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다른 학생들의 대화로 대련 이후 신가연의 상태를 유추할 수 있었다.
태운에게 진 이후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소심해진 것이겠지.
그 당시 태운은 그녀가 고양이일지 호랑이일지 시험해보자는 마음에서 한 번에 밀어 버렸으니 자신감을 잃을 만하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고양이라 결론 지을 수도 있지만 태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중현…. 저기 신가연 선배님.”
“히익! 왜…?”
“태운아, 지금은 좀….”
“선배님, 오늘 있는 랭크전 대기하실 때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어…. 그….”
심지어 벌벌 떨기까지 하는 신가연에게 태운은 계속 말을 걸었다.
그 모습에 찬영이 말리려 했지만 태운은 그 말을 무시했다.
“얘가 왜 이리 막무가내가 됐어…?”
얼마 전에 대련 때도 이상하다 싶더니 확실히 그는 뭔가 달라졌다.
“선배님, 제 말만 들으면 랭크전 이기실 수 있을 거예요.”
“어…?”
“대신 제 말을 다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다면 말이죠.”이것도 못 하면 이제 고양이가 되는 거겠지.
하지만 그녀의 상태창을 훤히 보고 있는 태운의 눈에는 신가연이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질 사람이 아니라는 확증이 보였다.
그녀의 미개방 특성 중 하나인 ‘불나방’이 바로 그것이었다.
* * *
“어때요?”
“대…대박….”
태운은 신가연 덕분에 얼마 전에 얻은 명장의 하위 특성 중 하나인 ‘효학반을 깨달은 스승’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그녀에게 자신이 만든 마법을 몇 개 가르쳐주니 시스템이 그녀를 제자로 인정하고 바로 효학반의 효과를 보았다.
[효학반의 효과로 제자 ‘신가연’의 특기 중 하나인 ‘마나 친화력’ 스탯을 얻습니다.]
[현재 신가연의 성취도는 1.5%입니다.]
“좋아요. 이 정도면 강중현은 쉽게 이기실 수 있을 거예요.”
“진짜 그럴 거 같아.”
태운이 알려준 것은 태운의 시그니처인 화폭, 최근에 새로 만든 파이로 테크닉 그리고 염구(炎球)을 알려주었다.
그녀에게 알려준 마법은 하나같이 활용도가 좋은 것들이었다.
특히 2 융합 마법을 하나의 마법으로 만든 염구는 파이로 테크닉과 엄청난 시너지를 보일 것이다.
“하이파이브 한 번 하고 경기장 올라가죠.”신가연은 지금 골드 등급에서만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랭크전을 앞두고 있다.
익스퍼트 뿐만 아니라 모든 구간의 골드 등급 학생들은 모두 치르고 있는 것들이다.
실버와 골드 등급의 실력 차이가 크게 나 실버 반에서 골드 등급으로 기존의 신청과 수락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대전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실시된 것이었다.
누구든 경쟁이 없으면 나태해지고 고이면 썩기 마련이니까.
“신가연! 첫 번째 경기 끝났다. 3분 내로 준비하고 나와.”
“벌써 1경기가 끝났어요?”
“그래, 실력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나더라. 아무튼, 빨리 준비하고 나와.”골드 등급의 학생만 참여한다고 해도 학생 수가 많다 보니 하루에 2~3경기씩 치러진다.
하지만 매일 있는 일이어도 익스퍼트 골드 A반 상위권 학생들의 랭크전이 있는 날이면 시간이 남는 모든 학생이 체육관으로 몰려든다.
그들은 보고 배울 점도 있지만 그걸 벗어나서 볼거리, 재미도 있으니까.
“야! 강중현이다!”
먼저 경기장에 보인 건 강중현이었다.
강중현은 커다란 대검을 들고 화려한 하얀색 갑주를 입고 나타났다.
백색의 갑주는 착용자의 근력을 높여주는 아티팩트였고 대검도 마찬가지로 위로 벨 때와 아래로 벨 때의 무게를 다르게 해주는 마법이 걸려있는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템빨이라 하면 신가연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진 않았다.
하나에 50억을 호가하는 메테리얼 저장 반지, 그것을 두 개나 착용하고 있는 그녀는 총 14개의 메테리얼을 만들 수 있었다.
‘마나의 주인’이라는 특성으로 10개의 메테리얼을 다룰 수 있는 그녀는 메테리얼 생성 수로만 따지면 마스터 등급의 학생들도 따라올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 아티팩트는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신가연! 신가연!”
귀여운 외모에 반대되게 뛰어난 실력과 까칠한 성격 때문에 팬층을 보유한 그녀답게 관중석의 몇몇이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뭐…. 그 까칠한 성격은 그 대련 이후에 죽어 버린 거 같긴 하지만….’하지만 그걸 같은 반도 아닌 챌린지, 스타지에르 학생들이 알 리가 없지.
“5초 후에 결계 활성화되니까 그 전에 메테리얼 만드는 것만 허락된다. 공격이나 방어하는 게 보이면 바로 몰수패. 그럼 시작한다.”강중현은 대검을 들고 신가연을 겨눴다.
그때 신가연은 태운이 해준 말을 되뇌었다.
‘강중현 선배의 메테리얼 수는 4개, 탱커 포지션치고는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1대1 전투에서 강한 거고요.’
신가연은 특성 ‘마나의 주인’을 활용해 강중현이 꺼낸 메테리얼의 수를 확인했다.
‘4개 맞네. 이런 기록은 일반 학생은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아는 거야…?’신가연은 익스퍼트 골드 학생들의 전투에 관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는 태운의 정보력에 감탄하면서 시작 신호를 기다렸다.
물론 신가연의 메테리얼은 14개나 생성되어 있었다.
삐-익!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경기장을 감싸는 돔 모양의 결계가 쳐졌다.
‘강중현 선배가 마법 계열을 상대하는 공격 패턴은 지금까지 3개밖에 못 봤어요. 그건 선배가 순간적으로 알아채서 대비하셔야 합니다.’
‘첫 공격….’
태운이 말했었다.
신체 강화 마법을 쓰면 정공, 부스트를 쓰면 속공, 방어 마법을 쓰면 지공.
그 후, 다음 마법에서 각 공격법에서 3개의 공격 패턴으로 갈린다.
“흡!”
‘속공!’
강중현은 검을 휘두르기 좋게 바꿔 쥐고 부스트 마법으로 공격해왔다.
‘그다음은……’
그다음 매직 미사일로 뒤를 노리고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패턴, 검에 강화 마법을 걸어서 정면으로 싸우는 패턴 그리고….
‘환영 마법으로 페이크 치는 패턴!’
신가연은 자신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상대의 메테리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덕분에 늦지 않게 강중현이 환영 마법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슈-욱!
“안티 디코이”
강중현의 모습이 두 개로 갈라지는 순간, 0.3초도 지나지 않아 신가연의 안티 디코이가 발동됐다.
덕분에 강중현의 분신은 바로 사라졌고 반격을 생각하지 못했던 그의 옆구리가 비어 버렸다.
“무슨…!”
“염구!”
당황한 강중현이었지만 그도 익스퍼트 골드 상위권이라는 위치를 거저먹은 것은 아니었다.
신가연이 쏘아낸 염구를 대검의 역중력 마법을 사용해 간신히 막아냈다.
그사이 신가연은 강중현의 공격 범위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서로 메테리얼을 두 개씩 소모한 상황.
하지만 4개 중 2개와 14개 중 2개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강중현은 다시 메테리얼을 보충하려 했고 신가연은 계속 밀어붙였다.
“염구!”
염구 8번을 한 번에 시전했고 그 불덩이들은 강중현에게 날아갔다.
강중현은 대검에 워터 인첸트를 하고 막아보려 했지만.
“고작 불덩이…!”
“파이로 테크닉!”
신가연이 마법을 사용하자 강중현을 향해 날아가는 염구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이런 미친…….”
완전히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염구의 경로는 그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관중 중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그 경로를 아는 사람은 단 두 명, 태운과 신가연 본인이었다.
“이걸 어떻게 피해…!”
강중현은 이것을 최대한 피해 보려다가 그 경로를 보고 포기했다.
피하는 것을 포기한 대신 맞는 것을 선택했다.
“철벽!”
이건 강중현의 시그니처 스킬 ‘철벽’.
신체의 이동속도가 대폭 하락하지만 내구도와 방어력을 대폭 상승시켜주는 스킬이다.
“대충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어.”
신가연의 입에서 오랜만에 자신감 가득 찬 말이 나왔다.
동시에 신가연이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한 번 더 갈게…?”
그건 바로 그녀의 한 없이 올라가는 입꼬리였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이겨왔었다.
때문에 그녀는 상대방의 공격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두뇌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고 오로지 화력으로만 싸워왔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깨달았다.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 허점을 찾아내 그곳을 찌르고 막는 공방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된 것이다.
“즐거워!”
다시 10개의 염구를 쏟아낸 신가연은 결계의 절반을 불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도합 18개의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불덩이가 계속해서 강중현을 가격하고 다시 멀리 달아났다.
강중현은 뜨거운 불덩이 사이에서 고전했지만 염구 하나를 없애지 못하고 체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이익!”
강중현은 체력도 얼마 남지 않아 죽기 살기로 마나 캐논을 사용했지만.
터-엉.
그 공격은 바로 신가연이 펼쳐놓은 방어 마법에 걸려 사라지고 말았다.
“네가 나한테 원거리 전으로 될 거라 생각한 거야…?”그사이에 메테리얼을 보충한 신가연이 10개의 염구를 한 번 더 쏘아냈다.
“날 얕본 대가를 치르게 해줄게….”
그녀는 이 말을 할 때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은 옆에서 심판을 보던 선생님도 흠칫하게 만들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항복! 항복!”
그 미소를 본 강중현은 바로 항복을 외쳤다.
결계가 풀렸고 신가연은 소환한 염구들을 전부 역소환했다.
“음…. 태운아 저거 맞냐?”
“…아닌 거 같기도….”
그제야 태운은 자신이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게 아니라 괴물을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
“신가연 선배~.”
“선배! 어제 너무 멋있었어요!”
“신가연 선배는 여전히 인기는 많네.”
“그러게 말이다.”
어제 있었던 대련 때 신가연의 모습을 보고 몇몇 학생들은 신가연의 팬을 탈퇴한 듯 보였지만 대부분은 저게 더 좋다고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팬의 비율이 여자가 훨씬 많아졌다는 거?
“태운아!”
태운과 찬영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신가연이 멀리서 달려왔다.
그러자 그녀를 감싸고 있던 무리가 태운과 찬영을 보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왔다.
“…근데 왜 다 여자야?”
“남자 팬들은 직접 다가오기 힘들어하는 모양이더라.”
“그래?”
찬영이 답을 알려주었고 태운은 저 멀리서 구경하고 있는 새내기 꼬꼬마들을 보고 납득했다.
‘하긴 나이도 22살이시니까.’
올해 입학한 새내기 꼬꼬마들에게는 어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왜 부르셨어요?”
“너 내 스승해라!”
“예?”
어제까지만 해도 말만 걸어도 기겁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와서 대뜸 제자를 자청한다?
‘어제 알려준 게 그렇게 좋았던 건가?’
“나 네 덕분에 강해지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게 됐어. 그러니까 네가 내 스승해 줘. 싫어?”
“저, 저야 완전 만족이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서 좋은 걸 빼먹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렇게 다가와 주면 태운의 입장에선 아주 고마웠다.
“그리고 매일 나랑 둘이 대련이나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