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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101)화 (101/228)
  • 101화

    “키아아아!”

    샌드웜 킹이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강유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지럽게 떠다니는 시스템 창을 흘끗 쳐다봤다.

    「시스템 SS-207.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엘리바가르의 가호(SS)가 무력화됩니다.」

    「시스템 SS-207.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소멸하는 어둠(SS)의 효과가 약해집니다.」

    「시스템 SS-207.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황혼의 인도자(SS)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

    SS급의 보스 몬스터에 의해 패시브 스킬이 무력화되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드라우그 킹 이후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샌드웜 킹의 스킬 숙련도가 자신을 훨씬 앞선다는 말이 되었다.

    “강유현 능력자!”

    “……!”

    거대한 꼬리가 강유현을 덮쳤다. 아슬아슬하게 피하자, 그가 있었던 곳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천장에 닿을 듯이 높았던 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졌다.

    쿠구구궁.

    “젠장.”

    작게 욕설을 내뱉은 강유현의 곁으로 성유빈이 다가왔다. 넘실거리는 불꽃이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유현이 입을 열었다.

    “그 불꽃, 대지 속성도 가지고 있습니까.”

    “……!”

    성유빈이 놀란 눈으로 강유현을 응시했다. 그건 프레이야 길드에서도 소수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다중 속성 능력자. 보통 각성한 능력자는 하나의 속성을 깨우치는데, 간혹 두 개 이상의 속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자들이 있었다. 성유빈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하지만 성유빈은 이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다중 속성 능력자라고 떠벌리기에는 불의 능력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고, 대지 속성은 불꽃을 보조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성유빈이 다른 불 속성 능력자들보다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윤재도 그랬으니까.”

    “…….”

    강유현의 담담한 목소리에 성유빈은 순간 할 말을 잃고 그를 쳐다봤다.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이름이 성유빈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도 다중 속성 능력자였구나.’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만으로도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 상념도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키엑! 키에엑!”

    콰광, 콰과광!

    모습을 숨긴 두 사람을 찾기 위해 샌드웜 킹이 주변을 무작위로 휩쓸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불의 장벽에 달라붙은 성유빈의 불꽃이 광풍에 흩날렸다. 이대로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성유빈이 얼굴을 찌푸렸다.

    “오빠가 어느 정도로 두 속성을 다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불 속성이 압도적입니다. 대지 속성은 보조하는 정도예요.”

    대지 속성을 가진 성유빈의 불꽃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돌처럼 단단해지기도 한다. 불의 장벽이 다른 능력자들보다 튼튼한 것도, 불꽃을 공중에 만들어 지지대로 삼아 뛰어다닐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잘됐군요.”

    “……네?”

    강유현의 나직한 말에 성유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흔치 않은 다중 속성 능력자라 전투에 도움이 될 테니 잘됐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지 모를 말투였다. 잘됐다고 하는 말치고는 너무나도 담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유빈은 곧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 능력이라면 무너진 천장을 통해 공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테니.”

    “…….”

    흘끗, 샌드웜 킹과 함께 떨어져 내린 천장을 성유빈이 쳐다봤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천장에서 사막의 모래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샌드웜 킹의 거대한 몸체가 뚫고 떨어진 만큼, 커다란 구멍이 숨겨진 구역의 천장에 뚫려 있었다.

    저곳이 유일하게 무스펠헤임 던전과 이어져 있을 터였다. 본능적으로 그걸 알 수 있었다.

    샌드웜 킹을 없애기 위해서는 공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니 강유현의 말은 단순히 생각하면, 자신이 샌드웜 킹을 막고 있는 동안 공대와 합류해 다시 오라는 뜻 같았다.

    아니, 정말로 그런가? 성유빈은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눈이 샌드웜 킹을 경계하고 있는 강유현을 훑었다.

    ‘강유현 능력자도 패시브 스킬이…….’

    부서진 돌의 파편이 흩날리는데, 강유현의 주변에도 패시브 스킬이 발동하지 않았다. SS급의 패시브 스킬도 막힌 것이다. 그렇다면 한이진 능력자를 찾을 때까지는 공대와 합류해 봤자 샌드웜 킹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사람, 공대와 합류해서 도우러 오라는 게 아니라…….’

    꼬리를 말고 도망쳐서 숨으라는 건가. 성유빈이 이를 으득 갈았다. 가슴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나 혼자 도망치라는 겁니까?”

    “…….”

    불쾌하다는 듯 성유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강유현이 긍정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성유빈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대답했다.

    “싫습니다.”

    자문자답이라니. 그마저도 꼴사납게 느껴졌다. 그리고 더욱 꼴사납게 느껴지는 건, 강유현의 말을 거부한다고 해도 남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였다. SS급인 강유현도 막지 못할 보스 몬스터다. 자신이 있어 봤자 방해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꼴사납게 둘 다 죽고 말겠지. 성유빈은 자조적으로 미소 지었다.

    “전 혼자 도망쳐서 살지 않을 겁니다.”

    “…….”

    왜인지 그 단단한 말에 강유현의 잔잔한 얼굴에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성유빈은 당연히 그 이유를 몰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게 더 중요했다.

    “……어째섭니까.”

    “어째서라뇨.”

    성유빈은 자기가 한 말에 의문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능력자로 각성하기 전에도 그렇게 살았다. 도망치는 걸 나약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강유현 같은 권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서 살아왔다. 각성하기 전에는 서하준이 괴롭히던 같은 반 학생에게, 각성한 후에는 던전 안에서 다른 능력자들에게 말이다.

    어느 쪽이냐 하면, 성유빈은 지금까지 강유현처럼 타인에게 도망가라고 권유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꿋꿋하게 남아 다른 사람들을 지켰다. 그녀는 그게 익숙한 것뿐이었다.

    “난 몬스터를 앞에 두고 도망친 적이 없습니다.”

    “…….”

    다부진 말에 강유현은 침묵을 지켰다.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길게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눈에 불을 켜고 땅을 헤집던 샌드웜 킹이 기어코 강유현과 성유빈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콰광!

    “큭……!”

    거대한 울림과 함께 땅이 뒤집혔다.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데도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보스 몬스터의 상태 이상 공격에 패시브 스킬이 모두 막혔기 때문이었다. 맨몸으로 SS급의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건 분명 정신 나간 짓인데도, 왜인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곧 목숨을 잃을 상황에 절망감을 느껴야 하는데, 왜 고양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걸까.

    샌드웜 킹의 집요한 공격을 피하며 성유빈의 몸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애석하게도 갈수록 성유빈이 낼 수 있는 힘은 약해지고 있었다. 정말로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성유빈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쳤다.

    -윤재도 그랬으니까.

    -잘됐군요.

    -그 능력이라면 천장을 통해 공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테니.

    “…….”

    그녀의 눈앞에 이와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둘만 남은 오빠와 강유현. 오빠라면 강유현에게 어떻게 말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성유빈의 자기희생적인 면모는 다름 아닌 오빠인 성윤재의 영향이 컸으니까. 당연히 도망가라고 했겠지. 자신보다 SS급인 강유현이 살아남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아니, 그런 계산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당연히……. 당연히 그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을 것이다.

    “크윽……!”

    잠깐의 상념도 용서치 않겠다는 듯이, 내리쳐진 꼬리가 뒤로 피한 성유빈을 끈질기게 따라왔다. 이건 피하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그걸 깨달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무력한 기분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곧 온몸이 으스러질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마치 그녀의 의지에 따르듯 딱딱한 불꽃도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쾅!

    “……!”

    하지만 예상했던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다. 성유빈의 눈앞이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자신의 능력인 불꽃처럼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데, 그 색깔은 까맣고 뜨겁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강유현 능력자……!”

    “윽……!”

    강유현의 시야가 흔들렸다. 시스템 창이 계속해서 빗발치며 경고를 보냈다. 성유빈을 대신해 막은 공격을 오래 버티긴 힘들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성유빈이 몸을 피하게 설득해야 했다. 성윤재가 자신에게 그러했듯, 하지만 자신은 그처럼 간절하게 말하지 못했다. 강유현의 검은 눈이 더욱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은 죽어서 성윤재를 볼 면목이 없어질 것이다.

    쿠구구구. 쿠구구.

    “……?”

    땅울림이 더욱 심해졌다. 마검으로 겨우 샌드웜 킹의 공격을 막고 있던 강유현은 작게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의 시야에 의아함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앙!

    “캬아아악!”

    “삐-익-!”

    “……!”

    새빨갛고 거대한 무언가가 돌진해 와 샌드웜 킹과 부딪쳤다. 긴 비명과 함께 샌드웜 킹의 몸체가 저 멀리 날아갔다.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강유현! 성유빈 능력자!”

    “…….”

    “…….”

    멍하니 있는 강유현과 성유빈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것도 공중에서, 뒤에는 까맣게 팔락이는 작은 날개를 달고서.

    어느샌가 사라졌던 용종 소환수가 파닥거리며 한이진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었다. 한이진의 갈색 눈이 강유현과 성유빈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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