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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14)화 (114/228)
  • 114화

    쿠구구궁!

    엄청난 힘이 사막을 휩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멍청히 입을 벌리고 있던 나는 불어닥치는 바람에 힘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강유현이 친 결계가 아직 남아 있었다. 심지어 풍기는 기운을 보면, 결계가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이런 결계가 쳐져 있는 데도 몸이 이렇게 밀려 나다니.

    지속 시간이 늘어난 데다가 스킨십 강도가 높아져서 능력치가 더 올라간 모양이었다. 저러다가 SS급을 넘어서는 거 아니야? SS급 다음은 뭐지? SSS급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모래 위에 축 늘어져 있는 용식이에게 얼른 다가갔다.

    “용식아!”

    “캬우…….”

    이번에야말로 기력이 다한 듯, 용식이가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용식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축 늘어진 용식이를 조심히 들어 품에 안았다.

    “고마웠어, 용식아. 이제 푹 쉬어.”

    “캬우우…….”

    용식이가 나 때문에 얼마나 무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 모습으로는 조금만 힘을 쓰면 지쳐서 쓰러지는데, 저 빌런 놈들을 상대하느라 브레스를 대체 몇 번이나 쏜 건지 모르겠다. 너무 무리해서 그런지 용식이는 연신 밭은 숨을 색색 내쉬고 있었다.

    “아빠가 못나서 미안해.”

    “캬우, 캬우우…….”

    마치 아니라는 듯이 용식이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며 목이 끓는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거친 살갗을 쓰다듬다가 또다시 거대하게 울리는 폭발음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쾅! 콰아앙!

    “……!”

    저런 미친…….

    강유현과 백시후가 격돌하자 경고하는 시스템 창이 계속해서 떴다. 이곳을 어서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시스템 창이 경고할 정도로 격한 싸움은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소설에서도 이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경고!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인해 채널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연결이 끊어질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지역을 벗어나길 바랍니다.」

    「경고!」

    「경고…….」

    채널 연결이라면 아마 무스펠헤임 던전에 입장한 걸 말하는 것 같은데. 연결이 끊긴다면 강제로 던전에서 튕겨 나간다는 건가. 그럼 포털을 탄 것처럼 원래 들어왔던 곳으로 나갈 수 있나?

    하지만 그런 식의 행복 회로를 돌리기에는 심상치 않은 기색이 느껴졌다. 어쩌면 던전 안에서 실종된 능력자들처럼 영영 행방불명될 수도 있었다.

    우선 계속해서 뜨는 경고 창은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 봤자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주변에 널린 몬스터들의 먹이가 될 뿐이지. 지금은 SS급과 S급들의 초인적인 전투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윽…… 강유현!”

    소리쳐 봤으나, 그는 거의 무아지경이었다. 맹렬하게 백시후와 에반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득바득 그에게 맞서는 빌런들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잊고 있었던 호출기에서 희미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난리 통 속에서 간신히 호출기를 꺼냈다.

    “누굽……니까?”

    [한이진 능력자?]

    “어…… 성유빈 능력자?”

    놀랍게도 성유빈의 목소리였다. 어딘지 다급한 것 같은 음성에 불길함을 느낀 내가 소리를 높였다.

    “무슨 일 있습니까?”

    [무사해서 다행……. 아니, 큰일 났습니다. 곧 포털이 닫힐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어서 빨리 오셔야 합니다. 공대와는 연락이 닿았으니, 한이진 능력자도 어서…….]

    “성유빈 능력자!”

    상태가 좋지 않은지 호출기가 맥없이 끊어지고 말았다. 허탈한 눈으로 호출기를 내려다보던 나는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포털이 닫히기 전에 빨리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어서 강유현에게 알려야 했다.

    “야, 강유현……!”

    그러나 마치 포효하는 듯한 소리에 내 외침이 묻히고 말았다. 저건 또 누구 스킬이야. 늑대 같은 괴물을 소환한 건 누구냐고.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또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몸이 형편없이 뒤로 밀리다가, 그대로 허공에 붕 떠 버렸다.

    “으악!”

    이렇게 기류에 휩쓸리면 큰일 나는데. 어떻게 해서든 땅 위로 돌아가기 위해 몸에 힘을 줬다. 하지만 B급의 몸은 여전히 약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허공에서 용식이를 꽉 안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탁!

    “……어?”

    그리고 그때, 무언가가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딱딱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자 슬쩍 눈을 떴다.

    “이든!”

    “이진아.”

    이든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품에 안긴 채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 공대는?”

    “그 이상한 새끼 제압하고 포털 타러 갔어.”

    “그럼 너도 따라가지 왜 여기를…….”

    “내가 널 두고 어디 가.”

    “짜식…….”

    괜히 코끝이 찡했다. 한이진도 인생 헛산 건 아닌 거 같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 껌딱지 같은 친구가 목숨을 버려 가며 끝까지 곁에 남아 주지 않는가. 나는 한껏 감동한 얼굴로 이든을 응시했다.

    “이제 우리도 포털 타러 가자.”

    “아, 잠깐만.”

    “왜?”

    이든이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왜긴 왜야. 주인공도 같이 회수해 가야지. 눈살을 찌푸리며 강유현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도 데려가야지.”

    “…….”

    순간 이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구겼으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듯하게 폈다.

    “그래……. 데려가야지.”

    “포털이 닫힌다고 어떻게 말하지?”

    싸움이 너무 격렬해서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용식이는 다 죽어 가는 상태로 내 품에 안겨 있었고, 나도 슬슬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걱정 마. 넌 여기서 쉬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하늘을 빙빙 날던 이든이 강유현이 싸우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 놨다. 그리고 다시 하늘 위로 휙 올라갔다.

    괜찮으려나. 걱정하지 말라고 씩 웃으며 날아오르는 이든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역시 너무 무리한 탓이다. B급인 한이진의 몸은 더는 무리라고 외치듯이 온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저 미친 새끼!”

    에반은 자신의 스킬을 모조리 튕겨 내는 강유현을 보며 기겁했다. 경고하는 시스템 창이 눈앞을 가득 채우자,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직감했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죽을 거라고.

    각성한 이후 누구에게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못했던 에반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하고, 오만했으며, 그에 합당한 실력자였다. 피식자로서의 공포를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완벽한 포식자였다. 그것도 먹이를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죽이는 걸 즐기는, 모든 걸 갖춘 절대자.

    하지만 그런 자존심은 능력치가 한계까지 치솟은 강유현을 앞에 둔 순간 형편없이 망가졌다. 살기 급급해 도망치는 지금의 꼴이 퍽 우스워 보였다.

    “크윽…… 사냥개!”

    목표로 한 상대를 놔두고 도망치는 건 도무지 그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개죽음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그래서 백시후를 불러 세웠으나, 강유현을 따라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시발……!”

    이 새끼들 무슨 전생의 원수였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격렬한 싸움에 에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만든 보호막이 껍질이 깨지는 계란 마냥 파삭거리며 부서져 갔다. 이제 정말로 한계였다.

    그때였다.

    [강유현!]

    “……!”

    어디선가 훅, 하고 불어온 바람이 강유현의 귓가에 꽂혔다. 그리고 그 바람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백시후와 에반을 맹렬하게 공격하던 강유현이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포털 곧 닫힌대, 미친 새끼야!]

    “…….”

    [이진이 기다린다. 빨리 와라.]

    무뚝뚝하게 말한 목소리가 끊어졌다. 누가 전음을 보낸 건지 강유현은 바로 이해했다. 한이진의 곁을 항상 알짱거리는 바람 능력자였다.

    “……운이 좋군.”

    강유현은 자신의 안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거친 기운을 애써 갈무리했다. 넘치는 힘은 그 스스로도 제어가 잘되지 않을 정도로 몸을 좀먹고 있었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일수록 달콤한 법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떨쳐 내려는 듯이 강유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누군가를 응시했다.

    “다음엔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다.”

    “강유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도 백시후는 끈질기게 강유현을 노려봤다. 죽기 직전까지도 악착같이 덤벼들 남자라는 걸 강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그럴 테니까.

    마지막으로 마검을 한 번 더 휘두른 뒤, 강유현은 몸을 돌렸다. 사막 위에 쓰러져 있던 한이진을 바람 능력자가 들쳐 업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강유현이 굵은 눈썹을 한껏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포털이 곧 닫힌다는 게 문제였다. 강유현은 포털이 열려 있는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이쪽이다.”

    “……같이 가!”

    이든이 혀를 차며 강유현의 뒤를 따라갔다. 격렬한 전투가 끝난 사막 위는 그저 휑하기만 했다.

    ***

    “윽…….”

    눈을 뜨자 파랗게 일렁거리는 빛이 보였다. 자꾸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진아! 일어났어?”

    “여긴 어디…… 크윽.”

    두통이 엄습해서 눈을 찌푸리자, 누군가가 커다란 손을 내 얼굴 위에 덮었다. 그리고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갔다.

    “걱정하지 마. 이제 다 끝났어. 지금 포털 지날 거야.”

    “포털…….”

    “다른 놈들도 뭐…… 꽤 멀쩡하니 걱정하지 말고.”

    “윽…….”

    어딘가 찝찝한 말이었지만 일단은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환한 빛이 나를 감쌌다.

    그렇게 탈 많던 무스펠헤임 던전 공략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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