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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79)화 (179/228)
  • 179화

    “으아아악!”

    “어서 피해!”

    던전 공략은 결론적으로 말해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긴눙가가프 던전은 오랜만에 등장한 신규 던전이었다. 첫 공략인 데다가 심지어 등급 측정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아무리 전 세계의 고등급 능력자가 한데 뭉친 전례 없는 공략팀이라고 해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젠장! 빛 속성 능력자들은 뭐 하는 거야!”

    누군가가 외친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의 몸은 온통 새카만 어둠에 잠겨 있었다.

    긴눙가가프 던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 어둠이었다. 환상에서 봤듯이 던전 내부는 빛 한 점 없이 온통 어두웠다. 그런데 이 칠흑 같은 어둠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다. 마치 의지를 가진 듯이 능력자들의 몸을 옭아맸다. 그에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빛 속성을 가진 능력자들이 있어 근근이 버틸 수 있었다. 다행히도 만일을 대비해 힐 스킬을 가진 능력자들을 넉넉히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SS급인 강유현 정도였다.

    “죄, 죄송해요!”

    이마에 땀을 비 오듯이 쏟고 있는 구슬이 자기 키보다 큰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할 틈도 없이 구슬은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중이었다.

    구슬은 못 본 새 키가 꽤 자랐다. 도결이와 비슷한 나이의 그녀였지만 스킬을 쓰는 모습이 제법 진지한 데다 힐러 특유의 기품이 흐르기도 했다. 어느새 저렇게 성장한 건지. 나는 조금 뿌듯한 얼굴로 구슬을 쳐다봤다.

    “형, 괜찮아?”

    “아, 응.”

    “움직일 수 있어?”

    “응, 움직일 수 있어.”

    방금 구슬이 펼친 능력으로 몸이 가뿐해졌다.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도결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조금 착잡해졌다. 형인 내가 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점점 그 반대가 되는 것 같았다.

    “온다!”

    “공격 스킬 준비해!”

    “……!”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물씬 풍겨 왔다. 보조팀의 뒤에서 지켜보는 것뿐인 나에게까지도 피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심연에 물든 자

    등급: ??

    레벨: ??

    ? ?? ?? ??, ?? ?? ??

    …….」

    “……!”

    이름이 있는 걸 봐선 중간 보스 몬스터였다. 이렇게 빨리 등장하다니. 다른 던전과 달리 초반부터 본격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걸 수도 있었다. 지지부진한 전투가 계속 이어지면 아무리 랭커들이라고 해도 지칠 수가 있었다. 차라리 빨리 보스 몬스터와 마주치고 없애 버리는 게 낫지. 나는 능력자들과 중간 보스 몬스터가 싸우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모두가…… 악으로…… 물들리……라…….”

    “……?”

    스카디 길드의 마스터, 아나스타샤 바라노프의 창에 꿰뚫린 중간 보스 몬스터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중간 보스 몬스터가 말을 하다니?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혹시 긴눙가가프 던전의 중간 보스 몬스터는 다른 던전의 보스 몬스터급으로 강하기 때문인가?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랭커들이 달라붙어 겨우 쓰러트린 걸 보면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긴눙가가프-??000의 중간 보스 몬스터 ‘심연에 물든 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중간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다는 시스템 음성이 던전 안을 울렸다. 그제야 긴장하고 있던 능력자들이 숨을 내쉬며 모여들었다. 선두에 있던 아나스타샤 바라노프가 강유현을 향해 다가갔다.

    “…….”

    -모두가 악으로 물들리라.

    나는 중간 보스 몬스터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혼자 곱씹었다. 왜인지 그냥 지나치기 힘든 말이었다.

    악에 물든다니. 왠지 묘한 말이었다. 주변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기 때문인가. 그래서인지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어둠, 어둠이라. 주위의 새카만 풍경은 그야말로 악마들이 득시글거리는 장소처럼 보인다. 만약 이곳이 던전이 아니었다면 귀신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순간 예전에 실수로 했던 VR 게임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지.

    “음…….”

    그러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악이라는 것이 정말 귀신 같은 악령을 말하는 거라면, 이 어둠 속에 그런 존재들이 섞여 있다는 뜻일 거다. 실제로 고등급 능력자들도 몸이 어둠에 잠기면 움직이기 힘들어했으니까.

    그 어둠에 물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악령이 몸에 깃들게 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설마 무언가가 능력자들을 조종할 수도 있다는 걸 수도…….

    “……진!”

    “으음.”

    그런 생각에 한창 빠져 있었던 나는 누가 곁에서 불러도 잘 듣지 못했다. 그러자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한이진!”

    “어어?”

    나는 깜짝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눈을 형형하게 뜬 강유현이 보였다. 나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상황에.”

    “뭐…… 별생각은 안 했어.”

    “…….”

    의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강유현을 향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가설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우선 빛 속성의 힐러들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설령 정말로 이 어둠 속에 악령이 깃들어 있고, 그게 우리 몸을 잠식하려 한다고 해도 빛 속성 능력자들이 있는 한 다른 능력자들에게 얼씬도 하지 못할 터였다.

    “근데 왜?”

    나는 눈을 깜박이며 강유현에게 물었다. 그러자 잠시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강유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간 보스를 쓰러트리고 흐름이 달라졌어.”

    “흐름?”

    “그래.”

    강유현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눈을 살짝 찌푸렸다. 고개를 끄덕인 강유현이 말을 이었다.

    “주변의 기운도 더 강해지고, 강수현이 찾은 길의 반대로 기운이 흘러가고 있어. 뭔가 느낌이 안 좋아.”

    “……!”

    어둠 속성인 강유현은 특히나 주변의 기운에 민감했다. 그런 그가 말하는 거니 확실할 것이다. 탐사 스킬로 찾은 길과 반대로 기운이 흐른다니. 아마도 곧바로 무슨 일이 생기고 말 것이다.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알았어.”

    원래 강유현과 나는 따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던전에 들어온 뒤 줄곧 공대의 뒤에 있는 보조팀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략 도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 보조팀이 아닌 강유현이 있는 선두로 위치를 이동해야 했다. 고등급 능력자들에게 언제라도 보조 스킬을 걸어 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강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선두로 향했다. 동시에 내 손을 꼭 잡은 힘이 아까보다 크게 느껴졌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옆을 돌아봤다.

    “용식아, 괜찮아?”

    “…….”

    도결이와 함께 내 곁에 꼭 붙어 있던 용식이는 왜인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라색 눈 안의 긴 동공이 불안한 듯 연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내 물음에 용식이는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은 어느새 제법 차분해져 있었다.

    “응, 괜찮아.”

    “정말이지?”

    “응.”

    거듭 고개를 끄덕인 용식이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런 용식이를 조금 불안한 눈으로 응시했다.

    다른 능력자들은 빛 속성을 가진 힐러들에게 버프 스킬을 받았지만, 용식이는 끝내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용식이는 폴리모프를 해서 인간처럼 보일 뿐 완전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본래 소환수는 몬스터에 가까웠다. 그래도 소환수 등록이 되어 있으면 어지간하면 버프 스킬을 받을 수 있지만, 용식이는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급인 용종인 데다가 독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독은 어둠 속성에 가까운 특성이다 보니 상성이 잘 맞지 않아서 힐러들의 버프 스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용식이는 S급이지만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 어둠 속성의 기운이 용식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형!”

    “응?”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도결이의 외침에 느릿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이든과 함께 서 있던 도결이가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지? 의아함을 느끼자마자 무언가가 내 몸을 확 덮쳤다.

    “윽……!”

    “형……!”

    “이진아……!”

    쿵, 하고 몸이 부딪쳤다. 뒤로 쓰러진 탓에 등이 아팠다. 그리고 묵직한 무언가가 내 몸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경직되었다.

    “용……식아?”

    “크르르…….”

    이를 드러낸 용식이가 마치 짐승이 낼 법한 울음소리를 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송곳니가 비죽 입술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길게 찢어진 동공이 더욱 가느다랗게 변해 있었다. 용식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용식아! 윽……!”

    “크아아!”

    용식이가 어딘가를 보며 소리쳤다. 그에 나는 용식이가 단순한 일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용식이가 소리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방금까지 내가 있었던 바닥이 움푹 파여 있었다. 만약 내가 계속 저곳에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싹한 느낌이 든 나는 놀란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곳에는 나에게 스킬을 쓴 듯한 능력자가 서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두에서 전투하는 고등급 능력자 중 하나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

    강유현이 화를 내며 소리치는 말에도 그 능력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새끼…… 뭐지? 눈깔이 좀 이상한데?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공대 전체가 난리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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