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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1)화 (161/228)
  • 161화

    조금 뜸을 들인 후에 본격적으로 말을 했다.

    “신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

    “……?”

    나는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정말로 진심이라는 듯이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좀 위험했다. 방금 그 대사는 내가 말한 거지만 정말로 중2병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꾹 참으며 박윤성과 강유현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한 박윤성이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빙의자라는 걸 이들에게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걸 제외한 나머지는 솔직히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말하고 보니 중2병 걸린 사람 같아서 총체적 난국이지만 신을 만난 건 사실이었다.

    “저번에 그 타임 어택 던전에서 신과 접촉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 신이요?”

    “아.”

    박윤성은 미묘한 얼굴로 손가락을 위로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보자 아직 이 세계는 성좌라는 개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슈아 레만처럼 신과 접촉한 능력자가 있는 반면, 대부분의 능력자들은 성좌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고민하는 사이, 뒤쪽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있던 강유현이 나보다 먼저 말했다.

    “나도 만난 적이 있다.”

    “뭐? 정말?”

    강유현의 말에 깜짝 놀라다가 문득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아무리 이 세계가 한 번 회귀해서 원작과 달라졌다고 해도 강유현이 게이트에 빠졌던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회귀 전과 달라진 건 내가 빙의한 후의 일들이겠지.

    그러고 보니 강유현도 게이트에 빠졌을 때 온갖 희귀한 일들을 겪었었지. 소설에서는 아무래도 게이트에서 귀환한 후의 내용이 더 재미있기 때문인지 그 수백 년간의 일이 빠르게 지나갔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강유현이 그곳에서 아스가르드의 신 중 누군가와 접촉한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아주…… 재수 없는 놈이었지.”

    “…….”

    빠득, 강유현이 이를 가는 소리가 작은 회의실 안에 크게 울렸다. 나는 물론이고, 박윤성마저 침을 꿀꺽 삼키며 강유현을 쳐다봤다. 혈관이 뚜렷하게 솟아오른 목덜미를 보다가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정말, 흠, 신이라는 존재가 있나 보군요.”

    “그럼요. 이 시스템과 능력자들의 능력을 다 누가 만들었겠어요.”

    “아하.”

    나도 아직은 짐작만 하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저번에 타임 어택 던전에서 신과 접촉하고 난 뒤에는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다.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왕인 오딘은 예언자에게 세계의 멸망을 예언받고 전사들을 육성했다. 그리고 그 군대를 에인헤랴르라고 불렀다. 멸망을 막기 위해 신들이 육성한 인간 전사들. 그게 바로 소설의 주연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한이진 능력자가 무리하게 던전에 간 것도 신이 지시한 겁니까?”

    “뭐, 지시했다기보다는…… 가서 막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이 될 거라고 했었죠.”

    사실 신이 말했다기보다는 시스템이 보여 준 원작을 보고 내가 짐작한 거긴 한데……. 어차피 시스템이 하는 일도 신들이 의도한 일일 테니 맞는 말이겠지.

    “그래서 미리 조슈아 레만이 수상하다는 것도 알고, 전설급 무기를 얻을 루트도 알고 있었던 겁니까?”

    “네, 그렇죠. 그래서 제가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 꼭 가려고 했었던 거죠.”

    “음…….”

    똑똑한 박윤성은 내가 개떡같이 말하는 것도 찰떡같이 잘 알아들었다.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박윤성이 중얼거렸다.

    “과연, 이 모든 일을 신들이 의도했다, 라…….”

    “…….”

    박윤성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솔직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박윤성은 기본적으로 이성적이고 사리 분별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나야 지난 삶에서 온갖 판소를 읽었기 때문에 신이니 성좌니 하는 것들이 익숙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종교인들이나 좋아할 법한 걸 박윤성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쩌면 안 좋은 쪽으로 받아들일 수도…….

    “그것참 이용하기 좋겠군요.”

    “……네?”

    “……?”

    나와 박윤성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박윤성이 뭐라고 한 거지? 이용?

    어이없어하는 나를 보며 박윤성이 채근했다.

    “그 신은 한이진 능력자가 원할 때마다 접촉할 수 있습니까? 그가 제공하는 정보의 범위는 어느 정도죠? 원하는 정보는 다 얻을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자, 잠깐. 잠깐만요.”

    몰려드는 질문을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박윤성도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 난처한 빛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지나쳤군요.”

    “흠흠, 괜찮습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박윤성이 이렇게 호기심을 느낄 줄은……. 거부감이 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일로 박윤성은 미심쩍다는 생각보다는 전설급 무기를 얻은 이익이 더 크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놈들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돼.”

    그때, 가만히 있던 강유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유일하게 현실적인 말을 하는 인물이 바로 강유현이었다. 나와 박윤성의 고개가 강유현을 향해 돌아갔다.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이야. 도와주는 척하면서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다가 버리는 걸 즐기는 놈들이지.”

    “어…….”

    대체 강유현은 어떤 신과 만났길래 저렇게 혐오하는 거지. 온몸에서 뿜어 대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자신이 접촉했던 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가만 보자. 강유현이 게이트 안에서 헤맬 때 만났던 신이라. 그 게이트와 연결된 곳이 니플헤임이었고, 니플헤임과 관련된 신은…….

    설마 여신 헬? 로키 신의 딸이자 니플헤임과 헬헤임을 지배하는 지옥의 신?

    아니, 아니, 아니, 설마…….

    그런 무시무시한 신이 강유현과…….

    “……?”

    “…….”

    어울려. 엄청 어울린다. 강유현과 여신 헬의 조합, 엄청 잘 어울린다고. 서로 혐오하는 관계도 대박이야. 만약 나중에 여신 헬이 강유현의 성좌가 된다면 시너지가 엄청나겠는걸.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강유현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일단은 믿어 보는 수밖에 없잖아. 실제로 전설급 무기를 얻어서 너한테 줄 수 있었고.”

    “그게 놈들의 수작이라는 거다. 우습게 볼 놈들이 아니야.”

    “알았어. 그러면 이제 그쪽에 의지하지 않을게. 그러면 되는 거지?”

    “…….”

    나 역시 신에게 너무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내 목표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내 존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신들도 있다고 하니, 그 마음은 더더욱 굳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돌아가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강유현과 박윤성에게 말할 수는 없으니 입을 꾹 다물었다. 강유현은 그런 나를 탐탁지 않다는 듯이 응시했다.

    “어쨌든 정보 제공에 감사드립니다. 한이진 능력자. 이 내용은 다른 능력자들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해야겠어요.”

    “네, 그러는 게 좋겠죠.”

    괜히 혼란을 가중할 수 있으니,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서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리고 또 접촉이 있으면 바로 박윤성과 강유현에게 말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겨우 내 방으로 돌아갈 수 있…….

    “잠깐 기다려.”

    “……?”

    방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묵직한 음성에 엉덩이를 절반 정도 허공에 띄운 채 강유현을 쳐다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유현을 보다가 슬쩍 다시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그리고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며 물었다.

    “흠, 왜?”

    그러고 보니 강유현도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따라온 거였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분위기를 잡는 거지.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하면서 속으로는 안절부절못했다.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 안에서 강유현과 대거리를 했던 일도 생각났다.

    아니, 그게 대거리까지는 아니었지. 강유현은 공략팀에 남으라고 권유했던 거고, 사정이 있었던 나는 탐사팀에 가겠다고 조른 거니까. 강유현이 다소 화를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

    아, 대거리 맞구나. 뒤늦게 자각한 나는 무릎 위에 공손하게 두 손을 올렸다.

    “분명 오딘 길드의 페어 시스템에는 상대를 보호하는 명목의 아이템 착용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아.”

    “……?”

    강유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박윤성이 무언가를 깨달으며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강유현도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한이진에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뭐, 뭐를…….”

    본능적으로 나에게 좋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상대를 보호하는 명목의 아이템 착용? 정말이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주춤거리는 나를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쏘아보며 강유현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그 아이템을 쳐다봤다.

    “야, 이건……!”

    강유현이 손에 든 것을 보며 나는 경악했다. 그의 손 위에는 작은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가느다란 가죽끈으로 만든 목걸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었다. 온갖 옵션이 붙은 방어구 아이템이라는 걸 작게 뜬 시스템 창을 보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거 왠지 목줄처럼 보이잖아……!’

    끈이 좀 가늘긴 하지만 짧아서 목에 걸면 딱 달라붙을 것 같았다. 이걸 착용한 내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눈에 선했다. 취향 이상하다고 놀림 받을 것 같아…….

    마치 나보고 당장 착용하라는 듯 손을 내미는 강유현을 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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