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197화 (197/305)
  • 제197화

    -오케이!

    -알겠음.

    둘의 대답을 듣자마자, 두 다리에 진기를 담았다.

    혼원건곤신공의 건곤축지보를 사용, 그대로 공간을 접듯이 나아가며 쌍검을 빼들었다.

    “우와, 빨라!”

    성광이 그런 내 모습에 감탄했다.

    땅바닥에 처박혔던 거한이 벌떡 일어나 그런 나를 노려본다.

    내 속도는 보통 사람은 보지도 못할 정도지만, 거한은 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놈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 제법이군.”

    그쪽도 실력 좀 있나 본데?

    그럼 이걸 막아 봐라!

    건곤이검!

    두 개의 검이 서로 다른 박자를 가지고 그어갔다.

    쾅!

    거한이 망치 자루를 땅에 쿵! 하고 찍자 강력한 충격파가 나를 덮친다.

    지직.

    달려가던 내 돌진력이 그대로 일순 사라진다.

    내가 달려가는 만큼 충격파가 밀어낸 탓.

    하지만 거기서 나는 다시 다리에 진기를 밀어넣었다.

    풍운보법을 응용. 지면을 박살 내듯이 다시 앞으로 뛴 것이다.

    속도는 아까의 절반!

    그래도 이 정도 속도면 빠르다고!

    카가강!

    망치 자루. 그리고 망치 머리.

    두 개가 교묘하게 움직여 내 쌍검을 받아냈다.

    ‘실력 쩌는데!’라고 생각한 순간.

    거한의 복부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파직하는 불꽃이 보인다.

    “하하핫! 죽어라!”

    푸확!

    놈의 배때기의 입에서 불꽃이 뿜어진다.

    “뭣!?”

    그러나.

    녀석의 복부 비만 브레스는 내 그림자에 막히며 스러진다.

    그래. 고레벨이다 이거지?

    촤악!

    그리고 내 그림자는 순식간에 넓어져서, 녀석의 발밑을 침입. 동시에 [그림자 훔치기] 스킬을 발동한다!

    -상대의 그림자를 훔쳤습니다.

    -일시적으로 상대의 이동 속도가 10% 하락합니다.

    -일시적으로 상대의 방어력이 10% 하락합니다.

    -일시적으로 이동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방어력이 10% 상승합니다.

    상대에게는 디버프. 나에게는 버프. 이거 아주 쓸 만하거든. 여기다가!

    염력 화살!

    스파파파파팟!

    내 주변으로 수를 세기 어려운 염력의 구체가 생겨났다가 그대로 내리꽂힌다.

    여기까지 겨우 0.1초!

    “크아아악!”

    녀석의 몸에 수십 개의 화살이 꽂히는 사이.

    그림자를 조작. 녀석의 발을 지면에 단단히 묶었다.

    움직이지 않는 발에 혼란스러워하면서 계속해서 화살에 두드려 맞는다.

    피부가 갈라지고 피를 철철 흘려대는 거한을 보며 오히려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쌍검을 들고 내공을 불어넣는다.

    츠츠츠츠츠.

    정밀하고 강렬하게.

    이윽고, 검기는 검의 강기로 화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두 개의 쌍검을 휘둘렀다.

    서 – 걱.

    강기의 절삭력은 과연 대단해서, 버둥거리던 상대의 몸을 정확히 삼등분을 해 주었다.

    “커어어억…….”

    비명을 지르다가 허파에서 바람이 빠졌는지 목소리가 줄어든다.

    그의 몸은 그대로 녹아내리며 사라져 간다.

    아니. 얘는 왜 녹아서 사라져?

    저번에 죽인 놈들은 안 이랬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통찰의 눈을 미리 써 둘 걸 그랬네.

    생각도 잠시. 고개를 들어 언데드들과 드잡이질을 하면서 무척이와 별하나의 공격에 두드려 맞고 있는 살아 있는 적들을 보았다.

    흠. 저것들을 처리하기 전에 확인해 보면 되겠네.

    좋아. 빨리 끝내자.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 * *

    덤벼온 놈들을 처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리하기 전에 통찰의 눈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이 녀석들은 직업이 두 개다. 본래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직업과 이 녀석들 전원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직업.

    두 번째 직업은 아무리 봐도 이 던전에서 획득한 것으로 보이는 직업이다.

    [뒤틀린 성좌의 광신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A/B가 거미 교단이라고 부르던 놈들하고 동류인가?

    성좌를 추종하는 광신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서 뒤를 돌아보니, 베르나데가 우리를 무서울 정도로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싸우는 데 쥐뿔도 안 도와줬으면서 뭘 저렇게 보고 있어?

    -형. 저거 아무리 봐도 우리를 평가하는 눈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네.

    -맞아요. 우리를 가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성광이 개선된 텔레파시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개선된 텔레파시로 묶여 있으면, 공개 음성 채팅방에 들어온 것 같은 효과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정하 그룹에 대해서는 알지만, 당신들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강하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슈퍼 루키라고 평가될 정도로 고속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동맹의 제안은 아직 유효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대답은?”

    “우선 협상부터 하지. 따라와라.”

    그녀가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바위산을 향해 이동했다.

    * * *

    바위산을 오르면서, 동료들에게 우리를 습격한 적들의 정보를 [개선된 텔레파시]로 공유했다.

    놈들이 직업이 두 개고 그중 하나는 공통적으로 광신도라는 것을.

    그렇게 대화하는 와중 꼭대기에 도착했는데 제법 넓었다.

    학교의 운동장 두 개 정도를 붙여 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한쪽에는 밭도 만들어져 있어서, 그곳에서 뭔가를 기르고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사람이 제법 많이 있다.

    적어도 수십 명.

    슬쩍 통찰의 눈을 써 보니 다들 쟁쟁한 이들인데?

    [바레트 이고]

    나이 : 38

    성별 : 남성

    레벨 : 87

    종족 : [뒤틀리고 변이된 지성체]

    직업 : 엘레멘탈 서모너-윈드

    바람의 정령을 부르는 정령사.

    특성 : [뒤틀린 성좌의 숲]의 몬스터가 되었기에 던전 브레이크 시간 외에는 던전을 벗어날 수 없다.

    특성 : 재생력

    특성 : 섭식 회복

    직업 설명이 단출하지만, 레벨이 높아.

    레벨 높은 정령사라면 심플하게 강력하니까 무시할 수 없지.

    그나저나… 몇 명은 드루이드 위저드인 베르나데만큼 특이하고 강력해 보이는 직업과 높은 레벨을 가졌네?

    정예만 모인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다만 이들에게는 광신도라는 직업은 없다.

    [주군. 광신도 세력과 광신도가 아닌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건 맞긴 한데. 도시가 3개인 게 조금 걸려. 그러면 세력도 3개라는 거잖아.

    [2개의 도시가 같은 세력일 수 있습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정지한을 슬쩍 봤다.

    저 인간은 지금 여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지만 말을 못 하는 거겠지?

    그래도 툭툭 던져주는 힌트가 꽤 유용하긴 하니까 괜찮지.

    “이쪽으로 오도록.”

    베르나데는 우리를 이끌고 한쪽에 마련된 나무로 지은 제법 큰 움막으로 향했다.

    다른 이들이 우리를 보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대화를 걸지 않았다.

    -말이 없는 걸 보면,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텔레파시로 대화하고 있나 본데요?

    별하나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확실히. 아예 소리가 안 나는 건 이상하잖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거야 그렇다 쳐도. 수군거리지도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큰 움막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는 이름 모를 짐승의 가죽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고, 중심에는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쪽.

    허리가 굽은 사람이 앉아 있다.

    기괴한 느낌의 가면을 썼는데 처음 보는 독특한 형태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육체는 심하게 변이된 것으로 보였다.

    우선 나무줄기가 무수히 많이 꼬아져 몸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미 동물이라기보다는 식물에 가까운 데다가 색은 흰색과 회색의 중간쯤 되어 보인다.

    기괴한걸…….

    [필리핀의 고대 주술사가 쓴 가면입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주군을 보필하기 위해서 민간 신앙 및 여러 정보를 계속해서 수집 중에 있습니다.]

    역시 척량이야! 최고의 군사!

    “어서 오게. 이곳의 두목 노릇을 하고 있는 늙은이일세.”

    가면을 쓴 사람에게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빠르게 스킬을 썼다.

    통찰의 눈.

    파직-

    -통찰의 눈 스킬이 실패하였습니다.

    헐. 내 통찰의 눈이 실패했어?

    노인이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말했다.

    “젊은이는 좋은 눈을 가진 모양이구먼. 하지만 이 가면은 괜히 쓰고 있는 게 아니라네. 자. 다들 앉으시게.”

    저 가면이 감정 스킬을 무효화하는 건가?

    이거 참. 만만치 않네.

    그의 말대로 우리는 가죽 깔개 위에 그대로 앉았다.

    성광이 가죽을 슥슥 만지고 있는데, 직업병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대기업. 정하 그룹에서 왔다고?”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번에는 제법 힘을 쓴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정부의 머저리들은 이곳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나 보군. 겨우 일곱만 보낼 줄이야…….”

    “걱정하시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부도 이곳의 위험성은 이미 완전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것까지 알고도 일곱 명이서 온 건가. 자신이 있다는 거겠군. 베르나데가 관측한 것에 따르면, 우카이를 단번에 해치웠다고 했던가…….”

    우카이?

    아. 내가 처리한 거한을 말하는 거려나.

    “그래. 별을 떨어트리는 자도 있다던데. 저 활을 든 처자인가?”

    정지한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흠흠……. 아아. 실례했군. 너무 이것저것 묻기만 했으이. 우리 소개를 해야겠지.”

    가면의 노인은 모닥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러자, 그 식물 줄기로 된 손은 불타기 시작했다.

    거기서 기이한 힘이 번져 나감을 느꼈다.

    “나는 장작이 되는 자. 백탄(白炭)의 마카우라고 하지. 이 요새를 지키는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늙은이일세.”

    손이 타고 있음에도, 그는 고통스럽지 않은 듯하다.

    이윽고 손이 타들어가 재가 흩날리자,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가 모닥불 안에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진 자리로 새롭게 손이 자라난다.

    물론 식물 줄기로 이루어진 손이다.

    흰색과 회색의 어중간한 그 색은, 하얀 숯을 의미하는 백탄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렸다.

    “주술사나 신관 같은 이들은 자기희생 스킬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는가? 자신을 희생하면 더욱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지.”

    “…….”

    그는 우리를 한번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이 요새를 지키는 결계도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네. 허허. 물론 절대적인 건 아니야. 두드리다 보면 깨지는 결계지. 그래도 이런 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지 않던가?”

    이 노인… 끔찍한 이야기를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자기희생 스킬로 요새를 유지하고 있다고?

    그게 대체…….

    “그나저나 자네들 아주 입이 무겁군그래? 저기 사령술을 하는 이가 있으니, 궁금한 게 많을 터인데?”

    그 해골을 걸어 둔 나무 가벽을 말하는 것 같다.

    정지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른 세력과 싸우고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의 리스폰을 막기 위해서.”

    “허허…. 알고 있구먼? 그러면 왜 싸우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정지한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모릅니다.”

    “후, 가볍다면 가볍고. 어렵다면 어려운 이야기일세. 여기는… 지옥이거든.”

    노인은 다시금 손을 모닥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타들어 가는 손을 떼어내 모닥불 안에 집어넣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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