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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64화 (364/379)

364화

태운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윤아와 함께 지낸 뒤 바로 짐을 싸서 자하르의 연구소로 향했다.

“얼굴 보기 참 힘들구나.”

“오랜만이네요.”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태운을 본 자하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태운을 맞이했다.

“네가 부탁한 것 때문에 돈 좀 썼단다.”

“제 길드 이름으로 청구해주세요.”

“됐다. 네 덕분에 알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많은데… 양심이 있다면 청구할 수는 없지.”자하르는 태운을 만나기 전부터 각성자가 아닌 사람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기계 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강태운이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사용한 마법의 정보나 마나의 구조 등을 연구해 마정석의 마나를 기계의 에너지로 바꾸고 그걸 활용하는 방법까지 고안해냈다.

그 뒤에 냉장고만 한 기계로 아주 작은 불꽃을 피워낼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효율은 굉장히 나빴다.

냉장고만 한 기계로 라이터 불보다 조금 큰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계에서 나온 불꽃을 본 순간 자하르는 눈물을 흘렸다.

각성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과학의 힘으로 구연해 낸 유일한 성취였으니까.

비록 당시에는 실제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실용성이 떨어졌지만 계속 발전시키다 보면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하르는 그렇게 믿고 꾸준히 연구를 지속했다.

그러던 중 태운이 만들어낸 룬석에서 힌트를 얻어 마법 장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 바로 견인포에 하나씩 넣어 사용했던 ‘마법 큐브’다.

“아직은 섬세한 마법을 사용하려면 큐브의 크기가 서너 배는 커지지만 마정석만 충분하다면 위력은 얼마든지 끌어 올릴 수 있단다.”

“확실히 그건 장점이네요.”

같은 마법도 위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뛰어난 계산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법 견인포에는 컴퓨터가 내장되어 계산을 대신해주니 마정석만 있다면 얼마든지 위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어요?”

“아, 마나 큐브의 구조 말이냐?”

“네.”

마나 큐브는 마나가 흐르기 좋은 금속과 그렇지 않은 금속을 이용해 만들었다.

마나 큐브는 각성자의 마나 회로와 해당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회로를 구현해낸 물건이다.

그리고 그 회로에서 해당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회로만 마나가 흐르기 좋은 금속으로 구성해 그곳으로 마나를 흐르게 해 마법을 구현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발상을 떠올리는 것은 쉬울 수 있다.

자하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정보력이 뛰어나고 창의력도 남다르니까.

하지만 그 발상을 두 손에서 구현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건 어려운 게 분명했으니까.

“일단 이 이야기는 넘어가고, 준비한 물건부터 보지 않겠나?”자하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많이 준비해 두셨나 봅니다?”

“그런 건 눈으로 확인해야지.”

자하르는 눈앞에 있는 방의 문을 열어 태운을 그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와….”

그 방에 들어가자마자 태운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걸 하루 만에 다 모으셨다구요…?”

자하르가 태운을 밀어 넣은 방에는 최소 상급 마정석으로 보이는 마정석 스무 개와 중상급 마정석 12개, 중급 마정석 50개가 보란 듯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하르는 뒤늦게 방에 들어오며 태운에게 말했다.

“하루 만에 다 모은 건 아니고 네가 연구소에 오지 않았던 동안 천천히 모았지 뭐냐. 안 와도 특별한 마정석을 연구할 수 있고 오면 너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았으니까.”

“감사합니다.”

자하르는 예전부터 강태운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자신에게 연구 자료를 안겨준다는 것 하나만으로 실리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원했다.

마정석도 지원해주고, 새로운 능력의 시험장소까지 지원해주고, 자하르가 만든 물건과 태운의 룬석을 함께 팔 때도 거의 돈을 받지 않다시피 했다.

사실, 자하르는 연구자에게 돈은 너무 많으면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돈은 연구를 하면서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자하르는 자신이 만든 물건으로 수십, 수백억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연구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돈과 아내에게 구박을 받지 않을 정도의 돈만 벌고 있었다.

“아 참, 지금 연구소에 구찬영도 와 있다.”

“네? 찬영이도요?”

구찬영도 허덕륜과 똑같이 훈련을 하려고 할 것임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찬영이 지금까지 훈련을 한 곳은 예전부터 항상 훈련을 해왔던 그 지하 훈련장이다.

훈련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소보다 익숙한 곳에서 하는 것이 나을 텐데 굳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번 만나보겠나? 녀석, 아주 힘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더군.”

“네?”

태운은 자하르의 말에 혹시 찬영이 약물을 사용한다든가 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

자하르의 연구소에는 근력 증강제와 신경 강화제 등등, 불법으로 지정되어 있는 약물도 실험용으로 비치해두고 있으니까.

‘찬영이가 그런 일을 할 녀석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될지 몰라.’물론, 약물을 하면 순간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약물은 근육을 좀먹고 신경을 느슨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집중력의 저하까지 이끌어낸다.

장기적으로는 찬영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네가 걱정하는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약물을 사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 건 아니야.”

“네?”

자하르는 태운의 불안한 모습에 찬영이 불법적인 약물을 사용하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직접 눈으로 봐라.”

자하르는 버튼을 눌러 구찬영이 훈련을 하고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어?”

구찬영은 가부좌를 틀고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

태운은 그 모습을 보고 구찬영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나 회로 안의 마나를 운용해 약 기운을 몰아내는 훈련을 하고 있네요.”

“그래, 그 말대로야.”

구찬영은 경이로운 마나 회로와 경이로운 마나 코어를 얻으면서 한 번에 운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대폭 상승했다.

하지만 찬영은 한 번에 늘어난 마나의 양에 적응하지 못하고 천천히 실력을 늘려가고 있었다.

즉, 마나를 많이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마나의 사용에 있어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게 구찬영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점이었다.

‘그 단점을 마나를 사용해 약물의 기운을 몰아내면서 해결하려는 거겠지.’약 기운을 몰아내는 것은 단순히 대량의 마나를 마나 회로에 흘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찬영이 하는 훈련은 약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마나의 양을 천천히 줄이며 훈련하는 것이다.

사용하는 마나의 양을 줄이면 마나를 활용하는 디테일이 높아져야만 약 기운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에 저절로 마나 사용에 대한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생각하기 쉬운 방법은 아닌데 말이지.”

그도 그럴 게, 헌터는 자신의 몸이 자산이다.

혹여나 약 기운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실수라도 해서 약물에 중독이라도 된다면 몸에 크게 손상이 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태운은 찬영의 방식을 존중하기로 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자신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찬영이가 이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완벽한 육각형 헌터가 되겠네.’그것도 꽉 찬 것을 넘어 그래프를 뚫는 육각형 말이다.

* * *

“아마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얻을 건 많이 없을 겁니다.”

“그래, 알고 있다.”

태운은 마정석 흡수를 준비하며 자하르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힘을 위해서 마정석을 흡수하는 게 아니냐. 시간도 없으니 다 때려 부수면서 진행하겠지.”“네, 그 말대로입니다. 말 그대로 다 때려 부수면서 진행할 겁니다.”태운은 그 말을 내뱉고는 중급 마정석을 손에 쥐고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마정석 흡수.’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가도, 잭, 레일로프, 라온의 마정석 안 세상을 진짜 세상으로 만들어준 뒤 처음으로 하는 마정석 흡수였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칠죄종을 죽이기 전 마지막 마정석 흡수가 되겠지.’태운은 과거에 처칠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운명 비유를 떠올렸다.

‘쉽게 말하자면 네 녀석은 불가사리야. 필요한 것은 모조리 잡아먹으며 언제까지나 단단해지고 몸집을 불려 나가겠지.’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그것을 극한까지 활용한다.

그게 태운의 강함이었고 그것이 태운의 진정한 힘이었다.

후-우웅.

태운의 의식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운이 눈을 감았다가 뜨자 태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자신의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수백 명의 병사들과….

“““우오오오!!!”””

“녀석들을 성벽 채로 짓밟아라!”

벌벌 떨고 있는 병사들을 공격하러 달려오는 수만의 병사들이었다.

“…….”

어떻게 보면 특별한 마정석, 아니, 기억의 신이 만든 기억의 수정은 패배자들의 기억과 염원을 담은 물건이다.

지금 태운이 보고 있는 것은 패배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주인이 태운에게 바라고 있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보여주는 것.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패배자의 자기 위로일 뿐이라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하고 그저 역사와 기억의 주인이 보는 것일 뿐.

‘그래서 뭐?’

어차피 죽은 거, 그 흔해 빠진 정신 승리 한번 해보겠다는데.

현실에 치이고 치여 결국에는 억울한 죽음까지 맞이했는데 죽어서까지 힘들 필요가 있는가?

그들이 바라는 건 자신을 죽인 원수에게 자신의 몸으로 복수하는 것.

그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흔해 빠진 정신 승리를 대신 이뤄주는 사람.’태운은 자신의 머리에 들어오는 몸의 주인의 기억을 느꼈다.

그도 가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명장이라고 치켜세워지며 방패로 이용당하다가 결국에는 버림받아 죽는 그런, 역사에 한 번쯤은 있을 법한 그런 장군.

그는 수백 명의 병사들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 수만의 병사들과 싸워보았지만 결국은 3시간 만에 함락당했다.

그는 가족을 눈앞에서 잃은 뒤 참수를 당해 죽고 효수까지 된다.

“날 보아라!”

태운은 확성 마법을 사용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우렁차게 퍼지는 태운의 목소리에 병사들은 놀라서 태운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태운은 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보여주는 것뿐.

태운은 아주 오랜만에 사용해 보는 마법을 준비했다.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지고 완성도가 올라간 그 마법.

태운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고위력, 광범위 마법.

그리고 마정석 흡수를 하면서 가장 긴 인연으로 남은 그 사람의 몸으로 사용했던 마법.

“뇌우(雷雨).”

가도의 몸으로 처음 사용했던 그 마법이 다시금 태운의 손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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