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이 육체의 신체 능력은 원래 태운의 것은 물론 그의 예상마저 뛰어넘고 있었다.
뒤로 구르려 다리에 힘을 주자 예상치도 못한 강한 힘 때문에 균형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흉포 사마귀들이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놈들 입장에서는 피포식자가 나약하게 쓰러져 있는 모양새이니까.
“젠장…!”
태운은 누운 채로 괴물에게 주먹을 날렸다.
체중이 실리지 않은 주먹은 나약하기 짝이 없었고, 주먹에 얻어맞은 흉포 사마귀 또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푸-욱!
그때 흉포 사마귀의 칼날 3쌍 전부 철판이 덧대어진 가죽 갑옷을 뚫고 태운의 복부에 깊숙이 박혔다.
“……!”
너무 고통스러우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비명이 울대에 걸려 흘러나오지 못했다.
푸푸푸푸푹!
그 이후 수십 마리의 흉포 사마귀에 둘러싸여 갈가리 찢어지려는 찰나.
“흐아악!”
눈을 떠보니 마정석 흡수를 시도했던 방의 침대 위였다.
방금까지 느껴졌던 고통의 비명과 함께 고통이 사라진 육체의 나른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허어…허억….”
여전히 고통의 여운이 남아 있어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고 심한 멀미마저 밀려왔다.
한차례 어지러움이 가시자 고통의 여운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
“우욱…. 빈속이었던 게 다행이네.”
하마터면 침대 위에 누운 채로 토를 쏟을 뻔했다.
시트에 얼룩이 지면 빨기 엄청 귀찮다.
냄새도 잘 안 빠지고.
“여튼 상황 정리 좀 해보자.”
방금 그건 꿈이라 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게다가 자신의 몸도 아니었고.
손에 들린 마정석은 여전히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태운은 시계를 봤다.
시계는 정확히 10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건 이 마정석을 흡수한 지 길어야 1분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태운의 체감상 적어도 10분은 지난 것 같았는데도 말이다.
“마음 같아선 백만서고로 조사해 보고 싶지만….”재사용 대기시간이 한참 많이 남아 있었다.
“다시 들어가 볼까…?”
거기에서 어떻게 다치든 간에 현실 세계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건 확인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다시 들어간다 해도 죽겠지만….”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어봐야 한다.
태운은 밥 먹듯이 읽던 ‘몬스터 사전-E급’을 꺼내 흉포 사마귀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공격 패턴을 집중적으로 읽어보았다.
기본적으로 집단을 이루어 빠른 속도로 따라잡아 사냥하며 사냥 대상이 강할 경우 가장 앞에 있는 동료를 희생한 후 뒤에 있던 녀석이 치명상을 입히고 나머지가 달려들어 숨통을 끊는 방식이다.
상대방의 무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끈적한 체액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니까 창이 빠지질 않지.’
가뜩이나 창을 다루는 게 어설픈 사람한테 본드보다 끈적한 체액이라니.
아무리 시간이 많다 한들 제대로 뽑을 수나 있을까.
얄팍한 창대를 상기해 보자니 부러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후우….”
약 30분 정도를 사전 읽기와 사마귀의 전투 패턴 외우기에 쏟자 전투의 윤곽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더는 지체할 생각은 없었다.
“마정석 흡수.”
다시 태운의 정신은 광활한 대지로 날아갔다.
* * *
“후! 역시 마법은 젬병인 신체인가.”
태운은 강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10번째 도전이다.
두 번째 도전에선 창으로 찌르고 바로 창을 부러뜨려 부러진 창대로 두 번째 흉포 사마귀를 제압했다.
그 후에는 뒤로 물러나 상황을 보려 했으나 사마귀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서 죽게 되었다.
그다음 도전도 다를 게 없었다.
비로소 6번째 도전에 이르러서야 3마리의 흉포 사마귀를 죽일 수 있었고, 10번째 도전 때 5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7번째 도전부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마법도 사용해 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마법은 쓸 수 없었다.
마법의 시동 속도와 위력, 농도 등은 재능의 영역이지만 시전 자체는 시전자의 지식의 영역이다.
물론 고위 마법으로 넘어가면 그 사실이 희석되기는 하지만 태운이 쓰려 했던 마법은 파이어 볼트로 초급 마법 중에서도 쉬운 것이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하급 신체 강화 마법은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것으로 5마리의 흉포 사마귀를 처치할 수 있던 것이다.
물론 흉포 사마귀의 총 머릿수가 20마리가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직 한참 남은 것이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더 많은 몬스터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뭐,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임 시스템도 아니고 확정 지을 수는 없겠지.”흉포 사마귀와 싸우는 와중에 다른 몬스터가 나타나면 진짜 힘들 것 같긴 하다.
“여튼 이대로는 안 되겠어. 창술이라도 좀 배워야 어떻게 할 수 있겠네.”여러 번 도전을 거듭하면서 깨달았다.
물론 흉포 사마귀의 끈끈한 체액이 싸우는 데 방해가 되기는 하지만 제대로 창술을 배우면 그런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창을 내지를 때 힘의 이동이 엉망이라 흉포 사마귀가 한 방에 죽지 않았던 적도 허다했다.
분명 창술을 배워야 어떻게 깰 가능성이 생길 것 같았다.
“이제 필요한 건 정보인데….”
이 마정석이 보여주는 장소와 상황이 그저 꾸며진 상황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기억인지.
내가 이걸 클리어하면 세상에 어떤 영향이 가해지는 건 아닌지.
스스로 연구하기에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했고 장소도 없었다.
그때 태운의 휴대폰이 울렸다.
“11시인데….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찬영인가?
연락처에 이름이 뜨지 않는 것을 보면 찬영은 아니다.
얼마 전에 저장했으니까.
태운은 누구인지 추측해 보며 전화를 받았다.
“자네! 그 증거가 뭔가!!!”
전화를 받자마자 귀에 꽂히는 러시아어.
자동 반사로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했다.
‘잠깐, 러시아어라면…. 자하르 모로조프?’
* * *
“아하하!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유창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하하, 감사합니다.”
자하르 모로조프의 성격은 상당히 유쾌했다.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만 한다는 그의 소문으로는 유추할 수 없는 그런 성격이었다.
태운은 그런 시끄러운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았기에 재밌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하르 모로조프는 전대섭에게 태운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날아왔다.
엄청난 추진력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다음 날 일정을 잡았다고 연락을 받아서 적잖이 놀랐다.
‘자, 인물 감상은 이쯤 하자.’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야 했다.
“좀 특별한 마정석을 찾아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드디어 새로운 샘플을 얻게 되는군. 정말 고맙네. 혹시 다른 정보는 없나?”자하르 모로조프는 매우 놀라지는 않았다.
오로지 새로운 연구 기재를 얻게 된 것에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작은 창고에서 일하다가 얻게 된 마정석이다.
흔한 물건은 아니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젠 진짜 정보를 뿌릴 차례였다.
“저는 마정석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정석을 흡수하려고 했을 때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자하르 모로조프의 표정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진기한 구경거리였다.
“정리하자면 자네는 마정석을 흡수하는 것으로 강해질 수 있고, 이 마정석을 흡수하려고 했을 때 꿈을 꾼 것처럼 무언가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꿈은 무언가를 요구한다. 그건가?”“네, 그 요구가 충족되었을 때 흡수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태운은 마정석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에게 정보를 원하는 만큼 자신도 최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성의를 보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애초에 그 정도 정보도 얘기해줄 생각이 없었다면 자하르 모로조프를 부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태운도 협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오호…. 혹시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그 꿈에 대해서 말이야.”
“당연하죠.”
태운은 그 꿈에 대해 나름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어떤 몬스터가 나왔고 어떤 종류의 나무가 있었는지까지 전부 설명해주자 자하르 모로조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하나의 지명을 생각해 냈다.
“그레이트 플레인스 아닌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거대한 평원이다.
그곳은 거대한 평원이었던 탓에 데블스 에이지 당시 큰 전투가 자주 치러졌던 곳이다.
“그곳이 몬티스의 아니, 한국에선 흉포 사마귀라고 하던가?”자하르 모로조프는 어설픈 발음으로나마 흉포 사마귀를 발음하려 했으나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여튼 데블스 에이지 당시 몬티스가 그곳에 자주 출몰했다고 하더군.”“그럼 그게 단순히 꾸며진 꿈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이거나 실제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인가요?”“그건 현재 단계에서 확신할 순 없네. 혹시 그때 그 신체에 대해서도 표현해 줄 수 있겠나?”“우선은 서양인이었던 것 같아요. 금발이었거든요. 키는 190이 조금 넘는 정도는 될 것 같고….”그 이후에도 그의 질문은 1시간을 넘겼다.
단 하룻밤 만에 일어난 일로 이 정도의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혹시 내 연구소로 와줄 수 있나? 한국에도 내 소유의 연구소가 있네.”태운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자인 만큼 개인 소유 연구소만 전 세계에 80개가 넘는단다.
그중 하나는 대한민국에 있었다.
연구에 필요한 장비는 전부 구비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기재는 전부 각국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
자하르 모로조프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다.
게다가 그의 연구소는 그의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각 정부에서 만들어 그에게 선물하는 형식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 조건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리라.
요즘은 전처럼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가가 떨어지고 있지만, 그가 현세대 최고의 연구자라는 사실은 100명 중 100명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 연구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서 나쁠 건 없다.
태운은 자하르 모로조프와 함께 카페를 나섰다.
마도구로 얼굴의 특징을 지운 덕분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그의 입국 소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밖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무전기를 귀에 꽂고 있는 정장을 입은 4명의 남성이 서 있었다.
‘와, 다들 B급 헌터네.’
그들의 가슴에 박혀 있는 은빛 배지는 그들이 국가에서 공인한 B급 헌터라는 것을 의미했다.
자하르 모로조프의 호위를 맡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필요 없다고 해도 굳이 붙여주더군. 게다가 러시아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야. 센스가 왜 이리 없는지….”그는 태운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아닌데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정말로 러시아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뭔가 뒷담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연구소에 가서는 뭘 하실 생각이세요?”“뇌파 검사기로 그 꿈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영상으로도 담아봐야지.”인류의 기술은 인간의 꿈을 영상으로 100% 담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뿐만 아니라 녹화된 꿈을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었다.
단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촉각, 미각, 후각까지 전부.
게다가 자신의 육감을 적용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기술까지 존재한다고 한다.
“그나저나, 오늘 시간은 많나?”
“예? 뭐… 오늘은 알바도 쉰다고 했으니까….”“그럼 정신을 똑바로 차려줬으면 좋겠구나. 적어도 그 꿈에 1,000번은 들어가야 할 테니 말이야.”
“예? 1,000번요?”
그 꿈에 들어갈 때는 현실의 시간은 100배 정도 느리게 흘러간다고 언급한 적은 있지만, 굳이 1,000번의 꿈을 녹화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그 정도면 더없이 가혹한 정신노동이다.
“시뮬레이션 파일을 만들 생각이네. 그 정도 자료는 있어야 어느 정도 매끄럽게 흘러가거든.”
“시뮬레이션 파일 만드신다고요?”
“그래, 그 꿈이 얼마나 디테일하고 긴지 알아야 정확히 계산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1,000번은 뛰어야 할 거다. 최대 10,000 정도는 생각하고 있어라.”
“…….”
도망쳐야 한다.
10,000번이라니, 정신이 못 버틴다.
태운이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도망가는 것을 진정으로 고민 중일 때,
“Hey, catch him!”
자하르 모로조프가 한 말이었다.
그러자 경호원 중 하나가 팔을 잡았다.
젠장, 영어는 할 줄 아네.
“허허 어딜 가시려고.”
“전 부양해야 할 가족이….”
“그래그래, 어서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