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시작
다음 날 TE엔터테인먼트에 간 현덕은 사물함에 가방을 놓고 신인개발팀으로 가 오 팀장을 찾았다.
오 팀장의 안색이 안 좋았다. 안 좋은 일이 있는 듯 했다. 주인공이 쓰러뜨려야 할 끝판왕처럼 어둠의 오오라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현덕이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말하자 대번 밝아졌다.
“뭐! 진짜로?”
“단, 조건이 있습니다. 들어주셔야 해요.”
“그래, 그래. 말해봐. 뭐든.”
“절 제대로 지원해주세요. 지난번에 트윈 트윙클 때 항우영 선배님의 일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해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제가 우리 회사 대표로 나가는 만큼, 그에 맞는 케어를 해달라는 겁니다. 말로만 해주지 마시고 문서로 명시해서 제게 제안해주세요.”
현덕은 오 팀장이 자신의 말을 불쾌하게 여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오 팀장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변태인가?’
현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오 팀장을 바라보았다.
오 팀장은 현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꽤 유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네, 그러니까-”
“좋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충분히 알아 들었으니까! 자세한 얘기는 들어가서 하자고.”
오 팀장이 현덕의 등을 떠밀었다. 현덕을 소회의실에 앉혀 놓고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밖으로 나갔다.
현덕은 홀로 소회의실에 앉아 어제 어머니와 모의했던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어머니는 현덕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적극 찬성했다. 프로그램 출연 기간 동안 학교 수업에 소홀해질 수 있을 거 같다고 걱정하니, 직접 담임선생님과 통화해 양해를 구하겠다고 지원을 약속해주었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다음 주 주말에 말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다음 주 주말엔 맹덕이 휴가를 받아 나오고, 아버지도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얼굴을 보고 직접 말하자고 어머니가 제안했다.
현덕은 아버지가 공부를 안 하고 무슨 딴따라냐고 화를 내실까 봐 걱정했다. 어머니는 그럴 리 없거니와 설사 그런다면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한테 내가 아이돌 연습생 한다고 말했던가? 안 했던 거 같은데.’
문득 든 의문은,
‘뭐, 어머니나 형이 얘기했겠지.’
쉽게 사라졌다.
때맞춰 문이 벌컥, 열렸다. 오 팀장은 큰 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왔다. 양손에는 두툼한 서류를 한 아름 들려 있었다.
“자자, 들어들 와.”
오 팀장이 열린 문을 향해 손짓했다.
‘들어오라고? 나 말고도 또 있는 건가?’
자신과 친한 연습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두 명이 걸어 들어왔다.
“김현덕, 여기 있었네!”
“……자룡 형?”
현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자룡의 뒤에 들어오는 건 우주민이었다.
현덕은 얼떨떨해서 이름도 부르지 못했다.
자룡은 얼른 현덕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주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회의실을 휙 둘러보더니, 현덕의 반대편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양옆에 주민과 자룡을 끼게 된 현덕은 멍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오 팀장을 바라보았다.
오 팀장은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양팔을 넓게 벌렸다. ‘위 아더 월드-’라는 대사를 외칠 것만 같은 포즈였다.
“자! 우리 TE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연습생 셋. 각자 얼굴이랑 이름은 알겠지? 이렇게 세 사람이 우리 회사를 대표하여 아이돌 트리니티에 나가게 됐네.”
귀에 들리는 건 분명 한국말인데, 현덕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