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365화 (365/379)

365화

“흐그그극….”

태운은 50개의 중급 마정석을 빠르게 흡수하고 캡슐 밖으로 나왔다.

“벌써 20시간이나 지났네….”

50개의 마정석을 흡수하느라고 2시간이나 지나 버렸다.

빠른 속도로 조건을 클리어할 수 있는 마정석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마정석도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빨리 클리어하려고 거대한 마법으로 일대를 날려 버렸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마정석도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자고 일어나서 다시 하죠.”

“그래, 벌써 새벽 3시구나.”

“한 4시간만 자고 일어나겠습니다.”

태운의 몸은 이미 한 달은 자지 않아도 원활한 생활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스트레스는 다른 이야기였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체력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누적됐고 정신적인 피로감은 태운의 뇌에 그대로 쌓여 갔다.

“어, 너도 왔었어?”

그때, 마나로 약 기운을 몰아내는 훈련을 하고 있던 찬영이 방에서 나왔다.

찬영은 상의를 탈의하고 수건으로 흘린 땀을 닦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젊은 여자 연구원들은 쑥덕거리며 좋아하고 있었다.

“샤워실은 저기 있으니 좀 씻거라.”

“예, 감사합니다.”

“같이 가자.”

태운과 찬영은 같이 샤워실로 향했다.

둘은 샤워실로 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약물로 훈련할 생각을 다 했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빠른 속도로 내가 마나를 다루는 실력을 늘리려면 이거밖에 없겠더라고.”“하긴… 마나 컨트롤 실력을 늘릴 방법은 꾸준한 훈련 아니면 그런 방법밖에 없으니까.”태운은 평소와 똑같이 말하는 찬영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정리 잘하고 왔나 보네.”

“뭐가?”

“이번 일 이후에 다시는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 알잖아.”

“아, 그거?”

찬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랑 다를 거 있냐. 헌터가 원래 어제 웃으며 이야기해도 다음 날에는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으로 볼 수도 있는 직업 아니냐.”

“흐음….”

“뭐… 사실 이렇게 말해도 나도 집 가서 좀 유난 떨고 왔어.”찬영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집에 가서 하루 동안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고 식사를 같이하며 평소에는 바빠서 하지 못했던 대화를 많이 나눴다.

평소 던전에 갈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에 찬영의 아버지도 당황했지만 찬영이 잘 안심시키고 왔다고 한다.

“출발하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서 식사나 하려고.”

“그래야지.”

그렇게 말한 뒤 찬영과 태운은 샤워실에 들어갔다.

잠시 후, 둘은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잠시 바깥 공기를 쐬었다.

둘은 밖으로 나오고 하늘만 바라보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솔직히 무섭네.”

둘의 침묵은 찬영의 말로 깨졌다.

“어쩔 수 없지.”

찬영은 사선을 수없이 넘어 왔다.

그리고 찬영은 어리지만, 그 경험들 덕분에 진짜 위험을 느끼는 감각을 갖추게 되었다.

“이번은 진짜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찬영은 루시퍼는 물론 마리아네트의 힘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태운이 말하는 것만 듣고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봐. 그 마리아네트라는 권속이랑 내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냐.”

“…네가 져.”

태운은 잠깐의 침묵 후에 솔직히 말했다.

찬영도 웬만한 권속은 서너 명도 동시에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만의 마기를 루시퍼에게 받아 사용하는 마리아네트는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오만의 마기를 받지 않은 상태의 마리아네트도 찬영보다 강할 텐데 오만의 마기까지 사용하면 찬영이 질 수밖에.

“오만의 마기를 사용하는 마리아네트는 연정아가 전력으로 싸워도 쉽지 않을 거야.”

“하….”

다른 권속들도 오만의 마기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좀 위험했다.

‘물론, 마리아네트가 권속 중에서 특출나게 강한 편이긴 할 거야.’마리아네트 같은 권속이 둘만 있어도 칠죄종의 힘을 능가할 테니까.

아무리 칠죄종에 대한 권속의 충성심이 강하다고 해도 권속의 힘이 칠죄종의 힘을 넘기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았다.

“아마 마리아네트는 연정아가 상대하게 될 거야.”이쪽에는 한 가지 어드밴티지가 있었다.

그건 싸울 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걸 잘 활용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네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연정아와 강태운뿐이다.

강태운은 암묵적으로 루시퍼를 상대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남은 사람은 연정아뿐. 태운의 머릿속에 적혀 있는 대진표에는 연정아와 마리아네트가 싸우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때, 구찬영이 태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조금 위험할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어때?”그리고 그 제안은 둘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 * *

서걱!

작은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이 고블린의 목을 베어 버렸다.

“오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붉은 머리의 젊은 남자는 깔끔하게 베어진 고블린의 목을 보고 감탄했다.

“이거 대단한데…?”

그 뒤에 있던 붉은 머리의 여자는 작은 소년의 실력을 보고 입을 틀어막고 감탄했다.

고블린의 목을 벤 작은 소년의 이름은 카벤.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강태운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놀라던 여자가 다가와서 태운을 보며 옆에 있던 붉은 머리 남자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즉시 전력감인데? 헤른, 넌 어떻게 생각해?”“확실히 대단하네,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수습 대원으로 남기고 항상 내가 옆에서 지켜볼게.”

“그래, 그게 좋겠네.”

태운의 눈앞에 있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두 남녀는 남매로, 카벤이 살고 있는 말타 마을의 자경단원들이다.

‘그리고 내일 말타 마을에 고블린 무리가 습격을 해오지.’그 후, 카벤은 어른들이 몰살당한 마을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하게 된다.

검과 사냥에 재능이 있었는지 카벤은 홀로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결국 카벤은 혼자였다.

산적들에 의해 마을의 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카벤은 홀로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길거리에서 객사하게 된다.

그게 20살이었다.

고작 그런 인생을 산 사람의 기억이 어떻게 중상급 마정석에 실렸냐 하면 카벤의 재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카벤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검에 대해 꾸준히 배웠다면 혼자 도시 하나를 상대하는 최강의 기사가 되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능과 홀로 몰락한 마을의 아이들을 먹여 살린 업적 덕분에 중상급 마정석에 기억이 담긴 것이다.

태운은 그렇게 예상했다.

‘일단 내가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마련했어. 이제 거의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야.’이제 내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고블린을 빠르게 정리하면 된다.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블린 따위는 수천 마리가 오더라도 태운을 이길 수는 없다.

물론, 고블린과 싸워야 하는 이는 태운이 아니라 카벤이라는 아이였지만 그 안에 태운이 들어 있는 한 질 수가 없었다.

“그럼 그 검은 네가 가지고 내일은 아침에 마을 공터로 나와. 자경단원으로서 기본적인 훈련을 마쳐야지.”헤른은 시험에 쓰인 검을 태운에게 주었고 자경단원으로서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헤른은 자경단원의 주 전력 중 하나로, 독학한 것으로 치면 나름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시범을 보여주었을 때 본 대로 평가하자면 투박하지만 검에 확실히 힘이 실려 있고 집중력도 뛰어났다.

그의 나이가 18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참고하면 그의 재능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 옆에 있던 붉은 머리 여자의 이름은 셀린. 그녀는 검과 방패를 사용하며 헤른보다는 검술 실력은 떨어지지만 전장 전체를 보는 눈이 뛰어나 자경단이 정찰을 나가거나 싸울 때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다.

태운은 그 자리에서 둘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집으로 돌아갔다.

“으아…. 어린애 연기하기 어렵네….”

태운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카벤의 나이는 12살. 태운이 평소대로 말한다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조금 연기를 해주어야 했다.

“그나저나… 카벤의 어머니는 어디 계신 거지?”카벤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카벤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파병을 나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동생은 재작년에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들, 엄마 왔어.”

그때, 집의 문이 열리며 카벤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뭐지…?’

태운은 뭔가 불안한 느낌에 방문을 열고 나가 카벤의 어머니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

“…….”

카벤의 어머니는 귀한 고기와 빵을 들고 집에 들어왔지만 카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어린 카벤은 이 모습을 수십 번이나 봤어도 몰랐겠지만, 태운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엄마….”

그 고기의 출처, 그리고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를 태운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미망인의 집안 사정을 이용해 이런 짓을 벌이다니.

“엄마,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어… 어? 아니 그냥… 저기 푸줏간을 다녀왔지. 고기 사려고.”태운의 질문에 카벤의 어머니는 당황하며 카벤의 눈을 피했다.

그냥 넘어가도 태운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태운의 안에 약간이지만 동기화되어 있는 카벤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어려서 몰랐지만 알게 된 지금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태운이 움직이기로 한 이유에는 다른 것도 있었다.

‘아주 성욕에 미쳐 버린 놈들이야.’

태운도 가만히 두고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 * *

‘푸줏간….’

태운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가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푸줏간과 멀리 떨어진, 사용하지 않는 창고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

그 창고 안에서는 땀 냄새와 함께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 창고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태운은 다가오는 인기척에 놀라 창고 구석에 지푸라기를 덮어 몸을 숨겼다.

‘작은 덩치가 이럴 때는 좋구만.’

태운이 지푸라기에 몸을 숨기고 있자 그때, 창고의 문이 열렸다.

“이제 식비 걱정은 안 해도 돼. 우리가 다 챙겨주겠다니까?”

“…알겠어요.”

‘저 사람은….’

푸줏간 주인아저씨와 식량 창고 관리인이 한 여인과 같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여인은 재작년에 전염병으로 남편을 잃은, 카벤의 어머니와 같은 미망인이었다.

‘확실해졌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이용해 미망인들과 잠자리를 가졌던 것이다.

이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태운이 지푸라기를 치운 뒤 나가려고 한 순간.

‘……!’

푸줏간 주인과 식량 창고 주인에게서 익숙한 느낌의 마기가 느껴졌다.

‘여기도 설마….’

태운은 급한 대로 다량의 마나를 사용해 둘의 머리를 장악한 마기를 몰아냈다.

미량의 마기였기에 마나로도 몰아낼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뭘 하려 한 거지?”

마기가 걷히자 둘은 정신을 차리고 하려던 짓을 멈췄다.

“미안하네. 뭔가에 홀렸었나 보네. 힘든 사람을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다니….”“정말 미안하네. 없었던 이야기로 해주게. 그러지 않아도 도와줄 터이니….”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무릎을 꿇고 앞에 있는 여인에게 사과했다.

그 여인은 당황한 듯 보였다.

태운은 급하게 정리를 하긴 했지만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방금 두 남자에게서 느껴졌던 그 마기는 분명 아스모데우스에게서 느껴졌던 그 마기와 완전히 똑같았으니까.

‘어쩌면… 고블린의 공격이 단순한 습격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