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307화 (307/379)

307화

“늦어서 미안하구나.”

전대섭이 태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태운은 전대섭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에테르 배리어.”

전대섭도 태운을 따라 에테르로 배리어를 생성했다.

“막을 수 있을까요?”

“막아야지. 못해도 할 수 있게 해야지.”

태운의 물음에 전대섭이 대답했다.

지금은 에테르에 의해 마기의 폭발이 조금 늦어지고 있었지만 곧 폭발하게 될 것이다.

서울을 넘어 경기도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전대섭의 말대로 못해도 막아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까지 지켜 왔던 모든 게 사라지게 되니까.

“젠장….”

허덕륜은 전대섭과 태운이 에테르 배리어로 어떻게든 마기의 폭발을 막아보려고 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전대섭과 태운은 진땀을 흘리며 에테르 배리어를 유지하고 있지만 허덕륜은 그것을 바라만 봐야 했으니까.

‘이런 상황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무슨 스승이냐….’허덕륜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태운에게 따라잡혔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었다.

청출어람.

스승의 입장에서 그것만큼 뿌듯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은 스스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프스스슷….]

태운, 허덕륜과 싸우고 있던 드네이크가 경련을 일으키며 마기 구체에 마기를 빼앗기고 있었다.

그 마기의 양을 보니 드네이크는 칠죄종의 마기를 이 세상으로 보내기 위한 매개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거 칠죄종의 마기인 거 같다.”

“왜죠?”

“저 양을 봐라. 저건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마기의 양이 아니야.”전대섭의 말이 맞았다.

경기도 전체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마기 구체를 만들고도 마기는 계속해서 보충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되면… 막을 수 없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곤란하지.”

전대섭은 에테르 배리어의 모양을 바꾸었다.

폭발을 일으킬 마기 구체와 드네이크를 함께 에테르 배리어로 가두었다.

태운도 전대섭의 생각을 읽고 똑같이 에테르 배리어의 모양을 바꾸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배리어가 절대 깨지면 안 돼.”전대섭은 그렇게 말하고 마나로 폭발 촉매 마법을 시전했다.

마기 구체가 더 강해지기 전에 일부러 폭발시키려는 것이다.

퍼-.

삐-.

폭발 소리가 어찌나 거대했는지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고막이 찢어진 것이다.

“크윽….”

마기의 폭발이 에테르 배리어를 마구 공격했다.

태운은 계속 마나로 에테르를 만들어 에테르 배리어를 끊임없이 보수했다.

“으윽….”

하지만 마나에서 에테르만을 추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태운의 머리는 지끈지끈할 정도로 복잡해졌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전대섭이 존경스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수십 시간 같았던 1분이 지나고 마기의 폭발이 끝났다.

반투명한 에테르 배리어 너머로 뼈만 남은 드네이크만이 보였다.

털썩.

태운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태운의 마나가 완전히 바닥나 있었다.

엄청난 긴장 때문에 온몸의 근육 또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리제너레이션 덕분에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찢어진 고막 또한 금방 회복되었다.

“태운아 괜찮냐!”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전대섭과 허덕륜은 각자의 회복 마법을 활용해 찢어진 고막을 재생하고 태운에게 달려왔다.

태운이 바닥에 쓰러지자 무슨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놀란 것이다.

“아, 아뇨….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저 압박감에 놀랐을 뿐이다.

과거 신의 아바타였던 모우데라투스와 싸울 때나 기억의 신을 만났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압박감이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졌던 위압감은 경외심과 비슷했지만 칠죄종의 마기를 직접 보았을 때의 위압감은… 마치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듯한 위압감이었어.’태운은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태운이 느낀 것은 극한의 공포였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깊은 공포를 느낀 적은 없었던 태운은 그것이 공포인 줄도 몰랐던 것이다.

“다행이구나.”

“후우… 앞으로 바빠지겠구나.”

폭발도 막아내고 드네이크도 제거했지만 둘의 표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대섭은 바로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 황 비서인가. 나일세. 협회장 좀 바꿔줄 수 있겠나.”-네, 알겠습니다.

전대섭이 급하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한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었다.

“지금 급하네. 전 세계 헌터 협회의 협회장들과 요직에 있는 헌터들을 소집해서 대책 회의를 열어야 해.”-아니, 이 양반아. 무슨 일인지는 말해줘야지. 급하다고만 말하면….

“칠죄종의 짐승이 명운 아카데미 운동장에 나타났네. 협회장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급한 대로 수습만 하고 대책 회의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게.”-칠죄종의 짐승이라니…. 자네 진심인가? 장난이라면 정말 가만히 있지 않겠어.

협회장도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런 걸로 장난칠 사람처럼 보이나?”-하….

협회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전대섭에게 물었다.

-혹시 어떤 칠죄종의 짐승이 나타난 건지는 아나?

“잠시 기다려보게.”

전대섭은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태운에게 물었다.

“혹시 칠죄종의 짐승이 어떤 칠죄종의 짐승이었는지 알 만한 단서가 있나?”“신태연이 본인 입으로 질투와 분노의 좌를 맡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태연?”

전대섭은 드네이크가 어떻게 나타난 건지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태운은 드네이크가 나타난 정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군…. 알겠다.”

전대섭은 다시 귀에 휴대폰을 가져갔다.

“질투와 분노라고 하는군.”

-하필 그런 최악의 조합을….

“저번 전투에서 죽은 녀석들이 바로 그 녀석들이니까.”-일단 알겠네. 자네도 자네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빨리해 주게.

“그럼 대책 회의 때 보지.”

전대섭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태운을 불렀다.

“태운아, 잘 들어라.”

“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말고 잘 봐둬라.”그때, 태운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창 훈련 중인 헌터들을 가르치고 있을 구찬영이었다.

“무슨 일이야?”

-야! 갑자기 헌터들이 미쳐서 서로 공격하고 난리 났어!

“뭐…?”

그때, 명운 아카데미의 허공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가끔 뉴스가 뜨면 자동으로 켜지게 설정된 홀로그램이었다.

[긴급 보도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서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중현 기자가….]

태운은 그다음 화면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현재 현장에 나와 있는 김중현 기자입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갑자기 공격하는 사람들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괴성을 지르며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개중에는 헌터들도 있어서 벌써 사망자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헬기에서 급하게 말하는 기자 너머로 충격적인 광경이 보였다.

서로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을 공격하는 누나와 주변에 떨어져 있는 흉기로 노인을 때리는 고등학생까지.

이보다 더 추악할 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 다른 사람들은 못 봤을지 모르지만 동체 시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태운에게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욱!”

태운은 그 모습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구토를 했다.

너무나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전대섭과 허덕륜도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둘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칠죄종이 정말 끔찍한 녀석들인 이유다.”전대섭의 말이었다.

그리고 허덕륜이 그 말을 이어나갔다.

“방금까지 사랑을 속삭였던 연인이 서로를 죽이게 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있지도 않던 질투를 일으켜 다른 이를 죽이게 하고 어머니가 10달을 품어 낳은 아이마저 스스로 죽이게 하는 끔찍한 녀석들이다.”태운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말을 끝까지 들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유도 그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희생해 녀석들을 마계로 되돌려놓은 것이다.”태운은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강태운은 바닥을 박차고 일어났다.

“녀석들을 쳐 죽이는 데 목숨 걸겠습니다.”예전부터 스스로 생각은 해왔었다.

칠죄종이 나타난다면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녀석들을 죽여야겠다고.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다짐은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생각만 했던 그 일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

전대섭이 태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야 너에게서 대장님의 모습이 보이는구나.”전대섭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강철운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자신이 강철운의 역할을 대신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음 세대는 너에게 맡기마.’

전대섭은 그렇게 생각하고 태운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빨리 가보거라. 네 길드도 난리가 났을 터이니.”

“네, 알겠습니다.”

* * *

“형님.”

태운이 가고 전대섭과 허덕륜 둘만 남아 전대섭의 사무실에서 대책을 생각하고 있을 때, 허덕륜이 입을 열었다.

“왜 부르나.”

전대섭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필요한 자료가 있나 찾아보고 있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 잠시 한국을 떠나있을까 생각하고 있어.”

“뭐?”

그 말을 들은 전대섭이 놀라며 되물었다.

“한국을 떠나 있겠다고? 지금 이 상황에?”

허덕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말로 중요한 상황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잖나. 왜 그러는 거냐?”

“지금으로서 나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해.”

“그게 무슨….”

허덕륜은 전대섭의 말을 끊었다.

“몬스터를 잡고 다른 강적을 견제하면서 길을 열어 줄 수는 있겠지.”

“그것만으로도 엄청 큰 도움이….”

“알아. 그 일이 헛된 일이라거나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야.”

“그럼 왜 그런 거냐.”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래.”

자신은 구세대의 영웅이라 불리고 있다.

하지만 허덕륜은 구세대의 영웅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아니, 구세대의 영웅으로 남더라도 그게 지금이어서는 안 됐다.

“한 번만 더 아니, 저번보다 더 열심히 싸워보고 싶어.”허덕륜은 과거 1차 데블스 에이지 때 큰 부상을 입고 수년간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렇게 데블스 에이지가 끝나고 허덕륜은 너무나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참여했으면 한 사람이라도 더 지킬 수 있었을 텐데.

한 명의 전우가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런 후회를 다시 만들고 싶지는 않아.”

허덕륜은 부탁했다.

“내 공백은 형님이 잘 메워줄 거라 생각해. 얼마 안 걸릴 거야. 한 달, 길어봐야 두 달이겠지.”허덕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만 기다려줘. 죽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게.”전대섭은 더 이상 허덕륜을 말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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