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뭐?”
“말은 참 청산유수처럼 하는군.”
“자신감은 인정해주지.”
모두 태운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버프 마법이 특기인 것 같은데, 우리가 버프를 받지 않고 싸운 줄 아나?”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할 당시 그들은 전 세계 탑급 버퍼들의 버프를 받으며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이그 고흐를 따끔하게 할 뿐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자네의 버프가 내 버프보다 뛰어나다는 건가?”그 자리에는 엄청난 버프 마법과 준수한 탱킹 능력으로 자신의 길드를 일본 최강 길드의 자리에 올린 마츠모토 다이치도 있었다.
“그건 살짝 인정하기 힘들군. 내가 아는 자네는 고위력의 공격 마법과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마검사 형태의 전투 스타일을 가진 헌터로 알고 있거든. 거기에 버프 마법까지 다룰 수 있다는 건 솔직히 상상하기 어려워.”다이치는 하이 부스트급 성능을 가진 버프를 사용할 수 있다.
하이 부스트는 태운이 밥 먹듯이 사용하는 마법이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하이 부스트급 성능을 가진 버프를 사용할 수 있는 헌터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10명이 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일본의 헌터 마츠모토 다이치다.
그런 사람인 만큼 다이치는 버프 마법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태운이 입을 열었다.
“물론 다이치 헌터님처럼 버프를 범위형으로 펼치는 건 못 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준할 정도로 빠르게 버프를 전환할 수 있습니다.”“버프를 전환한다고? 혹시 버프를 걸었다 풀었다 하면서 50명이 넘는 이 인원을 커버할 수 있다는 거야?”“50명까지는 좀 힘들지만… 30명 정도는 커버할 수 있습니다.”그때, 금호 길드의 하오가 입을 열었다.
“자네 말로는 나나 전대섭처럼 드래이그 고흐에게 확실한 데미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네가 버프에 전념한다면 그 공격력이 너무 아깝지 않나?”태운은 하오의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저대로 따로 공격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버프에만 전념한다면 50명 정도 커버 못 하겠습니까?”
“뭐…?”
다이치는 태운의 말이 가소로웠다.
태운에게는 당연한 말이었지만 다이치에게는 거짓말 내지는 기만처럼 들렸으니까.
“헛소리 좀 적당히 했으면 좋….”
태운은 다이치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혹시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장현수라는 헌터를 알고 계십니까?”
“장현수? 그게 누구지?”
“장현수라…. 혹시 룬의 주인을 말하는 건가?”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룬의 주인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지. 나도 그 빌어먹을 룬의 주인이라는 특성을 연구하는 데 참여한 적이 있지.”다이치를 포함한 버프 마법의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룬의 주인의 연구에 동참한 적이 있다.
모두 룬의 주인의 괴랄한 연구 난이도에 떨어져 나갔지만 말이다.
“전 한동안 룬의 주인이라는 특성을 연구했고 룬 버프 마법을 제 방식으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물론, 변이된 마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전대섭을 바라보았다.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눈으로 확인은 해봐야겠구나.”“알겠습니다. 일단 다들 밖으로 나오시겠습니까?”
“그러지. 다들 나오게.”
전대섭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어 길드장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길드장들은 단체로 캠프 북쪽의 아무것도 없는 공터로 갔다.
“아이스 월.”
태운은 그곳으로 가서 얼음벽을 만들었다.
“음… 얼음벽에 공격 마법을 써주실 분?”
“내가 하지.”
태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다이치가 직접 나섰다.
버프 마법과 탱킹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기에 공격 마법은 딱히 기대되지는 않았다.
“관통력이 뛰어난 마법으로 부탁드립니다.”
“대충 파이어 윔블 정도면 되겠지?”
“네, 그 정도면 될 겁니다.”
“어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다이치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구시렁거리며 마법을 시전했다.
다이치의 마법이 시전되기 직전, 태운의 룬 버프 마법이 시전되었다.
‘연사의 룬.’
퍼퍼퍽!
“어…?”
태운이 만든 얼음벽에 불꽃 송곳이 똑같은 자리에 3발 박혔다.
“한 번에 3발? 공격 마법 꽤 느셨네요. 연습하셨습니까?”
“아, 아니… 이게 무슨….”
옆에서 자월 길드의 부길드장이 다이치에게 말했다.
다이치는 버프 마법과 탱킹에 특화되어 있을 뿐, 공격 마법은 B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가 모자라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마법 계열 A급 헌터의 기본 방어력이 C급 탱커 헌터보다 못한 경우는 많이 보이지 않는가.
그것과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다.
“나는 한 번만 사용했다. 마나도 한번 분량의 마나만 빠져나갔어.”
“네…?”
“그럼 뭐야? 어떻게 된 건데?”
모두가 당황해하고 있던 그때 태운의 입이 열렸다.
“연사의 룬입니다. 마법의 수식을 파악해서 자동으로 한 번 더 시전하게 해주는 마법이죠. 추가된 마법의 마나는 제 마나에서 소모됩니다.”
“연사의 룬…. 대단한 버프군.”
금호 길드의 하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문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조금 걱정되는 게 있군. 드래이그 고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은 소모되는 마나도 장난이 아닐걸세. 게다가 한두 명이 아니라 서른 명 정도를 커버하겠다고 했으니…. 자네의 마나가 버텨주겠나?”“버틸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마나를 수급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다.”
“마나를 수급해?”
태운이 마정석의 마나를 끌어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몇몇 있었지만 세상에 공표된 적은 없었다.
되도록 숨기고 싶었지만 아무 말 없이 납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어리숙하지 않았다.
‘마정석의 마나를 끌어 쓴다는 것 정도는 조금 특이한 특성에 불과하니… 슬슬 공개해도 되겠지.’공기 중의 마나를 끌어쓰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마정석의 마나를 끌어쓴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 마정석에 있는 마나를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마정석만 충분하다면 제 정신력이 허락하는 한 제 버프가 끊길 일은 없을 겁니다.”
“마정석의 마나를 끌어다 쓴다라.”
그때, 장신이 태운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신정훈 헌터도 마정석을 가지고 있….”
‘사일런스 마스크.’
태운은 그 말의 운이 띄워지자마자 장신의 얼굴에 소리 차단 마법을 사용했다.
‘장신… 진짜 장난도 정도가 있지….’
입을 연 장신에게 잠깐 관심이 끌리자 태운은 다시 관심을 돌렸다.
“이것 말고도 다른 버프 마법도 많이 연구했습니다. 보여드릴까요?”다행히 장신에게 쏠렸던 관심은 도로 돌아왔고 태운은 다시 룬 버프 마법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 * *
“하… 미치겠습니다.”
“창공 길드의 장신…. 그놈이 너와 신정훈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건가?”“네, 그것뿐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김가도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도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태운은 전대섭에게 장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장신이 계속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장난을 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있을까요?”“그러게 말이다. 일단은 눈앞에 닥친 적부터 처리하자꾸나. 드래이그 고흐를 처리한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알겠습니다. 차라리 신정훈이랑 제가 동일 인물이란 것만 알았으면 이렇게 골치 아프진 않을 텐데….”신정훈과 강태운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만 알게 되는 건 그렇게 복잡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냥 먼저 공개해 버리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장신이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장신이 공개를 한다 치면 증거가 없으니 묻힐 가능성이 높아. 대신 우리 측에서 공개를 했다가 장신이 김가도나 다른 이름까지 알고 있었고 그것까지 까발린다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어.’먼저 공개해 버리면 강태운이 이중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장신 측에서 증거를 꺼내 들 필요가 없어진다.
태운이 골머리를 썩이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그래. 그리고 네가 생각한 작전,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구나.”
“감사합니다.”
태운이 생각해낸 작전은 지금으로서는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럼 내일 대열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니 돌아가게. 내일 작전의 키는 자네니까 푹 쉬어두고. 마정석을 흡수하느라 꽤 피곤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태운은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대섭의 천막에서 나왔다.
그때,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던 태운은 반갑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마주하고 말았다.
“창, 창영우?”
“태운아, 오랜만이다!”
창영우는 과거의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지 천연덕스럽게 다가왔다.
‘미치겠네….’
창영우는 태운과 구찬영의 지하 훈련장의 위치를 누군가에게 전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태운과 구찬영이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 그래. 오랜만이네.”
태운은 떨떠름하게 대답했고 창영우는 어색해하는 태운에게 익살스럽게 말을 걸었다.
“뭐야? A급 헌터 되고 길드장급들이랑 어깨 나란히 했다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거야?”
“어? 그게 아니고….”
“장난이야. 아무튼 반갑다.”
태운은 원래도 창영우를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창공 길드의 장신을 만나고 난 후부터는 더 믿기 힘들어졌다.
창공 길드의 장신은 지하 훈련장의 정체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길드의 강압적인 요구 때문에 강제로 했다면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으니까.’물론, 장신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태운이 보기에는 장신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강태운과 신정훈을 엮는 듯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지하 훈련장을 넘기겠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깟 훈련장은 수백 개는 가지고 있다는 듯이 말했으니까.
“그나저나 신정훈 헌터, 정말 네 제자 맞아? 진짜 엄청나더만.”
“그래?”
“진짜 장난 아니던데? 나 B팀에 있었거든. 진짜 죽음을 각오하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낙뢰가 떨어지는데, 캬… 대박이더라고. 또 그렇게 끝내지 않고 바로 적진에 달려들어 가는 거 있지? 진짜….”태운은 창영우가 허물없이 자신을 대하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은 그를 의심하고 있는데, 분명 의심스러운데 창영우는 태운을 있는 그대로 대하고 있었으니까.
태운은 그것이 억울했다.
분명 배신한 것은 창영우인데 왜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태운은 그것이 억울했다.
“창영우.”
“음?”
태운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왜 우리 배신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