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크하하하하하!!!]
태운에게 팔 하나를 잘린 아수라는 큰 소리로 웃었다.
어찌나 큰 소리였는지 허허벌판인 평지에서도 메아리가 치는 것 같았다.
뿌-드득.
아수라의 잘린 팔 단면에서 뼈와 근육이 솟아나 회복되었다.
하지만 태운의 공격이 허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힘이 줄었다.’
수십의 분신들을 제거했을 때보다도 많은 힘이 사라졌다.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확실히 전보단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고작 그 정도의 힘으로 나에게 이만큼의 타격을 입히다니…. 적이지만 칭찬하마!]
힘의 크기에 있어서는 아수라가 우위에 서 있다.
그건 이견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사실이었다.
아수라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운을 상대하면서 시종일관 진심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랐다.
오로지 힘의 크기에 의해 전투의 승패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방금의 공격으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힘을 잃었겠지만… 전보다 쉬울 것 같지는 않네.’물론 그 사실을 태운도 알고 있었다.
힘이 줄었다고 해서 전투가 한결 수월해지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지금껏 선수는 양보해줬으니, 이젠 내가 들어가겠네!]
부-웅!
태운은 눈으로 감지하지 못한 공격을 오로지 직감으로만 몸을 숙여 피해냈다.
‘미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속도의 공격이었다.
현실에서도, 마정석 안에서도 본 적이 없는 속도였다.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순간 전투 중이라는 것을 잊고 멍때리고 있었다.
[집중해라.]
아수라는 이 즐거운 싸움을 적의 한심한 실수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는지 태운에게 핀잔을 주었다.
태운도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검을 들어 올렸다.
‘내가 미쳤었네.’
이런 적을 눈앞에 두고 집중을 잃다니.
아수라가 봐주지 않았더라면 수십 번은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누가 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경이적인 속도이긴 했다.
그것을 보고 태운이 집중력을 잃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태운은 초감각을 활성화하고 성검에 열화를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방어가 허술해지기는 하지만 어차피 열화를 온몸에 두르고 있어도 아수라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수라에게는 타격이 없으니까.
즉,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웅!
초감각을 활성화하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공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감각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는 전혀 느린 것 같지 않았다.
‘내 최고 속도도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지게 했던 초감각이….’아수라는 지금까지 분명히 놀던 것처럼 태운을 상대하고 있던 것이다.
‘그 오만이 널 죽이게 될 거다.’
아수라가 약해지기 전에 진심을 다했다면 태운에게 승산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진심을 다하고 있지만 전보다 약해진 상태, 승산이 조금이나마 생겼다.
태운은 아수라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후 아수라의 팔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목을 노리지 않고 팔을 노린 이유는 간단했다.
목은 하나, 팔을 여섯 개였으니까.
공격에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
후-웅.
하지만 아수라는 몸을 뒤로 크게 젖혀 태운의 공격을 피해냈다.
‘어스 캐슬.’
태운은 아수라의 등 뒤에 커다란 성벽을 세웠고 아수라는 갑자기 솟아난 성벽 때문에 자신이 물러나고 싶은 만큼 물러나지 못했다.
[이깟 벽 따위….]
“손가락만 까딱해도 부술 수 있겠지.”
하지만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
태운은 그 틈을 노리려는 것이다.
‘오버 부스트.’
태운은 오버 부스트를 사용하고 아수라에게 달려들었다.
열화로 인해 흰색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성검을 든 태운은 마치 천국에서 내려온 심판자 같았다.
[재밌구나!]
아수라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벽을 부수는 것을 포기하고 태운의 검에 맞서기로 결정했다.
콰-아.
태운의 성검과 아수라의 팔이 맞닿는 순간 마치 폭발이 일어나듯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크윽…!”
태운은 성검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고 팔다리는 죄다 망가져 버렸다.
“후….”
하지만 아수라도 상처 없이 멀쩡한 건 아니었다.
아수라도 왼쪽 팔 3개의 팔꿈치 아래가 녹아 있었다.
‘신성력 강화.’
태운은 신성력을 몸에 둘러 몸을 천천히 회복시켰다.
신성력을 활용한 회복의 성능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후아….]
아수라는 태운의 공격에 녹아내린 팔을 바라보며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크으으으하하하!!!]
아수라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바로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뚜드득!
태운은 팩 인 디바인 포스를 사용해 강제로 몸을 회복시킨 후 성검을 들어 올렸다.
투-둑.
몸 안에서 뼈가 어긋나는 게 느껴졌지만 그것 때문에 자세를 흐트러뜨릴 수는 없었다.
아수라의 공격을 성검으로 막지 않고 정통으로 맞으면 어디를 맞든 죽어 버릴 테니까.
쿵!
아수라는 남은 3개의 팔을 태운에게 휘둘렀고 태운은 성검으로 녀석의 주먹을 막아냈다.
“크헉!”
하지만 말이 막아낸 것이지 아수라의 공격을 막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크웁….”
태운은 바닥에 처박혀 피를 토하는 상태에서도 방어 자세를 유지했다.
[크으! 이게 싸움 아니겠나!]
아수라는 열화에 의해 녹아내리기 시작한 오른쪽의 팔들을 제쳐두고 왼쪽 팔들을 회복해 태운을 공격했다.
쿵!
태운은 방어 자세를 풀지 않은 덕분에 녀석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검이 충격까지 0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성검이 제대로 막아주지 못한 공격의 충격은 고스란히 태운에게 전달되었다.
팔은 이미 부러져 버렸고 늑골도 전부 가루가 되어 버려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허어억….”
작은 쇳소리 같은 숨소리가 태운의 코에서 흘러나왔고 아수라는 아쉬운 얼굴로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팩 인 디바인 포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야 했다.
온몸이 가루가 되어 버린 상황, 팩 인 디바인 포스로 몸을 회복한다고 해도 검을 두세 번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가루가 되어 버린 뼈가 이상하게 회복되어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의 뼈가 다시 부서져 버릴 테니까.
[잘 가라!]
아수라는 누워 있는 태운을 마무리하기 위해 6개의 팔을 모두 회복시킨 후 깍지를 끼우고 태운의 머리통을 완전히 부숴 버리려 했다.
펑! 휘-릭!
태운은 자신의 어깨에 매직 미사일을 발사시켜 몸을 회전시켰고 아수라의 공격으로부터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쾅!
아수라의 공격은 애먼 바닥을 박살 냈고 태운은 성검을 쥐고 일어나 아수라의 몸통에 검을 꽂아 넣었다.
단순히 일어나서 체중을 실어 검을 꽂아 넣은 것이었지만 자세와 타이밍이 좋았는지 아수라는 태운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역시… 반격하기 제일 좋은 타이밍은 적이 끝을 내려고 할 때다.’태운은 검을 위로 휘두르며 뽑아냈다.
[크윽…!]
퍼억!
순식간에 복부에서 어깨까지 잘린 아수라는 놀란 마음에 급하게 팔을 휘둘렀고 태운은 그것에 맞아 수십 미터나 날아갔다.
“후우….”
태운의 공격에 의해 아수라의 힘은 많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힘의 크기는 아수라가 위였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닿지 않을 수준이 아니었다.
[크흐흐흐….]
아수라는 두 눈을 빛내며 웃었다.
[나는 수라의 세계에서도 이렇게 위기에 몰렸던 적이 없다.]
지금의 아수라는 아수라가 되기 위해 수많은 요괴, 마물들과 경쟁했다.
그중에는 신마저도 두려워했다는 제천대성의 핏줄도 있었다.
하지만 아수라는 그들도 쉽게 이겨냈다.
아수라의 자격을 얻고 그 전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아수라의 좌에 올랐을 때에는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아수라의 전통대로 이 세상을 정복하러 왔더니… 네 녀석 같은 강자가 있었을 줄이야.]
아수라는 조금의 분노도 느끼지 못했다.
강한 힘을 제대로 쏟아낼 수 있는 상대를 만나 상쾌함 마저 느끼고 있었다.
[난 아수라의 좌를 포기하겠다.]
아수라는 난데없이 아수라의 좌를 내려놓고 평범한 마물로 돌아갔다.
6개였던 팔은 평범하게 한 쌍으로 돌아갔고 3개였던 얼굴도 하나가 되었다.
거대한 몸도 천천히 작아져 180cm의 남성과 비슷한 신체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빨간 피부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슨….”
겉모습만 보면 전의 아수라가 훨씬 더 강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태운은 아수라가 저렇게 변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생각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때 아수라가 입을 열었다.
[난 이제 아수라가 아니다. 내 이름은 가펠이다.]
가펠은 아수라의 좌를 포기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원래대로라면 힘이 줄어들어야 했지만 가펠은 달랐다.
[다른 녀석들은 아수라가 되어 자신의 본래의 힘보다 강한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가 아수라가 되어 얻은 것은 조금 더 강한 힘과 아수라의 고유한 몇 개의 능력들뿐. 그러니 좌를 포기한다고 해서 약해지지 않는다.]
아수라의 능력으로 죽음의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힘을 잃었다.
그 상태에서는 차라리 아수라의 좌를 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확실히… 강해진 것 같긴 하군.”
태운도 가펠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마치 방금의 아수라가 그대로 작아져 힘이 압축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가겠네. 목숨을 건 전투를 신청한다.]
“뭐, 나는 목숨을 잃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싸우도록 하지.”가펠은 태운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가펠은 태운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태운은 피함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큭!]
가펠은 검을 피해냈지만 작은 생채기가 나는 것까지는 감수해야 했고 그 상처로 신성력이 파고들어 큰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아수라의 자리를 포기하면서 신성력에 대한 저항력도 잃어버린 듯했다.
‘오버 부스트, 일도양단.’
태운은 승기를 잡기 위해 가펠의 몸통을 가르는 공격을 시전했다.
[어딜!]
아수라도 태운의 공격을 피해내고 태운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윽…!”
힘의 크기는 분명히 아수라를 포기하기 직전과 똑같았지만 상대하는 것은 이쪽이 훨씬 까다로웠다.
아수라의 자리에 서 있을 당시에는 오로지 힘으로 찍어누르기만 해서 그랬던 탓일까.
가펠의 몸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퉤.”
태운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 후 달려오는 가펠을 바라보았다.
‘일단 방어를….’
태운은 공격해오는 가펠의 정면에 성검을 가져갔다.
그 순간 가펠은 우뚝 멈춰서 공격의 경로를 수정했다.
파-앙!
정석적인 바디 블로우.
태운의 갑옷이 산산조각이 났고 태운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후우….”
이기기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태운이 수십 번이나 바닥을 나뒹굴면서 절대 놓지 않았던 성검이 승리의 길을 만들어 줄 것 같았다.
‘다음 공격으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