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55화 (55/305)
  • 제55화

    그렇게 시간은 또 지나갔다.

    -엄지 방송 존잼乃

    -엄지 요즘 잘나가나 보네?

    -먹방에 재능이 있을 줄은 암도 몰랐는데 이러다 1,000만 구독자 가능할 듯. ㅇㅇ

    -엄지 먹방 ㅇㅈ.

    ‘…….’

    사람들은 나를 ‘먹방을 하는 헌터’가 아니라 ‘전투할 줄 아는 먹튜버’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먹을 때마다 누군지 모를 신 하나가 꼭 와서 1,000따봉을 주고 갔다.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1,000따봉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둘이나 왔나 보다.

    친구라도 데려온 걸까.

    그리고 그날도 환하게 방송하고, 뒤에서는 넝마가 된 옷으로 불에 지진 쇠공을 피해 검을 날렸다.

    으아아아아아!

    매번 막히는 구간, 매번 흐트러지는 집중력, 매번 잊어버리는 구결!

    그 순간, 손끝이 자르르 울렸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 느낌이 뭔지 불현듯 깨달았다.

    큰 깨달음이 어째서 작은 깨달음의 연장이라고 했는지도.

    자연스럽게 팔을 뻗었다. 구결은 잊어버렸다. 이 감각에만 몰입했다.

    ‘아…….’

    그럼에도 내 몸은 보법을 하고, 검을 휘둘렀다.

    수없이 많이 움직였던 그 활로를 따라서.

    그리고 마침내…….

    “주군, 검 끝에 빛이……!”

    검기가 발현되었다.

    서컹--!

    철공이 잘려 나갔다.

    거대한 그것이 스킬의 도움도 없이 마치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내 의식이 반응함에 따라 검기는 순백의 빛을 만들어냈다.

    띠링-

    -[건곤신행보]의 이해도가 0.2% 증가했습니다.

    -[건곤신행보]를 100% 이해했습니다!

    -[건곤검법]의 이해도가 0.2% 증가했습니다.

    -[건곤검법]을 100% 이해했습니다!

    -[건곤금강공]의 이해도가 0.2% 증가했습니다.

    -[건곤금강공]을 100% 이해했습니다!

    세 가지 스킬이 완벽하게 머리에 박혔다.

    이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조건을 이루어 스킬 [건곤검기]가 개방됩니다!

    “해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끝났다. 이 지겹도록 긴 기초 단계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건곤 검기]

    등급: 유니크 (성장형 F)

    건곤신공에서 비롯된 스킬, [건곤신행보], [건곤검법], [건곤금강공]을 100% 이해했을 때 발현된다. 단전에 깃든 기를 검에 실어 형상화한다.

    위력은 사용자의 숙련도와 내공에 비례하며 극의에 오르면 베지 못할 것이 없다.

    그 순간, 나는 목검을 휘둘렀다.

    아까와는 달리 제대로 자각하고 검기를 발현시켰다.

    단전에 머물던 기가 내 기맥을 타고 돌아 목검에 맺혔다.

    그대로 쇠공들을 향해 휘둘렀다.

    길게 늘어난 검기가 불타는 쇠공을 남김없이 잘라냈다.

    쿠과과과광-!

    동시에 목검이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터졌다.

    강맹한 힘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었다.

    “주인님, 축하드립니다!”

    척량이 울면서 감동의 소리를 질렀다.

    인간 승리의 날이다.

    * * *

    “사는 게 참 팍팍해졌어.”

    차원미궁관리부.

    하지만 민간 영역의 여러 SNS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정식 명칭으로 부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국가기관이다.

    그런 거 있지 않나?

    입에 착착 달라붙어서, 부를 수밖에 없는 별명 같은 거.

    차원미궁관리부에는 그런 별명이 존재했다.

    던전부.

    이게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현재 한국 정부에서 가장 비대하고 큰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부서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차원미궁관리부는 이름처럼 던전을 관리하는 부서로 보이지만.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에서부터, 던전에서 출토되는 각종 유물과 마법 무구, 거기에 몬스터 부산물들에 전부 개입하는 슈퍼파워 공무직 되시겠다.

    그런 돈이 되는 것들은 어마어마한 이권이고, 떡고물 좀 얻어먹으려는 잡다한 것들이 난리발광을 부리니 당연히 강한 권력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한 일들이 아니었다.

    차원미궁관리부의 존재 의의. 가장 중요한 행정 기능은 이들의 이름 그대로니까.

    즉. 던전을 관리한다.

    던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탄처럼 터져서 그 안의 몬스터들을 현실로 쏟아내 버리는데, 그 몬스터들은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당연히 그걸 방지하려면 던전을 주기적으로 청소해 줘야 했다.

    그것을 던전 클리어라고 칭하게 된 것도 아주 오래전.

    그 모든 것을 차원미궁관리부에서 처리했다.

    던전이 터져나가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시간 계산, 던전 브레이크가 오기 전에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 헌터들의 리스트 뽑기 및 관리, 몬스터에 의한 피해 복구 예산 관리.

    던전 브레이크가 혹시라도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시민 훈련부터 비상 토벌 계획 등등…….

    즉.

    차원미궁관리부는 실질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조직인 것이다.

    던전이 출현한 이후 최근까지는 제법 훌륭하고, 안정적으로 그런 일들을 처리해 왔던 조직이지만…….

    최근에 와서는 마치 초창기와 같은 위기를 겪는 중이었다.

    갑자기 도심 한복판에 생겨난 던전과 쏟아지는 몬스터로 인한 피해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던전이 성장하는 던전 그로잉 사태였다.

    던전의 성장.

    그것은 안에 헌터들이 들어가 있든 아니든 이루어진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미간에 지렁이 같은 주름을 잔뜩 만든 채로 증기기관처럼 한숨을 내쉬는 중년 남자의 앞에서 불길하게 꿈틀거리는 ‘저것’이었다.

    [레벨 제한 : 40]

    [인원 제한 : 10]

    검은 무언가가 출렁거리며 흔들린다. 그것은 타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고, 그 테두리에서는 신비한 청광색의 입자가 빛나며 흩뿌려졌다.

    보기만 해도 영혼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것.

    던전 포털.

    그러나 그 위에 떠 있는 메시지가 문제다.

    “김 과장, 이거 제한 시간이 얼마 남았다고?”

    중년 남자는 안경을 쓰고 조금은 살집이 두툼한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태블릿 PC를 들여다보며 즉각 대답했다.

    “102시간입니다. 4일 하고 6시간 남았습니다.”

    “대책은?”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긴급 동원 명령밖에는 없습니다.”

    “하아…… 돌아 버리겠네. 희생자가 얼만데?”

    “4개 팀이 전멸했습니다.”

    “하! 40명이나 잡아먹은 거냐? 저게? 아예 빠져나오지도 못했어?”

    “예……. 그래서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진짜 돌아버리겠네…. 이게 그거지? 던전 그로잉으로 성장한 던전.”

    “예. 본래 레벨 20 제한에 인원 제한은 없었던 던전이었습니다만…….”

    “애초에 인원 제한이라는 거 자체가 이번에 새롭게 나온 거잖냐. 이거 어느 쪽에서 들어갔어?”

    김 과장이라고 불린 퉁퉁한 남자는 중년 남자에게 바로 답한다.

    “국내 십 대 기업들 중 넷입니다.”

    “하…… 그중에 눈여겨볼 만한 각성자도 있었나?”

    “안타깝게도…….”

    “진짜 살기 팍팍하구만…….”

    눈앞에 일렁이는 던전 포털.

    그 주변은 콘크리트 벽과 흉악한 현대 병기로 가득 차 있지만, 이것들이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은 중년 남자도 잘 알고 있었다.

    “긴급 동원 명령은 알겠고. 어디다 맡길 거야? 긴급 동원 명령이라고 해도, 안 가려면 안 갈 수 있는 거 알잖아.”

    긴급 동원 명령.

    그것은 국가 위기를 이유로 헌터들에게 강제 동원령을 내리는 행정명령.

    이것을 거역하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살 특공 임무를 받아들일 정도로 막장은 아니었기에, 이런 살인 던전 건이라면 거부할 수 있었다.

    “정하 그룹입니다.”

    “아, 그 녀석?”

    중년 남자는 뭔가 알겠다는 표정이 된다.

    “예. 현재 가장 기대되는 신인. 레벨 80 보스를 혼자 잡은 전적이 있는 이 사람이라면…….”

    “그래. 그 엄지척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녀석… 그래. 그 녀석이라면 이걸 해치워 줄 수 있으려나…….”

    중년 남자는 던전 포털을 노려본다.

    “이게 터지면…… 끝장이야. 알지?”

    “예.”

    “하필이면 여의도역……. 후… 정하 그룹에서 처리하기를 신께 빌어 보자고.”

    중년 남자의 말에 김 과장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폰을 들어서 중년 남자의 뒤에서 폰에 송신된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지한을 넣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그걸 보며 비틀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 * *

    다음 날, 정지한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은 센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모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다음 던전에 관한 논의인가?’

    검기가 발현이 되고 1차 수련 목표는 끝났다. 그 사실을 전하자마자 전화가 오는 걸 보니 아마도 실전이겠지.

    나는 동생을 바이크 뒤에 태우고 빠르게 도로를 달렸다.

    “이번에는 교외네.”

    “응. 내비게이션으로 보니 목장 표시가 되어 있었어. 부지가 넓던데?”

    목장.

    몬스터 웨이브 사태가 터진 이후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건 바로 식량이었다.

    범람하는 몬스터들 때문에 농사를 하는 것도, 이렇게 목장을 운영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던 시기.

    그때 빠르게 발전한 게 바로 AI 농업이다.

    인간 대신 로봇이 대신 농사를 하고 축산업을 한다.

    근방에 게이트가 터지면 신고를 하고 잠시 업무를 멈춘다.

    계약 헌터가 게이트를 터뜨려 없애 버린 후, 농장 유지 보수 인력이 와서 AS를 하고 나면 다시 드론을 일을 했다.

    “정비가는 대체 얼마나 벌었을까?”

    동생 엄무척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글쎄다. 전투 드론 없이는 살아도 농업 드론 없이는 못 사니까 아마 엄청 벌고 있겠지?”

    경쟁사들이 그녀의 농업 드론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그래도 그녀의 왕좌 자리는 변함이 없다.

    그녀의 주특기인 정밀하면서도 유연한 AI 신경망은 다른 회사들도 좀처럼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니까.

    그때 허리춤에서 진동이 울렸다.

    “폰에 뭐 왔네.”

    “나도 왔어. 재난 문자인가 보다.”

    동생이 폰을 열더니 혀를 찼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네. 관련 헌터들 징집 중이래.”

    던전 브레이크.

    던전 생성 후, 제한 시간 내에 던전 몬스터를 처치하지 않았을 때. 몬스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뜻한다.

    제한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던전마다 다르다.

    어떤 건 생성되자마자 몬스터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어가서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의 개체 수를 조절해주면 된다.

    개체 수 조절이 말이 쉽지.

    상당한 양을 잡아야 하는 데다가, 중간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던전이라면 괜찮지만 그게 어려운 던전도 있다.

    그 경우 정부는 그 땅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싸워 이기든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세계 각지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있어. 피해자도 상당하다더라.”

    “던전 그로잉 때문이지?”

    “응.”

    내가 겪었던 버섯 던전 같은 일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던전이 성장하고, 그 성장한 던전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또는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을 때.

    “우리나라도 위험하군.”

    “전문가들이 세계적으로 각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에 다가가고 있다더라.”

    무서운 일이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일이 왜 생기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나는 바이크의 속도를 올렸다.

    “워, 형.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꽉 붙잡아.”

    동생은 웃으면서 날 붙잡은 팔에 힘을 줬다.

    “다음 던전은 쉽지 않을 것 같네.”

    “내가 쉬운 길 간 적이 있던가.”

    무너진 아스팔트를 건너며 산길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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