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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60)화 (160/228)
  • 160화

    그러자 리암 화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중에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부탁이요?”

    “네.”

    무슨 부탁?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리암 화이트를 보다가 물었다.

    “무슨 부탁이요?”

    “사실 아직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

    “…….”

    “생각나면 나중에 부탁드릴 예정입니다.”

    “하…….”

    정말 뭐 하자는 건지. 나는 찝찝한 눈으로 활짝 웃고 있는 리암 화이트를 노려봤다.

    하지만 뭔지 모를 미래의 부탁 하나로 전설급 무기를 강유현에게 줄 수 있으면 꽤 싸게 먹히는 거였다.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게 문제긴 한데, 그건 계약서를 쓰면 그럭저럭 해결될 것이다. 나는 결심하며 입을 열었다.

    “저와 제 주변인의 신변이 위험해지는 부탁은 안 됩니다. 또한, 제 능력 이상을 요구하는 부탁도 안 되고요. 이 같은 내용으로 계약서를 썼으면 합니다.”

    “그러죠.”

    흔쾌하게 대답한 리암 화이트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계약서였다.

    “S급 계약서입니다. 이 정도면 믿을 수 있겠죠?”

    “…….”

    하여간 재벌들이란. S급 계약서라는 게 이렇게 흔한 거였나? 리암 화이트는 인벤토리에서 S급 계약서를 참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물론 심단테와 이채진에게 S급 아이템을 무한대로 받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큼, 헛기침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리암 화이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전설급 무기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스바르트알파헤임-S666의 보스 몬스터 ‘욕심 많은 흐레이드마르’를 처치하였습니다.]

    [스바르트알파헤임-S666를 최초로 공략한 플레이어에게 ‘탐욕을 경계한 자(L)’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스바르트알파헤임-S666의 접속이 곧 종료됩니다.]

    “……!”

    “……!”

    그때, 보스 몬스터를 잡았다는 시스템 음성이 던전 안에 울려 퍼졌다. 우리는 놀라며 서로를 쳐다봤다.

    강유현의 공략팀이 예정보다 빨리 보스 몬스터를 잡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공대의 전력 중 일부가 탐사팀에 와 있는데 이렇게 빨리 보스 몬스터를 잡을 줄이야. 내 생각보다 강유현의 성장 속도가 빠른 것 같았다.

    “그럼 포털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도록 할까요?”

    “네.”

    리암 화이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바로 통신기로 공략팀과 연락을 시도했다.

    곧 앤드류 베일리가 길을 찾았다. 우리는 묵묵히 그 뒤를 따라갔다.

    ***

    포털이 열린 곳에서 공략팀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더니 경악했다. 하지만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었던 강유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다가왔다.

    “수확은 있었습니까?”

    강유현은 리암 화이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리암 화이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이죠.”

    “……!”

    리암 화이트의 대답에 공대 전체가 들썩였다. 무려 전설급 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강유현 역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 드워프는?”

    “중간에 어딘가로 사라졌더군요.”

    “…….”

    탐사팀을 둘러보며 물었던 강유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드워프가 사라진 일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머지는 돌아가서 얘기하도록 하죠.”

    “그럽시다.”

    “…….”

    포털이 사라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길게 말하기는 힘들었다. 강유현의 말에 리암 화이트는 흔쾌히 얼굴을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기 전 강유현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

    “…….”

    왠지 집에 가서 두고 보자, 라고 말하는 눈빛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누가 착각이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괜히 혼자서 찔린 나는 강유현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던전 공략이 마무리되고 능력자들이 포털을 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끄트머리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숙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강유현의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돌아가자마자 나를 벼르고 있던 존재를 맞닥뜨렸다.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한이진 능력자.”

    “하, 하하…….”

    박윤성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회색 눈이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렇게 이번 던전은 가지 말라고 말렸었는데. 아무래도 한이진 능력자는 길마인 제 말이 우습나 봅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얼마나 우스우셨으면 그런 행동을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으윽.”

    분명 박윤성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곤조곤 말하고 있는데도 박력이 넘쳤다. 오히려 화를 내는 것보다 더 큰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박윤성의 말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숙소 안에는 박윤성과 강유현, 그리고 강수현과 이든, 도결이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이 모두 나를 추궁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순순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니까, 저에게도 사정이 좀…….”

    “그게 무슨 사정입니까?”

    “…….”

    하지만 말하기가 상당히 곤란한 사정이었다. 말해 봤자 믿어 줄 것 같지도 않고……. 아마 정신병자 취급이나 받지 않을까 싶다. 이걸 어쩐다.

    속으로 고민하는 사이, 나는 점점 열이 받기 시작했다. 그냥 이 모든 게 억울해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내가 혼자 살겠다고 그런 거야? 다 같이 살자고 한 짓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추궁을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애초에 나를 억지로 숙소 안에 가두지만 않았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나는 불만을 담은 눈으로 박윤성을 쳐다봤다.

    “다 털어놓을 생각이 들었습니까?”

    “아니, 제가 잘못하긴 했는데요. 솔직히 숙소 안에 억지도 가둬 두지만 않았어도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거라고요.”

    “호오.”

    제법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 말에 박윤성은 흥미로운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곧 그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한이진 능력자를 꾸짖고 있는 게 아닙니다.”

    “네?”

    “그저 알고 싶은 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모두가 말린 스바르트알파헤임 던전에 가고 싶어 했는지를요.”

    “…….”

    “보고는 간간이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한이진 능력자가 한 일도요.”

    박윤성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이 유독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는 박윤성이 이번에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그동안 박윤성은 나를 많이 배려해 주고 있었다. 내가 심단테와 몰래 연락하는 사이라는 걸 알았는데도 깊게 추궁하지 않았지. 그 외에도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여러 가지 눈치챘을 텐데도 그걸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아마 박윤성도 그동안 참고 쌓였던 게 이번을 계기로 폭발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더욱 오늘의 박윤성에게서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포션 마스터인 이채진 능력자와의 관계는…… 이제 와서 굳이 추궁하지는 않겠습니다.”

    던전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알고 있구나. 얼마나 보고가 빠른 거냐, 오딘 길드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는 사이 박윤성이 계속 말했다.

    “한이진 능력자는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던전에 갔던 거죠?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들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마치…….”

    “…….”

    “던전에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박윤성의 낮은 목소리가 주변을 작게 울렸다. 나는 더 이상 박윤성에게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너무 많은 게 노출되고 말았다. 원작과 다른 스토리로 만들기 위해 무리한 탓이었다.

    한숨을 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다 말씀드리죠. 근데…….”

    “……?”

    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겸연쩍은 얼굴로 박윤성을 다시 쳐다봤다.

    “꼭 여기서…… 말을 해야 하나요?”

    “아.”

    이렇게 공개 처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말을 해야 하는 건가? 나는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흘끔거렸다.

    “그래, 이진이 말이 맞아. 너희들 다 거슬리니까 꺼지라고.”

    “…….”

    “이진아, 나한테 다 말해 봐. 응?”

    이든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한껏 거들먹거리며 말하는 걸 보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래서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했다.

    슉!

    “으악!”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와 이든을 노렸다. 하지만 이든은 회피 스킬을 마스터한 A급 능력자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피한 이든이 사나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 자식이!”

    “꺼져.”

    “네가 꺼져!”

    “하아…….”

    이든과 강유현이 또 다투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파져서 작게 한숨을 쉬자, 박윤성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하죠.”

    “넵.”

    나는 냉큼 박윤성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 안에 있는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박윤성과 곧잘 면담하던 곳이었다.

    탁.

    “응?”

    “…….”

    박윤성과 나를 따라 들어온 강유현이 의자에는 앉지 않고 벽에 몸을 기댔다. 이놈은 여기 왜 따라 들어와? 의아한 눈으로 강유현을 보다가 박윤성을 쳐다봤다. 그러자 박윤성이 강유현 쪽을 힐끗 보더니 대답했다.

    “강유현 능력자도 할 말이 있는 것 같더군요. 이왕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거, 셋이서 말해 봅시다.”

    “하…… 하하.”

    강유현이 나한테 할 말이라. 그거 엄청 불안한데?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하지만 우선은 그동안의 내 행동을 박윤성에게 납득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강유현은 주인공이니 그의 앞에서 말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내가 진지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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