 아래에서 망가졌다.
“아……. 흑……싫어, 싫어. 싫어!”
좋았다. 무서웠다. 짜릿했다. 두려웠다. 미칠 것 같았다.
두 손으로 주민의 어깨를 밀며 도망치려 했지만 무리였다.
머리가 소파 밖으로 밀려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지구가 중력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저를 움켜쥔 주민의 악력은 현실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빛이 튀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형, 잠깐만. 잠깐만 쉬었다 하, 흡! 아, 형……. 주민 형, 살려줘, 응? 살려, 줘요……. 이, 이거, 아냐, 이상해…….”
현덕은 주민의 어깨와 허리에 제 다리와 팔을 비비며 애원했다. 주민은 홀쭉 들어간 현덕의 마른 배에 입을 맞추며,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자신의 목소리. 애원, 비명과 같은 신음. 주민의 손에서 젖은 제 앞과 뒤에서 들리는 질척이는 물소리.
그 속에서 주민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와 닿았다.
괜찮아.
사랑해.
그 목소리가 주문처럼 현덕을 옭아맸다.
어느 순간, 바르작거리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아…….”
눈앞에서 별이 튀었다.
현덕은 주민의 손안에서 다시 한번 사정했다.
온몸의 힘줄이 끊어진 듯 축 늘어졌다. 현덕의 몸은 반 이상 소파 밖으로 비죽 나가 있었다.
하아. 주민은 숨을 크게 내쉬며 두 손으로 현덕의 허리를 잡았다.
뒤에서 주민의 손가락이 빠졌다. 그때 현덕의 몸이 작게 떨었다.
현덕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리고 왜 자신이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침입했던 것이 빠져나가는데 허전함을 느끼다니.
주민이 현덕의 몸을 잡아당겼다. 현덕의 몸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현덕은 저항할 생각 따위 하지 못했다. 눈앞이 핑핑 돌고. 목이 막혔다. 몸이 활짝 열린 느낌이었다. 그걸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실제 두 다리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벌려져 있었다. 허벅지 안쪽이 다 드러났다. 앞도 뒤도 모두 주민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주민의 손안에 제 모든 걸 내놓은 채였다.
주민은 현덕의 허리를 두 손으로 꽉 잡은 채로 제가 멋대로 풀어놓은 구멍에 성기를 가져다 댔다.
이미 한 번 침범당한 그곳에 성난 성기가 닿았다. 두꺼운 귀두의 끝이 닿는 느낌은 생소했다. 현덕의 눈앞이 뿌예졌다.
“김현덕.”
한숨 섞인 부름이 들렸다. 현덕은 고개를 돌려 주민을 보았다.
“나 봐야지.”
“아…….”
무언가 말하려 입을 벌렸을 때였다. 주민이 현덕의 안을 치고 들어왔다. 성기가 반쯤 현덕의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아…… 악!”
현덕은 비명을 내질렀다.
뜨겁고 두꺼운 게 안의 여린 살을 쓸어 올렸다. 그 느낌을 도무지 그냥 견뎌낼 수 없었다. 현덕은 견디지 못하고 주민을 끌어안았다. 저를 파고드는 게 주민인데,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주민뿐이었다.
“형, 천천히……. 제발 천천히…….”
현덕은 주민의 머리를 껴안고 빌었다.
“응, 그래. 천천히 할게.”
주민은 현덕에게 끌려 몸을 구부렸다. 혀를 내밀어 현덕의 가슴을 길게 핥으며, 남은 반마저 단번에 박아넣었다.
“아……!”
현덕의 몸이 퍼덕였다.
주민은 현덕의 허리를 양손으로 꽉 잡고, 허리를 크게 뒤로 뺐다 다시 단번에 밀어 넣었다.
현덕이 세 번 사정하는 걸 지켜보았다. 제 아래 깔려 제가 주는 쾌락에 몸부림치는 걸 보았다. 그동안 성날 대로 성난 성기는 현덕의 안에 묻자마자 당장 사정할 듯 부풀었다. 현덕이 익숙해지길 기다릴 틈 같은 건 없었다.
주민은 거칠게 현덕을 몰아붙였다.
현덕의 허리를 잡은 손에 희게 뼈가 도드라졌다. 이미 현덕의 허리엔 빨갛게 손자국이 난 지 오래였다.
현덕의 안은 축축하고 뜨거웠다. 좁았다. 주민의 것을 쥐어짜듯 조였다. 침입을 견디지 못해 밀어내면서도, 막상 주민이 허리를 뒤로 빼면 놓칠 수 없다는 듯 달라붙었다.
그 감촉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기분 좋아, 네 안. 좋아서 미쳐버릴 거 같아.”
주민은 제가 손으로 잔뜩 자극해 놓았던, 현덕이 느끼는 곳을 찾아 허리를 박았다. 그곳에 주민이 닿을 때마다 현덕의 허리가 떨렸다.
“흑……윽……흐윽…….”
현덕은 어느샌가 울고 있었다.
주민이 움직일 때마다 현덕의 안으로 굵은 성기가 박혔다. 그때마다 현덕의 하얀 엉덩이에 주민의 음모가 쓸렸다.
간지럽고 까슬까슬했다. 하지만 그게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제 몸에 박히는 주민의 것이 버거웠다.
“커요. 형, 너무 커……. 안 돼! 그만, 응? 흐으……안 돼…….”
현덕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팔다리가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오로지 주민과 연결된 그곳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주민이 움직일 때마다 현덕은 함께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숨이 얕고 거칠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제가 살아는 있는지조차 가늠이 안 됐다.
머리가 녹아버렸다. 남은 거라고는 주민이 자극하는, 제가 느끼는 제 몸 안의 어느 부분이었다. 꼭 스위치인 것 같았다. 주민의 것이 그곳에 박힐 때마다 몸서리쳐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
“아…… 아……. 아…….”
현덕은 주민의 아래에서 흔들리며 신음을 뱉었다. 귓가에 들리는 거라고는 주민의 거친 숨소리뿐.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주민이 주는 자극만 현덕을 살아 있게 했다.
현덕의 허리를 잡은 주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이상 더 빨라질 순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주민이 급해졌다. 허리를 잘게 치대며 현덕의 안에 제 것을 처박았다.
이제는 숨 쉴 틈도 없이 자극이 밀려왔다.
“아…….”
현덕은 신음조차 내뱉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주민은 현덕의 엉덩이를 짓누르듯 제 것을 밀어 넣고 사정했다. 현덕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느낌에 몸서리쳤다.
눈가를 타고 미처 흘리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민은 현덕의 위에 엎드려 제 몸을 겹쳤다. 주민의 것은 여전히 현덕의 안에 있었다. 주민은 현덕의 눈가를 입술로 핥았다.
두 사람의 가슴이 격하게 오르락내리락 움직였다. 그 숨이 서로 맞부딪쳤다.
주민은 견디지 못하고 현덕에게 입을 맞추었다. 마취된 듯 감각을 잃은 현덕의 입술을 빨고, 도망치지도 못하는 혀를 얽었다.
그 뒤로도 주민은 그만하자고 애원하는 현덕을 달래 두 번을 더했다.
기절 직전까지 간 현덕을 끌어안고, 주민은 울었다. 현덕은 그런 주민을 달래고 싶었지만 손을 들어 올릴 힘도 없어 그저 주민에게 안긴 채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처음이 그 정도였다. 그 뒤로 둘은 만날 때마다 몸을 섞었다.
주민은 평소의 다정함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침대에서 거칠었다. 현덕이 아무리 사정해도 절대 봐주지 않았다.
제발 천천히 하자고 밀어내도 싱긋, 웃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날은 더 거칠어졌다. 현덕의 몸에 단 한 방울의 수분도 남겨 놓지 않으려는 듯 쥐여 짜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사정시켰다. 그리고 현덕의 안에 몇 번이고 제 것을 쏟았다.
현덕이 안전한 섹스를 위해 콘돔을 쓰자고 해도, 한 번뿐이었다. 한 번의 섹스로 현덕의 정신을 다 빼놓고 2차전, 3차전에 들어갈 때는 콘돔을 쓰지 않았다.
현덕은 언제나 제 안에 퍼지는 주민의 것을 받아들이며 몸을 떨었다. 주민은 그런 현덕을 보는 걸 좋아했다. 악취미였다.
어쩌면 주민은, 천성이 거칠고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현덕은 잠자리에서 항상 생각했다.
침대 밖 주민은 꿀같이 달달했다. 특히나 현덕이 스무 살이 되어 섹스하고 난 이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뭔가 안심이 되는 심리인 걸까?’
현덕은 나름 주민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 고민해보다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 민망해졌다.
‘우주민한테 뭐라 그럴 게 아니네.’
고개를 휘휘 저었다.
[현덕아?]
“응, 형. 오늘 저녁에 같이 영화 보기로 한 거 기억나요?”
현덕은 괜히 두 계단씩 뛰듯이 내려가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괜찮겠어요? 안 바빠?”
[하나도 안 바빠. 방송국을 폭파해서라도 꼭 갈 거야.]
“폭파하지 마요, 사람들 다쳐.”
[응, 네가 하지 말라니까 안 할게.]
주민은 현덕의 말을 잘 들었다. 하지 말라면 안 했다.
“착하다, 착해.”
현덕은 제 말을 잘 듣는 주민을 칭찬하며, 횡단보도 앞에 섰다. 아직 빨간 불이었다. 주변엔 다른 사람들도 서넛 있었다.
‘뭐 어때,팔팔한 20대인데.’
현덕은 잠깐 대기하는 동안에 또 주민과의 섹스를 떠올렸다.
주민이 침대에서 거칠어 봤자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이십 대의 남자 둘이었다.
막 스무 살이 된 현덕과 스물두 살이 된 우주민. 성욕이 불붙어 온 우주를 불태워도 모자랄 시기였다. 이 년 동안 입술만 쪽쪽 대며 현덕이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려주었는데. 성욕을 주체 못 해 그 정도 거칠어지는 건 괜찮았다.
현덕 또한 때로는 버거워 투덜댈 뿐, 그런 주민이 싫지 않았다. 가끔은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맞대고 뼈와 살이 불타는 밤을 보내는 건 언제나 좋았다.
오늘 밤도 그런 밤 중 하루가 되리라.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일을 치르든, 영화를 보다 말고 서로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든. 아마도 후자겠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덤벼봐?’
의욕을 불태우는데 전화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전화 좀 끊으라고 사정하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이제 전화 끊어야 하지 않아?”
[아니, 괜찮아.]
상냥하게 답하는 목소리 너머로 빨리 전화 좀 끊으시라고 안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마침 신호등 불이 바뀌었다. 녹색 불이 들어왔다.
“주민 형, 거짓말 잘하네요?”
현덕은 주변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괜찮아. 딱 들어가기 일 초 전에 전화 끊으면 돼. 아직 끊지 마.]
이어 주민 옆에 있는 사람들이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덕은 하하, 웃으며 옆을 보았다.
커다란 봉고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현덕은 어떤 기시감에 젖었다.
‘설마.’
그 순간.
끼이이익-
봉고차가 도로 바닥을 긁으며 횡단보도로 돌진했다.
쾅, 소리가 나며 핸드폰이 하늘을 날았다. 현덕은 제가 놓친 핸드폰처럼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현덕아? 방금 무슨 소리야? 무슨 차 사고 난 거 같은데…….]
핸드폰에서 계속 주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덕아? 현덕아. 김현덕? 김현덕, 김현덕! 대답해. 김현덕!]
“…….”
현덕에게서는 아무 목소리도 나지 않았다.
눈이 감겼다.
주마등처럼 무언가 생각나거나 하지 않았다. 주민의 얼굴마저 기억나지 않았다.
***
다시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세상이 환했다.
“아…….”
혹시나 싶어 현덕은 옆을 보았다.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베이지색 얇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때의 교복 재킷은 보이지 않았다.
‘거울, 거울.’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현덕은 고개를 돌렸다. 거울 대신, 한 남자가 보였다.
평소 단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완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옷차림새도 엉망이었다. 재킷은 입고 있지 않았다. 하얀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타이는 길게 늘어뜨린 채였고, 단추는 서너 개 풀려 속살이 다 보였다.
얼굴은 온몸의 피를 다 뽑아낸 것처럼 새하얬다. 입술은 거칠게 말라붙어 있었다. 두 눈은 빛을 잃고 까맣게 죽어 있었다.
“……흐?”
주민이었다. 많은 사람이 애인으로 삼고 싶은 남자 1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흐트러질 것 같지 않은 완벽남 1위로 손꼽히는.
‘나 때문이구나.’
우주민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현덕뿐이었다.
“히여…….”
주민을 불렀는데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숨이 차서 얼굴을 찡그리는데,
“…….”
주민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현덕이 눈을 뜨고, 저를 부르는데도 돌로 만든 석상처럼 우뚝하니 앉아만 있었다.
현덕은 손을 들어 주민의 뺨에 툭, 부딪쳤다.
“……주, 미…… 혀…….”
까끌까끌한 목을 억지로 쥐어짜 주민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야 주민은 두 손으로 현덕의 손을 붙잡았다. 주민의 손은 안쓰러울 만큼 떨리고 있었다. 그게 고스란히 현덕에게 닿았다.
“안녕, 현덕아?”
목소리마저 애처로울 정도로 떨렸다. 차라리 현덕의 목소리가 건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으……?”
현덕은 눈을 깜박였다. 어쩐지 눈시울이 시큰했다.
“잘 잤어?”
주민이 현덕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는 제 뺨에 가져다 댔다. 단지 손만, 목소리만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주민은 온몸을 떨고 있었다.
“……미,아……. 미…… 아…… 해, 요…….”
현덕은 마른침을 삼키며 힘겹게 말했다. 주민은 현덕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고마워. 현덕아. 너무 고마워. 살아줘서.”
주민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건, 현덕과 통화를 나누며 연인과 함께 보낼 뜨거운 밤을 기다렸던 남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
이내 병실에 가족들이 들이닥쳤다.
어머니는 통곡했다. 맹덕은 범인이 누구냐고, 당장 잡아다 똑같이 만들어주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아버지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어찌 된 일이냐 물었다.
내내 병실을 지켰던 주민이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현덕도 궁금했기에 귀 기울였다.
졸음운전이었다. 봉고차를 몰던 남자가 신호를 놓치고, 횡단보도로 들이닥쳤다. 길을 건너던 네댓 명이 봉고차에 치였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현덕을 비롯한 사람들은 팔다리가 부러지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다행히 환한 대낮의 대로변인지라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빠르게 신고해주어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주민은 목격자 중 누군가가 전화를 받아 상황을 알려주어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현덕은 옷을 얇게 입고 있어 타박상이 심했다. 왼쪽 다리와 갈비뼈가 부러졌다. 다행히 폐를 찌르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꼼짝 없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다.
현덕의 상태를 체크하러 병원장부터 십수 명의 의사들이 몰려왔다. 당연히 현덕과 현덕의 가족은 심히 당황했다. 가장 어려보이는 의사가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떨며 현덕을 살필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현덕의 부모님과 맹덕이 수전증에 걸린 것 같은 의사의 손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새, 병원장은 주민과 악수를 나눴다.
이후 주민은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현덕의 간병인을 자처했다. 현덕도 가족들도 부담스러워 거절했지만, 주민은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 가족들은 그 박력에 밀려 현덕을 주민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맹덕은 가족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하냐며 끝까지 반대했지만, 현덕이 괜찮다고 말려서 물러났다. 하지만 주민이 부모님을 배웅하러 나갔을 때를 틈타 현덕에게 슬쩍 말했다.
“쟤 눈이 좀 이상하다. 맛이 간 거 같아. 혹시, 뭔 일 있으면 형한테 바로 연락해야 돼. 알았지?”
“걱정 마. 주민 형은 절대 이상한 사람 아냐. 알잖아? 나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어. 트라이 온도 같이 나간 사이잖아.”
“너한테 이상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암튼 형 말 명심하고. 아무튼 뭔가 이상하다 싶음 재깍 연락해.”
맹덕은 연신 당부했다. 현덕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맹덕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현덕의 병원 생활이 너무 호화로워졌을 뿐이었다.
현덕이 실려 온 병원은 시황그룹 계열사 병원이었다. 주민은 현덕을 VIP용 1인실로 옮기고, 병원 비용을 미리 계산해 버렸다. 모두 현덕이 자고 있는 틈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을뜨니 VIP 병실에 누워 있었다. 주민은 여전히 옆에 앉아 있었다.
현덕은 당장 일반 병실-그것도 1인실이긴 했다-로 돌리라고 했으나 주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덕은 퇴원해서 비용을 다 갚겠다고 했다. 주민은 몸으로 갚으라고 말했다가 현덕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연인의 말싸움은 달콤한 키스로 마무리되었다.
주민은 넉 달 동안의 스케줄을 다 밀어버리고 아예 병원에서 살며 현덕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현덕은 미안해서 그런 주민을 말리지 못했다. 병원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 봤던 주민의 모습과 눈빛, 방문객을 막는 주민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현덕의 입원 사실이 알려지자 쾌유를 바라며 많은 사람이 찾아 왔다. 주민은 현덕이 절대 안정해야 한다며 그들을 병실로 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대신 전해달라며 꽃다발을 잔뜩 놓고 가자 주민은 그것들을 다 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꽃집에 가서 향이 없고 꽃송이가 탐스러운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 가져왔다. 오직 제가 사 온 꽃만을 병실 화병에 꽂아놨다.
현덕은 간호사들이 그 많은 꽃들을 그냥 버리는 게 아깝지 않느냐 물어봐서 겨우 알게 됐다. 회복이 빨라 면회객 방문 허가가 떨어졌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없어 인생을 헛살았나 생각하며 심심해하고 있던 차였다. 왠지 느낌이 이상해 주민에게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어느 날, 슬쩍 물었다.
주민이 화병의 물을 갈아 와 내려놓을 때였다.
“그런데 형, 그 봉고차 차주는 어떻게 됐어요? 사고 일으킨 사람.”
현덕은 별생각이 없이 물었다.
사고가 일어나 다쳤지만 죽진 않았다. 그러니 보험으로 배상을 받고, 또 사고를 일으킨 사람은 적당히 벌금형이든 받지 않을까, 라고만 생각했다. 주민에게도 그런 평범한 답변을 들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순간, 현덕은 보았다. 잠깐 주민의 얼굴에 스친 표정을.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파 배우가 열연해 보이는 연쇄 살인마의 표정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현덕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주민을 보았다. 그 잠깐 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주민은 금방 제 표정을 숨겼다. 여느 때처럼 상냥하게 방긋 웃어 보였으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그걸 왜 물어봐.”
“어, 그러게…….”
현덕은 열일곱 살의 어느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주민과 이런 사이가 되기 전, 그러니까 현덕이 열일곱 살 즈음. 주민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우고 혼자 서 있곤 했다. 아무에게도 제 속마음을 보이지 않고, 그저 싸가지 없는 웃음을 띠며 말을 비비 꼬았다.
“주민 형. 괜찮아.”
현덕은 급히 두 손을 뻗어 주민의 머리를 껴안았다. 주민은 현덕의 손에 연결한 수액이 빠질까 염려하면서도 순순히 현덕에게 안겼다.
“형, 나 진짜 괜찮아.”
“그래, 비록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만, 괜찮지.”
“미안해. 앞으로 무조건 내가 조심할게. 안 다칠 거야. 사고도 안 날 거고.”
“그래야지, 현덕아.”
“그러니까 형……. 주민 형…….”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말해야 했다.
“나 진짜 괜찮으니까, 알지, 형? 응?”
현덕은 주민의 머리를 꽉 껴안고 정수리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주민은 그에 응해 현덕의 허리에 제 두 팔을 감았다.
“……나 버리지 마.”
주민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잘못된 말이었다. 현덕은 단 한번도 그를버리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이번에 일어난 사고 역시, 현덕이 주민을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사고가 났을 뿐인건데.
내가 왜 형을 버리느냐고,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목이 메었다. 새삼 주민이 자신에게 주는 애정의 무게가 실감 났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날 걱정하고, 또 날 잃을까 봐 무서워했구나. 내가 그걸 몰랐구나.’
미안했다.
“절대 안 그래. 형, 나는 형이랑 정말 오래오래 살 거야. 검은 머리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살 거야.”
현덕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현덕은 어미 품에 안긴 코알라처럼 현덕의 품에 안겨 얌전히 숨만 쉬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주민이 침묵했기에 현덕은 알지 못했다. 주민이 시황그룹의 법무팀을 통해 봉고차 주인에게 온갖 소송을 걸었다는 걸. 바이럴 매체를 통해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하여 사회적으로 매장했다는 걸. 끝내 그가 죄송하다는 유서만 남긴 채 외진 산에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게 만들었다는 걸. 현덕은 끝내 몰랐다.
그런 사정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나, 현덕은 지금의 주민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주민이 제가 퇴원할 때까지 간병인을 자처하는 걸 놔두었다.
당장 몇 달, 주민이 스케쥴을 취소해 연예인으로서 손해는 클지 모르나. 멀리 봤을 때는 오히려 꼭 필요한 과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몸이 나아가는 동안 주민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현덕은 그렇게 믿고 주민이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듯 주민에게 최선을 다했다.
현덕의 몸에서 상처가 옅어질수록 주민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입원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 현덕은 제 몸을 씻겨주던 주민을 덮쳤다.
둘은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오랜만에 관계를 했다. 아직 현덕의 다리가 불편해 서서 하기 버거워하자 주민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고 현덕을 눕혔다.
현덕은 물속에서 주민을 받아들였다. 제 안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물. 그보다 더 뜨거운 주민의 성기에 몸부림쳤다. 다리의 깁스가 흠뻑 젖었지만 현덕도 주민도 신경 쓸 수 없었다.
주민은 아직 어스름히 상처가 남은 현덕의 몸에 입을 맞췄다. 의사와 간호사들 보기 부끄럽다며 자국 남기지 말아 달라고 현덕이 사정하여, 자국을 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처를 집요하게 핥았다.
현덕은 그런 주민을 달래기 위해 세 번째에는 주민의 위로 올라가 제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주민을 집어삼켰다.
주민은 현덕을 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며 사정했다. 현덕의 허리를 두 팔로 얽매고, 놓아주지 않았다.
***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현덕의 퇴원이 결정되었다. 부모님과 맹덕은 연락을 받자마자 기뻐하며 현덕의 병실을 방문했다.
어머니는 황달에 걸린 것처럼 누렇게 뜬 현덕의 얼굴을 보고 걱정했다. 현덕은 건강엔 이상이 없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곧 퇴원한다는 기쁨에 누구도 그런 현덕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늦은 밤.
현덕은 병실에서 응급 수술실로 바로 옮겨졌다. 급성 간염이었다.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다. 막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의 안색은 어두웠다.
새벽 2시 15분.
스무 살 김현덕의 숨이 끊겼다.
부모님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맹덕이 어머니를, 주민이 아버지를 겨우 받았다.
맹덕은 어머니를 의자에 조심히 눕히고는 바로 주민에게 달려들었다.
“뭐 한 거야! 뭘 했기에 건강했던 애가, 겨우 다리만 부러지고 말았던 애가 죽어? 죽느냐고! 너 옆에서 뭘 한 거야, 네가 죽인 거지? 어? 네 짓이지!”
주변에서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맹덕을 말렸다. 맹덕은 그들을 모두 뿌리치고 다시 주민에게 달려들었다. 주민에게 달려들고 또 달려들었다.
주민은 가만히 맹덕의 폭력을 받아들였다. 얼굴에 멍이 들고 뺨에 손톱자국이 났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지만 샌드백이라도 된 듯 가만히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맹덕은 끝내, 주민의 다리를 잡고 그 앞에 쓰러져 울부짖었다.
해가 뜨기 전, 현덕은 영안실로 이동했다. 병원 지하 장례식장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연락 받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TE엔터테인먼트의 오 팀장, 곡 작업 때문에 작업실에 박혀 있던 자룡, 그리고 트라이 온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 학교 친구들, 동네 사람들. 모두 갑작스러운 현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는 영안실로 들어가 현덕을 봐야겠다며, 현덕이 죽었을 리 없다고 오열했다. 하지만 막상 영안실 앞에 서서는 들어가지 못했다. 저 차가운 곳에 현덕이 있을 리 없다며 울부짖다 졸도했다.
아버지는 영안실로 들어가는 문을 붙잡고는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항상 무덤덤했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숨도 못 쉬고 울었다.
자룡과 맹덕, 주민은 현덕의 부모님을 모시고 몇 번이나 영안실 문턱을 넘으려 했으나 끝내 넘지 못했다. 부모님은 영안실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맹덕 혼자 영안실에 들어갔다. 차갑게 굳은 동생을 확인한 맹덕의 애끓는 울음이 영안실 벽을 타고 흘렀다.
현덕의 장례식은 조용히 이루어졌다. 평소 현덕의 성격상 시끄러운 걸 좋아할 리 없다는 가족의 뜻이었다. 요절한 청년의 상을 크게 치를수록 가족의 심장에 박힌 대못만 커질 뿐이었다.
사흘 내내 어머니는 거의 혼절 상태였다. 아버지는 찾아오는 제 손님들을 기계적으로 맞이했다. 맹덕은 이를 악물고 그 시간을 버텼다. 자룡과 피터, 민철 등 현덕의 친구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누구보다 도움이 된 건 주민이었다.
주민은 제가 현덕의 가족인 것처럼 굴었다. 상주의 옆에 붙어 번거로운 모든 일을 제가 처리했다.
그의 얼굴은 푸르뎅뎅하게 멍이 들고, 입술이 찢어져 엉망이었다. 주민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 우주민이 저런 얼굴을 하고서 이런 곳에 있다며 수군댔다. 주민은 그럼에도 꼿꼿했다.
맹덕은 그에게 냉담했다. 입안의 혀처럼 굴며 저를 돕는 주민에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상을 치르며 채 하루도 안가 무너져내렸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쪽방에 가족들이 몸을 눕혀 겨우 잠을 청하는 깊은 밤. 새벽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부르기 싫을 정도로 까맣고 어두운, 아무도 없는 밤.
벽에 기대 선잠을 자던 맹덕은 문득 잠에서 깼다.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장례를 치르는 다른 가족들의 소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소리가 너무 가까이서 들렸다.
이 병원은 시설이 좋아도 오라지게 좋아서 장례식장마저 넓고 쾌적했다. 주민이 손을 쓴 건지 양 옆이 비어 있어 옆방을 하나 더 터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니 옆 방 다른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맹덕은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불 꺼진 식장에서 국화꽃은 희었다. 하얀 국화꽃에 잠긴 현덕이 눈에 들어왔다.
맹덕은 문설주에 머리를 기대고 제 동생의 영정사진을 보았다.
현덕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스무 살 청년이 죽을 줄 누가 알았으랴. 고등학교 때 입시 원서에 붙인다고 찍었던 명함 사진을 확대해 영정사진으로 만들었다.
웃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은 반듯했다. 뉘 집 아들인지, 누구 동생인지, 참 훤칠하고 예뻤다.
‘저러니 고등학교 때 TV프로그램에 나가서 인기도 얻고 그랬지.’
스무 살이 된 현덕을 보면서도 저 어린 걸 어떻게 군대에 보내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설마 이렇게 일찍 보내게 될 줄이야.
억울했다.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게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울음이 끓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그리고 동생의 영정사진이 놓인 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맹덕을 잠에서 깨운 소리의 주인이 거기 있었다.
주민이었다. 그는 단 앞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혹여나 현덕의 부모님과 맹덕이 깰까 봐. 입을 틀어막고 울고 있었다.
남인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인데. 학교 친구도 아니고, 동네 불알친구도 아니고. 연습생 생활을 하며 기획사에서 만난 형이라던데. 그마저도 처음엔 사이가 안 좋았다고 했는데.
우주민이랑 친해지기 힘들다며 투덜거리며 속상해하던 중학생 김현덕, 고등학생 김현덕이 눈앞에 선한데. 그가 아무도 없는 깊은 밤, 홀로 울고 있었다.
“미안……. 미안……. 미안해…….”
그저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쟤를 만나러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던가?’
아버지에게 친구네 놀러가 하룻밤 자고 온다고 했단다. 요즘, 툭하면 외박을 해서 구박했던 게 얼마 전이었다.
등짝을 발로 밀며 모범생 김현덕에게 외박이 무슨 말이냐고, 일찍일찍 좀 집에 기어들어 오라고 그랬는데. 현덕은 히히, 웃으며 친구네 집에서 노는 게 재미있어 막차를 놓치게 된다고 했다. 뭐 그리 재미있냐고 물으니 거기엔 답을 안 해줬다.
‘그렇게 함께 노는 게 재미있던 친구가 저 자식인 걸까.’
동생이 사고당했다는 말에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병원으로 달려왔던 날. 맹덕은 주민이 껄끄러웠다.
눈깔이 뭔가 이상했다. 굉장히 음습하고 더러워 보였다. TV에서 보던 것과는 인상이 많이 달랐다. 현덕에게 깜빡 죽고, 부모님과 저에게 공손하긴 했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그래서 현덕에게 조심하라고 했다.
현덕이 밤늦게 갑자기 수술실로 들어가 손도 못 써보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여지없이 저 자식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안 그러고서야 겨우 팔다리 좀 까지고 부러진 스무 살 청년이 한밤중에 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저 자식은 저렇게 애달프게 울고 있는 거야.’
맹덕은 문을 닫고, 벽에 스르륵 몸을 기댔다. 문을 닫았는데도 주민의 울음소리는 계속 새어 들어왔다. 그래서 맹덕도 울 수밖에 없었다.
‘나쁜 놈, 김현덕, 이 개새끼야. 그러고도 니가 내 동생이냐?’
원망해야 하는데,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임대아파트를 신청해서 당첨됐는데, 당장 몇백만 원 계약금이 급해 낮에는 대형 마트에서 배달 일을 하고 야간에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고. 그래서 너무 피곤해서 낮에 차를 몰다 깜빡 졸았다고. 죄송하다며 펑펑 울던 봉고차 차주.
제가 현덕이를 발닦개처럼 돌보겠다고 밤낮으로 병원에 붙어 있었으면서, 한밤중에 현덕이 급성 간염으로 넘어가 제대로 손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만들고는. 그 영정사진 앞에 엎드려 펑펑 우는 우주민.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현덕아. 너도 원하지 않겠지. 오히려 저 새끼 우는 걸 보고 미안하다고 할 놈이지, 너는.’
고작 스무 살.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동생을 떠올리며. 그 순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맹덕은 그 밤을 눈물로 흘려보냈다.
혹여 제 울음소리가 주민에게 들릴까 봐. 옆에서 잠든 부모님을 깨울까 봐 맹덕은 소리 내 울지도 못했다.
***
삼일장을 마친 뒤 현덕의 시신을 화장했다.
어머니는 결사반대했다.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요절한 아들을 어찌 불태우냐고, 그럴 순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그리 화내는 걸 맹덕은 처음 보았다. 평소 아버지가 화낼 일만 골라서 했던 맹덕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은 익숙해졌다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일단 선산에 묻자고.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께서 나이 들어 죽었을 때, 그래서 더는 현덕의 무덤을 돌볼 사람이 없어지면. 그때 당신들의 시신을 화장하며 곁에 놔 달라고. 부모님이 맹덕에게 매달렸다.
맹덕은 시간을 들여 부모님을 설득했다. 저 어린 걸 산속에 혼자 둘 거냐고. 외로워할 거라고. 현덕이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서울 근교의 납골당에 두고 그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게 하자고. 그럼 현덕이가 덜 외로워할 거라고.
부모님은 한참을 우시더니 겨우 맹덕의 말을 승낙했다.
이후 절차는 주민이 도와주었다.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와 가까운 곳에 있는 납골당의 좋은 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현덕의 시신을 태울 때, 어머니가 자신도 들어가겠다며 달려드는 걸 막는 것 말고 큰일은 없었다. 역시나 가족들과 현덕의 친구들 몇몇, 주민과 자룡, 준비, 피터, 민철만 함께했다.
납골당에 작은 단지가 들어갔다. 현덕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도 넣고, 외롭지 말라고 작은 인형들도 넣어주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현덕의 팬이라는 사람들이 꽃과 인형을 가지고 와선 납골당 문 앞까지 와서 펑펑 울어주었다. 부모님은 고마워했다.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우리 현덕이가 외롭지 않도록 자주 와달라고 부탁했다. 납골당 앞은 금세 울음바다가 됐다.
맹덕과 아버지는 탈수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모셔 가까운 병원에 갔다. 어머니를 눕히고 한숨 돌리고 나니, 주민이 낯선 사람과 찾아 왔다. 병원의 변호사라고 했다.
병원의 의료 과실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다해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바로 일어섰다.
그때 주민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받아달라고. 용서해달라는 게 아니라, 현덕이가 하늘 위에서 부모님을 보며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다. 펑펑 울면서 빌었다.
주민이 현덕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알기에,아버지는 차마 주민을 뿌리치지 못했다.
현덕이 딸이었으면 저놈한테 시집보냈으면 딱인데, 반대로 저 청년이 여자였으면 두말할 필요 없이 현덕이 짝으로 세웠을 텐데. 그런 생각도 했었더랬다.
현덕이 저렇게 좋은 친구를 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청년이 노비처럼 발치에 엎드려 울고 빌고 있었다.
‘현덕이가 하늘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아버지는 그걸 참을 수 없어 주민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변호사가 내미는 서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사인했다.
아무 계약서든 읽어보지 않고 서명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법관인 아버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도무지 계약서를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십 원이든 백 원이든, 보상금이 얼마든 상관없었다.
며칠 뒤, 일하던 도중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아버지는 대경실색했다. 집에 자리 보전하고 드러누워 앓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통장에 거액이 입금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연락한 것이었다.
사십억. 입금자명은 현덕이 입원해 있던 병원이었다.
그 뒤로 지루한 다툼이 있었다.
이런 돈을 못 받겠다고, 가져가라고 현덕의 가족들은 펄펄 뛰었다. 주민과 병원 측은 이미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셨냐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아버지는 법관직을 내려놓았다. 제정신이었든 아니든, 아들의 죽음으로 이런 큰돈을 대기업으로부터 받았으니 더는 법관직을 맡을 수 없다고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는 아들의 목숨값으로 재단을 설립했다. 희귀병이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을 돕는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재단의 이름은 죽은 아들의 이름을 땄다.
[김현덕 희망 재단]
아버지는 법조계에서 쌓은 인맥을 통해 이 분야에서 믿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을 모았다. 그들에게 재단 이사직과 재단의 운영을 맡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재단의 봉사활동자로 이름을 올려, 무임금으로 봉사를 다녔다. 주말이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욕 봉사를 다녔다. 평일 저녁엔 저소득 학생들의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겨울이면 연탄을 나르고 김장 봉사를 했다.
현덕이 죽었을 때, 그리고 현덕의 이름으로 사회 재단이 세워졌을 때, 세상은 현덕을 추모하며 떠들썩하게 굴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현덕은 천천히, 잊혔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무 살 청년의 죽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기엔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갔다.
트라이 온에 출연할 때 만들어졌던 현덕의 팬클럽만이 오랫동안 현덕을 기억해주었다. 납골당을 찾아주고, 추모회를 열었다. 현덕의 부모님은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스무 살 청년의 요절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묻혔다.
그리고.
현덕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양다리를 벌린 채, 제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내를 견뎌내야 했다.
“아……흑……. 윽.”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보려 해도 무리였다.
오랜 시간 공들여 풀어준 아래는 열릴 대로 열린 상태였다. 그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랑했던 연인의 성기였다. 그는 현덕이 어떻게 하면 느끼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현덕아, 사랑해.”
그는 단번에 현덕을 꿰뚫었다.
현덕의 발목을 움켜쥐어 머리 쪽으로 밀었다. 몸을 거의 반으로 접고는 훤히 드러난 현덕의 구멍에 제 성기를 내리꽂듯 추삽질했다. 현덕은 옴짝달싹 못 한 채 사내의 침입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계 이상으로 접힌 허리가 아팠다. 찢어질 듯 벌린 다리가 아팠다. 무엇보다 눈을 내리깔면 보이는 성교의 장면이 무서웠다.
흉물스러울 만큼 크고 굵은 것이 빳빳해져서는 물기 진 제 안을 드나들었다. 그가 허릿짓을 할 때마다 그것이 밖으로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때마다 몸 안은 불로 달군 쇠꼬챙이가 꽂히는 것처럼 뜨겁게 쓸렸다. 무서웠다. 제 몸을 뚫고 입 밖으로 그것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윽…… 흑…… 윽…….”
현덕은 이를 악물며, 그 치받음을 견뎌야 했다.
몸이 자꾸 뒤로 밀려 올라갔다. 금세 현덕은 머리를 침대 헤드에 박았다.
하아. 한참 치받던 사내는 허릿짓을 멈추지 않고, 옆으로 밀려난 베개를 머리 위에 고여 주었다.
침대와 사내 사이에서 현덕의 몸이 점점 찌그러들었다. 목이 꺾여 몸이 둥그렇게 말렸다. 웅크린 뱃속에선 사내의 성기가 제멋대로 꿈틀대고 있었다.
차라리 내내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좋으련만. 사내는 현덕의 몸을 너무 잘 알았다.
“히윽…….”
끝내 현덕의 입에서 신음이 샜다. 현더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사내는 그걸 보며 웃었다.
“네 소리를 들려줘야지, 현덕아. 그래야 내가 흥분해서 좀 더 빨리 끝나지 않겠어?”
그가 몸을 굽혀 현덕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현덕은 눈을 질끈 감고 그를 보지 않았다.
“아, 상관없어. 어차피 쉽게 끝낼 생각은 없으니까.”
이마에서 그의 목소리가 닿았다.
그는 소중한 것을 어르듯 현덕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혀로 길게 핥았다.
“읍……. 흡……!”
하체는 여전히 현덕을 반으로 쪼갤 듯 움직이고 있었다.
삐걱, 삐걱. 그가 움직일 때마다 침대가 흔들렸다.
***
마지막 기억은 평범했다.
병원에서 내준 저녁밥을 먹으니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너무 졸려서 9시 뉴스를 다 보지도 못했다.
“오늘따라 졸리네…….”
“졸리면 자야지.”
침대 옆 소파에 앉아 함께 TV를 보던 주민이 다가왔다. 주민은 현덕이 들고 있던 리모컨을 빼앗아 TV를 끄곤 현덕을 침대에 바르게 눕혀주었다.
현덕은 졸린 눈을 끔뻑끔뻑 떴다 감았다 하며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졸려서 당장이라도 영영 눈을 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건, 주민이 너무도 예쁘게 웃고 있어서였다.
현덕은 졸음을 참고 주민을 보고자 애썼다. 안 자려고 애쓰는 현덕을 본 주민이 현덕의 눈꺼풀 위에 입을 맞췄다.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자자, 현덕아. 내가 옆에 있잖아.”
“응……응…….”
깃털같이 가벼운 입맞춤이 쏟아졌다.
“응, 우응.”
현덕은 주민의 손을 꼭 잡으며 편히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연인을 믿으며 그리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현덕은 병원이 아니라,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아파트인 것도 같고 어느 고급 맨션의 펜트하우스인 것도 같았다. 커다란 공간은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거실의 한 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TV에서는 김현덕의 장례식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치르는 장례식, 시신 운구와 납골식 장면까지.
방송국은 납골당 옆 건물 옥상에 카메라를 올리고, 납골당에 병원 직원인 척 숨어들었다. 납골당 직원을 매수해 몰래카메라를 달게 했다. 그렇게 찍은 영상들을 편집하여 특집으로 내보냈다.
현덕은 우두커니 선 채로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았다.
영상이 모두 끝난 후, 프로그램 패널들은 저마다 눈물을 닦으며 현덕을 추모했다. 현덕이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덕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처럼 멋대로 현덕에 대해 말했다. 트라이 온 촬영 때,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양 지껄였다.
이후 현덕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영상도 나왔다. 대부분은 그 영상에서 분노하고 슬퍼했다.
자룡은 말의 절반 이상이 씨발이었다. 연신 삐- 소리가 났다.
“찾아오지 말랬잖습니까. 삐- 지금 삐- 장난하나, 삐- 삐- 삐- 삐- 삐- 사람이 죽었는데 삐- 그렇게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삐- 삐- 삐- 삐- 멋대로 찍어 놓고 삐- 이젠 나한테 와서 뭐 하는 삐- 짓이야 삐-삐-삐-”
자룡은 성난 얼굴로 제게 들이미는 카메라를 밀치며 성질을 냈다. 안 그래도 부리부리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대학교 캠퍼스를 걷다 촬영진에게 붙잡힌 민철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할 말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묻지 마세요.”
그는 할 말이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빠르게 걸어 촬영진을 따돌렸다. 피터도,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주민의 영상이었다. 주민은 현덕의 장례식장에서도, 시신 운구 행렬에서도, 납골당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선두에 서 있었다. 시황그룹 본사 건물로 들어가는 그를 촬영팀이 덮쳤다.
회사의 보안팀 직원들이 즉각 뛰어 나와 촬영팀을 밀쳤다. 그 틈바구니에서도 촬영진은 기를 쓰고 주민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주민은 잠시 망설이다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보안팀 직원들은 촬영진들을 밀어내는 대신, 주민과 촬영진 사이에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가족들과 내내 함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고 김현덕 씨가 죽은 그 병원이 시황그룹 병원이던데, 뭔가 연관이 있는 겁니까?”
“의료 사고인가요?”
“증권가 정보지에 의하면, 고 김현덕 씨 죽음에 주민 씨가 관여되었다는 소문이 있다던데요.”
“주민 씨의 주도로 병원에서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촬영진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질문했다. 아니, 그건 질문이라기보다는 비난에 가까웠다. ‘혹시 네가 김현덕의 죽음과 관련 있는 게 아니니?’ 그들은 대놓고 그렇게 물었다.
주민은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현덕은 차라리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촬영팀을 무시하거나 도망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주민은 그러지 않았다.
“부디 현덕이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마이너스 스토킹을 그만둬 주십시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만약 현덕이가 보고 있다면 많이 슬퍼할 겁니다.”
주민이 조용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보안팀 직원들에게 붙잡혀 초점을 못 잡고 흔들리던 카메라가 정확히 주민을 클로즈업했다. 그의 얼굴은 해쓱해져 있었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한 일주일 동안 한 끼도 안 먹은 사람처럼 말라 있었다.
안 그래도 웃지 않으면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인데, 더욱 메말라 있었다. 저 얼굴을 보면서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촬영진이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아…….”
현덕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두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제 죽음 앞에 슬퍼하는 주민을 보는 게 마음 아팠다.
‘내가 정말 죽은 걸까?’
현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깨끗한 공간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죽은 걸까? 다시 한번 중학생으로, 돌아갈 순 없는 걸까. 이대로 정말 끝난 걸까. TV에 나오는 것처럼, 갑자기 급성으로 상태가 나빠져 죽어버린 걸까. 그래서 지금 사후 세계에서, 이승의 상황을 구경해야 하는 걸까.’
문득, 옛날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모보다 일찍 죽는 건 큰 죄여서 큰 벌을 받는다고 했다. 저승으로 가는 강가에 앉아 다른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는 배를 타고 떠나는 걸 지켜만 보면서, 강가의 돌로 탑을 쌓아야 한다고.
돌탑을 반쯤 쌓으면 어디선가 나쁜 것들이 나타나 그 탑을 무너뜨리는데, 그래도 다시 돌탑을 쌓아야 한다고. 그렇게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돌탑을 쌓으며, 부모님이 죽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시대가 변해서일까. 21세기에 들어서는 저승도 최첨단 IT사회로 바뀌었을까. 저승으로 가는 강가에서 돌탑을 쌓는 대신 이렇게 커다란 화면으로, 제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무한대로 지켜보며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TV를 하염없이 바라볼 때였다.
삐비빅-
기계음이 들렸다.
현덕은 그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현관이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TV에 나왔던 사람이 현관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현덕은 TV를 봤다가 다시 현관을 보았다.
똑같은 옷차림.
똑같이 수척한 얼굴.
똑같이 현덕이 사랑하는 사람.
“일어났구나.”
그는 거실에 서 있는 현덕을 보더니 웃었다. 마른 볼 위로 미소가 그려졌다. 무언가 사온 듯 커다란 비닐봉지를 문가에 내려놓고는 현덕에게 다가왔다.
“주민 형?”
지금 이 공간에 함께 있는 게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아서, 현덕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응, 현덕아.”
그는 성큼 현덕에게 가까워졌다. 한 손으로 현덕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다른 한 손으로 현덕의 눈가를 쓸었다. 눈물을 닦아주고, 반대편 눈가엔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입술로 현덕의 눈물을 훔쳤다.
그에게는 바람 냄새가 났다.
“나만 죽은 게 아니에요? 형, 설마 날 따라 죽은 거야?”
만약 그런 거라면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염라대왕이든 누구든, 멱살을 틀어쥐고 따져서라도 주민이라도 도로 살려달라고 말해야 했다.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울었건만. 주민은 빙긋 웃기만 했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웃음이었다.
“형, 주민 형? 웃지만 말고 말을 해봐요.”
설마 날 따라 자살한 걸까. 현덕은 무서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주민은 그러고도 남았다.
주민은 굳이 현덕의 그런 생각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대신, 너무나 그리웠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혀……으? 읍……. 자, 잠까……흐…….”
뭔가 말하려 애쓰는 현덕의 혀가 주민의 혀에 얽혔다. 주민은 허겁지겁, 현덕의 혀를 빨아당겼다.
살아 움직이는 입술도, 코끝에 닿는 숨도, 모두 진짜였다. 살아 있는 김현덕이었다. 세상에서 죽고, 오직 저에게만 살아 있는 김현덕.
온몸에 짜릿한 쾌감이 밀려 올라왔다.
김현덕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김현덕을 빼앗았다. 이제 김현덕은 오로지 우주민의 것이었다. 아무도 빼앗지 못한다.
오로지 내 것이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무엇으로도 다치지 않게, 소중하게 이 두 손안에 쥐어 평생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주민은 그리 다짐하며 깊게 키스했다. 일부러 현덕에게 숨 쉴 타이밍을 주지 않고 계속 숨을 빼앗았다.
견디다 못한 현덕이 주먹으로 등을 퍽퍽 내리쳤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결국 현덕이 제 품 안에 늘어지고야 주민의 입술이 떨어졌다.
“형……. 형? 우리 죽어서까지 이러면 안 돼……. 잠깐만……응?”
현덕은 어느새 눈물 맺힌 눈으로 주민을 말렸다.
“응. 현덕아. 조금만, 조금만 만질게. 너무 그리웠어. 보고 싶었어. 너무 사랑해.”
주민은 현덕을 러그 깔린 바닥에 눕히고 현덕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목 여기저기를 마음껏, 잘근잘근 깨물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꾸준히 운동해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몸, 단단한 복근. 주민의 몸은 딱딱하리만치 굳고 컸다. 그 몸으로 덮쳐 여린 목을 깨무니 맹수에게 목을 내민 사슴이나 노루가 된 기분이었다. 현덕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두 팔로 주민의 어깨를 가득 안았다.
“형……. 우리 잠깐 얘기 좀 해. 응?”
주민의 귓가에 속삭이며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맹수를 달래듯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갔건만 맹수는 굶주린 속내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주민은 현덕의 말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목울대를 깨물었다.
“아!”
현덕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주민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주민은 양털처럼 하얗고 푹신한 러그 위에서 현덕을 안았다.
이러지 말자고 저를 말리는 현덕의 손길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며 현덕의 옷을 벗겼다.
대낮이었다. 창문에서는 햇볕이 쏟아지고, 거실의 전등은 환했다. 벽에 들어찬 TV에서는 연신 현덕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쏟아졌다. 그 모든 완벽함 속에서 현덕은 나신이 되었다. 그리고 저를 짓누른 주민의 품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주민은 천천히 현덕을 먹어치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음껏 입 맞추고 깨물었다. 살갗에 멍에 가까운 자국을 냈다. 부끄러움과 그 밖의 감정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는 현덕을 뒤로 돌려 등 선을 타고 내리며 핥아 먹었다. 어느 한 부분 달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이런 현덕을 다른 사람들 속에 놔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세상은 너무 위험했다. 김현덕에게 위험한 것투성이였다. 현덕을 노리는 나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이 품 안에 넣고,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고 지켜야 했다. 이렇게 사랑만 줘야 했다.
현덕은 제 사랑만 받고 살면 된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 친구도, 가족도, 무엇도.
주민은 현덕의 둥근 엉덩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쥐어 터뜨릴 듯 주무르며 그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형! ……야, 우주민!”
힘없이 늘어져 있던 현덕이 기겁하며 몸을 뒤집으려 했다.
“안, 돼. 하지 마! 뭐 하는 거야!”
주민은 당연히 놓아주지 않았다. 평소 저를 받아들이던 그 구멍에 입을 대고, 그 주름진 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야, 이 변태야! 죽어서까지 이럴 거야? 살아서도 못 하게 했는데, 죽어서 하겠다는 거야?”
현덕은 손을 뒤로 몰려 주민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얼굴을 떼어내려 잡아당겼으나 주민은 오히려 더 깊게 제 얼굴을 파묻었다.
주민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던 손길은 이내,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매만지는 정도가 됐다.
“아, 윽……. 말도, 안 돼. 이거…… 정말 아냐…….”
몸은 금세 주민이 주는 쾌락에 젖었다. 혀는 손가락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질척하게 뒤를 핥았다. 몸은 금세 흐물흐물하게 늘어졌다. 현덕은 러그의 털을 움켜쥐며 바르르 떨었다.
몸은 솔직하게 쾌락에 굴복했다. 주민이 앞을 만져주지 않았는데 현덕은 곧 사정했다. 사정의 순간, 굳었던 몸이 이내 늘어졌다.
현덕이 사정하고야 주민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미 단단해진 제 것을 몇 번, 손으로 주무르고는 현덕의 구멍에 끝을 맞추었다.
주민은 현덕의 위에 올라타 몸을 겹쳤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몸 위로 두꺼운 몸이 더해졌다. 주민의 무게만큼 주민의 성기가 현덕을 뚫었다.
주민의 두 팔은 현덕의 두 팔에 겹쳤다. 두 손으로 현덕의 손목을 각각 움켜쥐었다. 두 발은 역시나 현덕의 두 다리에 겹쳤다. 주민의 탄탄한 배가 현덕의 등에 닿았다. 까슬한 음모가 하얀 엉덩이에 닿았다.
주민의 것이 뿌리 끝까지 한 번에 현덕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으…….”
현덕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숨 쉬는 것마저 주민의 무게 때문에 버거웠다. 그저 침입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뿐이었다.
귓가에 주민의 숨소리가 닿았다. 하아, 만족스러운 듯 숨을 내쉬고는 현덕의 귓가에 입을 맞추었다. 혀가 뱀처럼 현덕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소름이 돋아 현덕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주민이 벌주듯 허리를 털었다.
“아……. 아직 안 돼!”
현덕이 러그에 얼굴을 묻으며 빌었다.
혀로 풀어주었다 하나 혀가 닿을 수 있는 안은 기껏해야 약간이었다. 더 안쪽은 여전히 풀어지지 않아 뻑뻑했다. 그 곳까지 주민이 힘으로 밀어붙여 침입했다. 내벽이 쓸리고 따가웠다.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주민은 현덕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현덕이 제게 익숙해지길 바라지 않았다. 현덕이 제게 휩쓸려 모든 걸 잊고 놔버리길 바랐다.
주민은 현덕의 귀를 깨물며 허리를 움직였다. 온몸으로 현덕을 짓누르고 허리 힘으로만 추삽질을 했다.
“아……윽……아!”
현덕의 몸이 퍼덕였지만 그 움직임마저 주민의 몸이 먹어치웠다.
주민은 집요하게 현덕의 귓속으로 혀를 넣었다. 마치 제 혀를 넣어 현덕의 뇌를 먹어치울 속셈 같았다.
뻑뻑한 현덕의 안은 주민을 옥죄었다. 현덕은 끙끙거리며 주민을 견뎠다.
한참 허릿짓을 한 주민이 현덕의 안에 사정했다. 헉, 헉. 두 사람분의 거친 숨이 거실 가득히 울렸다. TV에서는 현덕을 그리워하는 팬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현덕은 배덕감에 몸을 떨었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자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저기서 저렇게 울고 있는데. 자신은 주민에게 깔려서, 말 그대로 깔려서 쾌락에 젖어 울고 있었다.
주민은 그런 현덕을 위로하듯, 혹은 탓하듯 현덕의 어깨를 깨물었다. 그 마른 어깨에 침을 바르고 잇자국을 냈다. 사정하고도 여전히 단단한 제 것으로 현덕의 안에 길을 내듯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흐으…….”
현덕이 몸을 떨며 달콤하게 울었다.
제 밑에서 헐떡이는 현덕이 너무 소중해서, 주민은 가느다란 목을 깨물었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사랑스럽고 소중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안아도 부족했다. 이렇게 그 안으로 들어가 저를 빨아당기는 여린 살에 제 것을 비비고 사정하여 채우는데도,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에 닿을 수 있을까. 그걸 알 수가 없어 애가 탔다.
온몸에 제 흔적을 달고, 제 아래에서 울고 있는 현덕은 이제 제 것이었다. 누구도 그에게서 현덕을 빼앗아갈 수 없었다.
겨우 만족감이란 게 피어올랐다.
***
이후 현덕은 저승에서의 삶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생활을 했다.
주민은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돌아왔다. 현덕은 종일 혼자였다. 그가 머무는 공간엔 모든 게 있었다. 다만 칼이나 가스레인지 같은 요리 도구가 없었고 전화기도 없었다.
놀랍게도 컴퓨터는 있었다. 인터넷도 됐다. 그런데 클릭하여 구경만 할 수 있을 뿐. 댓글을 달 수 없었다. 메일을 쓸 수도 없었다. 분명 컴퓨터에 연결된 키보드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무언갈 입력해 검색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메일 창이나 댓글 창엔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 마치 더 이상 세상에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현덕은 하루 종일 컴퓨터를 하거나 서재에서 책을 봤다. 그도 아니면 거실에서 TV를 봤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먹었다. 냉장고는 두 대나 되었다. 온갖 음식들이 다 있었다. 1인분씩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다. 먹고 싶은 걸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거나 그냥 차가운 채로 먹었다.
주민은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아왔다. 같이 목욕을 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섹스를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 사람이 그리웠던 현덕은 집요하게 저를 원하는 주민을 밀어내지 못했다. 침대 시트는 언제나 축축하게 젖었다.
현덕은 때론 주민을 제 안에 집어넣고 잠들었다. 하다 지쳐 기절하듯 잠들었다 눈을 뜨면 주민의 배 위에 누워 있기도 했다.
주민은 살살 허리를 치대며 현덕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현덕이 눈을 뜨면 기다렸다는 듯 현덕의 안에 사정하고 숨 막히도록 깊게 키스했다.
하루가 지났을까.
열흘이 지났을까.
한 달? 일 년?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야 현덕은 받아들였다. 자신은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주민도 죽은 게 아니라는 걸. 결코.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주민은 아침마다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했다. 아예 밖에 안 나가고 하루 종일 현덕을 벗겨 물고 빠는 날도 연달아 이틀 있었다. 아마도 주말이었으리라.
현덕은 주민에게 어딜 가냐고 묻지 않았다. 주민이 무슨 대답을 하듯, 이 불안한 일상이 산산조각이 나리라는 걸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고 있었으니까.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지 모른다. 도무지 머리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세상은 김현덕이 죽은 줄 안다. 그런데 김현덕은 살아 있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 아는 건 오직 우주민뿐.
어째서?
왜?
우주민은 무슨 수를 써서 김현덕을 이곳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무슨 수를 써서 김현덕이 안 죽었는데 죽게 만들었다.
왜?
어째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안 나왔다.
해가 지기 전, 주민은 어김없이 문을 열고 돌아왔다. 현덕은 평소와 달리 현관 앞에서 그를 맞이했다.
“어쩐 일로 마중이야?”
주민은 현덕을 보자마자 웃었다. 그리고는 얼른 문을 닫으려 했다. 현덕은 그런 주민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주민을 밀치고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
주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쾅.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삐비빅.
문 잠그는 소리가 났다. 현덕은 문을 열려 했다.
어디에도 문 여는 장치가 보이지 않았다. 돌리는 손잡이도, 버튼도, 아무것도 없었다. 문고리 아래에는 까만 패널이 보였다.
지문 인식 장치였다.
현덕은 문에 매달린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간 내내 품었던 물음을 끝내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주민 형, 왜 이러는 거야?”
“현덕아.”
“문 열어줘. 나갈래. 이제 그만해. 이런 거 재미없어! 몰래카메라야? 나 놀리려고 이러는 거야? 그러기엔 너무 길잖아. 형? 응? 우주민!”
“현덕아,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그만하라고!”
현덕이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었다.
주민은 태연하게 현덕을 끌어안았다. 문 손잡이를 움켜쥔 현덕의 손을 잡아 뜯듯 떼어내고 현덕을 껴안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형! 우주민!”
현덕은 반항했다. 체격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그래도 현덕은 스무 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아무리 마른 체구인들 정말 진심으로 버둥대면, 주민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결국 몇 발자국 못 걸어 주민이 휘청댔다.
“놔! 놓으라고!”
현덕은 주먹으로 주민의 얼굴을 쳤다. 그 순간에도 현덕은 이 잘생긴 얼굴을 갈겨야 한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잠깐이었다.
현덕은 연달아 주민에게 주먹을 갈겼다. 주민이 현덕을 놓치며 뒤로 넘어졌다.
우당탕, 이라는 효과음이 어울릴 정도로 엉망이었다. 현덕은 도망치려 했고 주민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현덕의 주먹과 발이 주민을 밀쳤다. 명치를 때리고 얼굴을 때리고, 다리를 발로 찼다.
주민은 결코 현덕을 때리지 않았다. 그는 제게서 도망치려는 현덕을 잡는 데 온 힘을 다했다.
현덕은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주민을 밀어내야 하는지 끌어안아야 하는지 몰랐다. 주민을 꼬집고 할켰다. 주민은 저를 밀치고 상처 내는 현덕의 손길마저도 좋아 미쳤다.
구르고, 치고, 때리고, 움켜쥐는 악다구니 속에서 현덕은 겨우 부엌까지 도망갔다. 막 식탁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뒤쫓아 온 주민이 현덕의 발을 잡아챘다.
현덕은 악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주민이 현덕의 발을 잡아당겼다. 현덕은 끌려가지 않으려 식탁의 다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현덕은 그 식탁이 제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안간힘을 써서 붙잡고 버텼다. 그리고 발버둥 쳐서 발로 주민을 밀어냈다. 그러는 통에 주민은 현덕의 발뒤꿈치에 두어 대 얻어맞았다.
주민은 덮치듯 현덕을 끌어안아 두 팔을 결박했다. 재빨리 제 넥타이를 풀어 현덕의 두 손을 묶었다. 재빠르고 꼼꼼했다. 군대에 다녀온 기억이 있는 현덕은 이 자식이 저 몰래 군대에 다녀왔나 의심했다.
주민은 제 양복 재킷으로 현덕의 두 다리마저 꽁꽁 묶었다. 그리고는 현덕을 들어 소파에 올려두었다.
현덕은 꿈틀대며 당장 이걸 풀라고,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설명하라고 말했다. 나름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지만, 주민이 보기엔 앙탈에 가까웠다.
“미안, 현덕아. 앞으로는 좀 더 일찍 집에 들어오도록 노력할게.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고 힘들었지? 나만큼 너도 내가 그리웠지? 그래서 그런 거지?”
주민은 현덕의 이마와 뺨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미쳤어?”
현덕은 어처구니가 없어, 발버둥 치는 것도 잊고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말했잖아. 기억 안 나? 난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미쳐버릴 거 같다고.”
주민이 셔츠 소매에서 커프스 버튼을 빼 바닥에 툭툭, 떨어뜨렸다. 팔소매를 걷고,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었다. 그렇게 편한 자세를 하고는 부엌으로 걸어갔다.
현덕은 갑자기 저를 놔두고 등을 보이는 주민을 바라보았다. 뭘 하려나 싶어 지켜보았더니, 주민은 식탁 의자를 잡아 들었다.
식탁과 의자는 고급스러운 원목 제품이었다. 처음 봤을 때 ‘어머니가 보시면 좋아하겠구나, 이런 거 하나 사드릴걸.’ 하고 생각할 만한 것이었다.
주민은 그 고급스러운 식탁과 의자를 조금도 망설임 없이 때려 부쉈다. 의자를 망치 삼아 식탁을 내리쳤다. 콰직 소리를 내며 의자가 부러지고 식탁이 패었다.
의자 하나가 다 부서지자, 주민은 옆의 의자를 들어 다시 식탁에 내리쳤다. 그렇게 기어이 의자 네 개로 식탁을 부서뜨렸다.
부엌은 난장판이 됐다. 그 위에 선 주민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돌아서 현덕을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짜증나고 화나도, 그러면 안 돼. 나 말고 다른 걸 그렇게 붙잡으면 안 되지.”
사람뿐 아니라 무생물조차도. 그 무엇도 안 된다. 저보다 현덕에게 더 애절하고 절실한 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게 생긴다면 부숴 없애는 게 당연하다. 이 세상에는 김현덕과 우주민, 단둘만 있으면 되니까.
주민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저를 올려다보는 현덕에게 성큼 다가갔다. 현덕을 안기 전, 자신을 내려다보고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식탁을 부수느라 힘을 써서 그런 듯했다.
“우리 같이 목욕하자.”
주민은 팔다리가 묶인 현덕을 안아 들며 현덕의 입술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댔다.
“우주민, 너…….”
경악하는 현덕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허리가 뻐근해졌다.
주민은 뜨거운 김이 자욱한 욕실에서 현덕을 안았다. 싫다고, 그만하라고 말하는 현덕의 입을 막고 현덕을 벽에 밀쳤다. 다치지 않도록 로션으로 뒤를 충분히 풀어주고, 성난 제 것을 집어넣었다.
현덕의 안에 진득하게 사정했다. 기운을 잃고 축 늘어진 현덕을 안고. 여운을 참지 못해 사정 후에도 몇 번 허리를 치대어 털며, 생각했다.
임신시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렇게나 안에 제 것을 뿌렸는데, 왜 같은 남자라는 이유로 씨를 맺지 못하는 걸까. 만약 아이를 가진다면 현덕이 좀 더 쉽게 이곳에 정을 붙일 수 있을 텐데.
뜨거운 물에서 올라오는 더운 열기와 정사로 인한 열기가 더해진 욕실은 습하고 뜨거웠다. 그 안에 오래 있으니 머리가 어질했다. 주민은 도망치는 현덕의 머리를 움켜쥐고, 억지로 입을 벌려 키스했다. 현덕의 입안에서 혀를 굴리며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
이후 둘 사이는 전쟁이었다.
‘난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나한테는 물론이거니와 우주민에게 조차 좋은 일이 아니야.’
현덕은 작정하고 도망치려 했다. 주민이 없는 낮이면 도망치기 위해 온 집 안을 뒤지고 돌아다녔다.
새삼 깨달았지만 창문엔 손잡이가 없었다. 열리지 않았다. 집안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게 없었다. 전등이나 소파를 창문에 집어던졌지만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환기를 시키는 환풍구를 찾았지만 단단히 마감 처리가 되어 있어 열리지 않았다.
주민이 오가는 현관문도 마찬가지였다. 현덕은 주민이 퇴근할 때를 기다려 도망가려 했지만 언제나 실패였다. 주민이 잠잘 때 주민을 묶거나 결박한 후 그 지문을 현관에 가져다 대 도망치려 했지만 그 역시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주민은 잘 때 현덕을 꽉 껴안고 잤다. 현덕이 조금만 움직여도 잠에서 깼다. 아예 잠을 안 자는 사람 같았다.
주민은 현덕이 도망치려는 걸 알았다. 몇 번은 앙탈을 부리는 고양이를 부리듯 지켜봤다. 하지만 견디다 못한 현덕이 화장실 샤워기를 제 목에 감고, 풀어주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한 날.
주민은 싫다는 현덕의 팔을 침대에 묶고, 현덕의 성기를 빨아 억지로 세웠다. 그리고는 현덕의 성기에 금속 링을 채웠다. 사정을 막는 도구였다. 주민과 관계를 가지면서 단 한 번도 도구를 사용해본 적 없던 터라 현덕은 겁을 먹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성기에 링이 꽉 죄니 아팠다. 현덕은 두려움에, 또 그만큼의 쾌락에 몸을 떨었다.
주민은 현덕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현덕의 성기를 빨았다. 발버둥 치는 현덕의 두 다리는 강제로 벌려 제 허리에 감게 했다. 다른 곳은 전혀 만지지 않고 제 입으로 추삽질을 해가며 현덕의 성기에만 자극을 주었다.
현덕은 주민의 입안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사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묶인 성기는 사정하지 못했다.
주민은 계속 그 위에 자극을 더했다. 쾌락은 고통이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쾌락이었다. 사정하여 끝낼 수 없는 상황에서 쾌락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고문이었다.
현덕은 온몸을 뒤틀며 참으려 애썼지만 결국 무너졌다. 울며, 주민에게 빌었다. 제발 풀어달라고 사정했다. 주민은 그런 현덕을 다정히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현덕의 몸을 뒤집었다. 현덕의 등을 손으로 짓눌렀다.
현덕의 몸이 침대에 납작하게 엎어졌다. 사정하지 못한 성기가 침대에 쓸렸다. 이제 자극은 고통이었다.
“아흑…….”
현덕은 비명을 질렀다.
주민은 현덕의 엉덩이만 쳐들어서 로션을 뿌렸다. 반쯤 남아 있던 로션 한 통을 다 비웠다.
끈적한 로션이 엉덩이를 타고 내렸다. 자극을 기대하는 구멍과 그 아래, 사정하지 못한 성기를 적셨다.
“아……흐으…….”
차갑고 끈적한 감촉에 현덕이 허리를 떨었다.
주민은 현덕의 엉덩이를 쓸어내려 그 로션을 제 성기에 바르고는 단번에 현덕의 안에 성기를 박았다.
박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사람 간의 성관계라기보단 개들이 흘레붙은 것에 가까웠다. 어떤 접촉도 없었다. 주민은 오직 현덕의 허리만 잡아 엉덩이를 올리고는 그 엉덩이에 제 성기를 가져다 박았다.
귀두까지 빼냈다 다시 안으로 처넣었다. 주민의 성기가 현덕의 안을 치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끈적한 로션이 두 사람의 살갗에 들러붙으면서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현덕은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어 끅끅대자 주민은 현덕의 목을 받쳐 들어 숨을 쉬게 해주었다. 그 배려는 오히려 안 해주느니만 못했다.
차라리 기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팽팽하게 부푼 앞은 사정하지 못하게 막힌 지 오래였다.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자극은 단번에 머리끝까지 도달했다.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현덕은 울부짖었다.
주민은 현덕이 어딜 어떻게 느끼는지 알았다. 그는 사정없이 현덕이 느끼는 부분에만 제 것을 치댔다.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손발이 곱아들었다. 현덕은 도망치려고 발로 시트를 계속 밀었다. 허리만 붙잡힌 채 버둥대는 현덕과 무릎을 세워 현덕의 안을 파고드는 주민의 그림자가 침대 아래까지 길게 늘어졌다.
오랜 정사로 두 사람 다 온통 땀범벅이었다. 뚝, 뚝. 주민의 얼굴에서 흐른 땀이 현덕의 등으로 흘러내렸다. 그마저도 현덕에겐 자극이었다.
결국 현덕의 몸이 어느 순간에 뻣뻣하게 굳었다.
“아흑……아……. 아…….”
눈앞이 새하얘졌다.
현덕은 사정하지 않은 상태로 절정을 맞았다. 성기는 여전히 뻣뻣했지만 현덕의 몸은 사정할 때 느끼는 쾌감, 아니 그 이상의 쾌감에 시달렸다.
경련을 일으키듯 온몸을 떨었다. 그 여파로 현덕의 안이 잔뜩 수축했다. 주민은 저를 쥐어짜는 현덕의 안에 그대로 사정했다.
“그만……. 제발 그만해……. 형…… 제발…….”
현덕이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주민은 현덕의 안에서 저를 빼내지 않은 채로 현덕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제가 만든 잇자국이 아직 거기 남아 있었다.
현덕의 몸은 온통 주민이 만든 자국으로 가득했다. 주민은 그것을 만족스럽게 훑어보고는 현덕의 몸을 뒤집었다. 주민이 안에 있는 채였다. 현덕은 안이 쓸리며 비벼지는 감각에 흐윽, 울음소리를 냈다.
몸을 움츠리고 가릴 힘 따윈 없었다. 두 다리는 주민이 파고드는 걸 어쩌지 못한 채 늘어졌다. 사정 못 한 성기만 꼿꼿히 솟아 있었다.
“현덕아, 왜 그러는 거야. 날 두고 어딜 가려고. 죽으면 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주민은 현덕의 몸을 애무하며 말했다.
“네 몸에 상처가 하나라도 날 때마다, 네 부모님, 네 형, 그리고 네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내가 다 어떻게 만들 거 같아?”
바르작거리던 현덕의 몸이 굳었다. 현덕은 제 심장마저 멈춘 게 아닐까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네가 다치면, 그 사람들도 다칠 거라고.”
“뭐?”
“네가 너무 소중해. 그래서, 난 널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이 사과를 따서 먹지 않으면 네 아담의 발뒤꿈치를 깨물어 죽여버리겠다고 하와를 협박하는 뱀처럼. 주민이 속삭였다.
“현덕아, 아버지랑 어머니, 김맹덕. 박자룡, 장준비, 피터 윤. 그리고 그 밖의 떨거지들. 다 기억하고 있지?”
주민을 올려다보는 현덕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지금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현덕이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주민은 기꺼이 현덕을 끌어올려 제 위에 앉혔다. 현덕은 제 무게로 주민의 성기 위에 내려앉은 모양새가 됐다.
“악!”
현덕의 허리가 뒤로 꺾였다.
주민은 현덕의 허리를 받쳐주며 현덕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꼿꼿이 선 유두를 빨았다.
“흐으…….”
유두를 세게 빨면 현덕의 안이 꿈틀댔다. 그 자극에 주민의 것이 꼿꼿해졌다.
현덕은 주민의 품 안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주민이 주는 자극과 주민의 말이 모두 현덕을 괴롭혔다.
“김맹덕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모양이야.”
주민이 유두를 살짝 이로 씹어보았다. 열매 같아서 살짝만 이로 건드려도 톡, 터질 것 같은데. 그러지는 않았다.
현덕의 손이 다급히 주민의 다부진 팔을 붙잡았다.
“아, 안 돼!”
현덕은 겁에 질렸다. 주민이 제 유두를 씹어 뜯을 것이 걱정되는지, 맹덕을 건드리려 하는 게 걱정되는지, 자신도 몰랐다.
“잘해보고 싶은데 네 생각이 나서 망설이고 있나 봐. 상대편은 그런 이유도 모르고, 김맹덕한테 확신이 없으니 머뭇거리고 있고.”
주민이 현덕의 귓가에 속삭였다.
“현덕아, 움직여야지. 형 게 네 안에서 섰잖아. 그렇게 못 놔주겠다는 듯이 빨아대서 세웠으면서, 이대로 가만히 있으려고?”
주민이 살짝 허리를 들썩였다. 현덕은 그 움직임을 피해 허리를 들었다. 주민이 제 두 다리로, 현덕의 다리를 옆으로 밀었다. 겨우 지탱하고 있던 다리가 흔들리자 현덕은 여지없이 주저앉았다.
“아흑!”
주민의 것이 현덕의 안을 파고들었다.
“으……흑……윽…….”
현덕은 두 손을 주민의 팔에 감았다. 그렇게 주민에게 제 몸을 기대 지탱하고는 천천히 몸을 들어 올렸다.
엉덩이를 들어 올리니 액에 젖어 번들번들한 것이 현덕의 안에서 삐져나왔다. 제 스스로 주민의 것을 빼내는 느낌에 등줄기를 타고 이상한 느낌이 흘러내렸다.
현덕은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흑……윽…….”
아무리 천천히 내려도, 아니 천천히 할수록 주민의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굵은지, 뜨거운지, 얼마나 흥분해 핏줄마저 섰는지.
차라리 주민이 저를 움켜쥐고 세게 치받을 때는, 그가 주는 쾌락에 잠겨 해롱대면 그만일 것을. 제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고 엉덩이를 들썩여 주민의 것을 제 안에 비비는 건 생소한 쾌락이었다. 이마저도 쾌락이라는 것이 현덕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으음…….”
주민은 현덕이 움직일 때마다 만족스럽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보상으로 현덕의 귀에 맹덕의 이름을 흘려주었다.
“내가 도와주면, 분명 김맹덕은 그 사람이랑 행복해질 수 있겠지. 네가 죽고 나서 김맹덕은 날 의동생 비슷하게 생각하더라고.”
“으……. 흐으…….”
현덕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맹덕의 이름을 듣는 게 싫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건 더 싫었다.
“나중에 김맹덕이 결혼이라도 하면 우리 같이 가서 볼까? 먼발치에서라도 보는 거야. 김맹덕이랑 네 부모님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현덕의 감질나는 움직임을 견디다 못한 주민이 현덕의 허리를 확 잡아 내렸다.
“아! ……으!”
현덕이 몸서리쳤다.
주민은 다급히 현덕의 뒷머리를 잡아채 끌어당겼다. 입을 맞추며 현덕을 뒤로 밀었다.
다시 현덕이 침대에 쓰러졌다.
“현덕아, 형 말 잘 들으면, 언젠가 데리고 가줄게. 그러니까 응? 이제, 형 말 잘 듣자. 알았지?”
주민은 이를 악물고 허릿짓 했다. 여유 있는 척 참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제 것을 맛있다는 듯 빨아들이는 현덕의 안을 사정없이 비비고, 짓이겼다.
현덕의 발을 잡아 발목의 뒤쪽, 연한 살을 잘근 씹었다. 아킬레스건을 물어뜯고 싶은 식욕을 참으며 잘게 허리를 털었다.
절정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가엾게도. 아직 사정을 못 한 현덕의 것은 꼿꼿하게 서 있었다. 주민은 제 사정에 맞춰, 현덕의 것에서 링을 빼주었다. 현덕의 안에 깊이 사정하며, 계속 허리를 털었다.
현덕의 성기는 링을 풀어주었는데도 제대로 사정하지 못했다. 주민은 부드럽게 현덕의 것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자 현덕의 것이 주민의 손안에서 겨우 파정하며 축 늘어졌다.
주민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현덕의 몸을 꽉 껴안았다. 살아 있는 김현덕이 제 안에서 퍼덕이고 있었다. 제 것을 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랑해, 현덕아. 너무 사랑해.”
주민은 헐떡이는 현덕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주민은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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