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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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사단은 작년까지만 해도 우승 후보였을 만큼 강력한 팀이었다.
태운과 언더독에 의해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지만 단체전에서 적사단과 동맹을 맺을 팀은 없을 것이다.
적사단의 힘이 약해졌다지만 적사단의 시저와 셀은 여전히 포식자의 위치에 서 있으니까.
그들과 동맹을 맺었다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잡아먹히는 건 적사단이 아닌 그들과 동맹을 맺은 그 누군가다.
당연히 시저도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전까지만 해도 동맹 따위 필요하지 않았지만 이번 연도는 다르다.
예선을 통과한 사람이 8명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마령에도 찾아가 봤겠지.’
기사단은 동맹 따위 필요 없었고 마령은 기사단을 노리고 있었으나 조금 전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마령도 기사단을 잡겠다고 적사단을 품는 행동은 부담스러웠을 터, 동맹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언더독에서 먼저 동맹 요청을 걸어준 것은 적사단에서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적사단의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우릴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별 같잖은 것들이….”
계속 자극을 해놓고 이제 와서 동맹을 요청한다?
적사단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장난을 치거나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저는 태운의 의도를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깃발을 꽂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날 자극한 건가…?’시저는 리더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원래 불같은 성정의 소유자다.
태운은 무구전 직전의 대화에서부터 시저를 자극했고 달리기에서 공진영이 케빈을 한 번에 탈락시키면서 시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리고 방금의 대화와 그를 무시하고 깃발을 꽂은 행동으로 시저의 본래 성정을 끌어냈고 그가 충동적으로 깃발을 꽂게 만든 것이다.
“사실 전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적사단과 동맹을 맺고 싶었어요.”
“…….”
시저는 태운의 그 말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무구전 직전의 대화에서 태운이 말했던 ‘계획’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위험했을 당시에 공격하지 않은 이유…. 우리가 여기서 더 약해지면 동맹할 가치가 없어진다는 거였나…?’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지만 어이가 없었다.
태운에게는 예선이 시작하기 전에 적사단의 힘을 줄일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즉, 적사단의 간부들이 그에게 추적 마법을 걸고 덤벼올 때 즉석으로 짠 전략에 놀아났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화가 나기보다 높은 완성도와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 계획을 순식간에 짜는 그의 능력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허…. 어이가 없군.”
계획을 짜는 능력도 그렇지만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역량도 인정해야 한다.
시저는 고개를 떨구고 혼자 헛웃음을 치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조건은?”
“시저!”
“단장!”
시저의 대답에 약이 오를 만큼 오른 적사단 멤버들이 반발했지만 시저는 굽히지 않았다.
태운은 그런 시저의 의지에 답해주듯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동맹 조건은 적사단 입장에서도 꽤 끌릴 겁니다.”
“한번 들어보지.”
“우리는 공격대를 따로 짜서 움직일 생각이고 그곳에는 저, 공진영, 홍유리, 김기열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거기에 우리 멤버도 가세하라는 건가?”
“가세하는 건 당신 하나면 됩니다. 적사단은 인원도 적어서 똑같이 4명을 차출하라 하는 건 제가 생각해도 아니거든요.”
“얻는 깃발의 분배는?”
“5 대 5”
“5 대 5라고?”
공격대에 합류하는 사람이 시저라고 해도 한 명뿐이고 상대방은 4명이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두 한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학생들이다.
그럼에도 깃발을 공평하게 나눈다?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혹시나 여기를 다른 팀이 공격해왔을 때 서로 손 놓고 구경하고 있을 건 아니잖아요? 쉽게 말하면 우리는 공격, 적사단은 방어. 대충 그런 느낌이죠.”
“흠….”
깃발 빼앗기에서 공격보다 중요한 수비를 상대방에게 넘긴다라….
“받아들이지. 대신 공격대에는 나와 적사단 멤버 한 명이 같이 간다.”공격대에 나를 혼자 고립시켜 리타리어시키려는 속셈일지 모르니까.
라는 뒷말을 삼킨 시저였다.
“그럼 우리야 좋죠. 그럽시다.”
태운은 동맹이 성립됐다는 손을 내밀었다.
시저는 사뭇 긴장한 상태로 그 손을 맞잡았다.
지금까지 조금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너무도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저는 그가 얼마나 큰지 확신하지 못했다.
강태운이 자신의 전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시저도 느꼈기 때문이다.
‘긴장해야 한다. 방심하면 잡아먹히는 건 우리다.’시저는 동맹을 맺고 언더독과의 공격대에 참가하기 전, 동기이자 적사단 부단장인 셀에게 방어팀의 지휘를 맡겼다.
“셀, 너에게 방어팀의 지휘를 맡기겠다.”
“그래, 여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너는 우리의 점수를 위해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만 명심해줬으면 좋겠군.”
“당연한 것 아니냐.”
“그럼 믿고 맡기지.”
시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셀이 팀에 해가 될 행동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럼 출발합시다.”
태운은 신동연에게 방어팀 지휘를 맡겨놓고 공격대를 이끌었다.
공격대의 멤버는 강태운, 공진영, 홍유리, 김기열, 시저, 마지막으로 적사단의 김진성이다.
김진성은 익스퍼트 골드 A반 14위로, 살아남은 적사단 중에서 강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하…. 참…. 하필 저놈들이라니….”
그리고 그는 언더독에게 큰 적개심을 품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김진성은 언덕을 내려가면서 계속 불만을 구시렁거렸고 그 말들은 언더독 멤버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야, 마음에 안 들면 까든가. 새꺄.”
“뭐?”
가장 먼저 폭발한 멤버는 김기열 아니, 김지열이었다.
그는 방금 태운과 시저의 신경전 당시 김지열로 변해 있었다.
“아니, 시비는 그쪽이 먼저 털었는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김지열은 참다못해 폭발한 것 같았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상황이 불만인데 그걸 우리 탓으로 돌리고 싶은 거지.”
“그런데 이 새….”
둘의 싸움이 심화되려는 낌새가 보이는 순간.
퍼-억!
태운이 김진성의 가슴을 때려 밀쳤다.
굉장히 빠르고 은밀하게 이뤄져 김진성이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진성은 넘어졌고 태운의 행동 때문에 화가 머리까지 치솟았다.
“이 새끼들이…!”
“라바 랜스.”
태운은 김진성의 말을 무시하고 허공에 마법을 사용했다.
“크억!”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던 곳에 사람이 있었고 그는 태운의 공격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스 윔블.”
태운은 그의 모습을 보고 바로 5개의 얼음송곳을 소환해 쏘아냈다.
그는 태운의 공격을 모두 몸으로 받아내고 리타이어당했다.
그리고 태운은 넘어진 김진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쥐새끼가 하나 있어서 말이죠.”
“어…. 큼….”
김진성은 뻘쭘함과 동시에 왜인지 모를 위압감 때문에 화가 누그러졌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진 않았다.
“쯧….”
김진성은 그를 무시하듯 혀를 차긴 했지만 방금 그 행동 때문에 태운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익스퍼트 골드 14위로 아카데미 내에서도 강한 편이다.
그런 김진성에게 그의 손이 몸에 닿기 전까지 눈치도 못 챘다는 것은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김진성, 너도 그만해라. 일단 지금은 팀이다. 더 이상 팀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면 나도 널 옹호할 수 없어.”
“…알겠다.”
시저도 김진성의 행동을 보고 그를 나무랐다.
팀의 관계와 상관없이 지금 그의 행동은 굉장히 꼴불견이었기 때문이다.
태운은 순식간에 무거워진 분위기를 누르고 말을 시작했다.
“일단 방금 잡은 녀석은 월령 멤버인 거 같습니다.”태운은 강유도 상공에 떠 있는 홀로그램 숫자를 가리켰다.
월령 옆에 떠올라 있는 남은 멤버 수를 알려주는 숫자가 방금 하나 줄어들었기 때문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월령은 이곳 주변에 자리를 잡은 것 같군요. 그런 의미에서 월령을 첫 번째 목표로 정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의견 좀 내주시죠.”태운은 월령의 팀원을 리타이어시킨 김에 월령에 본진에 공격을 가하자는 의견을 냈다.
“월령이라…. 그곳에는 거슬리는 녀석이 하나 있지. 싹을 미리 잘라두는 게 좋겠어. 찬성하지.”시저도 그 의견에 찬성했다.
‘거슬리는 놈이라…. 장현수 말인가.’
장현수는 월령의 동아리장으로 랭킹 자체는 익스퍼트 골드 A반 27위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의 능력은 랭킹으로 책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특성은 ‘룬의 주인’.
룬을 대상에게 씌워 버프와 디버프를 걸 수 있는데 그 성능이 일반적인 버프 마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버프 효과가 강하다 뿐인가…. 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버프를 막 써대니….”김진성은 장현수의 이야기가 나오자 작년에 월령과 싸운 기억을 떠올리고 혀를 내둘렀다.
그의 말대로 장현수의 진가는 버프의 강력함이 아니었다.
장현수는 속도, 힘, 마법의 위력 등을 올려주는 버프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시간차를 두고 똑같은 공격을 한 번 더 가하는 버프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마나를 회복하는 버프 등, 기상천외한 버프를 개발하고 사용한다.
예상하지 못한다는 점도 위협적이지만 그 예상하지 못하는 버프의 성능도 전투의 양상을 바꿀 정도로 괜찮다는 게 더 문제였다.
하나여도 무서운 비밀무기가 몇 개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럼 첫 번째 목표는 월령으로 정하겠습니다.”하지만 시저와 태운은 자신들이 월령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일절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월령의 영역을 어떻게 찾지?”
“발자국을 거슬러서 찾아가면 됩니다.”
태운은 관찰력 스탯을 활용해 아까 쓰러트린 월령 팀원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흔적이 태운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그 흔적을 따라가 보니 하나의 동굴이 나왔다.
“동굴이네?”
“너무 안전한 곳을 찾은 거 아냐? 동향 파악은 안 하겠다는 거 같은데.”깃발 빼앗기에서는 전투력만큼이나 정보력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래서 다들 높은 언덕이나 산 정상에 깃발을 꽂는다.
하지만 그런 위치를 선호하는 팀이 많지만 모든 팀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월령 팀처럼 정보와 벽을 쌓고 무조건 수비에 유리한 곳을 찾는 팀이 종종 있다.
그렇게 되면 점수를 얻기는 어렵지만 점수를 쉽게 빼앗기지도 않는다.
월령이 이런 하책의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장현수만 아니면 월령은 진짜 별거 아니거든.”원래 월령은 명운전 예선도 넘기지 못하는 약팀이었다.
그때 장현수가 ‘룬의 주인’이라는 특성을 각성하고 갑자기 어느 정도 괜찮은 팀으로 급부상한 팀이다.
그렇기에 장현수가 없는 월령의 멤버들의 수준은 두세 명이서도 다른 팀 멤버 하나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골드 A등급은커녕 실버 A급이 그들의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게 월령의 현실.
“월령은 공격조랑 방어조를 나누면…. 심각할 정도로 전력 차이가 많이 나거든.”공격조에 인원을 몰아넣든 방어조에 몰아넣든 장현수가 포함된 쪽이 압도적으로 강한 게 분명하니까.
그럴 바에는 방어나 공격 둘 중 하나에 집중하자는 게 월령의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무조건 수비에 유리한 지형이 필수였기에 이런 지형을 고른 것이다.
“음….”
태운은 관찰력 스탯과 마나를 활용해 경비를 서고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정찰했다.
상태창을 불러오려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쉽지 않았다.
“원래는 실버 B급의 학생인데 장현수의 룬을 받고 전체적인 스탯이 상승했습니다. 대충 골드 B급 정도 되겠네요.”
“저 세 명 전부?”
“네.”
“어렵진 않겠군. 먼저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