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우리의 오른팔은 벨자하에게 있네.”
가도의 입에서 나온 말에 태운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우리의 오른팔은 녀석이 잘라서 키메라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는 것 같더군.”
“벨자하….”
가도 일행과 벨자하와는 질긴 악연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다.
가도는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이겨내고 헤온 제국의 군대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벨자하가 키운 마법 병단에 의해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가도는 벨자하에 의해 죽었고 잭과 레일로프, 라온은 끈질긴 벨자하의 추격에 의해 죽고 말았다.
“흠… 그러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부터 이야기해줘야겠구나.”가도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태운에게 역사 개변으로 바뀐 역사에 대해 말해주었다.
“개변된 역사 속에서 너는 내가 맡고 있던 영지, 세라오니의 모험가였다. 물론, 표면적으로만 그런 거였고 실제로는 마정석을 통해 세상에 들어온 강태운 그 자체였지.”
“개변된 역사에서 제가 존재했군요….”
가도의 말을 들어보면 나름 개연성까지 맞춰서 끼워 넣은 것 같았다.
“그리고 너는 다짜고짜 나를 찾아와서는 참모로 받아달라고 했지. 나는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자네와 모의 전투 대결을 했었지. 내가 큰 차이로 지고 말았네.”“제가 이겼다라…. 그렇다면 그때의 저는 가도 장군님의 마정석을 흡수할 때의 제가 아니겠네요.”가도의 마정석을 흡수할 때의 태운은 전략과 전술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다.
정확히는 전술 지식이 글로는 머릿속에 들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본 경험도 기회도 없었다.
그러니 백전노장인 가도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지금 시점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을 때를 가정한 역사 개변인 것 같네.’상당히 디테일한 역사 개변에 태운은 살짝 놀랐다.
“그 후, 나는 자네를 참모로 등용했지. 그 직후에 자네는 헤온 제국의 선전포고가 있을 거라고 말했고 측근의 가족들을 모두 내가 사는 곳으로 불러와 지키게 했지.”“…제가 실제로 갔어도 그랬을 것 같네요.”태운은 가도의 마정석을 흡수할 때 잭을 보면서 굉장히 괴로워했다.
가족이라곤 동생들밖에 없었고 그 동생들과 함께 살기 위해 자진으로 군대에 들어가 전쟁에 나갔다.
헤온 제국의 계략에 빠져 동생을 살리기 위해 가도를 배신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도 가도는 잭에게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잭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회유해 그의 칼끝을 헤온 제국에 향하게 만들었다.
잭과 비슷한 일을 겪었던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올라 잭의 마음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탓인지 태운은 항상 잭을 안타까워했다.
“그 이후, 너는 이런저런 일로 나와 잭, 레일로프의 신임을 얻어 갔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마법에 대해서도 밝히게 되었지. 뭐… 나는 마나 회로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마법을 쓸 수 없다고 했었지.”
“네… 그렇죠.”
수십 년 동안 방치된 가도의 마나 회로의 상태는 심각했다.
수개월에 걸쳐 마나 회로를 청소해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의 기준이었고 마나를 다루는 감도 익히지 못한 가도가 마나 회로를 청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자네는 나에게 마법 말고 전술에 대해 알려주었지.”“그랬을 겁니다. 제가 살던 곳의 전술과 이곳의 전술을 합쳐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꽤나 괜찮은 성과를 보일 테니까요.”태운은 자신이 무엇을 가르쳤을지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가도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그런데 네가 잭, 레일로프에게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
“행방불명이요…?”
가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고 일어났더니 네가 사라져 있었지.”
“도대체 왜….”
그때, 라온이 문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마 그건 역사 개변 중에 역사가 원래대로 흘러가려는 힘이 작용했기 때문일 거야.”
“라온 님…?”
라온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반말해. 어차피 계속 반말하고 있었을 거 아니야.”
“어… 음… 알겠어.”
태운은 사실 라온과 레일로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가 잘 잡히지 않았다.
잭이야 어차피 나이도 비슷했기에 반말을 할 수 있었고 가도는 그냥 존대를 하면 되었지만 둘은 아니었으니까.
태운은 그들의 스승이 되기도 했고 그들의 자식을 옆에서 보기도 했고 레일로프 본인이 되어보기도 했으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역사 개변 중에 원래대로 흘러가려는 힘이 작용했다니?”“말 그대로야. 단순히 내 추측일 뿐이지만 역사 개변에 필요한 힘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역사가 원래대로 움직이려는 힘을 이겨내지 못한 거지. 그래서 네가 사라진 거야.”“아… 라온, 혹시 에테르에 대해 알고 있어?”태운의 질문에 라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뭐야?”
“아냐. 잊어줘.”
태운은 라온의 능력에 대해 자신이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뭐… 네 반응을 보니까 대충 알아맞혔나 보네. 그냥 마정석 안에서 사람을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연구를 해봤는데 그러던 중에 알아낸 것과 지금 상황을 종합해 봤을 뿐이야.”“마정석 안에서의 정보를 기억하고 있네?”
“그러게. 원래라면 나는 세상 밖에서 너를 지켜보고만 있었을 텐데 말이지.”그때, 가도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에 대해 말해주었다.
“나도 조금 혼란스럽지만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네. 실제 기억과 마정석 안에서의 기억, 개변된 역사에서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지.”“그런데 개변된 역사의 기억은 어떤 식으로 주입된 건지….”“주입된 것이 아니야. 나는 개변된 역사를 직접 겪었네.”
“예?”
“기억을 잃은 채로 개변된 역사를 직접 겪었네. 그리고 자네를 만난 순간 모든 기억을 되찾았어.”잭과 라온도 그 말에 동조했다.
“나도 그랬어.”
“나도.”
“아마 레일로프도 그럴 게야.”
“그렇군요.”
그 짧은 시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조금 놀랐다.
‘에테르의 힘의 한계가 어디인지….’
가도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후에는 역사대로 흘러갔네. 헤온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고 라온이 적에게 고용되어 나를 암살하러 왔지. 그것을 막아내고 라온을 회유해 아군으로 만들었지.”그 이후에도 본래 역사대로 흘러갔다.
헤온 제국의 마법 교육 기관이 만들어졌고 거기서 길러진 마법 병단은 테렌 왕국의 세라오니를 페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잭과 가도는 헤온 제국에 붙잡혔고 레일로프와 라온은 붙잡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일은 그때 터졌네. 나는 원래 역사에서는 벨자하에게 붙잡히자마자 교수형을 당했지. 잭은 복수를 위해 벨자하의 밑에서 마법을 배웠었지.”
“…….”
잭은 고개를 숙였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잭은 자책을 하고 있었다.
잭은 고개를 숙인 채 태운에게 말했다.
“벨자하…. 녀석이 내 동생들을 죽였다. 벨자하에게 무릎을 꿇고 스승님이라 부르고 있을 때도 그걸 모르지 않았어.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벨자하에게 마법을 배워 녀석을 죽이려고 했지.”복수를 위해 원수의 밑에서 마법을 배웠다.
잭은 몇 번이고 복수의 칼을 갈며 벨자하의 앞에 섰을 것이다.
“하지만 벨자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녀석이 한 짓을 알았다는 것과 내가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던 거야. 마법을 알려주고 이용해 먹기 위해서….”잭은 벨자하의 신임을 얻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했다.
전장에 나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해야 했고 아무런 죄도 없는 약한 사람도 죽여야 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하며 벨자하 밑에서 2년을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벨자하에게 등 뒤에서 비수를 꽂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었지. 하지만… 내가 그 정도 힘을 가지게 되자 벨자하는 나를 내쳤다. 힘을 길렀다고는 하지만 정면 승부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어. 나는 벨자하의 방심을 틈타 겨우 도망쳤다.”잭은 그 이후 상실감과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 폐인처럼 지냈다.
하지만 억울함에 죽지 못해 하루하루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삶.
숨어 살다가 결국에는 벨자하 본인도 아닌 벨자하의 제자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
‘억울한 삶이네….’
동생들의 복수를 해주려다가 원수에게 이용만 당한 꼴이지 않은가.
잭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개변된 역사에서는 다르네. 나는 자네에게 배운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교수형을 피했고 잭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벨자하의 제자가 되지 않았지. 대신 녀석은 우리의 몸의 마력 적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 버렸어.”
“그럼 오른팔은….”
가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실험을 당하게 된 거지. 그 첫 번째 실험이 바로 우리의 오른팔을 잘라 키메라에게 이식하는 거였어.”마력 적성이 높은 신체는 그 신체만으로도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마력 적성이 높은 신체는 다른 신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허덕륜 선생님의 마력 적성이 높은 몸통이 팔다리에 영향을 준 것처럼 말이지. 조금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그래서 벨자하는 가도와 잭의 팔을 키메라에게 이식해 강한 키메라를 만들려는 것이다.
“벨자하…. 절대 용서가 안 되는 놈이야.”
태운은 이를 갈았다.
레일로프와 라온의 아들인 잭로프를 만났던 겔릭의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들었던 벨자하는 말할 필요도 없는 쓰레기였다.
‘병사들을 아무 이유 없이 팔을 잘라 위치를 바꾸고 반으로 갈라 두 사람을 섞기도 했었지.’병사들은 압도적인 강함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이 잘려 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우리는 팔이 잘렸고 치료 기간을 가지게 되었어. 마력 적성이 높은 몸은 산 채로 오래 보존해야 한다는 벨자하의 명령 때문이었지. 그때, 잭이 너에게 배웠던 마법을 사용해서 탈출한 뒤 나에게까지 찾아온 거야. 벨자하가 연구의 허가를 받기 위해 연구실을 떠나 왕성으로 가 있었기에 탈출에 성공했지. 그의 제자들은 모두 전장으로 떠나 있었고 말이야.”천운이 도왔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살던 중 몇 년 만에 대륙 거의 대부분이 헤온 제국의 땅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살기 위해 설산을 넘어 이 대륙으로 넘어왔지. 그렇게 용병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라온이 우리를 찾았어. 그리고 라온은 몇 개월 만에 레일로프와 너를 찾아냈지.”여기까지가 개변된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태운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뭘 말이지?”
태운은 가도에게 말했다.
“마법 수업이요. 참, 가도 님도 마법 수업을 들으실 겁니다. 마나 회로는 제가 정리해드리죠.”태운은 가도와 잭, 라온을 둘러보며 말했다.
“두 달. 그 안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벨자하 따위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 겁니다.”벨자하. 녀석은 결코 쉽게 죽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내일부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겁니다.”복수와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태운은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