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가도는 천천히 다가오는 가웨인을 보고 방금 일어난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덕분에 산 건 알겠구나.”“긴장하세요. 이제부턴 까딱하면 죽습니다.”“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느껴지는 기운부터가 다르긴 하구나.”태운과 가도는 천천히 걸어오는 가웨인을 보면서 긴장했다.
“방금 번개를 떨어뜨리는 스킬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습니다.”천상의 번개는 위력이 뛰어난 대신 재사용 대기 시간이 꽤 긴 편이다.
태운의 기억으로는 아마 3분이었던 것 같다.
아수라를 상대할 때 당시의 기준이기에 더욱 길 가능성도 있었다.
“3분 동안은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3분이 지나면 방금 그 스킬을 맞고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겁니다.”
“알겠다.”
태운이 조용히 가도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을 때 가웨인이 입을 열었다.
“적국의 장수지만 그 전략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전략?”
“군대의 선봉에 가짜를 세워두고 이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던 게 아닌가? 허를 찌르는 대담한 전략이었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가웨인은 태운이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가웨인이 확실하게 태운보다 마법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야.’
가웨인이 태운의 마법을 간파하지 못한다는 것은 태운에게 다시 한번 그의 허를 찌를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니까.
가웨인이 태운의 마법을 간파할 수 있었다면 그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졌을 터였다.
“네놈들을 빨리 베어 버리고 병사들을 지키러 가야 하니 봐주는 건 바라지도 마라.”
“용사라는 놈이 말은 참 살벌하게 하네.”
태운은 가웨인은 도발했다.
도발을 해서 어그로를 자신에게 돌린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가웨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보다 내가 녀석의 공격을 받아내는 게 조금 더 막아낼 가능성이 높으니까.’게다가 가도보다 태운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더욱 많으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다.
태운이 긴장한 상태로 검을 쥐고 가웨인의 앞에 서자 가웨인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심스럽군.”
“뭐….”
카-앙!
태운이 대답하려는 순간 가웨인의 검이 태운에게로 날아왔다.
태운의 눈으로도 쫓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지만 태운은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태운이 공격을 막아내고 전과 마찬가지로 가도가 가웨인을 공격하려 했지만 완전한 축복을 사용한 가웨인의 속도와 힘은 전과 차원이 달랐다.
키이잉!
가도가 공격하려는 순간, 가웨인은 순식간에 공격을 알아차리고 가도에게 검을 휘둘렀다.
가도는 금속으로 된 오른팔로 가웨인이 휘두른 검을 흘려냈다.
‘폭검, 16연격.’
태운은 폭발의 힘을 실어주는 폭검과 순식간에 검을 16번 휘두르는 16연격을 동시에 사용했다.
이 공격을 허용한다면 아무리 가웨인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공격이라는 것을 짐작한 가웨인은 뒤로 물러났다.
“어딜 가려고!”
태운은 뒤로 물러나는 가웨인을 따라가 계속 공격했다.
카앙! 펑! 캉! 퍼엉!
태운이 검과 가웨인의 성검이 맞닿을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고 가웨인의 표정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공격이 통하는 건가…? 아니, 가웨인이 이 정도 폭발의 여파에 큰 피해를 입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무슨 이유가….’태운은 자신이 준비한 공격이 끝난 뒤 바로 물러났고 이번에는 가도가 다시 가웨인에게 달려들었다.
가도는 자신의 금속팔과 검을 적절히 사용해 가웨인을 상대했고 가도와의 전투 중 생긴 가웨인의 빈틈에 태운이 공격을 시전했다.
‘젠장… 빈틈을 공격해도 피해를 입지 않아….’둘의 맹렬한 공격에도 가웨인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둘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웨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기만 했다.
태운과 가도는 어째서 그의 표정이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계속 공격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니 그게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태운과 가도는 가웨인에게 큰 공격을 성공시키진 못했지만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았다.
검을 맞은 적은 없지만 주먹과 발차기 몸통을 활용한 가웨인의 공격을 몇 번 허용한 탓에 온몸에 멀쩡한 곳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치명적이라는 압박감과 긴장감에 평소보다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탓인 것 같았다.
워낙 전투 템포가 빠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10분간의 전투로 가도와 태운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가웨인의 표정은 펴지질 않았다.
그리고 가웨인은 분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들같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어째서 나와 항상 척을 지는 것이냐….”
“무슨 말을….”
“같이 힘을 키워나가 공공의 적을 몰아내도 부족할 판에 어째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냐는 말이다!”그 말을 들은 태운은 케빈에게 들었던 ‘가웨인의 충성심’에 대해 이상한 점을 상기해냈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의문이군. 왜 이 세상을 전부 집어삼킬 것처럼 전쟁을 벌이는 헤온 제국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거지?”“어쩔 수 없지 않은가! 헤온 제국은 현존하는 국가 중 가장 강한 나라다. 전쟁을 멈추지 못한다면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내고 힘을 키워야 하지 않겠나!”가웨인은 태운에게 호소하듯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귀에는 용사의 사명감에 찬 말로 들렸겠지만 태운에게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힘든 점을 토로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긴… 해봐야 18살에 불과한 아이다.’
이곳에서야 성인이지만 현실로 따지면 아직은 부모의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랄 나이다.
하지만 그는 용사, 강하게 자랄 필요가 있었다.
“그게 이유라면 너는 아주 멍청한 선택을 한 거다.”
“그게 무슨….”
“너는 실패한다. 20년 안에 나타날 ‘아수라’라는 괴물에 의해 이 세상에 있는 생명체는 모두 죽어 버릴 거다.”
“아수라… 그걸 어떻게….”
가웨인은 아수라의 이름을 듣고 놀란 것 같았다.
“신탁으로 내려온 아수라라는 이름을 네놈이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가웨인의 입장에서 태운은 악인에 가까웠다.
수십만 명의 병사를 학살하고 그 병사들을 제물로 삼아 괴물을 만들어 여기까지 온 사람이었으니까.
마치 리치나 네크로멘서 같은 악마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가웨인은 태운의 말에 더욱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20년 후의 네 몸으로 아수라와 싸워본 적이 있다.”
“그게… 무슨….”
가웨인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몸으로 아수라와 겨뤄 봤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다른 세상에서 왔다.”
“나를 현혹하지 마라!”
“하지만 믿어야 한다.”
태운은 혼란스러워하는 가웨인에게 말을 계속 걸었다.
가웨인의 이상한 충성심의 근원을 안 이상 그를 포섭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아수라가 아닌 칠죄종이라는 일곱 괴물과 싸우고 있다.”“너 같은 살인귀가 너의 세상에선 용사란 말이냐? 이해할 수 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가웨인은 혼란스러운 나머지 태운의 말을 조금도 믿지 못했다.
아니,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태운은 알 수 있었다.
가웨인이 아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수라는 여러 개의 팔을 단 붉은 피부의 괴물이다. 아수라의 자격은 요괴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가 가지게 되지. 그런 만큼 녀석은 힘은 물론 실력까지 준수하다.”“가이아 교단에서 네놈에게 정보를 흘린….”이것도 가이아 교단 내에서 알아낸 정보인 듯했다.
가웨인의 말로 미루어보아 기밀 정보 중 하나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사람들을 지키기는커녕 아수라를 상대할 수조차 없다.”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의 태운도 아수라와 싸우라고 한다면 한숨부터 나올 것 같았으니까.
하물며 마법 실력도 떨어지는 지금의 가웨인은 아수라의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
“나 믿어라, 헤온 제국은 너를 더욱 위로 끌어올려 주지 못해.”헤온 제국은 단순히 가웨인의 강함을 보고 돈과 시설을 제공해준 뒤 전략 무기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웨인도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헤온 제국이 무너지고 대륙이 나뉘어 다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 틈을 타고 아수라가 이 세상에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가웨인은 헤온 제국에 위협이 될 법한 것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부숴 버린 것이다.
“헤온 제국은 망해야 한다.”
하지만 가웨인의 생각과 정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눈앞의 남자.
“헤온 제국은 근본부터 글러 먹은 나라다. 인류를 하나로 뭉치기는커녕 같은 나라 안에서도 싸우는 것을 장려할 나라야.”가웨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용사인 자신이 몸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가웨인의 생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헤온 제국을 지킬 것이다.”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멍청하긴….”
“열화.”
가웨인이 전투를 끝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백색으로 타오르는 불꽃이 천천히 가웨인의 검을 감싸기 시작했다.
‘열화….’
악한 것을 단죄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태워 버리는 강렬한 불꽃.
가히 신의 불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후….”
태운도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열화의 위력은 사람을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릴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태운은 이 세상에서 살인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그 어떤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용서받을 수 없는 수준의 살업이었다.
그렇기에 열화에 더욱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죽을 수만은 없지.”“그래. 다른 세계의 용사라는 녀석의 실력을 한번 보자!”가웨인은 크게 소리치며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태운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나를 모두 사용해 메테리얼을 만들었다.
그리고 브레인 부스트와 사고 가속을 사용했다.
느려진 세상 안에서 태운의 머리만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성공한 적은 없지만… 해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어.’태운은 지금까지 느끼던 마나의 입자가 아닌, 마나 입자를 이루고 있는 근본적인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힘 중 가장 익숙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설명만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수만의 마나 안에는 수십억의 마나 입자가 포함되어 있다.
태운은 그 수십억의 마나 입자에서 한 번에 일괄적으로 힘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리고 태운이 끄집어낸 근본적인 힘, 그것은 바로 에테르였다.
‘또 하나 배워갑니다. 전대섭 선생님.’
태운은 급하게 에테르로 메테리얼을 만들어 검에 주입했다.
“에테르 블레이드.”
태운의 검이 에테르로 둘러싸이는 순간, 태운은 느려진 세상에서 빠져나왔다.
카앙-.
신성력이 담긴 불꽃을 품고 있는 성검과 에테르로 둘러싸인 태운의 검이 격돌하는 순간.
전장에서 들을 수 있는 그 어떤 소리보다 거대한 충격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