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전대섭의 생각은 이랬다.
마나가 오러와 신성력, 에테르 등, 지금까지 마나의 진화 형태라고 여겨졌던 모든 것들을 품고 있다.
즉, 모든 것이 마나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나 안에서 혼재해 있으면서 힘을 온전히 품지 못하고 그 힘의 일부가 마나에 흡수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신성력이든 에테르든 오러든, 각자의 특성이 전부 마나에 약하게나마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마나도 오러처럼 무기의 내구도를 높이고 절삭력을 높여 주는 기능을 한다.
또한 마나는 에테르처럼 세상의 이치와 법칙에 관여하고 마법을 사용하게 해주며 신성력처럼 생명력에 관여를 한다.
그렇게 가설을 세우면 모든 상황이 딱 들어맞는다.
“이 가설이 맞다면 마나를 사용할 때마다 에테르가 회복되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마나를 사용하면 마나 안에 있던 에테르가 제 에테르 회로에 흡수되어 제 몸에 축적되는 거겠죠.”
“그런….”
허덕륜은 태운의 설명에 감탄했다.
자신은 그런 발상을 떠올리지도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저번에 에테르와 마나를 일정량 합하면 변이된 마나가 된다고 하지 않았나? 마나 자체에 에테르가 있다면 에테르와 마나를 합쳤을 때 변화가 있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싶은데.”태운도 그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바로 해결되었다.
“마나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테르의 양은 굉장히 적습니다. 그때 제가 에테르를 조금 더 부여해주면 에테르의 역할이 다른 힘에 비해 부각되어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거겠죠.”
“음… 그렇구나.”
태운이 허덕륜에게 설명해주고 있을 때 전대섭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형님…? 뭐 하세요?”
전대섭은 허덕륜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전대섭의 손 위에 빛나는 작은 구체가 떠올랐다.
“성공했군.”
“지금 뭘하신 거죠…?”
태운은 전대섭의 행위를 보고 경악했다.
왜냐하면 전대섭의 손 위에 있는 것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차렸으니까.
“아, 마나에서 에테르를 분해해내는 데 성공했네.”
* * *
“이거 맞습니까…?”
태운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음… 그렇게 어렵지는 않더구나.”
“하….”
전대섭은 마나에서 에테르를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다.
전대섭의 설명으로는 마나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에테르였기에 쉽게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에테르를 분리해내긴 했지만 오러나 신성력은 분리해낼 수 없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도 진짜 무슨….”
태운도 종종 천재가 아니냐는 말을 들어왔고 본인도 크게 부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천재냐는 말을 들으면 부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옆에 진짜 천재가 있는데 어떻게 천재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앞으로 천재라는 말을 듣게 되면 민망할 것 같았다.
그때, 허덕륜이 태운의 옆으로 와서 등을 토닥여주었다.
“낙심 말거라. 너도 충분히 천재니까.”
“아뇨… 그냥 영재 쯤되는 걸로 해주세요….”
“아, 알겠다.”
허덕륜은 갑자기 힘이 빠진 태운을 응원해주었다.
“그나저나 오러를 분리해낼 수 없다고 하셨죠?”허덕륜의 질문에 전대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는 잘 모르겠다. 내가 검이나 창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니까. 차라리 셀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군.”
“음… 알겠습니다.”
허덕륜은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허덕륜도 힘에 대한 갈망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여기 있는 사람 중 힘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허덕륜일 수도 있었다.
과거 허덕륜은 마르기가스와 또 다른 칠죄종의 대원로에게 팔다리가 잘려 절벽 아래로 떨어졌었다.
다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팔다리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힘의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전대섭 선생님만큼이나 강했다고 하니까.’아마 허덕륜이 힘을 잃지 않았다면 헌터계는 셀, 허덕륜, 전대섭 삼강 체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허덕륜과 전대섭이 한국을 버릴 일은 없었을 테니 한국이 엄청난 헌터 강국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전에 범죄 조직들도 완전히 박살이 났겠지.’태운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선생님…!’
태운은 전대섭에게 몰래 신호를 보냈다.
눈치 빠른 전대섭은 그 말의 뜻을 알아채고 태운에게 신호를 보냈다.
“음… 찬영이가 요새 대련 상대를 찾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제대로 지도해줄 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더라구요.”“그래? 그럼 간만에 내가 지도 좀 해줘야겠는데?”“아, 그래주시겠습니까? 지금 찬영이는 명운 길드 메디컬 센터에 있을 겁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제자가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볼 겸… 가봐야지.”태운은 허덕륜에게 찬영의 전화번호를 넘겨주었고 허덕륜은 바로 밖으로 나가 찬영에게로 향했다.
“허덕륜 선생님이 추진력이 좋아서 편하게 넘어갔네요.”“그래서 무슨 일이지? 그 마약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태운은 전대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마약 조직 말입니다. 그 던전 안에서 쉬는 사이에 잠깐 해독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잡기 어려울 것 같더군요.”
“음?”
전대섭은 일전에 태운이 했던 말만 들었을 때는, Z라는 녀석만 잡으면 끝나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녀석들의 증거를 잡기가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세워놓은 회사도 굉장히 깨끗했으니까요.”
“식품 회사 FP라고 했나?”
“네, 맞기는 하지만… 정보를 정리해보니 Z는 마약도 달마다 공장을 옮겨가며 생산한다더군요. 또 회사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회사는 알아내지 못했구요.”
“흐음….”
“Z를 잡는다고 해도 녀석을 구속할 방법이 없습니다.”태운은 그것 때문에 Z를 잡는 것을 미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대섭의 생각은 달랐다.
“Z 녀석을 잡는 건 FP 하나만 알면 충분한 건가?”“Z의 수익이 FP에서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쪽에 신경을 집중하면 잡을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FP의 공장에서 마약을 생산하고 있지 않다면 증거 부족으로 풀려날 겁니다.”
“아직 덜 약았구나.”
“네?”
“아직 언론을 잘 활용하지 못해.”
전대섭은 갑자기 태운을 나무랐다.
“그런 놈들 잡을 때는 사기 좀 쳐도 돼.”
“그게 무슨….”
“마스커레이드 있잖나?”
“그렇죠…?”
전대섭은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주었다.
“마스커레이드를 사용하고 얼굴을 공개한 테러 예고 영상을 날려라.”
“네?”
태운은 전대섭의 폭탄 선언에 당황했다.
“그게 무슨….”
“그럼 언론은 네 얼굴을 전 세계에 퍼 나르기 시작할 테니 순식간에 테러범의 얼굴은 유명해지겠지.”
“그렇겠죠…?”
“그 상태에서 FP를 습격해 Z를 죽여라. 그 과정에서 거래 내역이나 다른 정보도 얻어내면 좋겠지. 하지만 못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Z는 죽었으니까.”
“…대단하시네요.”
전대섭은 태운보다도 더 악인에 대해 철저한 단죄를 내려왔다.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태운의 판단과 달리 전대섭은 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지 전대섭의 기준에서 Z라는 사람은 법의 울타리 안에서 단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그럼 이제 Z의 소재지만 알아내면 되겠군.”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원은 자네가 얘기했던 그대로 해주겠네. 일단 소재지 먼저 찾아보게.”“알겠습니다. 녀석의 소재지를 찾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태운은 전대섭에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왔다.
간만에 전대섭에게서 섬뜩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 * *
칠죄신교의 하늘섬, 그 최상층에선 대원로들의 식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흠… 기간트 에이지로 인한 혼돈의 수치는 얼마지?”“유의미한 수치이긴 하지만 그리 크지 않다. 신정… 아니, 강태운과 허덕륜, 전대섭의 빠른 개입과 그로 인한 위기감 감소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더군.”빠득.
쟝은 그 말을 듣고 이를 갈았다.
쟝은 식사 도중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칠죄종의 대원로끼리 식사 중 다른 사람이 맡은 죄악을 크게 드러내는 것은 실례였으니까.
다른 대원로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쟝만큼은 그것을 아주 엄격하게 지켜왔었다.
그런 쟝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말이다.
“흠… 일단 알겠다. 다른 쪽은 보고할 것 없나?”“마몬 님께 신탁이 내려왔다. 인간 중 누군가가 신과 접촉했다는군.”
“뭐라고?”
사탄을 모시고 있는 레이지가 놀라며 말했다.
“어이, 소르코프. 그게 진짜야?”
레이지는 탐욕의 마몬을 모시고 있는 소르코프를 붙잡으며 말했다.
“내가 마몬 님의 이름을 팔아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
“흠….”
레이지는 소르코프를 놔주었다.
“어디 설명해 봐.”
“신과 접촉을 하긴 했지만 신들에게 힘을 받았다든가 불멸의 힘을 얻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군.”
쟝의 말에 레이지가 불같이 화를 냈다.
“다행? 다행이라고! 에테르를 얻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게 전대섭이면 어떡할 거냐!”
“닥쳐라. 레이지.”
“네가 제대로 된 대안을 가지고 오면 언제든지 닥쳐주마.”
“나에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라.”
쟝은 레이지에게 쏘아붙였고 레이지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때, 나태를 관장하고 있는 벨페고르의 대원로 ‘이들’이 말했다.
“그만하지 그러나?”
지금까지 회의에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는 이들의 발언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둘 중 하나가 죽으면 칠죄의 좌가 두 자리나 비게 되지 않나. 음욕의 좌가 비어 있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벨페고르 님께 따지든가. 나한테 그러지 말고.”
“칫….”
이들의 말에 레이지과 쟝은 진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둘 다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소르코프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레이지의 말대로 에테르를 가진 사람이 전대섭이면 굉장히 곤란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더군.”
“음…?”
“신들의 세상에 들어간 것은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여섯 명의 대원로들은 동시에 단 한 명을 떠올렸다.
20대 초반의 남자, 그 어린 나이에 에테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
그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강태운이군.”
“그때 죽였어야 했어.”
마르기가스는 입에 음식을 처넣으며 말했다.
레이지는 그런 마르기가스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애초에 기간트 에이지 때 전대섭과 허덕륜에게 전 세계 출장을 나가자고 한 것도 강태운이라지? 그때 죽였으면 이렇게 일이 꼬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쯧, 그때 배가 고프지만 않았어도 죽일 수 있었을 거다.”
“핑계는….”
그렇게 레이지가 마르기가스에게 시비를 걸고 있을 때 쟝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예배 시간이다. 오늘 식사는 여기까지 하고 남은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지.”쟝은 무표정으로 일어나 오만의 예배당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아차렸다.
쟝이 뒤를 도는 순간 펴져 나오는 흉악한 분노의 기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