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56화 (56/379)

56화

태운은 무구전에서 마음에 드는 무구가 있으면 경매에 참여해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신가연을 가르치면서 번 돈과 자하르의 연구소에서 나오는 월급을 합쳐 꽤 많은 돈을 모은 태운은 좋은 물건 한두 개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다.”

예선 통과자들과 그 관계자들은 무구전에서 특별석에 앉아 관람을 할 수 있었다.

특별석이라고 해서 딱히 다른 건 없었다.

일반석과 다른 것은 무구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것뿐이다.

태운과 언더독의 멤버들이 배정된 자리에 앉았을 때.

“강태운.”

태운의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덩치와 큰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바로 시저.

그의 뒤에는 태운에게서 팀 체력을 모두 깎이고 탈락까지 한 적사단의 간부들이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참으로 한심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시저의 기세는 무시할 수 없었다.

‘뭐지…? 왜 이렇게 화를….’

시저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덤빌 것 같은 기세를 뿜어내던 시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고맙다.”

“뭐…?”

자신의 핵심 멤버들을 단번에 탈락시키고 팀 체력을 모두 깎아 탈락하기 직전으로 몰아넣은 태운에게 고맙다?

태운이 생각했을 때에는 시저가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의문은 시저가 입을 다시 엶으로써 풀리게 되었다.

“우리 간부들이 추적 마법을 달았다고 하더군.”

“아….”

“추적 마법을 걸었다는 사실만을 예선전이 치러지기 전에 심판진에게 알렸다면 우리는 예선 경기를 치르지도 못하고 탈락을 했겠지.”모두 사실이었다.

태운은 이미 추적 마법을 알고 있었고 그 간부들에게도 추적 마법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었다.

시저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자신을 한껏 낮춘 시저의 말에 태운도 예를 갖추려 했지만 시저는 다음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것은 고맙지만….”

그 말을 하는 시저가 눈을 부릅뜨고 태운을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느꼈던 노골적인 적대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왜 봐준 것이지? 우리 적사단이 그렇게도 감당하기 쉬워 보인 건가. 너는 분명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곳에 너 하나만 가세했어도 우리는 무너졌겠지.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지?”시저는 적사단의 멤버들이 연합에 의해 열세에 몰렸을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지.’

그때 태운이 연합의 편에 서서 적사단을 공격했다면 애초부터 아슬아슬했던 적사단은 단숨에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참전하지 않았던 것은 방심도, 만용도, 오기도 아니었다.

오로지 철저히 계산된 태운의 계획에 의한 행동이었을 뿐.

“미안한데, 착각은 하지 마시죠. 적사단을 공격했으면 내 계획이 틀어져서 공격하지 않았을 뿐이니까.”그 말에 시저는 태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그때 네놈이 참가해 적사단을 탈락시키지 않은 것이 네 계획을 망가뜨릴 것이다.”

“마음대로 해보시죠.”

시저는 태운에게서 뒤돌아 전년도 2인자인 적사단을 위해 마련된 자리로 이동했다.

마련된 자릿수에 비해 앉아 있는 사람의 수가 매우 적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만큼은 전년도 못지않았다“성가셔지겠는데. 괜찮은 거야? 잃을 게 없는 사람보다 무서운 건 없다고.”시저가 돌아간 후 공진영이 태운에게 말했다.

공진영은 강태운 때문에 본선 참가 인원이 적어진 적사단이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어졌고, 1등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어 앙심을 품고서 언더독의 발목을 잡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태운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시저는 악조건에 포기할 사람은 아니에요. 어떻게든 1등을 차지하려고 발악할 겁니다.”태운이 시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전년도 공성전처럼.

그는 끝까지 발악할 것이다.

* * *

“와…. 저거 물건인데?”

무구전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난 시점, 슬슬 진짜배기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할 타이밍이다.

그 진짜배기 물건 중 가장 처음을 장식한 무구는 온몸을 가리는 커다란 방패였다.

“이 물건으로 말씀드리자면 현재 칸 공방의 제자로 수련을 하고 있는 벨 학생의 작품입니다.”경매사는 화면에 띄워져 있는 홀로그램을 통해 이 무구의 작동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무구의 이름은 ‘백광’으로, 말 그대로 모두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백광에 마나를 흘려 넣어주자 백광의 앞에서 뜨거운 빛을 뿜어 적의 시야를 교란했다.

뿐만 아니라 다시 마나를 보급하자 방패 앞의 무늬로만 보였던 것들이 날카롭게 솟아올라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방패 자체의 물리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디자인으로 보였다.

“500.”

“550.”

“800.”

탱커 계열의 헌터들이 앞다퉈 가격을 불렀지만….

“패스.”

태운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눈뽕의 마나 효율이 그리 좋지도 않고…. 저렇게 날을 세우면 내구력이 떨어지지.’등급 자체는 C급, 하지만 방패 그 자체의 역할인, 막는 것만 보고 따지자면 성능은 D급 이하였다.

태운은 그 이후로 3번의 경매가 지나갈 때에도 단 한 번도 가격을 부르지 않았다.

‘내 눈이 높아진 건가…?’

이대로는 변변찮은 수확도 없이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지려는 순간.

“다음 물건은 ‘돌 검’입니다. 이 물건은 이름 없는 장인께서 아카데미 공방에 익명으로 보내주신 무기로 성능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돌로 만들어진 수수한 디자인의 검.

다른 검과 부딪혔을 때 단숨에 부러질 것만 같이 약해 보이는 검이었다.

하지만 태운은 그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3,000.”

그리고 한 번에 이번 경매 최고 금액인 1,500만 원의 2배인 3,000만 원을 걸었다.

“사, 삼천만 원 나왔습니다. 다음 입찰자 없으십니까?”방금까지만 해도 소란스럽던 무구전의 경매석이 조용해졌다.

저런 돌 검에 3,000만 원 이상의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사람들은 확실하지 않은 것에 도전하기 두려워하니까.

하지만 태운이 과감하게 돈을 건 이유가 있었다.

[내면의 무언가가 저 물건이 심상치 않다고 말합니다.]

[내면의 무언가가 저 물건이 심상치 않다고 말합니다.]

[내면의 무언가가 저 물건이 심상치 않다고 말합니다.]

….

태운의 관찰력 스텟이 저 물건의 가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미친 듯이.

“저런 근본도 없는 무기에 3,000이나 쓴다고?”“어디 부잣집 도련님인가 보지. 저거엔 그냥 손 빼자.”“맞아. 부잣집 도련님이 눈독 들인 건 어차피 먹지도 못해.”대부분의 경매 참가자들이 3,000만 원이라는 돈을 건 태운을 보고 물건을 포기했다.

그 이후에 나올 상등급의 무구들이 낙찰될 가격에 비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척 보기에도 별로인 무구에 3,000만 원 이상의 거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태운이 한 번에 3,000만 원을 건 이유도 이것에 있었다.

처음부터 돈을 과감하게 걸어 어중이떠중이들을 떨쳐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손을 뻗어보려는 사람은 있기 마련.

“3,100.”

일반 경매석에 앉아 있는 현직 헌터가 경매에 손을 올려두긴 했지만.

“5,000.”

“허….”

태운은 그에 1,900만 원을 더 얹어 5,000만 원을 불렀다.

그러자 3,100만 원을 부른 헌터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양손을 들었다.

“5,000만 원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입찰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태운의 금전 상황을 아는 사람은 없었을뿐더러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가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지면 학생과 돈 싸움하다가 졌다는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고 저 돌 검이 그런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가지고 싶은 물건도 아니었다.

“3…. 2…. 1…. 5,000만 원 낙찰입니다.”

덕분에 경쟁자 없이 돌 검을 5,000만 원에 낙찰받은 태운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태운의 관찰력 스탯이 이렇게 격하게 반응한 적은 그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로 처칠의 가방 안에서 수많은 무기들을 봤을 때 말이다.

그 격렬한 반응을 보면 처칠의 가방 안에 있던 물건과 최소 동급일 것이다.

그동안 관찰력 스탯의 성장을 보면 오히려 더 좋은 무기일 가능성도 있었다.

태운이 기대를 넘어 흥분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연정아가 옆에서 그를 툭 쳤다.

“어…? 아…. 크흠.”

태운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경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운의 반응을 본 언더독의 다른 멤버들은 이미 돌 검의 정체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오빠! 그게 뭔데 5,000만 원이나 써? 그리고 돈은 어디서 났고?”우물쭈물하던 언더독 멤버들 대신 옆에 윤아가 태운의 어깨를 때리며 물었다.

태운은 돈을 얼마나 버는지에 대해 윤아에게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윤아조차도 태운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게 도대체 뭔데…?”

“나도 몰라.”

“뭐?”

돌아온 태운의 답은 모두를 어이 없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건의 성능은커녕 뭔지도 모르면서 구매한다?

누가 본다면 생각 없는 사치라고 생각하겠지만 태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어.”

태운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 무기를 만든 장인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바로 저 돌 검뿐이니까.

돌로 깎아 이 정도의 균형과 완성도를 가진 무기를 만들 정도로 실력 있고 돌처럼 값싼 재료에도 정성을 쏟는 장인을 알게 될 방법이 있다면 5,000만 원이 아니라 1억을 낸다고 해도 손해는 아닐 것이다.

태운의 생각은 그랬다.

“뭐…. 오빠가 그렇다면 알겠어.”

평소 돈을 허투로 쓰지 않는 태운이 그렇게 말하니 윤아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의문은 남아있었다.

“근데 그 돈은 어디서 났는데?”

“돈은 벌었지.”

“어디서?”

“자하르 박사님 연구소에서 연구 도와주고 가연이 누나 마법 알려주고 해서 꽤 많이 벌었어.”

“얼마?”

“월 2,000.”

“2,000?”

신가연에게 마법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월 1,000.

연구소에서 마정석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조건에 월 1,000에 마정석을 무제한으로 제공받기로 했다.

“어쩐지…. 어째 용돈이 점점 오른다 했어….”“뭐, 내가 돈이 많아져서 주는 거지. 없었으면 줬겠냐.”

“그렇긴 하지.”

태운과 윤아가 대화를 하던 중 다음 물건이 도착했고 소란이 일어났다.

“와…. 저게 뭐야….”

“예술 작품인가…?”

경매석과 관중석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고 태운도 자연스럽게 경매 물건에 시선을 가져가게 되었다.

그때 태운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평소에 조각품이나 예술 작품에 관심이 없는 태운조차도 입을 떡 벌리게 만들 만큼 화려한 무기가 딜러의 손에 들려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태운이 돌 검에 큰돈을 낸 것 때문에 살짝 가라앉아있던 경매장이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했다.

“저거….”

“쩐다. 뭐야 저거?”

언더독의 멤버들도 놀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매장은 이내 소란에 빠지게 되었다.

“저 창 진짜 멋있다….”

“저게 어떻게 창이냐? 딱 봐도 검이잖아”

“활인데…?”

“아니, 방패잖아?”

모두가 그 무기를 다른 종류로 보고 있던 것이다.

“아니…. 저거 검…인데?”

태운도 저 무기가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검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다른 종류의 무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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