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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72화 (272/379)

272화

회담장에는 태운이 다시 말을 꺼내기 전까지 침묵이 흘렀다.

태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탓에 A급 헌터들도 침만 삼킬 뿐, 쉽게 입을 열 수 없었으니까.

“연정아는 어렸을 적 칠죄신교의 하늘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뇌를 당해 하늘섬 밖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했죠. 어쩌다가 하늘섬 밖의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기회를 보고 하늘섬을 탈출해 지상으로 도망쳐 왔죠.”태운은 연정아가 칠죄신교에서 탈출하게 된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연정아의 몸에는 아스모데우스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칠죄신교, 색욕의 좌는 비어 있죠. 이것만 봐도 모르겠습니까?”칠죄신교 측은 연정아를 색욕의 좌에 앉혀 7번째 대원로로 만들려 했다.

그렇게 되면 칠죄의 혈통을 가진 최강의 대원로가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연정아가 칠죄신교에 남지 않고 지상으로 떠나와 우리에게 온 것을 천운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사실이었다.

이번 작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연정아의 존재 덕분이었다.

연정아가 없었다면 하늘섬에 대한 정보를 알 수도 없었을 테니까.

연정아 없이 하늘섬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고 해도 연정아가 칠죄신교 측에 붙어 대원로가 되었다면 적은 피해로 적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헌터 측의 주요 전력 중 하나인 연정아가 더욱 강해져 칠죄신교 측으로 넘어간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연정아가 없었다면 하늘섬 타격 작전?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어찌저찌 시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피해가 일어났겠죠.”그때, 태운의 말을 끊고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미국의 헌터, 제라드였다.

“맞는 말이지만 연정아는 마기를 다루고 있다. 칠죄신교의 전사들과 원로들에게 보이는 특징이지. 마기를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

미국의 헌터, 제라드

셀 다음가는 검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실력자였다.

그 정도 되는 헌터는 태운의 적의를 이겨내고 입을 열 수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시작으로 모두 태운의 적의를 이겨내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본인 입장에서만 말하지 말고 우리를 설득해달라는 말인데 그게 그렇게 힘든 건가?”“근거도 없이 그렇게 말한다면 저희는 강태운 헌터도 믿지 못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할 말이라는 게 근거 없이 연정아를 옹호하는 말뿐이라면 마이크를 꺼주게.”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듯 한순간에 태운을 몰아세우는 A급 헌터들, 하지만 태운은 굴하지 않았다.

툭.

태운은 앉은 채로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쳤다.

그리고 태운이 입을 열었다.

“연정아는 인류의 적이 아니라 소중한 제 동료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동료와 그 가족을 건드리는 사람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망언인가!”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A급 헌터들이 모인 자리다.

그 자리에서 연정아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줄 만한 명분은 저쪽에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태운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연정아가 칠죄신교의 끄나풀이라면 주저 없이 그녀의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 그것을 도와주실 분과도 연락이 되었죠.”그와 동시에 4명의 헌터들이 마이크를 켰다.

“지금 마이크를 켜신 네 분의 헌터가 그 일을 도와주실 분들입니다.”마이크를 켠 4명의 헌터들이 입을 열었다.

“셀이라고 하네. 나도 강태운 헌터를 전력으로 도와주기로 했네.”“내 제자의 부탁인데 도와주지 않을 수 없더군.”“전대섭 형님과 마찬가지로 강태운 헌터의 스승인지라 팔은 안으로 굽더군. 연정아도 내 제자이니 녀석이 나쁜 길로 빠지려 한다면 바른길로 이끌어야겠지.”“강태운 헌터는 중국을 구해준 사람이나 다름없지 않나. 이런 식으로라도 그 은혜는 갚아야지 않겠나.”그 4명의 헌터는 바로 전대섭과 셀, 허덕륜, 하오였다.

그들은 연정아가 잘못된 길로 갔을 때 그녀를 죽이는 것을 돕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그 말의 진짜 뜻을 알고 있었다.

“큼….”

헌터들은 그 이후로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방금의 말로 전대섭, 셀, 허덕륜, 하오가 태운의 편에 섰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명분은 힘을 가진 사람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 하지만 상대방의 힘이 더 강하다면 명분이 있든 없든 움직이기가 쉽지 않지.’칠죄신교의 최강자인 쟝과 호각으로 싸운 강태운.

대원로 중 하나인 소르코프를 압도적으로 처치한 전대섭.

최강의 검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셀.

명실상부 중국 최강의 헌터, 하오.

단신으로 한국의 뒷세계를 정리하고 이번 작전에서 레이지를 무력화한 장본인인 허덕륜.

그 5명이 뭉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헌터들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전대섭은 한국 헌터 협회의 실질적 수장이나 다름없다.

즉, 전대섭을 적대한다는 건 헌터 강대국 중 하나인 한국의 헌터 협회를 적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거기에 중국 최강 길드 중 하나인 금호 길드의 길드장 하오.

폭발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명운 길드의 강태운까지.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태도가 이렇게까지 급변하지 않았겠지.’이 자리에 있는 길드장들은 특히 셀의 존재가 마음에 걸릴 것이다.

헌터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셀이 길드나 협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헌터계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셀은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대기업인 ‘LIN’의 대표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은근 많은 사실이기도 하지. 셀 헌터님은 뭔가 은둔 고수 같은 이미지가 있으니까.’많은 헌터 길드들이 벌이고 있는 사업 대부분에 셀의 ‘LIN’이 개입해 있으니 길드장이나 길드에 속해 있는 A급 헌터들은 그들과 쉽게 적대할 수 없었다.

강태운과 전대섭을 견제하겠답시고 길드의 사업을 망칠 수는 없었으니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자 머리가 잘 돌아가는 A급 헌터들은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그럼 연정아는 이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강태운 헌터님과 전대섭 헌터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믿을 수 있겠군요.”

“그게 무슨….”

“강태운 헌터님과 전대섭 헌터님이 연정아가 잘못된 길을 갔을 때 책임지고 처치해준다고 하셨으니 괜찮다고 생각을….”여전히 상황 파악도 못 하고 계속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과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한 사람끼리 트러블이 발생했다.

보아하니 미리 짜놓은 각본이 있는데 생각을 바꾼 사람 탓에 혼선이 생긴 모양이다.

‘이겼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 길드의 수장이거나 대형 길드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소속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들 이 정도면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 것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신세 망치기 싫을 테니까.

“그럼 이 안건은 넘어가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도록 하죠.”이렇게 첫 번째 고비는 넘길 수 있었다.

태운이 상정했던 수많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첫 번째 고비를 힘으로 넘긴 이상 그 뒤의 고비들은 넘기기 아주 쉬울 것이다.

‘천천히 넘어가자고.’

태운은 침착하게 다가올 다음 고비들을 기다렸다.

* * *

“하악… 하악….”

“훌륭하시군요.”

신태연은 완전히 난도질되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 앞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페로는 그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형편없는 실력이군.’

그저 분노와 가학성을 쏟아내기만 할 뿐, 그것을 조절할 줄을 모른다.

형편없는 실력에 성격까지 안 좋으니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히려 좋지.’

페로는 지동현을 죽인 신태연에게 말했다.

“신태연 님, 수고하셨습니다. 본거지로 돌아갈 생각인데 괜찮으십니까?”

“후… 본거지? 그곳이 어디지?”

“그 정확한 위치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기를 사용하면 간단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페로는 신태연에게 마기를 사용해 하늘섬에 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악한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신태연은 금방 마기로 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그쯤 되자 신태연은 슬슬 페로의 정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신… 칠죄신교 맞지?”

“네, 그렇습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확인을 하고 나니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칠죄신교는 인류의 적, 그 어떤 흉악범보다도 더한 범죄자라는 인식이 있었다.

실제로 칠죄신교의 전사와 원로들에 대한 즉결처분권은 전 세계의 모든 헌터들에게 부여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칠죄신교에 들어간다고…?’

신태연은 악한 사람이었지만 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그 마음을 알아챈 페로가 신태연에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알고 있습니다. 인류의 적이라 불리는 칠죄신교는 인류 최악의 범죄, 테러 조직이라고 여겨지고 있죠.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실제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어떤….”

“칠죄신교의 하늘섬에는 이 도시와 별다르지 않은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세상을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사랑하는 이성과 만나 가정을 이루며 자식도 낳아 키우죠.”

“그… 그렇겠지.”

대충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갑자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때, 페로가 결정타를 날렸다.

“악마? 그런 거, 저는 잘 모릅니다. 저는 원로회의 구성원이고 그 안에서도 입지가 높은 편이죠. 하지만 저는 악마나 칠죄종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전 그저 단순히 테러 집단 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열심히 싸울 뿐입니다. 비록 그 수단이 아주 끔찍한 범죄일지라도….”거짓말이었다.

진심이라고는 아주 조금도 없는 거짓이었다.

칠죄신교는 대대적인 세뇌로 사람들을 전사로 만들고 전사가 되지 못하는 부적격자들은 키메라로 만드는 끔찍한 집단이었으니까.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싸울 뿐이라는 거짓말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들통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신태연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 아닌 자신의 추악함을 감추기 위한 명분이었다.

페로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이다.

“따라가겠어.”

“옳은 선택이십니다.”

신태연과 페로는 마기로 하늘섬에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하늘섬에 저장해놓은 마기가 신태연과 페로를 감쌌고 순식간에 하늘섬으로 순간 이동 되었다.

순간 이동 된 둘의 앞에는 쟝과 6명의 원로가 서 있었다.

“수고했다. 페로, 그런데 옆에 있는 자는….”페로는 쟝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분노와 질투의 좌를 동시에 맡을 그릇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흠…?”

쟝은 페로의 말을 듣고 신태연을 관찰하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형편없는 실력에 능력도 보잘것없는 놈이 아닌가….’하지만 쟝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페로의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 그렇군.’

쟝은 곧 페로의 의도를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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