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16)화 (116/228)
  • 116화

    11. 전 세계의 또라이들

    “기대라면 나도 하고 있어. 리암.”

    앤드류 베일리의 눈가가 진해졌다. 이마 위로 조금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넘긴 앤드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리암을 바라보았다.

    리암 화이트. 미국의 대형 길드 중 하나인 발두르 길드의 차기 마스터. 그 유명한 기업인 화이트사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미국은 대형 길드 하나하나가 범세계적인 기업체나 마찬가지였다. 대기업의 스폰을 받아 길드를 운영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기업들은 처음부터 길드를 적극적으로 키워 나갔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길드를 또 하나의 기업체로 인식한 것이다. 아마도 또 다른 계열사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돈이 되면서도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 준다는 명목으로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유용한 계열사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길드에 투자한 덕분에 미국 역시 빠른 시간 안에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전 세계에 미쳤다. 의도가 어떻든 전 세계에 도움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뭐, 그 덕에 나도 이득을 많이 봤지.’

    앤드류 베일리는 원래 가진 것 하나 없는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A급 능력자로 각성해서 화이트사의 후계자인 리암 화이트를 보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의 목표는 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도련님을 한국에서 잘 보살핀 다음 무사히 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난 특히 이 사람이 궁금해.”

    “…….”

    “어떤 사람일까?”

    태블릿 화면을 툭툭 두드리며 리암이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앤드류가 호기심을 느끼며 태블릿 화면을 다시 흘끗 쳐다봤다. 리암이 환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건 그가 벌써 몇백 번을 돌려 본 그 너튜브 동영상이었다.

    ‘한……이진.’

    번역 아이템 덕분에 이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언어의 장벽 없이 소통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큼은 어려웠다. 그래도 다른 이름에 비하면 발음할 만한 편한 이름에 드는 축이었다. 앤드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익숙지 않은 이름을 중얼거리며 몰래 발음을 연습했다.

    “기대된다. 다른 나라의 대형 길드들도 이번에 모이겠지?”

    “뭐…… 그렇지.”

    미국의 발두르 길드 말고도 EU의 우르 길드, 러시아의 스카디 길드, 중국의 발리 길드가 최후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이렇게 전 세계의 대형 길드가 한곳에 모이는 건 게이트가 열리고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말 기대된다.”

    “…….”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리암은 그저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앤드류는 조금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곁에서 봤을 때 리암 화이트는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 아니, 가끔은 좀 많이 벗어난 행동을 벌이는 사람이었다. 화이트사의 후계자로서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가끔은 그게 도를 지나치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식이 결여된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으려나.’

    그의 옆에서 호된 경험을 여러 번 겪었던 앤드류는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들은 한국으로 가는 전용기에 몸을 싣고 있으니 말이다.

    ‘살아 돌아가서 애들 밥이나 주고 싶다.’

    친구 집에 맡겨 놓은 반려동물들을 떠올리며 앤드류가 피곤한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부디 그 예언자가 호들갑을 떨었던 최후의 던전이란 걸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옆에 있는 상식이 부족한 도련님 상사가 문제를 크게 벌이지 않기를 빌었다.

    ***

    “티르 길드가…… 해체요?”

    다음 날 병실에 들어온 박윤성에게 놀라운 말을 들었다. 그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만간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티르 길드는 해체 처리를 진행하고, 티르 길드가 관리하던 던전들은 오딘 길드를 비롯한 다른 길드들이 나누어 관리하게 됩니다. 입찰을 진행한다고는 하는데, 관리가 시급한 몇몇 던전들이 있어 형식적으로만 할 것 같군요.”

    “허…….”

    엄청난 일에 도무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소설에서 티르 길드가 무너지는 건 훨씬 후의 일인데. 이게 대체…….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번 무스펠헤임 던전 공략이 엉망이 된 건 라우페이 길드에서 일찍부터 나를 눈독 들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강유현이 등급 이상 현상을 해결하며 실컷 휘젓다가 라우페이 길드 마스터의 눈에 들고, 위기감을 느낀 라이수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며 대형 길드들을 압박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다 생략되고 티르 길드를 먼저 치워 버리게 된 것이다. 나중에 라우페이 길드에 붙을 티르 길드를 말이다.

    결국 또 나 때문인가. 예상치 못한 일이긴 하지만 어차피 티르 길드의 최후는 지금과 비슷하다. 직접 무스펠헤임 던전에 가 보니, 다른 대형 길드에 비하면 앞으로의 전력에도 그다지 쓸모는 없어 보였고 말이다. 서하준의 엉망이었던 지휘를 생각하며 한숨이 나오려던 걸 꾹 눌렀다.

    “서하준 부마스터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생각난 김에 물어보았지만, 박윤성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그건 좀 찝찝한데.

    “혹시…… 죽었습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

    ‘그건’ 아니라니.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왜인지 박윤성의 목소리에는 안타깝다는 기색이 흘렀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기색이 풍긴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박윤성은 착한…… 사람이었지? 소설에서는 말이다.

    “서하준 부마스터는 현재 혼수상태입니다. 고등급의 정신계 스킬에 여러 번 당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현재로서는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아…….”

    에반 리. 서하준을 조종한 라우페이 길드의 빌런이 떠올랐다. 그놈이 서하준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폭주한 서하준을 제압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겠지.

    “공대에 참여한 다른 능력자에게는 보고를 들었지만, 한이진 능력자에게는 아직이었죠.”

    “…….”

    “서하준 부마스터가 폭주한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박윤성의 물음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계약한 그에게 던전 안에서의 일을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내 보조 스킬 능력에 대한 것도 말이다. 어제부터 고민하던 나는 내 능력에 대해서 박윤성에게 모두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라우페이 길드 마스터의 수작에도 대항하기 수월해질 테니 말이다.

    “……그렇군요.”

    “……?”

    그런데 내 얘기를 들은 박윤성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뭔가 더 격한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끝이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박윤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이후로는 등급 이상 현상이 줄어들 겁니다. 고생해 주신 덕분에 대형 던전들은 대부분 안정되었으니까요. 다만…….”

    “다만?”

    “……예언자가 다음 예언을 했습니다.”

    “아……!”

    델리아 클레멘스. 일명 예언자.

    노른 길드의 마스터이자 그곳의 유일한 길드원. 하지만 그 단 한 명의 능력자를 아무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녀의 예언은 진짜였으니까.

    그 예언들이 정말 스킬인지, 그녀의 능력이 맞는 건지, 어떤 원리인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녀의 진짜 얼굴을 본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델리아 클레멘스라는 이름조차 그녀의 진짜 이름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작가는 예언자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겼다. 아마도 그러는 편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래서 빙의한 나에게 있어서는 예언자라는 존재가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 대다수가 믿고 있는 예언자를 대놓고 수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의구심을 숨기며 박윤성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뭐라고 하던가요?”

    “……곧 한국에 최후의 던전이 열린다고 합니다.”

    “네……?”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뭐라고요? 최후의 던전?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 같았던 그 떡밥 가득했던 던전이요? 내가 읽은 데에는 나오지도 않았던 그 등급 측정 불가의 던전?

    “한이진 능력자는 충분히 대비한 후 긴눙가가프 던전 공략에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게…….”

    당황스러웠다. 뭐, 이미 내가 빙의하고 난리를 쳐서 원작과 달라질 대로 달라진 상황이지만, 그래도 소설 결말쯤에 열린 던전이 벌써 출현한다는 게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순간 이그드라실의 정수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챕터: 종장. 라그나로크’

    ‘마지막 페이지를 열람하였습니다.’

    시스템 창은 분명 그게 종장,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했다. 멸망 엔딩 말이다. 정황상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긴눙가가프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한이진 능력자……?”

    “아.”

    내가 식은땀만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박윤성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살폈다. 나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박윤성을 보다가 침을 삼켰다.

    말해야 하나? 내가 봤던 멸망 장면을?

    하지만 나는 예언자와 다르게 예언 스킬도 없는데, 내 말을 믿어 줄까? 말해 봤자 헛소리로 치부되지 않으려나?

    고민하다가 박윤성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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