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336화 (336/379)

336화

“허억… 허억….”

김수백은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겪어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절망적인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지원이 올 거라며 기대하고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원은커녕 지원을 보낼 본부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건 전대섭 대장의 지원뿐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전대섭 쪽의 상황도 여기와 별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니… 전대섭 대장이 간 곳에는 칠죄종의 권속 중 한 명이 갔다고 했으니… 여기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을 수도 있어.’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신체가 한계에 달하니 집중력이 떨어졌다.

계속해서 다른 잡생각이 떠올랐다.

‘강태운… 태운이가 살아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김수백은 강태운이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단 김수백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헌터들이 강태운의 빈자리를 너무나도 크게 느끼고 있었다.

“허억….”

그에게 훈련을 받아 C급 헌터 밑바닥에서 B급 상위권 헌터가 될 수 있었던 김수백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해져도 힘은 언제나 부족했다.

지키고 싶을 것을 지키려면 더욱 큰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김수백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큰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그래서 강태운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하지만 강태운은 죽었고 김수백은 망연자실했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빛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니까.

전대섭, 구찬영, 셀, 허덕륜, 하오 등등 강한 헌터들은 많았지만 강태운과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제발….’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헌터들이 한마음으로 이 세상을 지키고자 했으니까.

털썩!

김수백의 옆을 지키던 헌터 한 명이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푹 쉬어라.”

김수백은 오늘 처음 만나 이름도 모르는 그의 명운을 빌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 태어나지 말고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길.

“으아아악!!!”

김수백은 기합으로 빠져가는 몸의 힘을 다잡았다.

‘내 한계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다!’

난 단순히 지친 것일 뿐, 아직 내 몸의 한계는 오지 않았다.

김수백은 스스로를 그렇게 세뇌했다.

세뇌의 효과일까?

김수백은 쓰러져가던 몸을 일으켜 세워 눈앞의 적을 맞았다.

같은 조의 헌터는 이미 모두 죽었고 김수백 혼자 남았다.

반면에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이 상황은 김수백이 가장 뛰어난 힘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난 수문장, 이 뒤로는 아무도 가지 못한다.”김수백은 옆에 있던 헌터의 방패를 주워 들고 어깨에 밀착해 방어 태세를 갖췄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앞의 몬스터가 나를 공격하는 게 두려워.’하지만 이겨내야만 했다.

자신이 뚫리면 이 뒤의 시민들은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몰살당할 테니까.

“으아아!!!”

쿵!

“큭!”

김수백은 달려오는 몬스터의 공격을 방패로 받아냈다.

온몸이 저릿저릿해지고 뇌가 울릴 정도의 충격이 방패 너머로 전해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서걱!

김수백은 가장 앞에 있는 빅포를 반으로 갈라 버리는 데 성공했다.

‘뭐야… 내가 빅포를 한 번에…?’

빅포는 B급 상위권의 대형종 몬스터이다.

마법 방어력이 약해 마법사 웨퍼가 있다면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워낙 덩치가 큰 탓에 근접 공격을 하는 헌터들과는 상성이 안 좋은 편이었다.

김수백은 지금 그런 빅포를 단칼에 반으로 베어 버린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간다.’

김수백은 몰랐지만 한계를 넘은 김수백은 특성과 스킬의 변화를 겪었다.

수문장이었던 그의 특성은 ‘통곡의 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뒤를 넘어가려거든 날 죽여야 할 거다.”작은 방패와 80cm 길이의 검을 들고 있는 김수백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A급 못지않게 강렬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다른 빅포는 김수백의 도발에 화가 났는지 달려와서 강력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읍…!”

쿵!

김수백은 방패로 빅포의 공격을 막아내고 빅포의 다리를 단칼에 잘라냈다.

[크워어어어!]

빅포는 고통에 소리쳤지만 몬스터들에게 통곡의 벽이 된 김수백은 자비가 없었다.

서걱!

김수백은 빅포의 목을 베어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쉴 틈도 없이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놀 5마리.’

거의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수백도 나름 태운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푸욱!

김수백은 가장 먼저 달려오는 놀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크, 크륽….]

목이 관통된 놀은 잠깐 발악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퍼억!

김수백은 방패로 왼쪽에 있던 놀 두 마리를 강타해 밀어냈다.

서걱!

그리고 생긴 틈에 오른쪽에 있던 놀의 목을 날려 버렸다.

“후우….”

퍼억!

그리고 정면에 있는 놀의 복부를 발로 차 날려 버렸고 방패에 머리를 얻어맞아 정신을 못 차리는 놀 두 마리를 차례로 죽여주었다.

“후….”

푸욱!

김수백은 놀을 상대로 조금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크윽….”

하지만 애초에 2차 각성을 한 덕분에 잠시 움직일 수 있었던 몸.

시간이 지나자 김수백의 몸은 빠른 속도로 지쳐갔다.

심지어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심장에 큰 부담을 주었고 김수백은 심장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그것을 몬스터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몬스터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김수백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가는구나.’

마지막 순간에라도 각성해 몬스터들을 조금이라도 더 데려갈 수 있었으니 만족하는 김수백이었다.

그때, 김수백의 정신을 바짝 들게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귀 막고 눈 감아!!!”

김수백은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강태운이라는 것을.

그것을 확신한 김수백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콰아아앙!!!

그러자 뒤에서 엄청난 크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핵폭발을 연상케 하는 위력의 폭발이었다.

[크워어어엉!!!]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던 헌터들과 달리 몬스터들은 거대한 소리와 강렬한 빛에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헌터들의 안위를 생각해 후방에 폭발을 일으킨 탓에 전선에 있는 몬스터들은 충격으로부터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강태운… 살아 있었구나.’

김수백은 강태운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안 상태로 죽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강태운이 이 세상을 지켜낼 거라는 믿음과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부-웅!

잔뜩 성이 난 빅포와 트롤크, 놀이 주저앉아 무릎 꿇고 있는 김수백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쾅!

“어…?”

김수백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강태운의 목소리.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다들 쉬셔도 좋아요.”참으로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강태운은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그 말은 헌터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모두 돌격! 이 땅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섬멸해라!”두두두두두!!!

주변의 그림자에서 깨어난 그림자 병사들이 몬스터들을 향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돌격했다.

‘이겼다.’

강태운이 왔기 때문에 얻은 승리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버텨낸 헌터들이 있었기에 얻어낸 승리였다.

그림자 병사들의 뒤에서 더 강해진 자신의 힘을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하면서 김수백은 천천히 잠이 들었다.

* * *

“살아 있었구나!”

서울 방어전이 끝나고 30분 정도가 지난 후, 전대섭이 서울 헌터 연합 본부에 들어오며 소리쳤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길래 쟝이 동귀어진을 한 줄 알았다…!”전대섭은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죽은 줄 알았던 제자가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오자마자 큰일을 해결했으니까.

“동귀어진이라…. 쟝이 저를 가두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긴 했죠.”

“그건 무슨 말이냐.”

전대섭은 태운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아, 그게….”

태운은 지금까지 있던 일을 전대섭에게 전해주었다.

쟝과 싸우다가 가둬진 일부터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까지 설명했다.

“한 달 동안 그런 일이 있었군….”

전대섭은 강태운이 한 달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들으며 흥미로워했다.

하지만 전대섭뿐만 아니라 강태운도 궁금한 게 많았다.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강태운은 한 달 동안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쟝의 말로 추측해 칠죄종이 강림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외의 사건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래…. 너도 칠죄종이 강림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태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전 전쟁에서 승리한 우리는 칠죄종의 하늘섬을 수색하던 중 수상한 제단을 발견했다.”태운은 쟝이 말했던 의식에 대해 떠올렸다.

“혹시 그게 칠죄종을 불러오는 의식이었습니까?”전대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알겠더구나. 마기와 반대인 힘으로 소멸시키지 않으면 이 의식은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나를 가둔 거구나.”

전대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를 가두고 의식을 계속 진행한 거였어. 하지만 우리도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다. 과학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에테르로 마기를 없애 보려고도 했지.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마지막에는 제단을 부숴보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 제단은 겉치레일 뿐이었으니까.”

“젠장….”

강태운이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칠죄종의 강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책하지 말거라. 우리가 칠죄신교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연정아와 허덕륜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전부였을 만큼 극히 적었으니까. 대원로 후보였다고는 하지만 그들에게 모든 걸 알려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분한 건 어쩔 수 없군요.”

태운은 이를 갈았다.

전대섭은 그런 태운을 두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강림 직후 하늘섬에 다섯 개체의 칠죄종이 모두 강림했다. 이미 강림해 있던 사탄과 우리가 쓰러뜨린 아스모데우스를 제외하고 말이지. 그들은 그곳에서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어. 칠죄종이 서로 가까이 있을 때 힘을 사용하면 죄악의 충돌 때문에 존재력이 약해진다고 하더군. 그 덕분에 그 장소에서 바로 도망칠 수 있었다.”칠죄종과 한 번에 싸워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이후 칠죄종들은 각각 다른 대륙으로 흩어져 권속과 몬스터들을 이용해 헌터들을 공격하고 있다. 칠죄종이 강림했던 중국의 영토 중 80%는 이미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이 되었다.”

“네… 그건 봐서 알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이곳까지 날아오면서 보았다.

중국은 이미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자리를 잡은 칠죄종이 누구입니까.”“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자리를 잡은 나태의 벨페고르다.”강태운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터들이 회복되는 대로 몽골로 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