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젠장!”
“억제력이 부족해!”
“화력 부족! 지원은 못 부르는 거냐!”
사람이 많은 도시 한복판에서 B급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한국 내에서도 나름 이름이 있는 길드인 신화 길드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들만의 힘으로 막는 것은 무리였다.
B급 던전의 입구에서는 B급-3티어 몬스터 네팔 오크가 수십 마리씩 쏟아져 나왔다.
신화 길드 웨퍼들의 맹공에도 그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고 무식하게 전진해 전열의 탱커들을 두드렸다.
“크윽….”
“버텨! 이를 악물고 버텨라!”
“시민들이 대피하고 군이 새로운 전선을 설정하기 전까진 대형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시민은 대피하지 못했고 군은 위험 구역을 설정해 군대를 배치하기 전이다.
만약 지금 대형이 무너져 오크들이 이 이곳에서 벗어난다면 주변의 시민이 다칠 수도 있고 몬스터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사람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쾅콰쾅쾅!
쩌-적.
네팔 오크는 다른 오크들과 달리 두 쌍의 팔에 질 좋은 무기를 들고 있다.
그 탓에 탱커들의 방패에 점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힘의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 상황에 탱커의 방패가 부서진다?
겨우 유지되고 있는 힘의 균형이 순식간에 기울면서 대형이 무너져 오크들이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조강현! 대형이 무너지면 부탁한다!”
“예!”
올해 명운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신화 길드에 들어온 조강현은 방패를 들고 전선에서 오크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조강현을 포함한 탱커들의 방패가 모두 천천히 부서지고 있었다.
쩌저적!
“조강현!”
“알겠….”
조강현이 공략대 대장의 명령에 따라 거인화를 사용해 양팔로 던전의 입구를 틀어막으려는 순간.
“하필 제가 퇴원한 날에 이런 일이 생기네요.”
“어…?”
조강현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한 달은 생각보다 길었어요.”
“강태운!”
태운은 웨퍼들의 뒤에서 여유롭게 나타나 탱커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잠깐 쉬고 계세요.”
태운은 자연스럽게 움직여 네팔 오크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적의.’
태운이 적의를 사용하자 맹렬히 공격하던 네팔 오크들이 일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크룩….]
“라바 랜스.”
태운은 짧은 마법 명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났다.
분리, 복제, 다중 시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라바 랜스 수십 개가 나타나 네팔 오크들의 머리통을 뚫어 버렸으니까.
“뭐, 뭐야….”
웨퍼들이 다양한 마법을 쏟아부어 몸에 구멍을 내어도 우직하게 탱커들을 공격하던 네팔 오크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신화 길드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칠 할아버지 말이 맞았네.”
태운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짧은 미소를 지었다.
“던전 입구를 계속 봐!”
“오크가 계속 나온다!”
신화 길드원들은 던전 입구에서 나오는 오크들을 보고 다시 대형을 갖췄지만 그들은 이미 시간을 충분히 끌어준 후였다.
-시민의 대피가 모두 끝난 것이 확인되었고 군부대 배치도 끝났습니다. 던전 입구를 봉쇄하고 있던 신화 길드는 물러나도 좋습니다. 다시 한번 전합니다. 시민의 대피가….
신화 길드원들의 머리 위로 헬기가 떠 그들에게 상황을 전달해주었다.
“물러난다! 다들 수고했다!”
네팔 오크는 B급-3티어 몬스터치고는 기동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신화 길드원은 빠르게 몸을 빼내어 네팔 오크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이동했다.
물론, 태운도 그 장소로 같이 이동했다.
“태운아! 너 방금 그거 뭐야?”
“폐관 수련의 성과라고 하죠. 오랜만입니다.”사실 폐관 수련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병원에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쉬기만 한 거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태운 자신이 알게 모르게 받아왔던 스트레스를 해소해 집중력을 높였고 몸이 빠르게 성장한 스탯에 적응할 수 있게 시간을 주었다.
그러자 이렇게 된 것이다.
‘방금 라바 랜스도 그렇고… 복제, 분리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나의 마법으로 여러 명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게 되었어.’방금 마법을 사용하면서 순간적으로 복제, 분리, 다중 시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마나 운용만으로 여러 개의 라바 랜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칠 할아버지는 이런 것도 대충 예상한 걸까.’그동안 태운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왔다.
그 때문에 적응할 수 있던 부분은 크게 성장했지만 적응하지 못한 부분은 성장이 더뎠던 것이다.
예를 들어 태운은 지금껏 근력이나 체력 같은 부분에는 충분히 회복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지만 지력 부분에는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근래에 높아진 지력 스탯에 뇌가 적응할 수 있게 하자 두뇌 회전도 빨라졌고 계산 능력도 향상되었다.
게다가 3년간 쌓여온 스트레스도 천천히 해소되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 태운은 지금 한 달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대단하구나, 너….”
조강현은 태운의 성장에 감탄했다.
“지금 수다 떨 시간은 없다. 단순히 한숨 돌린 것뿐이야. 군부대의 포위망은 헌터들의 도움 없이는 순식간에 무너질 테니까.”
“…죄송합니다.”
네팔 오크는 절대 약한 몬스터가 아니다.
그들이 비각성자이거나 각성자여도 훈련을 받지 않은 병사들이 있는 군부대 포위 기지를 습격한다면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작전을 설명한다. 일단 무리에서 떨어진 네팔 오크들을 각개격파하고….”
“프로텍트 돔.”
태운은 신화 길드 공략대 대장의 말을 끊고 네팔 오크들이 던전 입구에서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프로텍트 돔을 시전했다.
네팔 오크들은 그 안에 갇혀 애먼 방어벽만 두드려야 했다.
“…맙소사.”
신화 길드 공략대 대장도 태운의 실력을 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임시 격리 성공 보고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 * *
태운의 프로텍트 돔 덕분에 오크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을 수 있었고 그 이후 도착한 지원군과 힘을 합쳐 한 번에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그 작전이 끝나고 조강현은 태운을 끌고 카페로 가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태운아, 그동안 소식도 안 들리더니 어디서 뭘 한 거야?”졸업 후 항상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니던 태운이 한 달이나 잠잠하다가 갑자기 나타나 엄청난 힘을 보여줬으니 조강현의 입장에선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운은 조강현이 원하는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고 해봐야 그것을 지금 당장 실행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흠. 알겠다.”
조강현은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헌터는 몸이 곧 자산이고 힘이 곧 무기잖아. 그 힘을 얻는 방법을 꽁으로 얻으려고 한 게 문제지.”“뭐… 말해주지 못할 것도 아니긴 하지만….”말해줘도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애초에 휴식 후 본래 자신의 힘을 되찾은 것뿐이라고 조강현에게 말해줄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됐어.”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요새 이 배반자 놈들이 미쳐 돌아가고 있어.”
“저도 뉴스는 봐서 알고 있습니다.”
방금 터진 던전 브레이크도 배반자가 임의로 일으킨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통해 배반자들에게는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킬 수 있는 키가 있고 그것을 활용해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녀석들의 진짜 목적이 뭔지 모르겠어. 전력의 질적 향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새 직접적 테러가 줄어든 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거 같고 말이야.”실제로 태운이 김상연을 죽이고 난 뒤로부터 배반자들이 직접 나서는 테러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신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다든가 강원도 던전화 사건 때처럼 큰 지역을 통째로 던전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들을 사용해 테러를 일으키고 있었다.
“보면 사람들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그냥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것 같아.”정확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행동은 분명히 사람을 죽이고 힘을 얻으려 하는 배반자들과는 달랐다.
직접적인 테러가 줄어들고 간접적인 테러가 늘어나 인명 피해가 줄긴 했지만 태운에게는 이편이 더 불안했다.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조강현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태운도 그에 맞춰주었고 오랜만에 만난 조강현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태운은 이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었다.
“전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나도 이제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조강현은 집으로 향했고 태운은 바로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한 달 만에 다시 마법을 사용하니 처음 마법을 사용했을 때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겼다.
“이곳도 오랜만이네.”
쉬는 기간 동안 몸도 최소한으로 움직이라고 말한 의사 때문에 이곳에 단 한 번도 오지 못했다.
태운은 지하 훈련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정석을 흡수해 저장했다.
그리고 메테리얼을 만들어 마법을 사용했다.
“블레이드, 폭풍, 인페르노.”
태운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위력의 마법을 사용했다.
벽이 부서진다고 해도 금방 수리되는 훈련장이었으니 걱정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지옥의 칼날 폭풍.’
전보다 위력이 강해진 것은 물론 소모되는 집중력도, 마나양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피아 식별을 가능하게끔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태운이 방금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고위력 광범위 마법은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전대섭처럼 엄청난 마나 컨트롤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마법 자체에 피아 식별 기능이 박혀 있는 마법은 만드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일단 이건 뒤로 넘겨놓고… 이제 무기술이다.’태운은 자신이 더 빠르게 강해진다면 그것의 힌트는 마법이 아니라 무기술에 있다고 보았다.
태운은 이미 전대섭에게도 인정을 받았을 정도로 마법 실력은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마법을 갈고닦아 더욱 강해지는 방법도 있겠지만 강태운은 마법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뛰어난 마법 실력을 기반으로 무기술을 키워 더 빠른 성장을 꾀할 수도 있었고 태운은 그것을 선택했다.
‘나는 불가사리니까. 원하는 건 모두 익히는….’태운은 과거에 처칠이 자신에게 해준 운명 비유를 되새기며 무기술을 익혔다.
태운은 그렇게 약 3시간 정도 무기술을 익히고 지하 훈련장을 나가기 위해 준비했다.
‘아직 4신데…. 벌써 하루를 끝내기엔 아쉽고 더 훈련을 하자니 훈련 플랜이 꼬여 버리고….’이럴 때는 아주 좋은 게 하나 있었다.
태운은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우야, 나 퇴원했는데 골렘 제작 단계는 어떻게 됐어?”바로 태운이 골렘 제작을 맡겨놓은 신서우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태운이 묻자 수화기 반대편의 신서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 작업은 끝난 지 오래야. 네가 조립하고 구동해서 성공만 하면 완성이지.
태운의 입꼬리도 동시에 올라갔다.
“그럼 지금 당장 갈게.”
태운의 발걸음은 골렘의 부품들이 있는 신영 그룹의 공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