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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58)화 (58/228)
  • 58화

    “내일은 해송하 능력자에게 보조 스킬을 써서 탐지해 볼 예정이에요.”

    한이진의 보조 스킬 대기 시간은 24시간. 강수현이 다시 보조 스킬을 받으려면 대기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다른 탐지계 능력자인 해송하에게 보조 스킬을 걸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만약 해송하 능력자가 스킬을 받았는데도 탐지를 못 한다면…….”

    “…….”

    오늘 탐지가 가능했던 강수현의 등급은 S급. 하지만 해송하의 등급은 A급이다. 만약 그가 탐지를 못 한다면 던전 공략은 그만큼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탐지하지 않고 가 보는 건…….”

    “다른 덴 몰라도 2구역에서 그러는 건 자살행위야.”

    동굴 안의 미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등급이 낮았던 때에도 애를 먹는 곳이었는데, 하물며 이상 현상으로 등급까지 높아진 지금은 얼마나 위험할까. 송차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만약 해송하 능력자가 탐지를 하지 못한다면 강수현 능력자가 보조 스킬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네.”

    선율이 역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이진의 보조 스킬로 이미 공략 시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다. 신중하게 공략해도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박윤성은 무슨 생각이지…….”

    한이진의 보조 스킬은 짐작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이런 능력자를 과연 오딘 길드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는지. 송차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

    “잘 부탁드립니다. 한이진 능력자님.”

    “넵.”

    해송하의 앞에 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 시간이 남은 강수현 대신에 스킬을 받게 된 건 해송하였다. 그의 얼굴은 전과 다르게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A급 능력자인 그가 스킬을 받아 얼마나 능력이 오를지 알 수 없었다. 아마 S급인 강수현에게 미치지 못하면 탐지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나 역시 좀 긴장되는 걸 느끼며 장갑을 벗었다.

    “쮸!”

    “으앗!”

    “라티……!”

    그때, 해송하의 어깨에 앉아 있었던 라티가 팔을 타고 쪼르륵 내려오더니, 장갑을 벗은 내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

    “캬악!”

    “쮸쮸!”

    발치에 엎드려 있던 용식이가 내 비명에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라티가 문 손가락 끝에서 피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워워, 용식아 진정해. 아빠 많이 안 다쳤어.”

    “꺄아우, 꺄우!”

    “라티, 너 대체 왜 그러니?”

    “쮸, 쮸쮸!”

    우리는 각자의 소환수를 데리고 일단 멀리 떨어졌다. 라티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도, 용식이가 흥분한 것도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나 라티한테 뭐 밉보인 거 있나? 딱히 싫어하는 행동은 안 했던 거 같은데…….

    좀 억울해져서 인상을 찡그리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한이진 능력자! 괜찮습니까?”

    “이진아, 괜찮아? 저 버르장머리 없는 쥐새끼 같으니…….”

    “당장 죽이고 올까요?”

    “…….”

    조그만 다람쥐한테 손가락 하나 깨물린 것뿐인데 너무나 과한 관심이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말렸다.

    “아니, 괜찮아요. 괜찮아. 강유현, 너 마검 집어 넣어라.”

    “……칫.”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이 수습한 다음에야 다시 해송하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한이진 능력자님.”

    “괜찮다니까요.”

    손을 살살 흔들고, 이번에야말로 해송하를 향해 한쪽 손을 내밀었다. 해송하가 긴장한 얼굴로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어?”

    근데 미처 손가락에 흐른 피를 다 닦지 못한 모양이었다. 해송하의 손에 그만 피를 묻혀 버린 것 같았다.

    어떡하지. 손을 닦고 다시 할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할까.

    짧은 시간 고민한 다음, 일단은 스킬을 먼저 쓴 다음 닦아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정신을 집중했다.

    만약 해송하가 탐지를 못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보조 스킬은 민망하게도 스킨십 강도를 높이면 더 효과가 커진다.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기자 회견하기 전 대기실에 있었던 강유현과 강수현, 그리고 박윤성 정도.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내 스킬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어도 밖에 나가 함부로 말하고 다니진 못하겠지만, 그냥 내가 알려지는 게 싫었다. 너무 변태 같은 조건이니까. 한마디로 쪽팔렸다.

    그러니 이걸로 해송하가 탐지할 수 있길 바라며 평소보다 더 정신을 집중했다. 돼라. 제발 돼라.

    “저…… 한이진 능력자님?”

    “아.”

    그제야 나는 해송하의 손을 너무 꽉 움켜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뻘쭘해하며 해송하의 손을 놓았다.

    “죄송합니다. 집중하느라…….”

    “괘, 괜찮아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해송하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뺨을 긁적이다가 해송하의 손에 묻었을 피를 뒤늦게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손에 피가…… 어?”

    피가 묻었던 느낌이 난 손을 살피는데, 아무것도 없이 새하얗기만 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해송하의 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뭐지? 분명 소량이지만 질척이는 느낌이 났었는데, 내 착각이었나?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해송하에게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데 우길 수도 없고.

    “쮸쮸!”

    “라티,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혼내 줄 거야.”

    “쮸우…….”

    짐짓 엄한 얼굴로 해송하가 말했으나, 애석하게도 그다지 박력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라티에게는 제법 먹힌 모양이었다. 꼬리를 축 늘어뜨린 모습이 퍽 애처로워 보였다.

    뭐, 손가락 하나 물린 것 정도야.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고, 피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도 않았다. 능력자의 몸은 그 정도 상처엔 아랑곳하지 않고 쌩쌩하기만 했다.

    “해송하 능력자, 탐지가 됩니까?”

    “자, 잠시만요.”

    지켜보고 있던 송차현이 안달 내며 물었다. 그러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해송하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 후, 그가 눈을 뜨며 외쳤다.

    “탐지됩니다!”

    “쮸!”

    “……!”

    그의 외침에 공대의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잘못하면 이 중립 지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12시간을 넘게 허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 1시간으로 2구역을 전부 돌파해야 합니다.”

    “네.”

    “성유빈 대장.”

    2구역을 마무리 지을 마지막 발키리는 다름 아닌 성유빈이었다. 그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이진 능력자!”

    “……저야말로…….”

    성유빈의 남다른 기백에 나는 잠시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다 어색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소설과 다른 분위기를 풍겨 나를 당황하게 한 이 엉뚱한 히로인은 사람을 놀라게 할 때가 많았다.

    마주 잡은 손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딱딱했다. 전투 부대 발키리의 대장, S급 전투계 능력자,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짐들이 언뜻 느껴지는 것 같았다.

    “됐습니다.”

    “…….”

    “성유빈 능력자?”

    뜨거운 기운이 사라진 것 같아 손을 놓으려고 하는데, 성유빈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가 한 행동들 때문인지 절로 긴장이 되었다.

    “저기, 지금 장난 칠 시간이…….”

    “……한이진 능력자.”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묘한 침묵이 끝나고, 성유빈이 손을 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뒤를 돌아 걸어갔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있는 송차현에게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1시간이면 끝납니다.”

    “……자신 있나 보군.”

    “네.”

    강유현은 어제 이곳 2구역의 절반을 1시간 만에 돌파했다. 물론 그는 내 스킬을 받지 않았다. 그 자신이 SS급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스킬을 받은 성유빈이 강유현만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가서 날뛰고 와.”

    “…….”

    송차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성유빈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무기를 장착했다.

    성유빈의 무기는 다른 발키리들보다 수수한 편이었다. 양손에 낀 너클이 다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크기만 한 무기는 오히려 방해가 될 터였다.

    화아아악!

    새빨간 불꽃이 성유빈의 몸을 감쌌다. 불의 능력자들 중 가장 순도 높은 불꽃을 다룬다고 해서, 성유빈에게는 화신(火神)의 칭호가 내려져 있기도 했다.

    곧 불꽃을 두른 성유빈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던전 공략이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

    정확히 1시간 후, 우리는 워프 포인트 앞에 도달했다. 성유빈이 장담한 대로, 그녀는 보조 스킬이 끝나는 1시간 만에 2구역의 절반을 혼자서 휩쓸어 버린 것이었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정말로 내 스킬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그냥 저 사람들이 괴물일 뿐인 건지.

    ……설마 둘 다인가. 성유빈을 쫓아가느라 엉망이 된 몸이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있어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들었다.

    “으으윽, 으억…….”

    “이진아, 숨 쉬어. 숨.”

    “으어어…….”

    이든의 손이 내 등을 토닥거렸다. 바람 능력을 가진 이든은 그렇게 빠르게 이동하는데도 멀미 한 번 하지 않았다. 부러운 놈. 바람 능력자의 특혜인가, 아니면 내가 단순히 종이 인형일 뿐인가.

    “하아…….”

    한숨을 내쉬며 재정비를 하고 있는 공대 사람들을 쳐다봤다. 멀미가 간신히 좀 나아진 다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차현과 선율이에게 다가갔다.

    “길마님, 부길마님.”

    “……한이진 능력자.”

    “결국 여기에 중간 보스몹이 없었던 거죠?”

    S급 능력자의 탐지 스킬이 먹히지 않았던 2구역. 우리는 당연히 난이도가 높아져서 3구역이나 4구역 같은 중간 보스몹이 출현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2구역 끝에 다다르니 우리를 반긴 건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는 워프 포인트뿐이었다.

    송차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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