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오디션 (3/36)

3. 오디션

토요일에 현덕은 맹덕과 함께 TE엔터테인먼트로 갔다. 가기 전 부모님께 말을 해야 되지 않냐는 현덕의 말에 맹덕은 코웃음을 쳤다.

“일단 오디션이나 붙고 말씀하시지, 동생?”

“그건 그래.”

현덕은 급 수긍했다.

어머니는 사이좋은 형제의 외출을 환영하며 두둑이 용돈을 주었다. 그리고 각각에게 따로 따로 임무를 부여했다.

현덕에게는 군 입대를 앞두고 영 집 밖으로만 도는 형 맹덕을 잘 챙겨주라고 말했다.

‘형은 그냥 아버지랑 있기 싫어서 외박하는 거 같은데요.’

현덕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맹덕에게는 자살하려고 할 만큼 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동생을 잘 챙겨주라고 당부했다.

“좋은 구경 시켜주고 맛있는 거 사서 먹이고, 스트레스 확 날려 주고 올 테니까 걱정 마요.”

맹덕은 뭔가를 꾸미는 듯 웃다가 어머니의 매서운 손에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TE엔터테인먼트는 강남의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다. 7층 건물 전체가 TE엔터테인먼트였다. 건물의 외벽엔 TE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의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다.

맹덕은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감탄했다.

“허, 핑크키위다.”

학교 친구들도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이었다.

“너 나중에 진짜 아이돌 하게 되면 나 핑크키위 사인 좀 받아다 줘.”

“일단 오디션이나 붙고 얘기해 보자, 형?”

현덕은 호들갑 떠는 형에게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조금 전,집에서 맹덕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준 것이었다.

맹덕은 흠흠, 헛기침하며 뒤늦게 여섯 살 연상 형의 위엄을 되찾고자 노력하였으나 뒤늦은 몸부림이었다.

“형은 저 앞에 맥도널드에 있을 테니까, 잘 하고 와라.”

“같이 안 들어가고?”

“니가 애냐. 그리고 괜히 나 때문에 더 긴장할지도 모르잖아. 난 가서 웹툰 콘티 짜고 있을 테니까. 시간 많이 걸려도 상관없어. 천천히 잘 하고 와.”

맹덕은 마치 아들을 입대시키는 부모처럼 현덕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고 비장한 표정으로 격려했다. 현덕은 한 달 뒤, 맹덕이 입대할 때 똑같이 해 주리라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나서서 TE엔터테인먼트 건물이 도착할 때까지는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애국가 부르고 박수 치고 오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맹덕 때문에 없던 긴장감이 새록새록 돋았다.

현덕은 살짝 굳은 얼굴로 뒤돌아섰다.

“넌 긴장하면 로봇처럼 뻣뻣해지니까 긴장하지 말고, 잘 하고 와!”

등 뒤에서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참으로, 끝까지 동생에게 긴장감을 더해 주는 고마운 형이었다.

현덕은 건물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에 나미나 캐스팅 매니저의 명함을 내밀었다. 데스크에 앉아 있던 사람은 이미 현덕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남자는 현덕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미니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사교적으로 현덕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잘생겼다, 마스크가 좋다, 나미나 대리가 신신당부를 했다, 등등. 현덕은 네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대기 장소에는 현덕 말고도 다섯 명이 더 와 있었다. 여자 둘, 남자 셋이었다. 현덕과 비슷한 또래이거나 두어 살 더 많아 보였다. 그들은 대놓고 현덕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현덕은 그 시선을 피하듯 구석 자리에 앉았다.

현덕 말고 다른 사람들은 현덕이 보기엔 이미 연예인 같아 보였다. 여자 둘은 몸에 딱 달라붙거나 추워 보일 정도로 짧은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화장은 엷었지만, 둘 다 모두 머리카락이 무척 길었다. 무엇보다 예뻤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편하게 입고 온 건 현덕뿐이었다. 검은 면바지에 운동화, 흰 셔츠에 검은 재킷. 그마저도 교복을 입고 오려는 걸 맹덕이 기겁하며 말려서 이렇게 입고 온 것이었다.

‘아, 형. 고마워. 교복 입고 왔으면 정말 쪽팔릴 뻔했다.’

이렇게 입고 왔는데도 같잖다는 시선을 받고 있건만. 교복을 입고 왔다면 어땠을까? 더 안 좋은 취급을 받았을 것 같았다.

이후에도 사람들이 몇 명 더 왔다. 그리고 먼저 와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부터 한 명씩 안내를 받아 나갔다.

현덕은 여섯 번째로 대기실을 나섰다.

오디션장은 꽤 컸다. 하얀 바닥에는 발자국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 앞에 서라는 뜻인 것 같았다.

발자국 스티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카메라와 영상기기가 놓여 있었다. 심사위원인 듯한 세 사람이 그 옆에 주르륵 앉아 있었다. 여자 둘, 남자 하나였다.

“김현덕 씨 맞나요?”

현덕이 표시에 맞춰 카메라 앞에 서자 앉아 있던 세 사람 중 한 명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막상 오디션장에 서니, 조금 전까지의 떨림이 거짓이었다는 듯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온몸을 하얗게 칠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떨리지도 않았다.

“자, 김현덕 씨. 이쪽 카메라를 봐주세요.”

현덕은 고개를 돌려 카메라 쪽을 바라보았다.

“긴장하지 말고, 몸에 힘주지 말고, 편안하게 이쪽을 봅니다. 웃지 말고.”

현덕의 머리 위에 커다란 화면이 달려 있었다. 거기에 현덕의 얼굴이 떴다.

심사석에 앉은 세 사람은 눈앞의 현덕이 아니라 화면에 뜬 현덕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화면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작 앞에 서 있는 현덕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었다.

모르는 노래를 틀어 주고 춤을 추라기에 전화로 설명 들었던 것처럼 크게 박수를 치며 몸을 흔들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팝송인지라 그저 되는 대로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심사의원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네.’

현덕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잠시 후 노래가 끊겼다.

이번에는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현덕은 큰 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1절을 다 불렀는데도 그만하라는 말이 없어 2절까지 불렀다. 굳이 4절까지 부를 필요는 없다던 말이 떠올라 3절은 부르지 않았다.

멀뚱멀뚱 서 있자, 심사위원들이 1분 정도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했다. 이건미나의 설명에는 없던 상황이었다.

“음-.”

잠시 생각을 정리한 현덕은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현덕입니다.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입니다. 아이돌 연습생이 되려고 지금 오디션을 보고 있어요. 궁금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취미는 수학 문제 풀기입니다. 왜냐면 제가 수학을 제일 못하거든요. 못하니까 잘하려면 수학을 싫어하지 말고 다른 과목보다 더 가까이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틈틈이 수학 문제를 풀어요. 장래희망은 판사입니다.”

“엑? 아이돌이 아니라?”

예상외의 대답이었는지, 눈을 감고 현덕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심사위원 중 하나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무의식중에 나온 말인지 스스로 내뱉고도 당황하여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판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현덕이 양손을 주먹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이상입니다.”

현덕은 바른 자세로 서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에, 수고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김현덕 씨.”

심사위원이 웃어 보였다. 현덕은 그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이고는 돌아섰다. 등 뒤에서 수군수군, 말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 아이돌 연습생이 되려고 온 거니까.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그게 장래희망이라고 말해야 했던 걸까?’

문을 열고 나서는데 뒤늦게 깨달음이 몰려왔다.

‘설사 정말 아이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더라도, 그래도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이라도 해야 됐을 텐데. 저기 앉아 있던 분들이 당황한 건 당연한 거네.’

건방지게 보였다거나, TE엔터테인먼트를 우습게 봤다거나. 그런 식으로 비치지 않았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나미나 캐스팅 매니저님께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할 텐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현덕은 우울한 표정으로 기획사를 나섰다. 길 건너편의 맥도널드로 들어가니, 맹덕이 밀크셰이크를 쪽쪽 빨고 있었다.

“잘 하고 왔어?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대기 시간이 길었어.”

현덕이 힘없이 주저앉자 맹덕이 눈을 껌벅였다.

“왜 그래? 망쳤어?”

“아니, 생각했던 대로 다 하고 왔긴 했는데,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거기에서 실수를 크게 한 거 같아.”

“뭔 실수?”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는데, 내가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

“그게 왜? 너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잖아.”

“아이돌 연습생 된다고 온 거니까, 예의상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해야 했던 거 아닐까?”

“아, 그건 그러네. 그래야 하나?”

맹덕이 맹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뭐, 됐고. 지나간 건 잊어버려. 배고프지? 뭐 먹을래?”

“아무거나.”

“그래, 젤 비싼 거 시켜줄게. 판사가 꿈인 김현덕 동생.”

맹덕이 현덕의 어깨를 툭툭치고는 햄버거를 주문하러 갔다.

‘가보지 않은 길은 무슨. 갔던 길이나 똑바로 가자.’

잠깐의 일탈 정도로만 만족하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만큼이나 자신이 아쉬워하고 있다는 건 알아 차리지 못했다.

현덕은 창밖으로 보이는 TE엔터테인먼트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역시 나랑은 인연이 없는 거야.’

***

일주일 뒤.

핸드폰을 집에 두고 학교에 갔던 현덕은 집에 돌아와 핸드폰에 찍힌 낯선 번호의 부재중 통화 5건과 문자 1통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TE엔터테인먼트입니다.

김현덕 님의 오디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관련 내용을 안내해드리고자 합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TE.ent 신인개발팀(02-XXX-XXXX)

합격 연락이었다.

***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다.

오디션을 보러 갈 때만 해도, 또 다녀와서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전에 해 보지 못한 낯설고도 재미난 경험을 했다는 보람을 느꼈다. 합격할 거란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합격 연락을 받으니 덜컥, 겁이 났다.

‘합격? 합격했다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왜?’였다. 도대체 박수를 치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 어디에서 아이돌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다음에 든 생각은 ‘어떻게 하지?’였다.

합격했으니 연락을 달라는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니, 내가 그걸 합격했다니.’

오도독, 소름이 돋았다.

‘내가 뭘 한 거지?’

가지 않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생각 이상으로,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현덕에게는 아직 그 정도까지의 용기는 없었다.

현덕은 문자가 온 이후 이틀을 더 흘려보냈다. 그 사이에 부재중 통화가 몇 번 더 왔지만 현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

삼 일째 되던 날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에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옆에는 와이셔츠 양복바지, 양말, 세면도구 등이 쌓여 있었다.

“아버지?”

“현덕이냐.”

안방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요?”

“시장에.”

“아버지는 어디 가세요?”

현덕은 슬그머니 아버지 옆에 섰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옷가지들을 받아드니, 아버지는 침대 옆 서랍을 열어 두통약 등 비상약을 챙겼다.

“너희 엄마한테는 미리 말했는데, 내일부터 일주일 정도 출장을 가게 됐다.”

아버지의 말에 현덕은 바짝 긴장했다.

“설마 해외?”

“아니, 국내.”

“다행이다. 어디로요?”

“대전.”

“누구랑 같이 가세요? 누가 카풀 해 준대요?”

“아니.”

“그럼 열차 타고 가시겠네요?”

“그렇지.”

“거기서 누가 아버지 마중 나올 수는 있대요?”

“역에 사람이 하나 나오기로 했다.”

“다행이네요.”

현덕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신은 확실히 공평한 존재였다. 한 남자에게 뛰어난 지능을 주어서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판사가 되게 하였지만, 대신 삶에 필요한 다른 능력을 전혀 주지 않았으니까.

평생 법을 집행하고 살아온 반듯한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이 세상 법을 잊어버린 무법자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한 후 사흘 만에 학원의 연습용 차 3대를 폐차시켰다고 했다. 그때 일이 아직까지도 운전면허 학원에 괴담처럼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삼일 동안 차 세 대를 해먹은 연습생이 있었대.”

“해먹어? 설마 차를 가지고 도망친 거야? 그걸 어디다 팔아 먹으려고?”

“아니, 들이박아서 폐차시켜버렸대나 봐. 하루에 한 대씩.”

그럼에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운전면허를 따고야 말겠다고 버티자, 운전면허 학원 원장이 아버지에게 학원비를 환불해주며 제발 학원을 떠나 달라고 빌었다고 했다.

그 학원 원장은 돌아서서 학원을 떠나는 현덕의 아버지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폐차의 예수.

참고로, 환불받은 돈으로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한 어머니는 한 달 만에 면허를 땄다.

그뿐이랴. 이사를 가면 새로 이사 간 집 위치를 외우지도 못했다. 매번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어디로 가야 되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것도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해 택시 운전 기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때문에 현덕이네 집은 현덕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단 한 번도 이사를가지 않았다.

다 큰 아들 둘을 둔 남자가 이사한 집을 기억 못 해 번번이 파출소에 다소곳이 앉아 아내가 데리러 와 주길 기다리다니. 아들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현덕은 그런 아버지의 능력을 꼭 빼닮았다. 길치라는 말을 쓰면 다른 길치인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길치였다. 모르는 곳에 홀로 떨어져도 귀신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진돗개 같은 감각을 가진 맹덕과는 정반대였다.

맹덕이 아니었다면 현덕은 이미 오래전, 길을 잃은 채로 가족들과 영영 헤어져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덕만큼은 출장을 떠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또 길을 잃어버릴까, 긴장한 채 출장길에 올라야 하는 그 마음을.

현덕은 거실로 나와 아버지가 짐 싸는 것을 도왔다. 아버지는 챙겨가야 할 물건 목록을 뽑아 빠진 물건이 없나 체크하였다.

현덕은 아버지의 검수가 끝난 옷가지를 팡팡- 소리가 나게 펴서는 반듯하게 접었다. 얇은 옷은 캐리어에 들어가기 좋게 돌돌 말았다. 그리고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다.

부자는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그리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현덕은 충동적으로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

“그래.”

“만약에요. 타임머신 같은 걸 타고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요.”

“안 타.”

“네?”

아버지는 단호하게 현덕의 말을 끊어냈다.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이야기를 한다고, 그러시는 건가.’

아버지는 양말 개수를 세고 있었다.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무뚝뚝했다. 특별히 화가 나 있다든가, 짜증을 낸다든가 하는 기색은 없었다.

“만약에요, 만약.”

“너희 어머니랑 너랑, 네 형이랑 놔두고 내가 과거로 왜 돌아가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아……. 어머니가 지금 이 자리에 계셔야 했는데.”

“있으면 이렇게 말 안 하지.”

“이 말까지도 모두 어머니가 들으셔야 했는데.”

현덕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녹음 앱을 켜고는 아버지에게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현덕을 무시했다.

“진짜 만약에요. 그냥 밤에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까 옛날로 돌아가 있으면요. 아버지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로요. 그러면 뭘 하고 싶으세요?”

현덕은 아버지에게 양말 일곱 개를 건네받아 캐리어에 넣으며 다시 물었다.

“그거 중요한 질문인 거니. 학교 숙제라던가?”

“학교 숙제는 아니고 그냥 제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침이 될 거 같아요.”

“흐음.”

바삐 움직이던 손이 잠시 멈췄다.

“만약에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말이지.”

“네. 기억은 다 가지고요. 지금까지 살았던 기억은 다 가지고.”

“다시 살겠지. 공부하고, 사시를 보고, 네 엄마를 만나서 결혼하고, 너희를 키우고.”

“아, 역시 그렇죠?”

현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똑같이. 그게 뭐 어때서? 어쩌면 나는 뭔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거 아닐까?’

이전의 삶에서 십삼 년의 고시생 생활이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던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니, 역시나 이건 너무 엇나간 거 같아. 너무 큰 이탈이야. 열차가 탈선하면 사고가 나는 거잖아.’

현덕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리려 할 때였다.

“그리고 그때 하지 못했던 걸 하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현덕이 멈칫, 몸을 굳혔다.

“하지 못했던 거요?”

“그래.”

“뭘 하지 못하셨는데요? 아버지는 사시도 일찍 합격하셨잖아요. 시험 준비하느라 뭘 못 했거나 그런 게 있었어요?”

처음 듣는 얘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현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나이 되어서, 아니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 내내 후회했던 게 두 가지가 있었단다.”

아버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공부한다고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

“…….”

“집이 가난하니까, 빨리 출세를 해야 하니까. 나 한 명 정도는 안 해도 되겠거니, 생각했지. 그래서 남들이 학교를 뛰쳐나가 치약을 얼굴에 바르고 최루탄 가스를 마실 때, 사복 경찰한테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그럴 때, 나는 두 귀를 막고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했어.”

아버지의 말은 영상처럼 현덕의 눈앞에 펼쳐졌다.

최루탄 연기와 비명이 난무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보이는 창문을 등지고, 도서관에 웅크리고 앉아 산처럼 쌓인 책을 읽는. 커다란 잠자리 안경을 쓴 젊은 청년의 모습.

그 위로 덧씌워진 건 이십 대 후반, 혹은 삼십 대 초반의 김현덕, 자신의 모습이었다. 두 귀를 막고 세상과 동떨어진 채 고시촌에 처박혀 공부만 하던 그 시절의 모습.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나보다 힘든 사정이 있는 학우들도 시위에 참여했는데. 나보다 가난했던 학우도, 나보다 어린 학우도, 가정이 있는 나이가 든 학우도, 모두 세상을 바꾸겠다고 교문 밖으로 뛰어 나갔는데 말이야. 그때 그렇게 뛰쳐나간 학우 중에 잘못된 학우들이 많았어. 남산에 끌려가서 몸 어디 하나 잘못되고야 겨우 풀려나온 학우들도 많았고, 죽거나 정신이 이상해진 학우들도 있었고.”

아버지의 얼굴에 씁쓸한 고통의 자락이 드리워졌다.

“그걸 지켜만 본 게 이렇게 후회될 줄 그때는 마치 몰랐지.”

언제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그 부채 의식이 지금의 아버지를 만들어낸 것이었을까.

‘출세와는 담쌓고 지내는 융통성 없는 평판사.’

언제나 아버지의 등 뒤에 붙어 다니는 꼬리표였다. 사람들은 언제나 찬사와 비웃음, 두 가지 감정 중 하나를 섞어 아버지를 그렇게 불렀다. 남들은 그저 고지식한 성격 탓이라고 말하는 그 삶의 궤적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하나는요?”

현덕은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척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아버지는 그런 현덕의 마음을 안다는 듯, 큰 손으로 현덕의 머리를 쓸어주고는 답했다.

“음, 기타를 배워보고 싶구나.”

“기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현덕이 의아하다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현덕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엔 대학생들이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들고 다니면서 노래를 많이 불렀단다. 나는 영, 그런 걸 해 볼 기회가 없어서. 그래서 네 엄마랑 연애할 때도 무드 한 번 제대로 못 잡는다고 구박을 많이 받았지.”

“아, 저번에 어머니가 그 비슷한 말씀 하신 적 있었는데. 옛날에 연애하실 때 같이 계곡 놀러갔는데, 물에 발 담그고 책 읽으셨다면서요. 어머니한테도 책 읽으라고 주시고.”

아버지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마치 마주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걸 너한테 말했다고?”

“네.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현덕은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구경하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대학생이니까, 기타 메고 폼 잡고선 멋있게 포크 송 한번 불러줄 줄 알고 기대 엄청 하셨대요. 근데 읽으라고 주신 책은 좋긴 했었대요. 시집이었다면서요. 예쁜 시 많아서 그건 나쁘지 않으셨대요. 아마.”

현덕은 슬그머니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긍정적인 뒷말을 애써 부풀렸다.

‘시집, 어휴, 그거. 예쁘고 읽을 만한 시집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음 네 형이랑 넌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야. 내가 너희 아빠를 차버렸을 테니까.’

현덕이 들었던 어머니의 말은 핀잔에 가까웠다. 그 말을 그대로 전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냐. 너희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끄응. 아버지는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 채로 꽤 오랫동안 굳어 있었다. 그 사이 현덕은 아버지의 몫까지 열심히 짐 정리를 해야 했다.

이후 두 부자는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서재로, 현덕은 자신의 방으로.

현덕은 오늘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영 집중되지 않았다.

만일 젊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때 하지 못했던 걸 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최루탄이 터지는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다고 했다.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현덕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도 역시 해보고 싶어.’

생소한 것에 도전한다는 두려움 뒤에 숨어 있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빼꼼히 고개를 드러냈다.

‘아예 모르고 지나쳤으면 모를까. 오디션을 봤고 합격을 했어.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할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 연습생 경험을 한번 해보고 싶어. 만일 내가 서른세 살에 또 교통사고가 나서 죽게 된다면, 그때 후회하지 않도록.’

현덕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왜 또 똑같은 삶을 살았는지, 조금도 달라지지 못했는지 후회하고 싶지 않아.’

현덕은 핸드폰을 열어 부재중 통화 기록을 꾹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었다. 신호음이 채 세 번 울리기 전에 상대편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사흘 전에 연락 주셨죠. 아, 네네. 네. 김현덕입니다.”

삼 일의 장고 끝에 내린 일 보 전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현덕은 출장 가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돌아온 어머니에게 오디션 합격 소식을 알렸다. 어머니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럼 연예인 되는 거니? 아이돌 데뷔하는 거야?”

“아니요, 되기 전에 연습하는 연습생에 합격한 거예요. 몇 년 동안 연습생 해도 연예인 못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래요.”

“어머, 그럼 그걸 왜 하려고 하는 거니? 현덕이 너 언제부터 연예인이 꿈이었던 거야?”

“꿈은 아니고,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제 꿈은 아버지를 따라 판사가 되는 거예요. 바뀌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못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럼 거기 다니게 되면 나훈아 콘서트 초대권을 받을 수 있다거나 콘서트 예매를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다거나. 그럴 수 있게 되는 거니?”

어머니는 둘째 아들이 아이돌 연습생이 된다는 것보다는 이쪽에 더 큰 관심이 있으신 듯했다.

‘아이돌 연습생이 나훈아 콘서트 초대권을 얻을 수 있을까?’

현덕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훈아랑 같은 소속사면 모를까, 불가능하리라. 그리고 위대한 나훈아님은 TE엔터테인먼트 소속이 아니었다.

“아마, 안 되지 않을까요?”

“그 연습생이란 게 되어도 나훈아 콘서트 티켓은 구할 수 없는 거구나.”

어머니는 아쉬워했다. 하지만 현덕이 연습생이 되겠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현덕은 그날 학교를 다녀온 후 어머니와 함께 TE엔터테인먼트로 갔다.

데스크의 안내를 받아 신인개발팀 소회의실에 앉자, 곧 캔 음료수를 양손에 든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남자는 TE엔터테인먼트 신인개발팀 팀장이라며 명함을 건넸다.

남자는 오디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현덕의 장래희망이 판사라고 하자 놀랐던 사람이었다.

“현덕 씨. 드디어 만나는군요. 반가워요. 도통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혹시나 다른 기획사에서 채간 건가 싶어서, 하루만 더 연락이 안 오면 내가 직접 학교로 찾아가려고 했어요.”

말쑥한 인상의 신인개발팀 팀장이 털털하게 웃었다. 오디션장에서 봤을 때는 무표정이어서 날카로워 보였는데 웃으니 푸근하게 보였다.

“오원직입니다. 편하게 오 팀장이라고 불러주세요. 현덕 씨가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고 데뷔할 때까지는 저나 아니면 우리 신인개발팀과 소통하시면 됩니다.”

오 팀장은 준비해온 계약서를 건넸다. 어머니는 시간을 들여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다. 그러는 동안 오 팀장은 싱글싱글 웃으며 현덕을 바라보았다.

현덕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오 팀장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 위에서 오 팀장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 대리한테 보너스라도 줘야 될 것 같네요. 어디서 이런 원석을 발굴해 데리고 왔는지.”

오 팀장은 끊임없이 현덕을 칭찬했다.

그 칭찬은 현덕이 아니라 어머니를 춤추게 했다. 어머니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는 듯했지만 입꼬리가 꿈틀꿈틀, 위로 치솟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미성년자인 현덕을 대신해 보호자인 어머니가 TE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계약서에 사인했다.

다른 기획사의 경우 연습생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TE엔터테인먼트는 연습생 때부터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나중에 데뷔가 확정되면 그때는 아티스트로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다고.

연습생 계약서에는 수익 배분이나 전속 기간 등의 내용 대신 기획사와 연습생 간에 지켜야 할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기획사는 연습생에게 필요한 강습과 훈련 공간을 제공해 주고, 연습생 관리를 할 권리를 가졌다. 연습생은 주마다 월마다 정해진 평가에 최선을 다해 참여해야 하며, 그 평가에 따라 퇴출당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기획사에 오기 전, 친분이 있는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했었다. 변호사와의 상담 내용을 떠올리면서 봐도 계약서 내용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머니가 서명 한 계약서를 내밀자 오 팀장은 여전히 웃음 띤, 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현덕에게 말했다.

“현덕 씨, 오디션 합격할 거라고 예상했나요?”

“솔직히 말하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놀랐어요.”

현덕은 순순히 대답했다.

“솔직해서 좋네요. 좋습니다. 설명하기 쉬워지겠어요.”

오 팀장은 계약서와 함께 들고 왔던 파일을 열었다. 오디션 때 현덕을 봤던 심사위원들, 그리고 현덕의 오디션 장면을 찍은 영상을 본 회사 직원들의 평가가 적혀 있었다.

“제가 지금부터 말하는 건 현덕 씨의 오디션을 보고 우리 회사 직원들이 평가한 내용입니다. 회사는 현덕 씨에게 잠재력을 봤고, 충분한 트레이닝을 거치면 데뷔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렇게 연습생 계약을 하는 거지요. 우리 회사의 연습생 계약은 업계에서도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요. 현덕 씨의 가능성을 우리 회사가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어지는 내용에 어머니와 현덕은 귀를 기울였다.

일단 회사는 현덕의 외모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회사가 보기에 현덕은 정석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좋은 상이었다. 이 업계에서 청순하고 깨끗한 매력은 언제나 수요가 충분했고 공금은 부족했다.

현덕은 피부가 하얀 편이었고 또 깨끗했다. 눈도 컸다. 쌍꺼풀이 없는 게 아쉽지만. 코가 오뚝하고 눈코입의 전체적인 조화가 좋았다.

살짝 처진 눈이 귀여운 강아지 같아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춤 부분에서는 기본적인 리듬감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오 팀장은 강력하게 단서를 달았다.

“댄스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덕 씨는 춤을 배워본 적이 전혀 없는 거 같은데, 맞죠? 백지상태인 현덕 씨를 봤을 때 적어도 몸치, 박치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일 뿐입니다. 앞으로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댄스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겁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기본기를 쌓고 배워야 할 거예요. 현덕 씨는 지금 댄스에서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수준이니까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해요.”

다만 안무팀 쪽에서 의견을 내놓기를. 팔다리가 길쭉하고 몸이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한 느낌이라 춤을 제대로 배우면 춤 선이 무척 아름다울 것 같다고 했다.

노래 파트에서는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음역대가 넓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건 확실하지 않고 차후 변성기가 모두 지난 다음에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노래를 부를 때 쓸데없는 기교나 버릇이 없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자를 정확히 지키는 것도 듣기 좋았다고.

무엇보다 현덕의 애국가를 들은 직원들은 모두가 다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고 소감을 남겼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현덕 씨의 자기소개 부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참 바르고, 끈기 있고, 지구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아니, 우리 애가 어떻게 자기소개를 했기에, 우리 애 성격을 그렇게 잘 아시나요.”

어머니가 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엄마도 고슴도치 엄마였구나.’

현덕은 약간의 민망함과 얼떨떨한 기분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제 연습생 생활 시작이니까 기를 살려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기선 제압을 하려는 건지. 어떤 이유에서건 날 붙잡으려고 칭찬을 해대는 것 같은데.’

현덕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칭찬을 들으면서도 차분했다.

“어머님, 그리고 현덕 씨. 아이돌이 되기까지 연습생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모? 그건 기본입니다. 끼? 실력? 솔직히 그런 건 연습생 생활 몇 년만 하면 다들 엇비슷해져요. 춤 좀 춘다고 살던 동네에서 날리던 사람도, 현덕 씨처럼 춤에 춤 자도 모르고 박수만 치는 사람도, 회사에 들어와 정식으로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하면 비슷한 실력이 되는 건 금방입니다.”

교장 선생님 설교급의 장황한 말이건만, 현덕의 어머니는 오 팀장의 말에 푹 빠져 눈을 반짝였다.

‘저러다 저 오 팀장이란 사람이 나를 위해 이 옥장판을 하나 사달라고 하면, 껌뻑 넘어가 사주실지도.’

현덕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특별히 잘생긴 사람한테는 외모가 중요하다고 할 테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한테는 노래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겠지. 나는 춤도 노래도 안 되고, 얼굴도 그저 그러니까 성격이 좋다는 말을 하는 거잖아?’

열기가 활활 타오르는 회의실 안에서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는 건 현덕뿐이었다.

‘그런데, 그럼 왜 날 뽑은 거지? 성격이 좋으면 아이돌 연습생이 될 수 있는 건가?’

현덕은 왜 자신이 연습생으로 뽑힌 건지, 더 의아해졌다.

한동안 현덕의 가능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오 팀장은 목이 타는지 500ml 생수 한 병을 단번에 비우고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는 현덕이 연습생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과 제공 받을 수 있는 강습의 종류를 설명해 주었다.

현덕은 오 팀장이 건네준 서류에 오 팀장의 부가적인 설명을 성실히 필기했다.

오 팀장은 여담을 덧붙이길, 조만간 데뷔시킬 보이 그룹을 구성하는 중이라 요즘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했다. 그리고 현덕의 마스크가 그 보이 그룹의 컨셉에 어울려서, 잘하면 바로 합류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약 파시네.’

현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춤출 줄 몰라 박수를 쳤다. 노래 부를 줄 몰라 애국가를 불렀다.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현덕이 듣기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물론 내가 아이돌이 되고 싶고, 정말 열여섯 살이었다면 이런 말에 설렜을 수도 있지.’

하지만 현덕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공부만 하느라 사회 경험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서른세 살의 나이를 거저 먹은 건 아니었다. 적어도 과대 과장 광고를 걸러 들을 줄은 알았다.

……라고 생각했건만.

이 생각이 ‘연예계’라는 업계를 전혀 모르는 자신의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현덕은 연습생 생활 첫날에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연습생 계약을 한 다음 날이자 연습생으로서 처음 TE엔터테인먼트에 출근한 첫날.

현덕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거기서 여러 사람들의 손길에 몸을 내맡겨야 했다.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에 잔뜩 젤을 바르고 고대기로 볶아 뾰족뾰족한 번개 머리로 만들었다. 에나멜로 만든 반딱반딱한 레인코트를 입고 자신과 비슷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한 남자 연습생들 몇 명과 함께 조명 아래에 섰다.

조명이 너무 뜨거워서 얼굴이 녹을 것같이 아려왔다. 하지만 아프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다. 주변에 몰려든, 아마도 TE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인 듯한 사람들은 부럽다는 혹은 증오 어린 기색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현덕은 데뷔 예정인 보이 그룹에 어울리는지 알아보는 컨셉 사진을 찍어야 했다.

연습생으로 출근한 첫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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