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저런 게 8마리나 더 있다고요…?”
“그보다 더 있을 수도 있다.”
방금의 전투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끝난 것은 맞지만 결코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찬영도 마나 블레이드를 몇 번 사용했고 다른 사람의 솔리드 아머도 몇 번이나 깨져서 다시 씌워주곤 했다.
‘이런 전투가 최소 8번…. 다들 체력이 버텨줄 수 있을까.’태운이 냉각 인챈트가 된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폐 안으로 들어가는 공기는 여전히 뜨겁고 묵직한 공기다.
그런 공기를 들이마시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헌터들이라고는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운의 그 걱정은 전대섭의 존재 하나로 해결되었다.
“흠…. 일단 여기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이렇게 더운 곳에서 휴식을 취해도…. 체력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전대섭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대섭의 발밑의 바닥부터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냉기는 빠르게 퍼져나가 반경 30m가량의 바닥을 얼려 버렸고 그 위에 선 사람들은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와….”
단순히 얼어붙은 바닥 때문에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니었다.
얼어붙은 바닥에서 꾸준히 냉기가 뿜어져 나와 공간 자체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강한 위력의 마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대섭이 방금 마법으로 사용한 마나의 양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전대섭의 뛰어난 마나 컨트롤 능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특성과도 큰 연관이 있었다.
그의 마나의 왕이라는 상위 특성은 마나의 주인, 마도왕, 마나 폭격 등의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중 마도왕은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단계인 마법을 활용하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
방금 전대섭이 사용한 냉기 마법도, 지옥 병영을 한 번에 처리한 마법도 모두 마도왕의 특성으로 만들어낸 마도기였던 것이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A급 헌터의 수로만 보면 헌터 약소국에 해당하는 한국이 전대섭 하나로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이 괜히 나도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로 A급 헌터가 너무 많이 생겨서 S급 헌터가 만들어진다면 가장 먼저 올라갈 사람이 전대섭이라는 말도 도니까….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큰 신뢰를 받고 있는 실력자지.’“곧 휴식을 끝내고 다음 지옥 병영에게로 간다.”
* * *
콰아아아아!
“후….”
강일환이 쓰러져 있는 지옥 병정의 머리를 부수고 허리를 폈다.
“벌써 4마리네요.”
“조금 피로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강일환의 실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A급 헌터 중에서도 중위권에 속하는 강일환은 전대섭의 제자답게 마나 운용 실력이 뛰어났고 움직임 또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저런 무거운 둔기를 양손에 들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일환을 보기 전에는 모르고 있었다.
‘죄다 괴물이네….’
전대섭과 허덕륜은 물론이고 강일환까지, 그 누구도 얕잡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휴식은 여기까지 다음 지옥 병영을 향해 간다.”일행은 높게 솟아 있는 지옥 병영 중 하나로 다가갔다.
전대섭은 여느 때와 같이 바닥에 손을 대고 마도기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옥 병영의 반응은 다른 때와 달랐다.
[쿼어어어엉!]
[쿼어어어어어엉!]
[쿼어어어!]
[쿼어어어어어어엉!]
4마리의 지옥 병영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지옥 병정들을 어마어마한 속도로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무슨….”
“젠장 막아내!”
전까지는 지옥 병영 하나가 지옥 병정 2~30마리 정도를 생산해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의 목숨까지 짜내듯 온몸을 비틀어가며 지옥 병정을 생산해낸 끝에 총 300마리가 넘는 지옥 병정을 만들어냈다.
“무슨….”
“젠장…! 형님! 이거 위험한 거 같은데요!”
허덕륜이 위험을 감지하고 전대섭에게 말했다.
“곤란하군…. 흠, 30분, 막아낼 수 있겠나?”
“난 괜찮지만 애들은….”
“괜찮습니다. 방어선을 지키는 정도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태운이 말했지만 강일환, 구찬영, 연정아는 모두 같은 눈빛을 보냈다.
어차피 막아내지 못하면 죽는 것이고 도망친다면 저 엄청난 수의 지옥 병정들이 도시로 흘러 들어가 어마어마한 피해를 낼 테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덥겠지만 잠시 솔리드 아머를 벗기겠습니다. 다들 조심하세요.”태운은 사람들의 솔리드 아머를 걷어냈다.
그들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씌워두었던 것이지만 전력으로 적들을 막아내려면 솔리드 아머에 소모되는 메테리얼도 끌어다 써야 했다.
“제가 신호탄을 쏘겠습니다.”
태운은 사고 가속을 사용하고 육감을 활성화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지옥 병정들을 하나하나 느끼며 마법을 영창했다.
‘마나의 양이 많이 들지 않게…. 장기전을 생각해야 하니까….’이미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를 사용했다.
여기서 마나를 흥청망청 사용해 버린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
‘옥타 미사일, 디텍팅, 분열, 폭발, 라바, 블레이드.’태운은 6융합 마법을 시도했다.
옥타 미사일에 유도 기능을 장착하고 그 후에 분열, 폭발, 라바, 블레이드 마법을 차례로 부여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사고 가속의 집중력 향상 효과 덕분에 마법은 성공적으로 발동했다.
콰콰콰콰쾅!
촤라라라락!
취이이이익….
태운의 옥타 미사일은 적에게 도달함과 동시에 폭발하며 용암을 소환하고 칼날을 흩뿌렸다.
게다가 폭발함과 동시에 세 갈래로 나뉘어 다른 적에게 날아가 폭발해 똑같은 공격을 한다.
‘오버 서플라이로 마나를 주입해주면 세 갈래로 나눠진 미사일이 또 분열을 하겠지만 마나를 너무 많이 소모해. 다른 마법을 사용하는 게 더 잘 먹힐 거야.’태운의 공격 한 번에 100여 마리의 지옥 병정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지옥 병영은 지옥 병정들을 생산해내고 있었고 그들의 수는 전보다 더 불어나 있었다.
찬영도 마나경을 사용해 고성능의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고 쏘아내기 바빴다.
강일환과 허덕륜은 광범위 공격 수단이 많지 않아 적진의 옆을 돌며 적들을 모아 광역 공격을 하는 찬영과 태운을 서포트했다.
“흑염.”
연정아는 공격을 맞고도 살아 있는 지옥 병정들의 숨통을 끊고 있었다.
“이대로면 밀린다!”
“어떻게든 해봐!”
허덕륜의 외침이었다.
“형님! 빨리! 한 번에 한 마리씩 골로 보내고 있는데 수가 줄질 않아!”그때, 연정아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공격을 멈추고 전선으로 나아갔다.
“수명이 깎여서 전부 개방하고 싶지는 않았는데….”연정아는 손가락을 살짝 깨물어 피를 마셨다.
그러자 연정아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크윽….”
태운은 물론 허덕륜조차도 쉽게 감당하지 못하는 양의 마기가 둑이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담아두던 걸 쏟아내니 편하기는 하네.”
연정아는 봉인뿐만 아니라 아스모데우스의 피가 가진 힘까지 개방한 것이다.
[크륵….]
[크르….]
[크르르….]
연정아가 뿜어내는 마기의 양에 지옥 병정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멈춘 것뿐만 아니라 연정아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태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못해도 마르기가스 수준의 강함을 보여주겠는데…?”물론, 지금의 연정아도 전대섭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기는 기본적으로 공포에 기반을 둔 힘이기에 적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어 지옥 병정들을 고개를 조아린 것뿐, 힘 자체는 허덕륜보다 조금 강한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한숨 돌렸어.”
“선생님 빨리 끝내주세요.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수명이 과하게 깎여요.”연정아는 어느새 보라색 피부가 되어 있었고 눈에서는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말 그대로의 악마의 모습이었다.
“끝났다.”
연정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대섭의 말이 들렸다.
“이걸 사용하는 건 레비아탄을 상대할 때 이후론 처음이군.”콰아아아아앙!!!
귀가 먹을 것 같은 폭음이 귀를 강타했다.
엄청난 빛 때문에 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태운은 육감 덕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대섭은 지옥 병정과 함께 지옥 병영까지 날려 버리기 위해 대규모 폭발 마법을 사용했고, 때문에 전방 5km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이쪽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상상도 하기 힘든 수준의 마나 컨트롤이었다.
“후…. 이제 느껴지는 기운은 없군. 돌아가도 되겠어.”전대섭은 마나를 거의 다 소모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하긴…. 저 정도의 공격이라면 마나를 전부 사용하고 정신력까지 빨아 먹었을 거야.’허덕륜은 전대섭을 부축했다.
“이제 돌아가지.”
“네…… 아니, 잠시만요.”
태운은 육감의 레이더망에 무언가가 잡힌 것을 확인했다.
태운은 그것을 염력을 사용해 가지고 왔다.
“마정석이다.”
그것은 태운이 그렇게 찾고 찾았던 특별한 마정석이었다.
* * *
지옥 병영 던전은 태운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라졌다.
“후…. 보스전을 연달아 치른 기분이네요….”
“동감입니다.”
무리도 아니었다.
다른 던전과 달리 보스룸이 따로 없어 던전 자체가 보스룸이었던 던전이었으니까.
태운은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일어나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번 던전의 유일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상급 마정석….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원하신다면 가치를 측정한 후 몫을 떼어드리겠습니다.”상당히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네.”
“어차피 돈은 넘쳐나니까요. 그리고 보상은 스승님이 따로 챙겨주시기로 해서 괜찮습니다.”“감사합니다. 이 호의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태운은 그들의 허락을 받고 즉시 자하르의 연구소로 향했다.
“자하르, 바로 준비해주세요.”
“아이고, 또 어디서 마정석 주워 왔나 보네.”
“정답이에요.”
“쯔…. 알았다.”
자하르는 태운이 말린다고 들을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즉시 연구원들을 시켜 준비했다.
태운이 항상 뜬금없는 타이밍에 와서 준비를 해달라고 하는 것에 익숙해진 연구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마정석 흡수의 준비를 마쳤다.
“준비 끝났네. 바로 시작해도 좋아.”
태운은 오랜만에 흡수하는 마정석에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 * *
“흐음…?”
태운이 눈을 뜬 곳은 무너진 신전 같은 곳이었다.
빛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옆에는 모험가로 보이는 녀석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때, 태운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무너진 신전에서 도굴을 하던 모험가들을 공격한 ‘지옥 병정’에게 몸을 빼앗긴 사람을 찾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