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명운 길드 사무소에서 3명의 직원이 점심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당분간은 일 없겠죠?”
“그렇겠지…? 돈은 많이 벌긴 했는데 너무 힘들긴 했어.”“누나들은 이번 일 끝나면 뭐 할 거예요?”
명운 길드의 첫 직원들은 30대 초중반의 여성 둘과 20대 후반의 남성 한 명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남편이 장어 양식장을 하자고 하긴 했는데.”“오, 나쁘지 않겠네요. 경희 언니도 시골 가고 싶다고 했잖아요.”“좋긴 한데 돈이 아직 부족해서 말이야. 한 3년 정도 더 모아야 해. 형식아 너는 앞으로 뭐 할 생각이니?”“모르겠어요. 이 일도 경력으로 인정해주려나….”“넌 아직 젊잖아. 열심히 하면 뭐든 되겠지.”
“고마워요.”
그들은 점심을 먹으며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자신이 승승장구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지는 않았다.
“민주야, 형식아. 오늘로 끝이네. 우리가 이 길드에서 일하는 거.”
“힘들긴 해도 참 좋았는데 말이죠.”
고작 2주 동안 일했을 뿐이지만 명운 길드에 계속 남아 있고 싶었다.
일의 강도도 높았지만 그만큼 복지도 좋았다.
2주 동안 일한 알바에게 시급을 15,000원이나 주고, 한 끼에 인당 2만 원이라는 식대, 150만 원짜리 하이엔드급 의자, 철저하게 지켜지는 쉬는 시간까지.
어떤 회사가 이 정도의 복지를 챙겨주겠는가.
철컥.
그때, 명운 길드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태운이었다.
“안녕하세요. 길드장님.”
“안녕하세요, 형식 씨. 덕분에 오늘도 유망한 헌터와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세 분께 보너스를 드리려고 합니다.”태운은 품에서 봉투를 꺼내 세 명에게 나눠주었다.
“원래 받으실 금액에 50만 원씩 더 올려드렸습니다.”그들은 두툼한 돈 봉투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이형식이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근 2주 동안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하게 일했습니다.”
“어디 가시려구요?”
“네?”
태운은 마지막이라는 듯이 말하는 이형식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돈 봉투와는 달리 종이 서류 봉투였다.
“이게 뭔….”
“근로 계약서입니다. 앞으로 명운 길드는 영업팀, 인사팀, 관리팀 등등으로 팀을 나눠서 길드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계신 세 분에게 인사팀을 맡겨보고 싶네요.”
“네…?”
태운은 처음에는 이 세 명의 안목이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김경희는 20살이 되자마자 상담 업무를 시작해 10년 넘게 해오면서 사람 보는 눈이 길러졌다.
앞으로 헌터에 대한 정보만 교육시키면 굉장히 일을 잘할 것 같았다.
강민주는 기억력과 비교 능력이 뛰어났다.
헌터의 능력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순 수치화해서 비교하기도 했다.
‘헌터의 능력치를 단순 수치화해서 비교하는 게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의 능률이 오르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가장 기대되는 사람은 단연 이형식이었다.
다른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을 처음 해보는 것이었기에 서류 처리 능력도 미숙했고 사람 보는 눈도 없다.
하지만 태운은 이들 중 가장 기대되는 사람이 이형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형식 씨는 국내 최대 헌터 커뮤니티의 운영자니까.’이형식은 한마디로 헌터 덕후다.
김일훈의 서류를 받아들고 통과시킨 사람이 바로 이형식이었다.
그 사실을 안 태운은 이형식의 능력을 알아보고 말았다.
‘고작 작은 소문 하나에 김일훈의 잠재력을 알아차렸어. 대단한 능력이지.’태운은 김일훈의 이력서 아래에 적혀 있던 글을 떠올렸다.
[김일훈 헌터는 등급에 비해 실력이 뛰어난 헌터입니다. 아직은 D급 헌터에 불과하지만 강태운 길드장님께서 가르치신다면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헌터라고 판단됩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태운이 정말 소름이 돋았던 문장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김일훈 헌터는 위험한 던전 안에서 가끔 상당한 활약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방패가 던전 안에서 부서진다고 하는데… 혹시 방패가 김일훈 헌터와 맞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일훈 헌터에게 방패를 버리라는 제안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반 회사였다면 건방지다며 기각되었을 의견이지만 이형식의 생각은 태운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했다.
정상적인 방식의 서류 처리 방식도 아닌 그저 서류 아래에 의견을 적어놓았을 뿐인 서류를 보고 태운은 이형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들 안목이 좋으시더라구요.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번 달이 끝나기 전에 직원을 7명 더 뽑아 인사팀에 넣어드리겠습니다. 개중에는 다른 길드의 인사부 부장도 한 명 있을 겁니다. 수평적인 구조에서 서로 자문을 구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팀을 꾸려보세요.”
“어….”
그들은 모두 당황한 것 같았다.
놀랄 법도 했다.
모두 자신의 어두운 미래를 그리며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길드장이 들어와 자신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고 말했으니까.
“인사팀이 꾸려지는 대로 다시 길드 가입을 받기 시작하겠습니다. 그전에도 할 일은 꽤 많을 테니 이번 주는 푹 쉬셔도 좋습니다.”태운은 그렇게 미래에 1류 스카우터로 불릴 인재를 세 명이나 얻을 수 있었다.
* * *
태운은 이번에 새로 계약한 35인의 헌터들 중 가장 유망한 3명의 인재를 개인적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김일훈은 당연히 있었고 C급 헌터인 설인후, C급 헌터인 백건우까지 세 명이었다.
설인후는 마법을 사용하는 탱커, 백건우는 투창을 주 무기로 하는 하드 웨퍼였다.
‘둘 다 평범하지는 않지.’
마법을 사용하는 탱커는 많이 없다.
탱커 중에는 보통 마나의 총량이 많은 사람이 별로 없었고 전장의 전체를 신경 써야만 했기에 마법을 쓸 여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탱커가 마법을 쓴다는 것은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면서 탱커의 역할을 충실히 맡을 수 있다면 공격대의 전력은 크게 상승한다.
‘그리고 백건우는… 하드 웨퍼, 하드 웨퍼 자체가 흔하지 않으니 충분히 가치가 있어.’하드 웨퍼는 현재 헌터 시장에서 각광받지 못하는 종류의 역할군이다.
한 발, 한 발의 공격력은 발군이지만 그사이의 텀이 너무 길기에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
‘웨퍼의 공격이 멈추면 탱커의 부담이 커지고 팀의 중심인 탱커가 무너지면 팀까지 무너진다. 그렇기 때문에 하드 웨퍼가 인기가 없는 거지.’태운이야 애초에 혼자 모든 역할을 맡을 수 있었기에 이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일반 헌터들은 굉장히 유심히 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설인후도, 백건우도 용병으로서 일할 뿐 길드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 든 이상 평범한 헌터로 남기는 글렀지.’태운은 그들의 전투 실력을 직접 보고 그들의 성장 방향을 정했다.
“김일훈 헌터는 방패를 버리고 80cm의 숏소드만을 사용해 전투를 이끌어가는 연습을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소환한 분신의 검에 맞을 때마다 소리가 울리고 카운트가 올라가니 그것을 잘 이용하세요.”태운은 명운 아카데미에서부터 틈틈이 구상해왔던 분신 마법을 드디어 만들어냈다.
에테르 덕분이지만 굉장히 성능이 뛰어난 분신이었다.
태운의 힘까지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태운의 검술 실력을 80% 정도는 구현할 수 있었다.
“50번 타격에 성공하면 분신이 사라집니다. 그때 훈련이 끝나니 알아두세요.”태운은 김일훈 헌터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음 설인후 헌터와 백건우 헌터에게 다가갔다.
“두 분은 제게 마법을 배울 겁니다. 제가 직접 만든 마법 20가지와 마나 운용 노하우를 전수해드릴 생각이니 집중하셔야 할 겁니다. 첫 마법은 화폭입니다.”화폭.
태운이 지금까지 만든 모든 마법 중 가장 유용하고 효율이 좋다고 생각하는 마법이었다.
수많은 개량 끝에 단 한 번의 폭발로 백 마리의 거충도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훌륭해졌다.
“이 화폭은 특히 설인후 헌터님께 유용할 겁니다.”설인후 헌터는 대방패를 들고 던전에 들어간다.
화폭을 앞으로 시전하고 대방패 뒤에 숨으면 다른 마법 없이 화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에테르가 있으면 화폭의 마나 파편이 피아식별을 할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지만… 어차피 알려줘 봤자 쓸 수도 없으니 넘어가자.’태운은 화폭의 수식과 원리를 그들에게 천천히 설명했고 그들은 30분 정도의 연습 끝에 화폭을 시전하는 데 성공했다.
“나쁘지 않네. 다음 마법은….”
태운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마법을 알려주었고 김일훈 헌터는 계속해서 태운의 분신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허억… 허억….”
김일훈은 지금까지 태운의 분신을 단 한 번도 타격하지 못했다.
반면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태운의 분신은 김일훈을 수십 번이나 타격했다.
“후….”
태운의 분신은 태운의 검술을 약 80% 정도 구현한 상태다.
김일훈의 검술 숙련도는 상급 5레벨 정도.
사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실력이었다.
물론, 다른 박투술, 창술, 등등 다른 무기술이 검술에 섞여 들어가 실질적인 실력은 태운의 분신 쪽이 우세하긴 했지만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퍼억!
“크윽… 또….”
그것은 바로 김일훈의 습관 때문이었다.
김일훈은 몇 번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되는 공격을 보면 바로 왼팔이 먼저 나갔다.
팔에 방패가 달려 있던 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후우…후욱….”
퍼억! 푸욱!
결국, 김일훈은 태운의 분신을 타격하는 데 성공했지만 조금의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왼팔을 내어주고 분신을 찌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발전이라고는 없는, 그런 성공이었다.
김일훈도 그 사실을 알아채고 다시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더 지났고 김일훈은 아직까지도 50번 타격이라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
“힘드시죠?”
태운이 김일훈에게 다가왔다.
설인후와 백건우는 태운이 알려준 5개의 마법을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나머지 15개는 내일 알려주려고요.”
“아… 네.”
태운이 다가오자 분신은 그대로 멈췄다.
“잘 안 되시나 봅니다.”
“왼팔이 먼저 나가는 습관은 고쳤는데… 움직임이 어색하네요.”“왼팔이 먼저 나가는 습관을 고쳤다구요?”
태운은 그 자리에 바로 주먹을 뻗어 김일훈의 안면을 가격할 기세로 휘둘렀다.
그 주먹에는 산도 날려 버릴 듯한 힘이 담겨 있었다.
“……!”
부-웅!
김일훈 헌터는 태운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느끼자마자 왼팔을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태운의 주먹은 김일훈 헌터의 왼팔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아직 안 고쳐졌네요.”
“…….”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만들어진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몸이 기억하거든요.”
“그럼….”
태운은 옆에 걸려 있던 목검을 꺼내 들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생긴 습관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고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