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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들이 내게 집착한다 (9)화 (9/228)
  • 9화

    삑삑삑삑,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강유현에게 잡혔던 목이 욱신거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숨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순간 주마등처럼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바짝 얼은 한이진의 몸이 극도의 공포를 느껴서 그런 거 같은데, 우습게도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이진의 기억이 아닌 내 기억들이었다.

    그것도 호구처럼 살았던 박호수의 기억이다. 젠장, 기분 더럽다. 기억하기도 싫은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빙의하기 전에도 그렇게 병신같이 살았으면서, 이렇게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괜한 오기가 샘솟았다. 내가 이런 데서 뒤질 것 같아? 머리를 불쑥 쳐들어 강유현의 얼굴을 노려보니, 그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순간, 무뚝뚝한 시스템 음성이 귓가를 때렸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뭐? 조건?’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 음성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다.

    “윽……!”

    이 느낌은 익숙했다. 동기화가 완료되고 온몸을 덮었던 열기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환영 능력과는 어딘가 결이 다른, 온몸을 훑는 끈적한 느낌과 함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겪어도 기분이 너무 구렸다.

    “야, 한……이진.”

    “……?”

    열에 들뜬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팔을 잡고 있는 이든이 입술을 깨물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길드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왜인지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야, 너…….”

    “……!”

    그러나 내 사고는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강유현의 푸른 눈과 다시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든의 팔을 흔들며 외쳤다.

    “능력 써, 빨리!”

    “어?”

    “빨리하라고, 개새끼야!”

    소리를 지르자 이든의 흐리멍덩한 눈에 조금 빛이 돌아왔다.

    이든은 바람을 다루는 A급 능력자다. 그리고 지금은 내 개박하 스킬로 능력치가 말도 안 되게 뻥튀기되어 있을 터였다. 마침 바람은 도망치기 딱 좋은 능력이었다. 계속된 내 재촉에 이든이 망설이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윽!”

    “형!”

    형제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내 몸을 껴안듯이 안고 날아오른 이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이제 슬슬 달라진 몸 상태를 느끼고 있을 터였다.

    “시발, 빨리 튀어, 빨리!”

    “그, 그래.”

    당황하던 이든이 다시 능력을 썼다. 허리를 단단하게 감싼 이든의 팔이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즉사다.

    하는 수 없이 얼굴을 구기며 이든의 목에 팔을 둘렀다. 녀석의 어깨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진짜 더러운 기분이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순식간에 하늘 위를 날아올랐다.

    ***

    “…….”

    강유현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눈썹을 일그러트린 그는 연신 한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안 쫓아갈 거야?”

    그런 유현을 보며 강수현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지금까지 보인 행동들을 보면 부득불 뒤를 쫓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불쾌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던 강유현이 짧게 대답했다.

    “됐어. 이름은 알았으니까.”

    한이진.

    머리 색이 요란한 남자가 그렇게 부르는 걸 똑똑히 들었다. 거기다 어쭙잖게 자신을 협박하려 했던 능력자들을 몇 명 붙잡아 뒀으니, 그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일 것이다.

    “……흠.”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던 눈빛을 떠올린 강유현이 다시금 눈썹을 찌푸렸다. 게이트에서 귀환한 이후로 저를 그렇게 당당하게 마주 본 사람은 없었다. 능력을 쓰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위압감에 같은 능력자들마저 벌벌 떨곤 했으니까.

    무엇보다, 그에게는 자신의 스킬이 통하지 않았다. 강유현의 손이 느릿하게 제 한쪽 눈가를 쓸어내렸다.

    게이트 안의 비틀린 시간축, 무려 300년 동안 떠돌면서 그도 헛살진 않았다. 수많은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강자들의 도전을 받았다.

    그가 떨어진 곳은 니플헤임이라 불리는 허무의 공간이었다. 세계 곳곳에 열리는 던전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그곳은 던전 클리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까.

    그저 미친 듯이 싸우고, 싸우다가 결국 생존한 사람이 자신밖에 남지 않았을 때. 강유현은 비틀린 시간축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을 가르는 거대한 나무, 세계수 위그드라실. 그곳을 지키는 거인을 쓰러트리고 샘의 물을 마신 강유현은 전설급 스킬을 얻었다.

    절대신의 눈. 이 전설급 스킬은 상대가 누구든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엿볼 수가 있었다. 설령 아이템이나 스킬로 정보를 감춘다고 해도, 전설급 스킬이 막힐 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이진, 그는 처음으로 절대신의 눈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전설급 스킬이 통하지 않는 능력자라니.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야, 강유현!”

    얼굴을 구긴 채 서 있던 강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함께 있었던 윤은호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야, 그렇게…… 헉, 가 버리면 어떡하냐?”

    가까이 다가와 강유현을 타박하던 그는 옆에 멀뚱히 서 있는 강수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수현아, 너 괜찮아?”

    강유현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절친인 그는 오딘 길드에서 요구한 스카우트 임무를 흔쾌히 받아 유현을 만났던 참이었다.

    수백 명의 1세대 각성자 중 유일하게 귀환한 SS급 헌터. 그를 받아들일 길드는 국내에서 그리 많지 않았다. 오딘 길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 길드였고, 그 안에는 세계 랭킹의 상위권에 있는 랭커들도 수두룩했다.

    무서운 게임 실력만큼이나 전투에 능한 한국인들은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유현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해서 그를 회유하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친구인 은호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유현을 설득할 자신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방해가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오딘 길드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라우페이 길드는 평소에도 온갖 더러운 짓을 한다며 욕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유현의 동생을 납치하고 협박까지 할 줄이야. 물론, 아직 라우페이 길드의 짓이라고 밝혀진 건 아니지만 은호는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법 멀쩡한 얼굴로 서 있는 수현을 보자 놀랐다. 그 길드가 애를 건드렸으면 쉽게 놔줬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저 괜찮아요. 형.”

    강수현은 왜인지 어색한 얼굴로 은호를 응시했다. 달콤한 향을 풍기던 남자가 처음엔 은호의 모습을 하고 접근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감쪽같이 속을 뻔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은호와 하나도 다르지 않을 만큼 똑같았으니까.

    “하, 다행이다. 너 잘못되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 유현이가 제때 도착했었나 봐?”

    “아, 네…….”

    왜인지 대답하는 수현의 얼굴이 조금 흐려졌다. 자신을 구하러 온 형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은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야, 윤은호.”

    “어?”

    강유현의 부름에 은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우두커니 서 있는 유현의 모습은 어딘가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게이트 안에서 300년이 넘게 떠돌아다녔다고 하던가. 이곳의 시간으로는 고작 5년이었는데, 다시 만난 친구는 너무나 낯선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걸 일부러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은호는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러자 유현이 무뚝뚝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이진이라는 능력자 찾아내.”

    “뭐?”

    “어디 소속인지, 능력은 뭔지, 사는 곳은 어딘지.”

    “뭐어?”

    뜬금없는 말에 은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짜고짜 능력자 뒷조사를 하라니. 물론 오딘 길드의 능력으로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니긴 하지만…….

    “아니, 길드원도 아닌데…… 막 찾아 주긴 좀 그렇거든?”

    일단은 좀 튕겨 봤다. 설마 이런 걸로 넘어오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유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툭 던지듯 대답했다.

    “들어갈게. 너희 길드.”

    “응?”

    은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정말?”

    아까는 그렇게 시큰둥하더니, 놀라운 심경의 변화였다.

    하지만 은호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유독 가라앉아 있는 유현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장 계약하러 가자.”

    “그러지.”

    명백히 귀찮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유현은 은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지막에 느꼈던 스킬의 잔재를 떠올렸다.

    SS급인 자신마저 한순간 놀랄 정도의 기운이 그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었다.

    ‘대체 뭐지. 마지막의 그건.’

    머리를 어지럽히는 달콤한 향, 그 향을 맡자마자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뜨거워지고 거센 충동이 느껴졌다. 만약 그가 초인의 정신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유현은 누구보다 자신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거대한 능력이 앞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그런데 그런 자신을 충동질하며 간섭하는 스킬 사용자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그런 생각을 하던 유현은 제자리에 우뚝 섰다.

    다음에 만나면? 그땐 그를 어떻게 해야 하지?

    기묘한 충동이 그를 부추겼다. 동시에 제법 반항적인 눈빛을 보내던 능력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요한 건, 다음엔 그를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선 절대 안 된다는 거였다. 유현은 우선 그것만을 우선순위에 놓기로 했다.

    “유현아?”

    “……간다.”

    잠시 멈췄던 유현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은호는 그를 흘끗 보다가 멍하니 서 있던 수현의 이름도 불렀다.

    “수현아, 뭐 해?”

    “아.”

    정신을 차린 수현이 은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런 데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의아했던 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갈게요.”

    수현은 은호와 유현을 향해 걸어가면서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그곳에는 코끝을 스치던 달달한 향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도 빨리 각성하고 싶다.’

    그러면 그 사람을 더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지 않을까.

    남모를 생각을 하며 수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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