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태운과 전대섭이 얻어낸 증거들은 마쓰다 협회장에게 넘겼다.
한국의 헌터들이 그것을 알리는 것보다는 일본의 협회장이 세상에 알리는 것이 더욱 신빙성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원본은 태운과 전대섭이 가지고 있고 협회장에게 넘긴 건 복사본이었다.
증거들을 모두 넘겨받은 마쓰다 협회장은 카츠가 칠죄신교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세상에 공표했다.
물론, 카츠의 만행들을 밝히는 과정에서 마쓰다 협회장이 카츠에게 도움을 준 사실들이 어쩔 수 없이 들통이 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협회장의 자리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 큰 처벌과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마음만큼은 편할 것이다.
언제나 카츠의 살생에 도움을 주며 양심의 가책을 느껴왔던 그였으니까.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남겨질 아내와 자식들이었다.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도 비리 협회장의 가족이라는 꼬리표는 언제나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태운도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태운은 그런 곳에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시간이 넘치지 않았다.
곧 한국으로 돌아가 몸의 감각을 세우는 데 썼던 던전을 되팔아야 하고, 되팔아 생긴 돈으로 다시 새로운 던전의 공략권을 구입해 던전을 돌아야 하니까.
‘그래도 난 덜 바쁜 편이지.’
대외적으로는 이번 사건의 공로자는 전대섭뿐이며 태운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발표되었다.
A급 헌터가 칠죄신교와 손을 잡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해결한 전대섭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 때문에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 공적을 모두 전대섭에게 넘기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지만 태운의 두 번째 이름인 김가도라는 이름의 헌터는 알려지면 안 되는 존재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수고했네. 한국에 돌아가면 일단 푹 쉬도록.”
“네 알겠습니다.”
태운은 전대섭과 호텔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인사를 나눴다.
전대섭은 호텔 안에 있는 기자회견실로 향했고, 태운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도쿄 공항으로 가주세요.”
이곳에 왔을 때는 일본 헌터 협회에서 지원해준 차량을 타고 왔지만 지금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상황이 이러니 이해해줘야지.’
일본 헌터 협회는 현재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소속 헌터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사람이 칠죄신교와 손을 잡은 것이 드러난 것도 모자라 협회장도 그것에 관련이 되어 있었다는 정황까지 포착된 상황.
이 사건들로 인해 일본 헌터 협회는 물론 일본 전역이 뒤집힌 상태였다.
‘일단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해결한 게 다행이네.’녀석이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고 아래부터 천천히 능력을 흡수하며 힘을 갈고 닦았다면 태운이 그를 쉽게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마법은 써야 했겠지. 그래도… 능력만큼은 대단했지.’태운은 카츠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태운에게 칠죄신교는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카츠의 능력인 ‘강탈’은 분명 사기적인 특성이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대상의 특성과 스킬을 흡수한다.’만약 카츠가 칠죄신교의 전사들을 죽이며 힘을 얻으려 했고 그 힘을 칠죄신교를 향해 겨눴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만약…… 정말 만약에….’
카츠가 칠죄신교에 들지 않고 그들과 맞서는 입장이었다면.
카츠가 칠죄신교의 대원로들과 맞설 수 있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카츠가 칠죄신교의 대원로들을 죽이고 그 힘을 강탈할 수 있었다면.
강탈이라는 특성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닌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그런 특성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지금 그런 생각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태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택시는 도쿄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감사합니다.”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린 태운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 *
일본 헌터 협회, 마쓰다 협회장의 퇴임이 결정되고 차기 협회장으로 유력한 인물인 ‘게이치로’가 자신의 방에서 USB에 담긴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 USB에는 일본 헌터 협회 본부에 있는 CCTV에 찍힌 영상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게이치로는 그 영상 중에서 한국 헌터 협회와 일본 헌터 협회 간의 회담이 있던 날의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그렇다.
그날은 카츠가 죽고 그에 대한 진실들이 모두 밝혀진 날이다.
“역시….”
게이치로는 마쓰다의 행동과 기색이 의심스러워 미리 CCTV의 영상들을 모두 복사해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게이치로가 CCTV의 영상을 복사한 후 마쓰다는 당일 CCTV의 영상을 삭제했다.
게이치로는 그날의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게이치로는 그 영상에서 마쓰다가 숨기고 싶어 했던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흠… 누구지?”
직원 명단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 직원 전용층인 5층~10층을 버젓이 활보하고 있다.
게다가 지문과 홍채를 인식해야만 열리는 문을 잠깐의 조작만으로 뚫고 들어가더니 마치 투명화가 된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호오….”
게이치로는 역으로 추적해 1층에서 그 사람과 똑같은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을 찾아냈고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야… 이거 대박인데?”
게이치로가 찾아낸 의심스러운 사람은 바로 전대섭의 바로 옆에 붙어서 같이 협회 본부에 들어온 김가도였다.
“이거 잘만 버무리면… 좋겠는데?”
게이치로는 일본 헌터 협회의 출입 금지 구역에 출입한 사람의 정체가 김가도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기분 나쁜 소리로 웃었다.
* * *
태운은 비행기에 올라타 출발하기 전까지 휴대폰으로 전대섭의 기자회견을 보기로 했다.
태운이 휴대폰을 켜서 기자회견 중계방송을 켜자 때마침 전대섭이 정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회담이 끝난 후 마쓰다 전 협회장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할 말이 있다고 말이죠.]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다.
이 사건에서 김가도라는 헌터는 존재하면 안 된다.
김가도라는 인물을 이 사건에서 제외한 후 개연성에 맞게 재구성한 스토리였다.
[마쓰다 전 협회장은 일본의 A급 헌터인 카츠와 자신이 손을 잡고 일본의 헌터들을 죽였다며 저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카츠가 칠죄신교와도 손을 잡았다고도 말했죠.]
전대섭은 아주 자연스럽게 미리 짜놓은 스토리를 읊었다.
험난한 기자회견들을 수없이 헤쳐나온 사람다운 관록을 보여주었다.
[평소에도 그를 돕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마쓰다 전 협회장은 칠죄신교까지 연관되자 더 이상 그를 돕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 협회장은 저에게 이 캠코더를 주고 카츠와 자신의 대화를 영상으로 찍으라 했습니다.]
캠코더로 카츠와 마쓰다 전 협회장은 조금도 놓치지 않고 찍었지만 절묘하게 전대섭은 보이지 않게 찍어두었다.
전대섭이 찍었다고 했는데 캠코더에 전대섭의 모습이 보이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러던 중 카츠는 제가 캠코더로 이 상황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즉시 저를 공격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카츠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힘 조절에 실패해 그는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가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시던 사건의 과정입니다.]
전대섭은 성공적으로 준비한 이야기를 풀어냈고 기자들은 전대섭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개판이네.’
기자들의 질문 중에 정상적인 질문을 찾아보는 게 힘들 정도였다.
‘아무리 칠죄신교와 손을 잡았다지만 타국의 A급 헌터를 사살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특히 이 질문은 태운의 울화를 치밀어오르게 하기 충분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희생자의 수는 약 500명이다.
수백 명의 사람이 카츠라는 단 한 사람의 손에 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런 최악의 범죄자라고 할 수 있는 카츠를 죽였다는 것에 죄의식을 씌우려 하는 기자의 행태가 심히 역겨웠다.
전대섭도 그 질문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전 정당방위였을 뿐입니다. 일본 당국이 저에게 죄를 물으신다면 저 또한 일본의 A급 헌터에게 공격을 당한 사실을 정식으로 항의할 것입니다.]
전대섭이 그렇게 말하자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대섭을 물어뜯었다.
‘전대섭 헌터님께서 먼저 일본 헌터 협회의 비밀 공간에 침입을 한 것이고 카츠는 침입자를 몰아내려 한 것입니다.’‘카츠 헌터는 자신과 협회장의 비밀 공간에 제삼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적이라고 인식했을 겁니다.’‘카츠 헌터가 아니었어도 그렇게 대처했을 겁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드는 기자들을 보며 전대섭이 한마디를 꺼냈다.
[지금 칠죄신교와 손을 잡은 범죄자를 옹호하시는 겁니까?]
이곳에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있는 자리다.
게다가 그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가지고 자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전대섭을 물어뜯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대섭을 공격하느라 최악의 범죄자인 카츠를 두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데블스 에이지를 직접 겪었고 전선에서 싸웠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칠죄종의 끔찍함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악몽을 재현하려는 칠죄신교는 그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한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한데, 기자님들은 그들을 두둔하시는 겁니까?]
타악!
[전 이런 기자들과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제 기자회견에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기자들과 같은 소속의 기자들은 받지 않겠습니다.]
전대섭은 기자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 후 곧바로 기자회견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와… 와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운의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자신에게 공격적인 언론을 반대로 이용하는 그 관록과 실력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 당장 기자회견장에 있는 기자들은 궤변이라며 기사를 내보내겠지만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언론사들은 경쟁 관계인 기자들을 공격할 것이다.
“대충 ‘도 넘은 기자들, 자극적인 기사를 좇다 선을 넘다’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지겠지.”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언론은 잘만 사용하면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나도 언론을 상대할 때가 됐는데 말이지.’한국의 새로운 A급 헌터가 된 태운은 이제 언론의 앞에 설 일이 많을 것이다.
태운은 입을 잘못 놀렸다가 망해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때 태운이 타고 있던 비행기에서 기장의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승객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본 여객기는 한국행 여객기입니다. 3분 뒤 이륙하오니 휴대전화는 전원을 끄거나 비행기 모드로….]
태운은 그 안내 방송을 듣고 휴대폰을 끈 후 주머니에 넣었다.
‘뭔가 싱겁게 끝난 것 같긴 하지만….’
어차피 일본에 올 일이 조만간 한 번 더 있을 것이다.
카츠를 죽였다고 해서 A급 던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