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31화 (31/305)
  • 제31화

    문이 열리더니 동생이 들어왔다. 촬영을 도와줄 스태프들과 함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자연스럽게 하는 게 돼?”

    “응. 돼. 어차피 영상에 나올 거 아니니까.”

    동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메이크업해 주시는 분이 내 머리랑 옷매무새를 만졌는데 동생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분을 뒤로 물렸다.

    한참 갸우뚱갸우뚱 보더니 갑자기 무슨 전쟁이라도 나가는지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고는 촬영용 화장을 지워 버리고 머리만 조금 헝클였다. 옷도 평소 입는 잠옷을 도로 꺼낸다.

    거울에는 갓 일어난 듯한 청년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이게 훨씬 자연스럽지.”

    그런가. 근데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나?

    으음. 동생이라고 해봐야 고작 팬 아닌가.

    팬이 전문가보다 잘 코디할 수 있나? 그런데 슬쩍 주변을 보니 반응이.

    띠링-

    -카메라맨이 과하지 않아서 이쪽이 더 낫다고 내심 생각합니다.

    -1따봉을 받았습니다.

    팬이 더 잘할 수 있구나.

    “자, 형. 우선 조공 개봉식부터. 그다음에는 은빛 버튼 개봉식이야.”

    영상에는 동생 놈과 나, 둘이 출현했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내가 조공을 뜯는 콘셉트였는데,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상 분위기는 밤에 동생과 둘이서 소소하게 개봉하는 느낌이라면, 실제로는 촬영하고 편집해 주는 스태프들이 같이 있다는 것 정도?

    그렇게 촬영한 영상은 다시 갓튜브에 올라갔다.

    수많은 따봉들과 함께 엄지척이 쾌차했다는 기사가 연예면과 사회면 둘 다 메인 기사 자리를 차지했다.

    동생이 말했다.

    “아, 공식 서포터즈 신청할 거야. 이제 그 정도 규모는 달성한 거 같아.”

    정작 당사자인 나는 이 속도가 무서운데. 네놈은 이게 당연한 모양이구나.

    그렇게 얻은 따봉의 총합.

    13만 2천 따봉.

    대박이 터졌다.

    * * *

    작은 골방, 정비가는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드론들은 절전 모드에 들어갔고, 시계가 똑딱이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

    지하 연구실에 거대한 실험관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는 해부당한 마수들이 포르말린에 담겨 있었고, 어떤 것들은 아직 살아 있는지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그 안에서 그녀는 나직하게 허밍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정비가!”

    “여어, 친구.”

    “친구는 무슨 놈의 친구.”

    흑발의 여인은 투덜거리며 아래로 내려왔다.

    오랜 베스트 프렌드인 그녀는 정비가와 같은 연구실을 쓰고 있다.

    세상의 관심을 끌기가 싫기에 조용히 연구만 하고 있다가 모처럼 방송에 출연하고 오는 길이다.

    정비가가 기계공학을 극한까지 다룬다면, 그녀의 분야는 생명공학.

    김영희.

    정비가와 달리 흔한 이름, 흔한 성. 교과서 지문마다 나오는 이름이다.

    “내 랩실에서 또…….”

    “쉬잇.”

    정비가는 검지를 들어 입술을 막았다.

    그녀의 검지에는 나비를 형상화한 화려한 보석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10억이 넘는 가격대의 반지를 정비가는 몇 개나 차고 있다.

    소박한 김영희와 달리 정비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화려했다.

    가끔 쓰는 안경조차도 브랜드의 패션 디자이너가 정비가를 위해 만든 안경에, 날을 새서 부스스한 머리조차도 패션 잡지에 나올 것처럼 스타일리시하다.

    그런 정비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면 세계가 성장하며 찢어지는 소리를 포착했어.”

    “찢어져? 설마?”

    “그래. 던전 그로잉. 이 세계에 박혀 있던 던전들이 성장하며 우리 차원을 찢기 시작한 거지. 마치 암세포가 발아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나.”

    “거참 불길하네.”

    “응. 하지만 막을 수 없잖아? 모든 것은 성장하고 번창하다 쇠하기 마련이니. 이렇게 즐기기라도 해야지.”

    그녀는 샴페인 잔을 흔들었다.

    “같이 들을래? 널 위해 한 자리 더 준비했어.”

    그렇게 말하며 헤드셋을 하나 더 꺼냈다.

    “무채색 좋아하지?”

    김영희가 한숨을 쉬었다.

    “넌…….”

    “같이 듣자. 이번 던전 그로잉 피해자들 수송하면서 얻은 귀한 연구 자료라고?”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

    그녀는 언제나 자기 페이스로 주변을 휘둘렀으니까.

    그런 정비가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색채에 일생을 무채색으로 살아왔던 영희는 언제나 휩쓸리곤 했다.

    “넌 진짜 변태야.”

    “하하하하.”

    정비가는 한참 웃었다.

    그러고는 친구의 샴페인 잔에 샴페인을 가득 담았다.

    “곧 멸망할 세계를 위해 짠!”

    샴페인 잔이 맑게 부딪쳤다.

    헤드셋에서는 토도도독, 마치 이스트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차원이 찢어지는 소리. 멸망의 전주곡이었다.

    영희가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어. 넌 세상을 구하지 않을 거야?”

    정비가가 고개를 저었다.

    “알잖아. 나는 영웅이 아니라는 거. 나는 내 꿈을 위해 다가올 멸망을 이용하겠어.”

    허무맹랑한 꿈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비가라면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비가가 물었다.

    “그러면 넌?”

    영희가 답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그저 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을 뿐이야. 그걸 생명에서 찾는 것뿐이고.”

    “순수한 건지, 어리숙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비가야.”

    “응?”

    “다시 말하지만 넌 진짜 변태야.”

    “알아.”

    “아, 그리고 네 동생도 변태더라. 정지한이던가? 이상한 부탁을 하고 가던데. 누굴 좀 살려야 하니까 악마의 혈청을 채취해 달라고.”

    “아아.”

    “어이가 없더라. 그리고 대체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 거야? 요즘은 논문도 발표 안 하고 죽은 듯이 사는데.”

    반신격인 악마의 혈청 채취, 보통이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 어려운 걸 영희가 해냈다.

    “정지한 걔도 한 변태 하지.”

    참 이상한 집안이야.

    김영희는 투덜거리며 친구인 정비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 *

    수많은 영상을 업로드하고 엄무척은 훈련을 떠났다.

    이 녀석이 돌아올 때쯤이면 서포터즈 정식 승인이 끝날 거라고 했다.

    나는 퇴원하고 우리 집 소파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높다.’

    3층 높이는 될 것 같은 높은 천장이다.

    어릴 때는 판자촌을 전전했고, 커서는 고시원만 한 기숙사에서 지냈다.

    이렇게 크고 높고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사는 건 상상도 못 했지.

    ‘이야, 적응이 안 되네. 적응이 안 돼.’

    퇴원하자마자 [통찰의 눈] 스킬을 이용해 방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찾아보았다.

    다행히 도청기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그놈의 승계 싸움에 내가 끼어든 모양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정지한이 집을 인수할 때 ‘깨끗하게’ 처리해 놓겠다고 했었는데 믿을 만한 모양이야.

    ‘대체 그놈의 속셈을 모르겠단 말이지.’

    악마의 혈청이라는 귀한 아이템을 왜 굳이 밤에 내 동의도 없이 꽂아 넣고 갔는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악마를 잡을 때 그런 저주에 걸린다는 사실도 몰랐다.

    알려지지도 않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 악마의 혈청이라는 아이템은 대체 어디서 얻은 건지도 모르겠다.

    ‘전리품 목록에는 [악마의 피]밖에 없던데.’

    악마의 시체는 헌터 보조원들의 손에 분해가 되어 내 몫을 제외한 것들이 경매장으로 넘어갔다.

    그것을 정지한이 본인 포켓 머니로 무리해서라도 전부 입수해 내게 주었다.

    친자식에게도 이렇게까지는 못 하겠다 싶다.

    이놈은 대체 나한테 뭘 기대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이걸로 나는 악마의 시신에서 나온 모든 전리품들을 전부 가진 셈.

    심지어 히든 퀘스트 보상인 [악마의 정수]까지 꿀꺽했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악마 전리품들은 전부 되팔아도 된다고 했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네. 나무여.

    아무래도 내가 전생에 정지한이 목숨이라도 구했나 보다.

    ‘아니면 승계 싸움에 이용해 먹으려고 나를 크게 키우고 있는 중이든가.’

    정지한은 비밀이 많은 놈이다.

    그리고 나도 별로 착한 놈은 아니라서 주는 거 사양하지 않는다.

    ‘계속 퍼줬으면 좋겠다. 다 처먹게.’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는 따봉 상점을 켰다.

    [인덕을 쌓은 당신! 더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따봉이 지배합니다!]

    [따봉만이 정의!]

    [상점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옛날에 비해 따봉 상점이 뭔가 더 화려해지고, 열리는 사운드도 웅장해졌군.

    어차피 검색 기능만 꺼내서 찾는 건 똑같은데 말이지.

    나는 스킬 목록을 주르륵 내렸다.

    ‘큰 거 한 방이 필요해.’

    내 전투 스타일은 여러 가지 스킬들을 사용해 연계를 하며 싸우는 방식.

    나와 비슷하거나 강한 수준의 적이라면 싸우기 좋지만 이번처럼 밑도 끝도 없이 압도적으로 강한 적이라면 사정이 달라지지.

    ‘그건 누구나 똑같긴 하다만.’

    그런 적을 만나면 죽는 게 당연하다.

    그게 던전의 법칙 아닌가.

    그래도 그때를 대비한 한 방 정도는 있는 게 좋으니까.

    ‘큰 거라…….’

    차라리 기본 능력치를 올리는 데 투자하는 게 더 좋을까?

    같은 스킬도 깡스텟이 좋으면 대미지가 달라지는 법이다.

    ‘조언이 필요해. 조언이…….’

    나는 폰을 켜고는 능력자 커뮤니티를 찾았다.

    세계 최대의 능력자 커뮤니티, 피그(F.I.G).

    사이트 상징은 무화과로 이곳에는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정보들이 가득하다.

    회원 가입을 하고 헌터증을 인식시켰다.

    엄지척.

    다중 능력자. (A랭크)

    레벨 White.

    -로딩 중입니다.

    랭크와 레벨은 다르다.

    랭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잠재력과 활용도를 본다면, 레벨은 말 그대로 시스템에서 출력하는 경험치 메시지다.

    적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헌터 협회에서 본 내 잠재력은 A랭크. 반면 레벨은 가장 낮은 White급이다.

    10레벨 이하라는 뜻.

    정확하게 숫자로 표기하지 않는 이유는 헌터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서다.

    처음 신체검사를 했던 기계가 레벨도 측정하는데, 기계도 정확하게 레벨을 표시하지 않는다.

    각성자 중에는 몬스터보다 같은 각성자를 죽이는 걸 좋아하는 살인마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저 어림짐작만 한다.

    이 헌터증으로 알 수 있는 건 엄지척이라는 헌터는 잠재력과 스킬 범용성은 강력하나, 아직 초보자라는 것.

    내 동영상만 돌려 봐도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뿐이다.

    ‘곧 A랭크 신인으로 기사도 뜨겠네.’

    같은 레벨 업도 A급 신인과 D급 신인이 다르다. 기대되는 유망주라는 뜻.

    ‘그런데 나는 영원히 1레벨이지.’

    초보자 패키지도 양심 없이 쓰고 있는 마당에 영원히 White에서 머물 예정이다.

    1레벨 개꿀.

    -승인 완료.

    -정회원으로 승인되었습니다!

    ‘오. 헌터 랭킹도 변경되었군.’

    대문에는 이번 달 헌터 랭킹이 있었다.

    SSS급 헌터는 현재 52명.

    1레벨은 최대가 A급이다.

    그 A급들 중, 극소수가 훗날 SSS급으로 올라가게 된다.

    레벨이 표시되지만 색상으로만 지정된다. 이들의 색은 블랙.

    최상위급 레벨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대략적인 능력도 표시되는데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폭풍을 다루는 스톰메이커. 화염계 능력자는 둘이나 있고… 순수하게 검으로만 올린 능력자도 존재하고…….’

    공통점이 있다.

    모두 한 가지 능력을 극한까지 올린 자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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