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56화 (56/305)
  • 제56화

    얼마나 달렸을까.

    교외의 거대한 방목 목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이 시기에 방목이라니. 사치다.”

    보통은 드론이 관리하기 쉽게 기업형 목장을 채택한다.

    방목까지 시켜버리면 소를 추적해 관리하기가 무척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미쳐가는 세계에서 방목 목장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소똥 냄새가 생각보다 안 심한걸?”

    신기하긴 했다. 거기다 드론 숫자도 최소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메에에에-

    목장 입구에는 거대한 양이 서 있었다.

    커다란 뿔이 인상적이었는데 녀석은 우리를 향해 마치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음?”

    혹시나 싶어 통찰 스킬을 사용하니 이렇게 떴다.

    [똑똑하고 씩씩한 뿔 양]

    성별 : 수컷

    신관 성광이 직접 키우는 양으로 무리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다.

    소형 몬스터 정도는 혼자서 처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며 머리도 좋다.

    기분이 좋으면 양모를 깎을 수 있게 허락해준다.

    (진화 예정 : 현명하고 용감한 황금 양)

    ‘저 양 진화도 해?’

    이쯤 되면 단순 양을 뛰어넘어 영물이다.

    메에- 메에에--!

    바이크를 뿔로 툭툭 친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서 척량을 소환했다.

    척량이 양이 하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목장에 임신한 소가 있으니 조심해서 오라고 합니다. 괜히 놀래 키지 말래요. 맞죠? 초코 님?”

    그 말에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초코야?”

    “네. 정확히는 눈초코래요. 털이 희고 얼굴은 까매서. 근데 다들 초코라고 부른다네요.”

    귀엽네.

    털도 부드러워 보이고.

    나는 바이크를 해제하고는 초코의 안내를 따라 목장 안을 걸어갔다.

    꽤나 넓은 부지라서 그런지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 끝에는 성광이 있었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성광은 만돌린을 켜고 있었다.

    그 앞으로 양이며 소며 말이며 모두 앉아서 만돌린 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닭은 나무 위에 앉아서 성광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피부에 은색 머리카락, 뛰어난 미모 때문일까.

    현실감이 없다.

    “헤헤헤. 제 목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광은 만돌린을 멈추고는 우리를 향해 과장된 인사를 했다.

    “우와, 직접 운영하는 건가요?”

    “네. 햇빛목장은 목장인 동시에 제 신전이기도 하니까요.”

    대체 성광이 모시는 신은 뭐 하는 존재일까.

    그때 근육질 여성이 산처럼 거대한 여물을 등에 지고 내려왔다.

    탱커 정지벽이다.

    그녀가 우리가 하는 말을 들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이익은 거의 안 남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성광은 헌터로 번 돈 전부 이 목장에 때려 박고 있습니다.”

    메에에에-

    양이고 소고 할 것 없이 정지벽이 가져온 여물에 달려들었다.

    “아이고, 좀 기다려. 먹이통에 채워 넣을 때까지 기다……. 안 되겠다.”

    그녀는 바닥에 발을 쿵, 하고 굴렀다.

    그러자 땅에서 벽이 솟아올라 동물들을 갈랐다.

    메에에-?

    이 과정에서 한 마리도 다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엄청난 컨트롤이군요, 주군. 지난번보다 더 성장한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예전에는 주먹을 땅에 찍어서 벽을 소환했었지.

    그러나 이번에는 그저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벽이 소환되는 모양이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라니.

    몇 개까지가 한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만으로도 탱커로서의 격은 크게 차이가 나지.

    그것도 가축들이 다치지 않게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났고.

    그녀는 동물들에게 적당히 여물을 분배해서 주었다.

    메에에-

    무으으으-

    꼬, 꼬고고고!

    꿀꿀꿀-

    다들 머리를 박고 여물을 먹기에 바쁘다.

    딱 봐도 시판으로 파는 여물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이 맡아도 고소한 냄새가 났다.

    “여기 동물들은 다들 머리도 좋고 강해서 은근히 성가시단 말이야.”

    정지벽의 말에 성광이 답했다.

    “신전 사제들이니까요.”

    “이 가축들이 신전 사제들이라고요?”

    성광이 차분하게 답했다.

    “네. 모두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아는 분들이십니다.”

    그냥 이런 말만 들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못 믿었을 거다. 하지만 이미 나는 초코를 관찰했다.

    초코의 능력을 알아버린 이상 웃으면서 넘기기가 어렵다.

    “엄청난 신전이군요.”

    “오오, 바로 믿어주는 사람은 엄지척 님이 처음이십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던데!”

    ‘그도 그럴 게 생긴 게 아무리 봐도 그냥 가축이니까.’

    성광은 기쁜지 상기된 뺨으로 내 주변을 발랄하게 돌았다.

    “정지한 대표님이 오실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농장 구경이나 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나는 그의 뒤를 따르며 틈틈이 동물들을 관찰했다.

    [크고 씩씩한 소]

    성별 : 암컷

    신관 성광이 직접 키우는 소로 인간을 무척 잘 따른다. 미약한 신성력을 발휘해 상처를 치료할 수 있고 적 앞에서도 매우 용감하다.

    기분이 좋으면 우유를 나눠줄 때가 있다.

    이 녀석은 진화 메시지가 없다.

    ‘아무래도 진화가 되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이 있는 모양인데?’

    대부분은 진화 불가다.

    아무래도 확률이 낮은 모양이다.

    [목청 좋고 사나운 닭]

    성별 : 암컷

    성광의 목장에서 태어나 매일 아침을 알려주고 있다. 몬스터가 발견되면 크게 울어 모든 동물들을 무장시킨다. 기분이 좋으면 계란을 나누어 준다.

    (진화 예정 : 황금 알을 낳는 용맹한 오골계)

    ‘황금 알을 낳는다고? 요즘 금 한 돈 시세가 얼마지?’

    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성광에게 물었다.

    “동물들도 진화하나요?”

    그 말에 성광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답했다.

    “신께서 직접 보살피는 분들이니 보통 동물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만 진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요? 감정을 했는데 떠서요.”

    나는 내가 스킬로 관찰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성광의 눈이 커졌다.

    “정말 진화가 가능하다고요?”

    “네. 네. 조건은 모르겠지만…….”

    “그게 되면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어쩌면 제 목장도 적자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하하, 신경 안 쓴다더니 은근 많이 쓰고 있었군.’

    이만한 규모의 목장.

    그것도 최고급 목장이다.

    드론도 최소한으로 쓰고 있고 애들 먹는 여물도 꽤나 돈 좀 깨질 것 같다.

    이런 곳에서 이윤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고기는 먹습니까?”

    이거 물어봐도 실례 아니려나.

    내 질문에 성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께서는 목축을 만드셨습니다. 인류의 문명에 목축은 매우 중요하기에 육식 또한 그 안에 들어갑니다. 다만 음식을 남기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리 말하더니 내게 엄지를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엄지척 님의 갓튜브 먹방은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밥풀 하나 안 남기시더군요.”

    -광신도, 성광이 당신에게 크게 감명받았음을 이야기합니다.

    -3따봉을 받았습니다!

    광신도라는 타이틀답게 보통 사람과는 다른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 같다.

    따봉을 줘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채널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지 않나.

    “꼭 채널 구독, 좋아요 눌러 누세요.”

    “네.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채널 전부 좋아요 누르는 것도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군.

    그때 먼 곳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성광이 말했다.

    “정지한 대표님이 오셨군요.”

    * * *

    농장 안에 있는 오두막에 모두 모였다. 전형적인 농가 오두막으로, 벽에서 구운 흙냄새가 났다.

    성광은 냉장고에서 치즈와 요구르트, 크래커를 꺼냈다.

    “목장에서 만든 겁니다. 드시겠어요?”

    “좋죠.”

    테이블에는 나, 동생, 성광, 정지벽, 그리고 정지한.

    일행이 모두 모였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던전 길잡이 맡고 계시는 별하나 님은 이번에 안 오시나요?”

    탱커 정지벽의 질문에 물주 정지한이 답했다.

    “음, 저보다 먼저 도착하셨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만…….”

    정지벽이 주변을 돌아봤다. 하지만 보이는 건 우리 일행뿐이었다.

    척량이 내게 속삭였다.

    [주인님, 기둥 위에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그 말과 동시에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헛?!”

    새카만 옷을 입은 여인이 거미처럼 천장에 달라붙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떨어져 내렸다.

    탕-

    별하나였다. 그녀가 말했다.

    “레인저 은신 추적 스킬을 수련해야 해서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

    별하나가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암살 연습이 아닙니다. 몬스터를 추적해야 하니까요.”

    탱커 정지벽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미리 말해 주십시오. 기분 나쁩니다.”

    “하지만 미리 말하면 은신 효과가 떨어지는걸요.”

    “동료로서 예의란 게 있는 겁니다. 이래서야 팀플레이가 되겠습니까?”

    “예의를 차리는 동료보다 실력이 뛰어난 동료가 필요하실 텐데요.”

    탱커 정지벽과 레인저 별하나는 전부터 안 맞는 부분이 있긴 했지.

    [저 둘은 친해지나 싶으면 싸우는군요.]

    별하나의 은신이 무례하기는 했지만 기분이 조금 나쁜 수준이지 대놓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

    그러나 정지벽 그녀가 이런 걸 꽁하게 담을 성격도 아니지.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어차피 못 알아챈 쪽이 잘못 아닌가요? 엄지척 님은 발견하셨잖아요?”

    그 말에 정지벽이 나를 바라본다.

    ‘아이고, 이거 말 잘못했다가는 더 싸우겠네.’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저야 운이 좋아서 우연히 천장을 본 거지, 평소라면 몰랐을 겁니다. 그보다 크래커에 치즈 얹어 먹는 거 좋아하시는 분? 까망베르 치즈라 맛있어 보이는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빵 칼로 치즈를 잘랐다.

    일부러 검기를 발현해 갈라내니 절단면이 예리했다.

    한마디로 더 맛있어 보였다.

    정지벽과 별하나의 시선이 치즈에 쏠렸다.

    나는 잽싸게 크래커에 얹었다.

    “두 분 드세요.”

    입에 크래커를 물리니 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헌터 정지벽이 당신의 치즈 크래커에 감탄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헌터 별하나가 배가 고팠는데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휴, 다행이다.’

    그때 엄무척이 말했다.

    “형, 나도.”

    이럴 때는 꼭 어린애 같다니까.

    나는 치즈를 크게 잘라서 크래커 위에 얹어 무척이에게 주었다.

    무척이의 눈이 보물이라도 본 것처럼 빛났다.

    ‘어릴 때 생각나네.’

    지금이야 무척이가 요리해 주지만 어릴 때는 내가 해줬다.

    맛있는 걸 해줄 때면 꼭 저런 표정을 짓곤 했지.

    그때는 먹을 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

    정지한이 말했다.

    “저도 주십시오. 물주인데 안 주실 겁니까?”

    거, 본인 손으로 잘라 드시지.

    나는 정지한과 성광의 몫까지 치즈 크래커를 만들어 주었다.

    정지한이 말했다.

    “그 귀한 검기를 고작 치즈 자르는 데 쓰다니 이런 사치가 없군요.”

    “맛있죠?”

    “네. 맛있습니다.”

    성광은 양 볼 가득 치즈를 넣고 우물거렸다.

    “헤헤헷, 역시 같이 먹는 게 가장 맛있네요.”

    “그러면 제가 계속 잘라서 얹고 있을 테니 회의하세요.”

    손이 좀 바빠지겠지만 그 편이 분위기에 좋으니까.

    ‘거기다가 따봉도 짭짤하고.’

    [주인님 따봉 부자시면서…….]

    다다익선이란다, 척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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