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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으로 레벨업-185화 (185/305)
  • 제185화

    어쨌거나 바로 그 던전부에서 나온 공무원이 내 앞에 앉아 있다.

    말단도 아니고, 심지어 5급 공무원 사무관이시다!

    ‘5급부터는 행정고시 봐야 하던가?’

    우리의 행정고시 패스자가 말했다.

    “차원미궁관리부 산하 미궁재해청 사무관인 김정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공무원.

    픽션에서는 자기가 공무원이라고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가서 난리 치다가 김치 싸닥션 맞는 게 국룰인데.

    현실은 의외로 평범하시다.

    평범한 샐러리맨.

    월급 받으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 뭐 그런 거죠.

    “예.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엄지척 님이 말씀하신 건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 미팅을 요청드리게 되었습니다. 방송에서 국내의 모든 던전을 제거하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맞으시지요?”

    “아. 예. 그렇죠.”

    구독&좋아요를 원하고 한 말이긴 했다만, 그래도 진심이니까.

    “그 방송에서 국내에 필요한 던전은 두고, 위험한 던전을 제거하기 위해서 국가와 논의하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일 처리 제법 빠르네.

    하지만! 나는 이번 일에 대해서 정지한에게 이미 과외를 받았다.

    -지척 씨. 정부에서 사람을 보내서 ‘먼저’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지역이 있을 겁니다. 그 지역의 기업이나, 정치인들의 청탁에 의해서 정해진 지역일 겁니다.

    -남산 타워 같은 서울 지역이겠죠. 일단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진행하겠다고 이야기를 해 두시면 될 겁니다.

    정지한이 나한테 해준 말이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속성 과외를 들었는데, 덕분에 이 동네 돌아가는 판을 알 것 같다.

    그러니까, 눈앞의 행정고시 패스한 평범한 샐러리맨은 사실 뒤로는 청탁이나 뒷돈을 받는 상사가 위에 있거나.

    아니면 본인이 뒷돈을 받는 중이라는 거지.

    의외로 악이란 이렇게 평범한 법이다.

    그나저나.

    정지한이 말하기를.

    내가 ‘갑’이라고 했었지.

    사실이 그렇긴 해.

    “아. 그러시군요.”

    “예. 현재 국내에 불필요한 던전의 목록과 그것을 지도로 표현한 겁니다.”

    그가 두툼한 서류를 하나 꺼내서 보여 주었고, 그 옆으로는 태블릿을 내려놨다.

    서류는 던전 목록과 정보를 프린트해서 뽑은 거였고, 태블릿에는 지도가 띄워져 있다.

    “현재 국내의 던전은 423개이고, 재생성형 던전은 121개입니다. 그중 민가 근처에 있는 재생성형 던전의 수는 82개죠.”

    “잠시만요. 423개요?”

    국내의 던전 총합은 300개 내외 아니었어?

    아니. 언제 그렇게…….

    김정재 사무관은 내 말에 어두운 낯빛이 된다.

    “1년 사이 급증했습니다. 아직은 정보가 통제되고 있어서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기가 막히네…….

    “그나마 재생성형 던전의 경우에는 본래 72개였으니 많은 숫자가 늘어난 건 아닙니다. 때문에 위협도 역시 크게 증가한 건 아니지요. 단발형 던전이 급증한 게 문제입니다.”

    그가 태블릿을 조작, 몇 개의 사진을 꺼냈다.

    숲, 논밭 같은 곳에 생긴 포탈들이다.

    “클리어 후 소멸한다고 하지만, 소멸시키는 속도보다 만들어지는 속도가 더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행정부에서는 엄지척 헌터의 포션 보급을 크게 반기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네. 거기다 기왕이면 마력 회복 포션으로의 진출을 바라고 있기도 하고요.”

    “체력 회복 포션 스킬을 올리다 보면 자연히 마력 회복 포션 쪽도 늘어날 거라 보고 있는 거군요.”

    “예. 연금술사 스킬 트리는 그게 정석이니까요. 체력 포션 다음에 마력 포션순으로 스킬을 익히게 되죠.”

    음, 거기까지 예측한 건가?

    그가 말을 이었다.

    “헌터들마다 마력 회복력의 차이가 크거든요. 마력만 회복이 빨리 된다면 던전에 들어가서 사냥하는 것도 더 빨라질 테니까요.”

    지금 내가 생산하는 것은 생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상처 치료 포션들이지.

    그러고 보니 마력 회복 포션 시장 쪽에는 크게 신경을 안 썼네.

    그게 SL화학을 아직 버티게 해 주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높습니다.]

    지금 제작 숙련도면 충분히 가능한가?

    [네. 안정적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생산력을 더 증대시켜서 마력 회복 포션도 팍팍 만들자고.

    아니. 다 만들자.

    지금 해독 포션 같은 것도 만들고 있지만, 더 많이 만드는 거야.

    [준비해 두겠습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곳은 여기입니다. 엄지척 헌터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곳들이죠.”

    그가 지도에 표시한 곳은 12개.

    서울에 4개, 광주에 3개, 대전에 1개, 대구에 1개, 부산에 3개였다.

    아니… 광주는 왜 3개나 생겼어?

    지도를 클릭해서 확대해 보니까 광주는 시내에 1개 그리고 외곽에 자리한 공장 단지에 2개나 생겨 있었다. 내가 지도를 들여다보니, 사무관이 설명을 해 주었다.

    “국내 최대 마정석 정제 공장 단지입니다. 한국의 에너지를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마정석. 던전에서 몬스터 잡으면 나오는 것.

    그걸로 발전소 돌리는 걸로 알고 있다.

    그게 없으면 에너지 산업이 끝장나는 건 당연한 일.

    마정석도 정제해서 써야 한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그 정제 공장이 광주에 있었구나.

    요건 몰랐네.

    “알겠습니다. 일단 검토하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래도 가급적 빠르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무관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급하다고 생각하시는 곳은 어디신가요?”

    내 질문에 그가 멈칫한다. 그러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광주의 정제 공장입니다. 특히 이곳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광주의 세 던전 중 한 곳을 짚으며,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쪽은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하여 헌터와 군인을 상주시키고 어떻게든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긴 합니다만, 이 공장은 핵심 시설 중 하나에 재생성형 던전이 생겼습니다. 때문에 정제가 완전히 멈췄죠.”

    저쪽이 문제다, 이거군.

    “공장 이전을 이미 추진 중입니다. 그 때문에 생긴 손해가 큽니다만, 사실 손해보다도 국내 에너지 공급 부족 현상이 올 수 있다는 위험이 더욱 큽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오늘 만나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러면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사무관 김정재는 그렇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그가 미팅 룸을 나가는 것을 보고는 바로 폰을 들었다.

    -미팅 끝나셨습니까?

    전화를 받자마자 용건만 말하는 이 사내.

    정지한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헛헛한 기분이 든다.

    그는 시간 낭비를 무척 싫어한다.

    가벼운 인사치레조차도 친해질수록 덜 하는 게 보이니까.

    “예. 끝났는데……. 광주 정제 공장이 가장 시급하다고 하네요.”

    -예상대로군요. 확실히 국가적인 입장에서 그곳이 가장 시급한 것은 맞습니다. 공장 자체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기업이기도 합니다.

    “뒷돈이라도 찔러서 추천한 건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아, 호주머니에 돈 찔러 넣은 건 맞을 겁니다. 하지만 급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구나.

    -우선은 제가 다른 기업들, 그리고 정부와 협상을 해 두겠습니다. 옛 영화 대사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잘하는 것은 공짜로 해 주면 안 된다.

    “그거 유명한 대사죠.”

    나도 그 영화 봐서 알지.

    -그러면 오늘은 시간 되십니까?

    “예. 되죠.”

    -레벨 제한 던전을 하나 처리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걸 기조로 협상 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곳을 선정해서 말씀드리죠.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지.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레벨 20 미만만 입장할 수 있는 제한을 가진 던전! 무려 21분 만에 컷! 어떻습니까, 여러분!”

    던전이 소멸되었다.

    고블린이 나오는 레벨 제한 던전.

    레벨 제한 던전답게, 20레벨 미만이 들어가서는 뼈도 못 추리는 난이도를 자랑했다.

    그런데 20레벨 입장 제한이야.

    이게 제정신인가?

    우선 홉 고블린 한 마리가 중무장을 하고 나온다.

    처음에 봤을 때는 무슨 중장갑 기사인 줄 알았어.

    뭔 홉 고블린이 풀 플레이트 메일에 투구로 얼굴까지 완벽하게 가리고 나오나 싶더라고.

    그리고 그런 홉 고블린이 커다란 늑대를 타고 있었다.

    홉 고블린 울프 나이트라고 불러야 하려나?

    그 옆으로 나름대로 무장을 갖춘 고블린 열 마리가 함께한다.

    이게 하나의 파티다.

    몬스터도 꼭 우리처럼 파티를 짜서 다니고 있어요.

    이런 놈들이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데, 지형은 또 초원 지대다.

    딱히 엄폐물이 없고, 이놈들을 족치다 보면 고블린 중 하나가 뿔피리를 꺼내 들어 동료를 부르는 시스템.

    이걸 20레벨 헌터가 어떻게 깨냐?

    양심 없지, 새끼들아?

    그래서 박살 내 드렸습니다.

    늑대가 빠르긴 해도, 내 모노 바이크G보다 빠르지는 않다.

    블레이즈 워크를 사용하고 시원하게 불을 지르며 달리면서 염혼염동을 사용. 거기에 검사를 줄기줄기 뿌리면서 로드 킬을 한다.

    고블린들을 갈아 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질주해서 놈들의 촌락으로 향하고, 그대로 목책도 정면충돌로 개박살 낸다.

    보스?

    당연히 원 샷 원 킬이죠.

    그다음에 던전 핵을 찾아냈더니… 4미터짜리 거대 고블린으로 변하더라.

    던전 핵마다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물론 가볍게 죽이고 던전을 소멸시켰다.

    덩치가 큰 것뿐, 그리 강한 건 아니더라고.

    당연히 방송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지금은 방송 마무리 멘트 중.

    -두 번째 던전 소멸!!

    ↳세 번째임. 호텔 던전도 엄지가 없애 버렸음.

    -아니. 던전 소멸 이렇게 쉬운 거였냐고.

    -코이츠 천재인 것wwwwwwww

    -이거 엄지밖에 못 함. 던전 찾는 탐지 계열 스킬은 고레벨 헌터 아니면 얻을 수 없음. 그런데 저 던전은 레벨 20 제한이잖아? 엄지 말고는 못 없앰.

    ↳아니 근데. 엄지 레벨 대체 몇이야? 20레벨 제한 던전은 어떻게 들어간 거래?

    ↳레벨이 안 오르는 대신에 다중 능력을 쓰는 히든 클래스라던데?

    -국뽕튜브에서 또 풍악을 울릴 듯.

    채팅창에 글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하와와와, 시청자가 이렇게나 늘어나다니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에요.

    “그러면 오늘도 제 방송을 봐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 드리며, 구독과 따봉 부탁드립니다!”

    방송 클로즈 멘트 완료.

    주변을 둘러보니, 이번에는 기자가 1명 와 있었다.

    왜냐면 이 던전에 오겠다고 던전부를 통해서 예약한 게 1시간 전이고, 던전 소멸 자체도 엄청 빠르게 끝냈으니까.

    즉. 기자들이 올 시간이 촉박했다.

    [혹은 저 기자가 주군만을 전담하는 기자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겠어?

    [주군은 다른 헌터들에 비해서 마력 회복이 빠르니까요.]

    그건 그렇긴 하다만. 그러면, 더 정신없이 만들어 줘야겠네.

    [주군. 계획이 있으십니까?]

    응. 방금 저 기자를 보고 생각한 건데. 어렵지 않을 듯해. 뭐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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