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이게 무슨 일이야…?”
통칭 붉은 용,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드래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드래이그 고흐는 과거 A급 던전에서 등장해 수많은 헌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강력한 몬스터이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드래이그 고흐를 S급 몬스터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드래이그 고흐의 브레스 한 번에 땅이 녹아내리고 날갯짓 한 번에 폭풍이 분다는 말도 돌았었다.
그리고 그 말들이 아주 헛소리는 아니라고 전대섭이 말했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였다.
지금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전대섭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강한 전대섭도 긴장할 정도의 강적이다.
‘그런 몬스터가 거대화했다고…?’
-빨리 중국으로 와라.
“네, 알겠습니다.”
태운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숙소에서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전대섭의 전화를 받고 즉시 공항에 비행기를 하나 준비해놓은 것 같았다.
전대섭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빠른 시간 내로 중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중국에 바로 내릴 수는 없었다.
땅 위에는 거대 몬스터들이 날뛰고 하늘에는 드래이그 고흐가 날뛰는 중국에 바로 비행기를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타십시오.”
파일럿은 태운을 빨리 중국으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들었는지 상당히 급해 보였다.
태운도 빨리 중국에 가야 했기에 별말없이 바로 비행기에 탔다.
“중국 공항은 올스탑 상태입니다. 그 주변 국가들도 공항은 죄다 멈췄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경로를 중국 상공을 지나도록 짜두었습니다. 그 위에서 뛰어내려 헌터들과 합류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못할 거 없죠, 일단 빨리 출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태운은 비행기를 타고 즉시 날아올랐다.
지금 태운이 있는 국가는 그리스. 6~7시간이면 중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화한 드래이그 고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몬스터보다 강할 거라는 건 분명하다.’어쩌면 거대화한 드래이그 고흐의 힘은 과거 만났던 마르기가스보다도 강력할 것 같았다.
‘그때 당시 허덕륜 선생님이 전대섭 선생님의 이름을 꺼내자 마르기가스가 꼬리를 말고 도망간 것을 보면 전대섭 선생님이 마르기가스보다 강한 걸 거야.’확실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느꼈던 바로는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전대섭 선생님이 긴장할 정도의 몬스터라니….’과거 전대섭과 셀을 비롯한 상위권 헌터들이 모두 참가한 드래이그 고흐 공략대에서 무려 30%에 해당하는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드래이그 고흐는 죽이지 못했고 겨우겨우 던전을 닫는 데 그쳤다.
그때보다 헌터들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기는 했으나 최상위권 헌터들의 숫자는 그 일 이후로 많이 회복하지 못했다.
한데 드래이그 고흐는 더욱 강해져서 돌아왔다.
“후….”
이번 일은 데블스 에이지 이후 전대미문의 인류의 위기다.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힘들겠네.”
하지만 태운은 이런 일로 인류가 멸망할 거라 생각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을 잘 막아내면 저 많은 수의 몬스터들을 거대화한 칠죄신교 녀석들은 거대 몬스터를 소환하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수백 마리의 거대 몬스터를 소환하면서 많은 양의 혼란을 사용했겠지. 그 혼란을 회복하기 위해서 인구가 많은 중국에 일을 벌인 것일 테고.’만약 이번 일을 잘 해결하면 데블스 에이지가 미뤄지고 이 지긋지긋한 자이언트 에이지까지 끝날 것이다.
“벌써 끝나면 그건 에이지라고 부를 수도 없겠네.”태운은 실없는 소리를 하곤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잠도 자고 밥도 먹다 보니 시간은 이미 5시간이나 지나 있었고, 현재 중국의 영공에 들어서서 티베트 자치구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행기의 파일럿은 자동 운전 기능을 켜두고 태운에게 와서 말했다.
“1시간만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그곳에서 낙하해 동쪽으로 10km만 가면 헌터들의 캠프가 있을 겁…….”띠리리링.
“잠시만요.”
그때, 태운에게 전대섭의 전화가 걸려왔고 태운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태운아, 거기 괜찮니?
“여기는 무슨 일 없습니다. 거긴 무슨 일 있습니까?”-없다면 다행이지만… 드래이그 고흐가 여기서 사라졌다. 레이더에 따르면 칭하이성을 넘어 티베트 자치구에서….
그때, 파일럿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태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태운은 고개를 돌려 파일럿의 시선이 멈춘 곳에 시선을 옮겼다.
“이런 미친….”
그곳에는 커다란 입을 떡 하니 벌린 채로 하늘을 날고 있는 드래이그 고흐가 있었다.
“…크으….”
뱀의 눈을 마주친 개구리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과거 기껏해야 코끼리 서너 마리와 맞먹는 크기였던 드래이크 고흐는 실로 거대해져 있었다.
두 눈으로는 녀석의 얼굴도 전부 담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헌터라는 말을 해왔던 태운마저도 온몸이 저릴 정도로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태운은 구급 상자에서 산소 마스크를 꺼내 파일럿에게 씌워준 후 끌어안은 후 비행기 문을 열어 뛰어내렸다.
파일럿은 이미 드래이그 고흐를 본 순간 선 채로 기절해 반항은 없었다.
쾅!
비행기는 드래이크 고흐와 부딪혀 폭발했고, 그 때문에 드래이크 고흐에게 존재를 들키고 말았다.
후-웅! 후-웅!
드래이크 고흐는 태운을 보자마자 몸을 틀어 태운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바람이 태운의 몸을 연신 흔들었다.
“진짜 미치겠네!”
태운은 오버 부스트를 사용하고 공중에 마나 벽을 만들어 그것을 박차고 바닥으로 쏘아졌다.
하지만 거리는 전혀 멀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칫…!”
달리는 속도로는 절대 녀석을 따돌릴 수 없다.
낙하하는 과정에서 녀석과의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태운은 결단을 내렸다.
‘오버 부스트, 오버 서플라이.’
오버 부스트와 오버 서플라이를 사용한 태운은 온몸의 근육을 쥐어짰다.
‘파일럿도 C급 헌터셨다고 했으니….’
어디 한두 군데 부러질 수는 있겠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태운은 공중에 마나 벽을 만들어 그것을 발로 찼다.
태운이 도약하는 순간 마나 벽은 완전히 부서졌고 태운은 순간 음속을 돌파해 날아갔다.
‘크윽!’
몸에 엄청난 부하가 온 태운의 근육이 실시간으로 부서져갔고 그 순간마다 팩 인 디바인 포스로 몸을 회복해나갔다.
[스탯 ‘근력’이 1 증가합니다.]
[스탯 ‘근력’이 1 증가합니다.]
[스탯 ‘근력’이 1 증가합니다.]
100에 가까운 태운의 근력 스탯이 오를 정도로 몸이 빠르게 부서졌다.
“크윽!”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엄청난 고통, 하지만 태운은 참아냈다.
아니,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살아서 공략대에 참가해야만 했으니까.
쿠-웅!
태운은 어느새 땅에 도착했고 드래이그 고흐와는 거리가 상당히 많이 벌어졌다.
기절할 것 같은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죽을 수 없다….’
태운은 마치 한 달은 자지 않은 것처럼 피곤했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렸다, 하지만 팩 인 디바인 포스를 사용해도 다리의 힘은 점점 빠져나갔고 피곤함은 절정에 달해 기절하기 직전인 상황까지 갔다.
“제발 그만 와!”
이렇게까지 하는데 제발 그만둬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잠깐이지만 몬스터에게 이해를 바라는 자신이 우습기까지 했다.
한 발을 더 내디딜 수도 없을 것 같은 순간, 태운의 어깨를 감싸는 손이 하나 있었다.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았군.”
그는 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해 순식간에 도착한 전대섭이었다.
“갑자기 전화가 끊어져서 급하게 와봤더니… 위험한 상황이었구나.”전대섭은 바닥에 앉아 천천히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태운은 바닥에 쓰러져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드래이그 고흐의 강력함,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는 힘이었지만 전대섭이 눈에 보이자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롱기누스.”
전대섭은 거대해진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하는 데 걸맞은 크기의 창을 소환해 쏘아냈다.
드래이그 고흐는 그 공격을 허용했고 깜짝 놀란 녀석은 몸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전대섭은 단번에 녀석의 외피를 뚫고 타격을 준 것도 모자라 도망까지 치게 만들었다.
과거의 드래이그 고흐와의 전투 결과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태운의 그런 반응을 읽은 전대섭은 말했다.
“나도 그때와 똑같지는 않거든.”
태운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 누구라도 알고 있지만 종종 잊어버리는 그 진리.
‘성장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지.’
전대섭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강해지고 있던 것이다.
“일단 쉬러 가자꾸나.”
* * *
“으으….”
“신정훈 씨, 일어나셨나요.”
태운은 12인용 텐트 안에 있는 간이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중국어를 사용하는 의사 한 명이 태운에게 말을 걸었다.
“여긴 어디….”
“드래이그 고흐를 막기 위해 임시로 지어진 캠프입니다. 여긴 그곳에 있는 의무실이고요.”
“아….”
“제 능력으로 상태를 검사했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심각하더군요.”
“네?”
태운은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되물었다.
“사실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몸 상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데 피로도는… 제가 지금껏 봐왔던 환자 중에선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아… 그런가요?”
태운은 그제야 의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무슨 한 달은 자지 않은 사람처럼 피로에 극도로 절어 있더군요.”
“하하….”
몸은 파괴하고 팩 인 디바인 포스로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피로가 어마어마하게 쌓인 것 같았다.
팩 인 디바인 포스는 원래 상처 회복과 동시에 피로까지 회복해주는 마법이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상처 회복을 할 때는 피로 회복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일단 깨어났으니 다행이군요.”
“혹시 저랑 같이 있던 파일럿 분은….”
“여기저기 크게 다치셔서 수술을 하기 위해 큰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설마….”
“걱정 마세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앞으로 팔이든 다리든 하나 정도는 쓰지 못하게 되겠지만.”태운은 고개를 떨궜다.
태운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과정에서 몸이 버티지 못해 다친 게 분명하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당신 덕분에 살아남은 거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사는 그런 태운의 말을 끊고 그의 등짝을 때렸다.
“그런 소리하고 있을 시간 있으면 빨리 전 대장님 천막에나 가보세요. 대책 회의를 하고 있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태운은 의무실을 나가 전대섭의 천막으로 향했다.
태운이 의무실을 나가자 태운과 대화를 하던 의사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끝났습니다. 지금 전 대장님의 천막으로 갔습니다.”-상태는?
“멀쩡하더군요.”
-아쉽군. 그래서 알아냈나?
의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수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말했다.
“네, 저 사람… DNA 검사를 해봤는데 강태운 헌터와 100% 일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