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48화 (148/379)

148화

“기간트 에이지.”

연정아의 입에서 불길함을 풍기는 이름이 나왔다.

“그 단어는 내가 칠죄신교의 본거지에서 세뇌당하며 길러질 때 들은 것 중 하나야.”

“맙소사….”

여기까지만 들어도 대충 알 수 있었다.

칠죄신교 녀석들이 이 짓을 할 수 없도록 만들지 않으면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나는 일은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녀석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헌터들의 인력을 부족하게 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헌터 협회와 길드들의 시선을 어딘가에 묶어 놓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최종 목표를 위해서야.”

“최종 목표라하면….”

“칠죄종의 부활이지. 재단에 쌓이는 혼란 수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데블스 에이지의 재래가 가까워질 거야.”태운은 그 순간 머리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들었다.

“녀석들의 본거지가 어디지?”

“하늘섬이야. 불규칙한 궤도로 항상 하늘을 날아다녀.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 그림자도 생기지 않지.”“마법인가? 마법이면 마법 감지 기계를 활용하면 찾을 수 있을 텐데.”연정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못 찾아. 녀석들이 그걸 노리고 수백 개의 더미들을 뿌려놨어. 그것만으로도 찾기 힘든데 마법 고유의 파장도 매일 바뀌도록 설정해놨고 위치도 끊임없이 움직이니까…. 녀석들이 이런 식으로 테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이런 요건들 덕분이지.”

“하….”

태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녀석들의 본거지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대섭이 10명은 있어도 반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미치겠네.”

“그러게 말이다….”

이 기간트 에이지, 연정아의 말대로라면 칠죄신교 녀석들을 무너뜨리거나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수단을 망가뜨려야 한다.

“지금 중국 고비 사막에 나타난 거대 오크는 아마 실험용일 거야. 분류는 되지 않았지만 힘의 수준으로 보면 A-3티어 몬스터 정도는 될 거야.”

“그게 실험용이라고?”

“응.”

태운이 안에서 잡은 거대한 콜드 스콜피언도 A-3티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았다.

“내가 안에서 잡은 거대한 콜드 스콜피언도 그 정도 수준이었어. 그럼 그게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될 거 같은데?”

“아니. 그건 분명히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연정아는 일순간 몸을 떨었다.

“하늘섬에서 도망치기 전에 내가 본 적이 있거든… A-1티어급의 몬스터인 엘리멘탈 드레이크가 50m에 가깝게 거대해진 모습을….”

“…….”

엘리멘탈 드레이크, 보스급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몬스터다.

공략 난이도 자체가 보스 몬스터급으로 어려운 것은 물론, 녀석을 궁지에 몰아넣는다고 해도 스스로 폭발한다.

그 폭발력은 작은 핵폭탄과도 같고 상당한 농도의 방사능까지 내뿜는다.

“재앙이야.”

“재앙이지….”

녀석이 거대해진 상태로 도심에 나타난다?

그 도시는 포기해야만 한다.

녀석은 힘도 강력해 생포할 수 없고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녀석을 죽이려고 공격을 하다 보면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한 녀석은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거대화한 A급 몬스터들이 수백 마리가 나타나 날뛴다면 그날로 인류는 멸망이다.

다른 수식언이 필요 없다.

말 그대로 멸망이다.

“그래도 막을 수는 있을 거야. 녀석들 중에서도 몬스터 거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그건 다행이지만… 그래서 한 번에 나타난다면 최대 몇 마리가 나타날까.”“잘은 모르겠지만… 한 번에 10마리 이상은 나타나지 않을 거야. 몬스터 거대화도 재단에 모이는 혼란 수치를 사용하는 거니까.”태운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답은 간단하네.”

“응…?”

“녀석들이 투자한 혼란 수치를 채우기도 전에 우리가 거대화한 몬스터들을 막으면 돼.”태운은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우리나라, 한국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지금 떠올려보니 그런 생각에서 나온 행동들이 꽤나 많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행동이라고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태운은 달랐다.

인류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인류의 공공의 적인 칠죄신교를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태운은 그러면 안 됐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4달 동안은 한국에서 보기 힘들 거야.”

“뭐…?”

“한국에서 내 이미지도 있으니 강태운이라는 헌터는 한국에 상주해 있는 걸로 되어 있겠지만 내 몸은 한국에 있지 않을 거거든.”국가를 대표하는 헌터라고 할 수 있는 A급 헌터가 이런 시국에 한국에 있지 않고 다른 나라를 돌아다닌다?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굉장히 안 좋게 보일 것이다.

‘내 의도가 어떻든 사람들은 보고 싶은대로 볼 뿐이니까.’연 정아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하며 태운을 말렸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가?”

“너 거의 반년 동안 아무 소식 없이 돌아오지 않았어. 너에게는 2시간이었겠지만 네 동생이나 친구들한테는 반년이었다고.”“지금 당장 떠나겠다는 건 아니야. 3일 뒤에 떠날 거야.”

“그게 아니….”

태운은 연정아를 무시하고 허덕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냐. 오랜만이구나.

“저한테는 2시간이었지만 말이죠.”

-나에게도 반년은 순식간이었단다.

태운은 허덕륜과 실없는 대화를 나눈 뒤 본론을 꺼냈다.

“3일 뒤에 김가도의 이름으로 전 세계 각국에 파견을 보내주실 수 있으신가요?”-어… 그게 말이다….

허덕륜은 김가도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무슨 일 있나요?”

-김가도라는 이름은 헌터 협회에서 파면되었단다.

“예?”

* * *

“곤란하네요.”

태운은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총장실에서 허덕륜, 전대섭과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본 헌터 협회 측에서 제가 일본 협회의 본부 안을 막 돌아다닌 걸로 문제 제기를 했고 한국 헌터 협회는 김가도 헌터의 독단이라고 말했고 영구 제명했다는 거죠?”

“정리를 잘하는구나.”

“뭐, 상관은 없어요. 저한테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니고.”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었다.

한국 헌터 협회가 아닌 일본 헌터 협회의 현 협회장인 게이치로가 말이다.

‘하긴 5개월이 넘게 답을 주지 않았으니 그냥 강행했겠지.’그래도 신경 쓰이는 게 있었는데 그걸 확인하지 못한 건 좀 아쉬웠다.

그건 바로 게이치로 협회장이 기괴한 몬스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의 정체였다.

“게이치로 협회장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전대섭과 허덕륜은 입을 모아 말했다.

“적당히 유능하고 적당히 능글맞고 적당히 단단한… 그런 사람 같더군.”

“나도 똑같네.”

“저도 딱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뭔가를 숨겨?”

태운은 자신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게이치로 협회장의 수행원들과 했던 이야기들을 전부 전대섭과 허덕륜에게 말했다.

“흐음. 게이치로가 그런 일을 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오히려 깔끔한 성격이라 동물도 하나 키우지 않는다 들었습니다.”태운은 게이치로 협회장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부 들었지만 그가 기괴한 몬스터들을 만들고 키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김가도에게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온 걸 보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겠지. 그리고 몬스터를 만들고 키운다는 걸 몰래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헌터 사회를 근간부터 뒤흔드는 사건이야.”조금 과하게 해석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었다.

몬스터는 인류의 적, 테이밍을 하고 길들인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 테이밍 마법이 풀리는 순간 주인을 물어뜯는 것이 몬스터다.

몬스터들은 세뇌가 된 듯,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극도로 혐오하고 죽이고 싶어한다.

그런 몬스터들을 죽임으로써 인류를 지키는 것이 헌터이고 그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 인류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헌터들의 적인 몬스터들을 몰래 키운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다.

“일단 지금 이렇게 생각해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 일단 내가 사람을 붙여두도록 하겠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네 신분을 3개 정도 만들어 두었네. 각각 다른 얼굴로 사진만 찍어서 보내주면 바로 신분이 만들어질 게야. 참로고 등급은 전부 C급이니 참고해두게.”

“감사합니다.”

전대섭은 태운의 새 신분을 미리 만들어두었다.

태운이 고작 그런 던전에서 목숨을 잃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은 것이다.

태운은 뭔가 믿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덕분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일단 제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드디어 본론이군.”

태운은 연정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었다.

칠죄신교 녀석들의 의도, 혼란 수치에 의한 데블스에이지의 재래, 거대화의 대가 중에 혼란 수치가 있다는 사실까지.

연정아에게 이미 모든 사실을 들은 전대섭은 담담했지만 허덕륜은 그렇지 않았다.

“배반자 녀석들…. 그래서 그런 테러를 닥치는 대로 했구만….”

“그래서 자네 계획은 뭔가?”

“단순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태운은 두 사람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 전 세계에서 중국의 고비 사막 오크와 같은 몬스터들이 나타날 겁니다. 어쩌면 더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날 수도 있죠.”

“그렇겠지….”

“그래서 저는 녀석들이 몬스터를 거대화하는 데 사용한 혼란 수치를 회수하기도 전에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녀석들의 본거지를 칠 수도 없고 녀석들이 어떤 원리로, 어떤 장치를 사용해 몬스터들을 거대화하는지도 알지 못하니까.

녀석들이 본전도 뽑지 못하도록 만든다면 이 일을 포기할 것이다.

“전대섭 선생님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등 동아시아를 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네.”

전대섭은 한국 소속 헌터의 얼굴, 멀리 보낼 수는 없었다.

“허덕륜 선생님은 아메리카 대륙을 부탁합니다.”

“알겠다. 좀 멀구나.”

아메리카 대륙에는 단단한 외골격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런 몬스터들에게는 허덕륜의 공격이 잘 먹힐 것이다.

“전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커버하겠습니다.”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대륙이다.

전대섭도 4개 국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유럽권 언어와 아프리카권의 언어는 알지 못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구사하는 태운이 가는 게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럼 3일 뒤에 일제히 출발하겠습니다. 전 그동안 친구들과 만나서 인사 좀 해야겠습니다.”

“많이 강해져서 오거라.”

“4개월 뒤 A급 던전 공략이 있으니 다치지도 말거라.”

“네, 알겠습니다.”

누군들 알았을까.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최악의 열등생이라 불렸던 강태운이 한국 최강의 헌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미래를 말이다.

“3일 뒤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