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그 정도는 예상했지!”
갈라진 바위 사이로 기사단원들이 본 것은 마령의 멤버들이 고위력 마법을 다중으로 영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애초에 바위는 연막이었던 것이다.
영창이 완성되어 수십 발의 마법이 기사단원들에게 날아가기 직전.
“날 까먹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정성현이 나섰다.
그는 순식간에 마령의 마법사들이 있는 곳 깊이 들어왔고 뇌전을 방출해 마법사들의 영창을 방해했다.
“크윽!”
7할의 마법은 전부 영창이 취소되었고 시전이 완료된 마법들도 대부분 궤도가 틀어져 날아갔다.
제대로 날아간 마법은 신가연의 것뿐이었다.
정성현은 그 틈을 노려 신가연의 리타이어를 노렸다.
“뇌검.”
“마나 척력.”
하지만 신가연이 대비를 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자신의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적을 튕겨내는 기술이었다.
터-엉!
“크…. 쉽게 끝나나 했는데….”
전기를 잘 받아들이는 정성현의 신체는 자기장의 원리를 활용한 신가연의 마법에 더욱 크게 영향을 받았다.
정성현은 날아가는 도중에 뇌전을 활용해 방향을 바꾸고 다시 신가연에게 날아갔다.
빠른 속도로 신가연에게 접근했고 그녀는 재빨리 메테리얼을 만들고 마법을 시전했다.
“저리 가!”
파차차차착!
신가연과 정성현의 사이에 작은 불씨 수천 개로 만들어진 벽이 만들어졌다.
정성현은 상당한 열기에 접근을 멈추고 우회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 마법은 신가연이 구상하고 태운의 도움을 받아 만든 마법.
이름은 ‘저리 가’였다.
작은 불씨가 다른 불씨를 만들고 새로 만들어진 다른 불씨가 또 다른 불씨를 만들어 크기를 점점 키워가는 마법.
단순히 보면 적의 접근을 멈추는 역할에서 끝날 것 같지만 여기에 ‘파이로 컨트롤’이 더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이로 컨트롤.”
신가연은 어느새 수만 개로 불어난 불씨를 한 번에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불타고 있는 거대한 용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큰 마법을 컨트롤하는 데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필요했고 신가연은 깃발에서 보충해주는 마력과 마령의 멤버들이 지원해주는 마력으로 그 거대한 규모의 마법을 감당했다.
“하…. 괜히 마령의 전력이 상승한 게 아니었네.”예상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준 신가연과 마령의 멤버들을 본 김민준은 정성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현, 전력을 다해도 좋다.”
“오케이…!”
파치-칙!
그 말과 함께 정성현의 발밑이 푸르게 점멸했다.
달리기 종목에서도 보여주었던 ‘뇌신’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뇌신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검의 유무였다.
“뇌전.”
그냥 손끝에서 쏘아내는 전류와 검 끝에 모아서 쏘아내는 전류의 힘은 다르다.
마력으로 만들어내는 전류라면 더더욱.
화르르르륵!
거대한 화룡이 얇은 전격의 창을 집어삼키려는 듯 달려들었지만.
파-칙!
퍼-엉!
응축된 힘의 전류는 화룡의 머리를 터뜨리고 하늘로 솟구쳤다.
“이런 미친….”
사라진 불씨는 다시 생겨나긴 했지만 방금의 공방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는 정성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방법을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정했다.
하지만 이 불씨들을 그냥 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기껏 마나 소모해가며 만든 건데 그냥 버릴 순 없잖아?”신가연은 불씨들을 최대한 넓게 퍼트려 적들을 전부 쓸어버릴 기세로 불씨를 조종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씨들은 이미 불씨가 아니었다.
진행 방향에 있는 모든 나무에 불을 붙이면서 밀려오는 그것들은 이제 완전한 화염이었다.
“하…. 가슴이 웅장해진다. 정말.”
김민준은 그런 불의 파도를 보면서 실없는 농담을 치고 공격대를 자신의 뒤로 불러모았다.
“전투 집중, 캐슬 실드.”
김민준은 웃음기를 싹 지우고 등에 메고 있는 방패를 앞으로 내세웠다.
보통 탱커들이 들고 있는 타워 실드보다는 작은 크기였지만 그가 시전한 캐슬 실드는 들고 있는 방패의 유효 범위를 늘릴 수 있는 스킬.
그에게 방패의 크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불 파도가 지나가면 달려들어 마령과 전면전을 시작한다! 근접만 한다면 마령은 우리에게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것이다!”“방패를 공격해! 절대 이번 공격을 버틸 수 없게 해!”정성현을 견제하던 마법사들까지 모두 목표를 바꿔 방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성현이 마법사들의 견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신가연…. 잡을 수 있다.’
그는 위기에 빠진 공격대를 구하는 것보다 신가연을 잡는 것을 선택했다.
신가연만 잡으면 마령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계산이었다.
“뇌검.”
정성현은 검에 마력을 한계까지 욱여넣고 신가연에게 날아갔다.
“이…. 엘리멘탈….”
신가연은 뒤늦게 그의 접근을 알아채고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면서 검에 인챈트를 했다.
“늦었어!”
신가연이 꺼내든 검에 속성력이 깃들기 시작했지만 물리력의 차이를 상쇄할 만큼의 속성력이 담기려면 시간이 걸린다.
신가연의 검이 가까스로 정성현의 검의 궤도에 들어왔지만 그는 아직도 여유로웠다.
그에게는 고작 숏소드를 가진 마법사가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쾅!
검으로 공격한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고 신가연은 어디로 갔을지 모를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정성현이 멀리 날아간 신가연을 보며 그녀의 리타이어를 확신하고 남은 마령의 멤버들에게 고개를 돌린 순간.
“신가연 리타이…. 음?”
이상한 것을 느꼈다.
“왜…. 안 없어지지?”
시전자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되면 미리 사용해둔 마법은 천천히 사라진다.
하지만 지금 산을 둘러싼 불꽃 파도는 없어지기는커녕 나무를 집어삼키고 점점 덩치를 불려갔다.
그 순간 신가연이 날아간 방향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10개가 넘는 수의 라바 랜스였다.
정성현은 급하게 대처하긴 했지만 모든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푹!
단 한발의 라바 랜스가 정성현의 어깨에 꽂혔다.
한 발이었지만 용암의 창은 천천히 녹아내리며 그의 살을 천천히 태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정성현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신가연은 멀리서 부러진 검을 땅에 버려두고 천천히 일어났다.
“…태운이한테 체력이랑 근력 훈련 안 받았으면 한 방에 갔겠네….”신가연은 마치 부러진 듯한 감각이 느껴지는 갈비뼈 부분을 감싼 채 파이로 컨트롤을 발전시킨 마법을 사용했다.
“라바 컨트롤”
이거라면 뇌신 상태인 정성현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치이익….
“윽….”
정성현은 어깨에 박힌 용암으로 만들어진 창을 과감하게 뽑아냈다.
그 과정에서 손에 격통을 느껴야 했지만 용암들이 어깨에 남아 계속 체력을 깎아 먹는 것보단 나으니까.
“신가연한테 근접전도 있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공격이 신가연에게 닿았을 때 예상하지 못한 저항감이 있긴 했었다.
공격을 막기에는 어림도 없는 약한 저항감이었지만 말이다.
“애초에…. 마법사 계열이 내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 버틴다라….”마법을 공부하는 학생은 익스퍼트 탑급이라고 해도 신체의 내구도에 영향은 주는 체력과 근력 스탯이 높지 않다.
두 스탯은 마법 계열 헌터가 중요하게 연마하지 않는다.
어차피 두 스탯을 연마하는 시간에 마법 숙련도를 높이는 편이 훨씬 유익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마법 분야에서도 교내 탑이라 할 수 있는 성취를 가지고도 다른 분야에 손을 뻗는 그녀의 노력과 실력에 감탄을 했으나 정성현은 달랐다.
“…마법사가 내 공격을 마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막았다라….”꽈득!
“개 같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이가 갈릴 만큼의 불쾌함이었다.
파-치칙.
신가연이 시전한 라바 컨트롤에 의해 날아다니는 용암의 창이 정성현을 향해 날아갔으나 정성현이 발현한 뇌전들이 창을 천천히 밀어냈다.
“어쭈…? 쳐내는 것도 아니고…. 힘 싸움을 하자고?”마력으로 만들어낸 속성력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충돌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힘의 우위는 오로지 시전자의 재량에 달려 있다.
“후….”
신가연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씨익
“제대로 녹여줄게.”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자신의 집중력 전부를 마력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라바 랜스는 천천히 출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크윽….”
정성현의 뇌전은 강해진 출력과 높아진 수준을 가진 신가연의 라바 랜스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실 정성현이 그녀에게 마법과 마나 컨트롤로 싸움을 건 순간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다.
정성현이 마나 컨트롤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가연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크…으윽!”
점점 밀리는 뇌전과 그의 몸에 꽂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라바 랜스, 결착이 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푸-욱.
10개가 넘는 수의 라바 랜스는 동시에 정성현의 몸통을 관통했고 정성현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 개 같….”
정성현은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리타이어 당했다.
용암의 창끝으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을 느껴 그가 리타이어 당했음을 확인한 신가연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방금 그 힘 싸움에서 마나를 많이 사용한 것이다.
“정성현, 그놈 생각해보면 가끔 멍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앞뒤 안 가리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격투가인 공진영에게 주먹으로 싸움을 건 것도 그렇고 이번에 신가연에게 마법으로 정면승부를 건 것도 그랬다.
“참…. 그냥 달려와서 검으로 베었으면 나도 별 방법 없었을 거 같은데….”
“그 녀석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든.”
후-웅!
신가연이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녀의 몸보다 큰 대검이 날아왔다.
“큿…!”
신가연은 헤이스트를 사용해 몸을 오른쪽으로 던져 그 대검을 피했다.
콰자작!
날아온 대검은 신가연을 맞추지 못하고 애꿎은 나무 두세 그루를 박살 내고서야 멈췄다.
“염력.”
부웅! 터-억.
대검은 던진 방향으로 다시 날아갔고 그곳에는 김민준이 떡하니 서 있었다.
“덩치는 산만 한 게…. 발은 엄청 빠르네.”
“빠릿빠릿한 거 빼면 내가 뭐가 남겠냐.”
“하….”
김민준은 정성현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신가연이 날아온 방향을 계산해 달려온 것이었다.
“후…. 지금 이러면 진짜 곤란한데.”
신가연은 현재 마나도 거의 바닥났을뿐더러 몸 전체가 그만 움직이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모두 가짜 통증이긴 하지만 말이다.
“너를 처리하지 못하면 나도 곤란해져서 말이야.”
“뭐, 그건 알지만….”
신가연은 시답잖은 이야기로 시간을 끌었다.
그사이에 김민준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김민준의 펄럭거리는 망토의 끝과 얼굴에 그을음이 있을 걸로 보아 신가연이 사용한 불 파도와 마령 멤버들의 포격 세례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두 명 잡았네.’
신가연은 하늘에 떠 있는 점수판을 보고 자신이 처리한 기사단원의 수를 알아냈다.
애초에 불 파도는 위력보단 범위에 치중한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신가연이 일으킨 불 파도는 C급 몬스터인 몬티스를 간신히 처리할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을 뿐.
신가연은 이 공격에 리타이어당한 사람은 애초에 데미지가 쌓여 있었거나 기사단원 중에서도 약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어쩌지?’
이대로 김민준에게 저항조차 못 하고 당하면 마령은 큰 점수 손실을 입거나 탈락하게 될 것이다.
신가연은 그것만큼은 싫었다.
“트리플 미사일!”
신가연이 쏘아낸 세 갈래의 섬광이 김민준을 향해 날아갔지만 그 공격은 모두 그의 대검에 막혔다.
“많이 지치긴 지쳤나 보네.”
김민준은 그녀의 맥빠진 공격을 받아낸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평소의 매직 미사일만 사용해도 매섭던 공격력이 지금은 보이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모두 신가연의 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