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후… 이제 클리어했을 거라 생각했는데….”헤온 왕국 측에서 휴전 신청을 했을 때, 퀘스트를 클리어해 앞으로 잭과 레일로프에게 작별 인사 비슷한 말을 해뒀었는데 참 민망하게 됐다.
“내 팔자가 이런 걸 어쩌겠냐.”
태운은 잭이 있는 지하 창고로 갔다.
오늘은 잭뿐만 아니라 레일로프에게도 마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오늘은 무슨 연습을 시킬까 고민을 하며 지하 창고의 문을 열자, 눈앞에 하나의 홀로그램 알림창이 떠올랐다.
[세이브하시겠습니까? 다시 마정석 흡수를 사용하면 이곳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어?”
세이브까지 있다니?
정말 친절한 시스템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 일단은 세이브하고 쉬었다가 시작하자.”잠을 자도 잠을 잔 것 같지 않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세이브는 태운에게 정말 반가운 시스템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어도 지금은 마정석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에서 기술을 연마할 때니까.
가도의 몸으로 30만의 출력을 감당해본 감각을 잃기 전에 현실에서 고출력의 마법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지-잉.
태운의 의식은 현실로 돌아왔고, 가도와의 동기화률은 한순간에 0%로 줄어들었다.
“죽지도 않은 거 같은데, 왜 나왔나?”
“고출력의 마법을 한번 써보고 싶어서요. 이 감각을 잃기 전에 충분히 써보고 싶어요.”“음… 그래라. 너희 학교 휴교도 아직 남아 있으니 말이야.”첫날에 보았던 자하르라면 강제로라도 시켰을 테지만, 그때는 그가 너무 흥분해 있던 상태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본래 연구자라는 사람들은 인내심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하니까.
“그럼 내일 보죠.”
“그래, 내일은 마무리 지어야지.”
태운은 자하르의 연구소를 떠나 지하 훈련장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니 찬영과 혜연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오, 태운이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오늘 수확은 좀 괜찮았냐?”찬영도 자하르의 연구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태운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희는 연구소에서 뭐 하냐?”
태운은 연구소에서 계속 캡슐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혜연과 태운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신체 강화 능력 실험하는데?”
“강화 실험?”
“어, 내 특성이 그런 실험하기에 딱 좋다네.”“하긴… 그 신장이랑 마나 친화력이면 말 다 했지. 혜연아, 너는?”옆에서 별말 없이 듣고 있던 혜연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어… 그게… 말하기 좀….”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직접 말하기 좀 그러면 우리가 잠깐 시간 내서 보러 가지.”
“그래.”
“아니! 오지 마! 진짜로 별거 없으니까!”
왠지 모르게 격하게 부정하며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흥미가 솟구쳤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더는 캐묻지는 않았다.
그때 찬영은 자하르의 연구소에서 신체 강화에 대한 특별한 수확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여줄까?”
“잠깐, 그냥 보여주면 재미없지.”
“그거야?”
찬영은 열심히 휘두르던 검을 내려놓고 자신의 주 무기인 창을 들었다.
“혜연아, 심판 좀 봐줘.”
“척하면 척이네. 알았어.”
서혜연은 멀찍이 떨어져 메테리얼을 만들었다.
여차하면 방어 마법을 전개할 생각인 듯했다.
‘후… 긴장하자.’
태운은 찬영의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왔다.
[구찬영]
LV:47
마나 총량: 241,943
체력(60) 근력(80) 민첩(61) 유연성(21) 지력(15) 마나감응력(20)
특성
신장(LV.M)
마나 친화력(LV.4)
스킬
중급 검술(LV.9)
중급 방패술(LV.5)
고급 창술(LV.1)
초급 마법(LV.5)
피부 경화(LV.4) [S]
신체 강화(LV.1) [S]
‘와… 괴물이 따로 없네.’
이 정도 스탯과 스킬셋이라면 지금 당장 헌터로 데뷔해도 B급 헌터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최연소 A급 헌터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강태운]
LV:12
마나 총량:10
체력(45) 근력(60) 민첩(52) 유연성(21) 지력(72) 변이된 마나(2) 관찰력(30)
특성
변이된 마력(LV.M)
스킬
마정석 흡수(LV.5)[S]
마정석 저장(LV.3)[S]
상급 마법(LV.6)
중급 검술(LV.2)
필사의 창술(LV.2)[S]
마법 파괴(LV.1)[S]
명중(LV.1)[S]
그동안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스탯도 아주 많은 성장을 이루었고 스킬셋 자체도 성능이 좋아졌다.
또한 여기에 태운의 시그니처 마법이 더해진다면 정말 결과를 알 수 없게 된다.
“자, 준비됐으면… 시작!”
우-웅.
시작하자마자 찬영의 주변의 마나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태운은 한숨을 쉬었다.
“하… 저 사기캐….”
지금 찬영은 마나 친화력을 이용해 공기 중의 마나로부터 신체 강화 효과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무협지에서 보던 자연경의 경지에 이르러 자연의 내공을 끌어쓰는 그것을 비슷하게나마 펼치고 있는 것이다.
‘뭐,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내공이 없지만… 다른 세계라면 모를까.’태운은 잡생각은 거기에서 멈추고 찬영에게 집중했다.
그와 동시에 마정석에서 마나를 뽑아 즉시 메테리얼을 생성했다.
“마나 차단막.”
이 마법은 원래 공격 마법을 막기 위해 설계했지만, 내구성이 약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마법이었다.
하지만 찬영이 주변에서 끌어오는 마나를 차단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변을 알아챈 찬영은 주변에서 마나를 끌어오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마나를 활용해 신체를 강화해 달려들었다.
웨퍼가 근접 딜러와 싸워 이기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것이 거리 조절이다.
챙!
태운은 창을 뽑아 필사의 창술을 활성화한 후 찬영의 창을 막아냄과 동시에 그 힘으로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화폭, 마나 스킨!”
거리가 벌려지자, 화폭을 8번 중복 전개, 그 후 두 겹으로 마나 스킨을 사용해 몸을 보호했다.
당연하게도 화폭에는 속성이 부여되어 있었고, 그 속성은 전기였다.
“그럴 줄 알았다!”
터-턱!
그 순간 찬영의 피부가 돌처럼 울퉁불퉁해졌다.
티티티틱!
화폭의 파편은 찬영의 몸에 맞고 그대로 떨어져 전기의 속성을 잃어버렸다.
찬영의 시그니처 스킬 중 하나인 피부 경화였다.
“신체 강화 근력, 아이시클 인첸트, 가속!”
덕분에 화폭을 무시한 찬영은 온갖 마법을 써서 순식간에 태운의 곁으로 접근해 창을 찔렀다.
필사의 창술은 태운에게 움직일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끝이라고 생각한 찰나,
“마법 파괴.”
쩌-적!
찬영의 마법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리고 느려진 그의 창을 피해낸 태운은 그의 팔을 잡아 그대로 땅에 메쳤다.
쿵!
“가속!”
태운은 찬영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거리를 벌리고 다시 메테리얼을 생성했다.
이번엔 2만의 마나를 10개가 아닌 3개의 메테리얼에 담아냈다.
그러곤 영창을 시작했다.
“인페르노, 폭풍, 블레이드!”
세 가지 마법이 각기 메테리얼 안에서 변이를 일으켰다.
그것이 하나로 합쳐진 순간,
“지옥의 칼날 폭풍!”
고출력의 마법을 제한 없이 사용해본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융합마법이 찬영에게 날아갔다.
찬영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붉은 폭풍을 보고 씨익 웃었다.
‘마나를 차단하던 막도 사라졌어. 내 최대한의 힘을 보여주마!’찬영은 창을 역수로 쥐고 모든 마나를 창에 담아냈다.
주변의 마나 또한 찬영의 의지에 공감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넓은 공간의 마나가 진동하며 찬영에게 흘러갔다.
“그만해! 미친놈들아!”
옆에서 혜연이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찬영의 손에 쥐어진 창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깃들었다.
눈으로도 보일 정도로 출렁이던 마나가 찬영의 통제하에 단단한 결정이 되었다.
“이게 내 신기술 마나 블레이드다!”
찬영은 흉악한 병기가 된 창을 폭풍을 향해 쏘았다.
창을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드는 폭풍과 폭풍을 꿰뚫어 버릴 기세인 창의 격돌.
창과 폭풍이 부딪히기 직전,
“홀홀, 얌전히 쓰길래 빌려줬더니, 이러면 곤란하지.”어디선가 노인이 나타났다.
그 노인의 손짓에 폭풍과 창의 마나가 전부 흩어졌다.
아니, 흩어진 것이 아니라 그 마나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옮겨진 듯했다.
찬영이 쏘아낸 창의 마나는 찬영의 몸과 허공으로, 태운이 사용한 마법의 마나는 전부 마정석으로.
찬영과 혜연은 그 노인을 경계했지만, 태운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할아버지가 여기를 만든 거였어요?”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지금은 내 권역일세. 홀홀… 이렇게 만난 김에 뭔가 거래할 생각은 없나?”그는 바로 행상인 처칠이었다.
“처칠 할아버지?”
잠시 잊고 살고 있었다.
자신에게 통달의 팔찌를 준 이후 한 번도 보지도 못했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얼굴이다.
“여기가 처칠 할아버지 소유였어요?”
“그렇다네.”
처칠의 캐리어 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 이 공간의 부서진 도구를 순식간에 새것으로 바꿔주는 수리 기능과 요상한 출입 시스템이 납득된다.
“태운아, 아는 사람이야?”
태운과 찬영, 둘의 격돌에 멀찍이 달아나 있던 혜연이 살짝 다가와 물었다.
“응, 근데 나도 할아버지가 여기 주인인 줄은 몰랐어.”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찬영이 2년 넘게 사용해왔는데 주인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당연히 누군가가 쓰다가 버린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 누가 쓰다가 버린 곳이긴 하지….”처칠은 갑자기 아련한 표정으로 슬쩍 던지듯 말했다.
이 장소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태운은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그동안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때 다음 달에 한 번 더 오신다고 하셨잖아요.”다음 달에 나타난다고 했으면서도 나타나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홀홀…. 나는 상인일세. 그것도 아주 뛰어난 상인 말이야. 자네가 필요한 게 있어야 내 자네에게 물건을 팔러 오지 않겠나.”
“확실히….”
당시의 태운은 중급 이상의 마정석을 구할 방법이 절실했었다.
하지만 자하르와의 관계 덕분에 중급 이상의 마정석을 구할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내 상황을 어떻게 잘 알고 계신 거지?’태운이 속으로 의문을 삼키고 있을 때 처칠이 그 의문을 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영업 기밀일세.”
“저 속으로 생각했는데….”
“다 방법이 있다네.”
“……앞에서 무슨 생각을 못 하겠네요.”
처칠과 태운이 실없는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찬영이 다가와 처칠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인이 있는지도 모르고 오랫동안 사용해왔습니다.”“괜찮네. 자네가 성장하는 걸 보면서 나도 꽤 즐거웠으니 말이야.”처칠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찬영을 일으켜 세우고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오늘도 상당히 흥미로웠네.”
“오늘이요…?”
“자네가 만든 마나 블레이드 말일세. 그걸 어떻게 잘 활용하면 오러가 될 수 있을 게야.”
“오, 오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