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봉으로 레벨업-29화 (29/305)
  • 제29화

    개운하다.

    눈을 뜨니 동생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이것 참…. 걱정시켜서 미안하네.’

    가족이라는 게 그렇다.

    차라리 남이거나 전문 간병인이라면 좀 더 쿨해질 수 있으련만. 상대가 가족이면 그저 걱정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해진다.

    ‘여기는 병실인가?’

    몸이 개운하니 드디어 주변을 돌아볼 기력이 생겼다.

    1인실로 꽤 널찍하다. 앞에는 벽걸이 TV가 있고 쾌유를 바라는 화환들이 놓여 있었다.

    ‘乃 엄지야! 빨리 나아라! 검지가 언제나 응원할게! 乃’

    乃는 엄지를 드는 모양이랑 비슷해서 이모티콘 삼아 쓴 것 같네.

    팬 카페가 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화환이 호화롭다.

    거기다가 화환 밑에는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포장된 선물들이 쌓여 있었고.

    선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乃쾌유 기원乃’

    ‘乃우리 엄지 빨리 낫자!乃’

    ‘乃검지가 엄지 많이 사랑해♥乃’

    ‘乃나의 영웅乃’

    ‘乃최강 엄지 빨리 나아!乃’

    ‘乃살아줘서 고마워乃’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풍경이다.

    톱급 인지도의 헌터들이 이렇게 부상을 당했을 때 팬들이 쾌유를 기원하며 모금해서 선물을 보낸다고 들었다.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서포트……던가?

    돈을 모아서 선물을 사서 보내는 주최나 그 집단을 뜻하기도 하고, 이렇게 보내는 팬 사이트 전체를 서포터즈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다.

    옛날 헌터 보조원으로 일할 때, 많은 헌터들이 이런 팬클럽을 갖고 싶어 하며 불평을 했던 기억이 났다.

    잘나가는 인기 헌터들을 보고 얼굴 하나로 떴다느니, 백 퍼 운발로 올라간 거라 조만간 하락세 탈 거라느니 질투를 토했었지.

    처음에는 소규모 서포터들로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그런 서포터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게 되는데, 그걸 헌터 업계에서는 ‘서포터즈’, ‘팬클럽’ 등으로 불렀고.

    아이돌 팬클럽과 스포츠 응원단 두 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헌터라는 직종이 둘 다 해당되기에 그렇다.

    이런 미친 세상이다 보니 헌터 팬들에게 가장 큰 재앙이란 보통 응원하던 헌터가 던전에서 사망을 하거나.

    아니면 던전 밖으로 나온 직후, 병실에서 사망하는 경우.

    이 두 가지.

    운동선수라면 부상으로 끝이지만 헌터는 목숨을 걸고 던전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렇기에 그 위험성에 매료된 인구들이 매년 늘고 있고, 자연히 오늘만 살 것처럼 팬 생활을 하게 된다.

    오늘은 찬란해도 내일 장례식 기사가 뜰지 어떨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서 더욱 순간순간이 소중하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부디 쾌차하길, 후유증 없이 계속 헌터 생활을 이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선물을 보내는 것을 ‘조공’이라고 부른다.

    규모가 큰 서포터즈는 밥차나 음료차를 보내서 밖에서 기다리는 헌터 스태프들까지 챙겨 주기 시작한다.

    ‘물론 겨우 헌터 시험 끝낸 내가 감히 그 정도 규모는 상상도 못 할 일이고.’

    아득해서 상상도 안 된다.

    벌써 조공이 왔다는 것만으로 무척 감사한 일.

    ‘고마워서 어쩌지…….’

    하나하나 후기랑 답장을 보내야 하나?

    다른 스타 헌터들은 어떻게 하지?

    그보다 팬분들이 엄청 걱정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당장 방송 켜서 건강하다고 갓튜브에 인증부터 해야 하나?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히든 퀘스트 정산이 끝났습니다.

    -보상을 클릭해 주세요.

    -던전 클리어 메인 퀘스트 정산이 끝났습니다.

    -보상을 클릭해 주세요.

    늘 기계 같던 메시지가 왜인지 오늘은 인간미가 느껴진다.

    ‘퀘스트 정산으로 뭐가 나오려나?’

    우선 메인 퀘스트 정산을 눌렀다.

    달칵-

    그러자 허공에서 나무 상자가 떨어졌다. 빠르게 상자를 붙잡았다.

    상자를 붙잡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늘 악마의 신전]

    난이도 : 던전 1성 - 중급

    리자드 맨들을 물리쳐 중급 던전 ‘비늘 악마의 신전’을 빠져나가세요!

    퀘스트 도중 따봉 100개를 받으면 추가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보상 : 중급 스킬 교환권.

    추가 보상 : 히든 퀘스트 보상.

    그리고 상자를 열자, 중급 스킬 교환권이 나왔다. 중급 스킬이라. 나는 따봉 상점을 이용하니까… 이거 아주 쓸 만한걸?

    일단 킵하고.

    다음으로 히든 퀘스트 보상 정산을 눌렀다. 역시 상자가 나타났고, 붙잡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히든 퀘스트

    1. 첫 던전 진입에서 후퇴 없이 악마 사냥에 성공함 - Clear!

    2. 제물을 바치지 않고 악마를 공격함 - Clear!

    3. 악마와 전투 시작 후,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만들지 않음 - Clear!

    -세 가지의 히든 퀘스트 조건을 달성한 당신에게 [악마의 정수]를 드립니다.

    상자를 여니 피처럼 붉은색 구슬이 들어 있었다.

    내가 마지막에 죽을힘으로 쪼갰던 그 구슬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으… 형…… 일어났네.”

    동생이 눈을 떴다.

    녀석의 티셔츠에는 나눔고딕 폰트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乃♥최강엄지♥乃]

    ……서포터즈에서 티셔츠도 만든 모양이다.

    팬심이 가득 담긴 이 티셔츠는… 고, 고맙긴 한데 똑바로 쳐다보기 쉽지 않군.

    ‘원래 팬 티셔츠 디자인이 이렇게 뽑히는 건가……. 이 티셔츠 입고 밖에 나가는 건 무리 같은데?’

    그래. 생각해 보니 프로 디자이너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좋은 마음으로 만드셨을 텐데 한순간이라도 이걸 부끄럽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된 거야!

    “아, 이 티셔츠?”

    내 시선을 느꼈는지 동생이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디자인했어. 친동생이 직접 하겠다고 하니까 맡겨 주시더라. 형이 빨리 나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

    “…….”

    아니 뭐, 동생이 형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직접 하겠다는데 거기다가 뭐라고 할 수 있겠니.

    “생각보다 많이들 갖고 싶어 하시더라, 이거. 그래서 많이 찍어서 뿌렸어.”

    왜……지……?

    세상에는 멋진 티셔츠가 너무 많은데 굳이 나눔고딕체에 폰트 크기가 저렇게 큰 티셔츠를 굳이…… 굳이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건 동생이라고 사주신 거다. 그래, 팬심을 우롱하는 장사였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저걸 진심으로 갖고 싶어서 사실 리가 없지.’

    “으…… 그거 팔지 말자.”

    “왜, 형? 벌써 추가 주문 들어갔는데?”

    “하지 마. 하지 마…….”

    자괴감까지 밀려온다.

    -업데이트 2.0을 확인해 주세요.

    -신들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맞다. 신들의 메시지!

    방금 받은 히든 보상, [악마의 정수]와 동생 티셔츠 때문에 잊고 있었다.

    이번 업데이트로 신과 소통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클릭을 하니 한꺼번에 많은 메시지들이 다다닥 떠올랐다.

    -해를 먹는 개가 당신에게 [악마의 정수]를 자신에게 공양할 것을 요청합니다.

    -달을 걷는 자가 당신에게 [악마의 정수]를 자신에게 공양할 것을 요청합니다.

    -바람의 대리인이…….

    ‘뭐, 뭐야? 거지도 아니고 왜 다들 달래?’

    내 이야기를 들은 동생은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공양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긴 할 거야. 문제는…….”

    “……그래. 이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 마구 줄 수는 없지. 거기다가 누구한테 줄지도 아직 모르겠고.”

    머리가 어지럽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리모컨으로 TV를 컸다.

    최신식답게 요란하게 크고 화질도 무슨 거울처럼 선명하네.

    ‘헤에, 요즘 VIP 병실은 이런 것도 잘해 놓는구나.’

    정지한이 돈 좀 쓴 모양.

    큰 병원 VIP 룸은 하루 입원하는 데 얼마나 들려나.

    채널을 달칵달칵 돌리다가 브라운관에 내 얼굴이 보였다.

    [지옥의 헌터 시험, 당국에서는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

    아나운서는 전문가를 앉혀 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김영희 전문가님께선 던전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제가 이미 3년 전에 해당 가설로 논문을 썼으나 학회에서 반려된 적이 있었습니다. 각성자나 몬스터가 그렇듯 던전 역시 레벨 업이 가능한 증거들은 계속 발견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을 ‘던전 그로잉’이라 명명하였었죠.]

    [던전은 또 다른 차원이자 이면 세계라고 앞서 밝히셨는데요. 차원이 하나의 개체로서 레벨 업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네. 가설이 이런 식으로 증명되어 씁쓸합니다만…….]

    전문가는 말을 흐렸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이 정도 피해에서 끝난 것만으로도 이례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원래라면 B급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전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으나 이레귤러 신인들이 섞여 있던 덕분에 클리어할 수 있었죠.]

    화면에는 이번 던전에 공헌한 헌터들의 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공헌 랭킹 5위부터 1위는 시간을 들여서 동영상도 보여 주었는데, 2위 염라두의 모습은 10초가 넘게 비춰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나였다.

    쓰러져서 들것에 실려 가는 내 모습과 던전에서 전투하는 모습이 교차 편집되었다.

    화질도 좋은 것이 마치 당사자가 찍은 것 같아 보였다.

    ‘아, 무척이가 갓튜브에 잘 올렸구나.’

    배경음도 웅장해서 보는 사람 심장이 울릴 정도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를 최초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죠?]

    [네. 던전 그로잉의 가장 큰 문제죠. 들어가기 전까지 성장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 결국 대비하지 못한 수많은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중동과 유럽 각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각 나라의 상황이 빠르게 지나갔다.

    혼란에 빠진 파리와 캘리포니아 초보자 게이트.

    굵직한 대형 게이트에서도 문제가 터졌던 모양이네.

    [단발형 던전뿐만 아니라 재생성형 던전에도 이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클리어 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 던전을 ‘단발형 던전’, 클리어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던전을 ‘재생성형 던전’이라고 부른다.

    내가 들어간 초보자 던전은 재생성형 던전으로, 클리어를 해도 일정 기간 후 리셋돼서 다시 나타난다.

    그 성질을 이용해 헌터 시험을 쳤던 건데 이렇게 일이 터질 줄 누가 알았을까.

    ‘큰일이네. 그렇다는 말은 이제 겉으로 표기된 던전 난이도를 믿을 수 없다는 거잖아?’

    만약 성장 중인 던전이라면 그 짓을 또 해야 한다는 뜻이다.

    헌터가 된 이상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건 각오해 왔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꼬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전멸을 피한 건 한국이 유일합니다.]

    내레이션과 함께 내 모습이 나타났다. 모든 버프를 몸에 뒤집어쓰고 보스 몬스터의 등 뒤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그리고 ‘부서져라!’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선이 되어 내리꽂히는 장면이 이어졌다.

    [보스 몬스터의 몸이 무너지는 모습은 다시 봐도 짜릿하군요?]

    [네, 결국 이 일격으로 클리어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보는 맛이 있는 영상입니다!]

    ‘당시에는 죽을 맛이었지만…….’

    영상이야 멋있지, 그때는 너 죽고 나 죽고였다.

    체력은 간당간당하지, 온몸의 관절은 삐걱거리지, 독에도 당했는데 그때는 당했는지도 몰랐다. 다 피한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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