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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25화 (125/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33)

    기득권층인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도 뭣하지만, 서울은 건물을 한번 싹 밀어버리고 도로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천만 인구를 상시 수용하는 대도시라고 해도 차량이 막히는 구간은 더럽게 막히기 때문에, 아예 작정하고 8차선 도로를 깔아 놓지 않는 한 이 교통 체증은 영원불멸할 것이다.

    심지어 운전을 하는 사람이 없는 이 순간에도!

    “염병.”

    정면에서 불어닥치는 지독한 한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바이크를 몰았지만, 정리가 안 된 강남 구역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교통 체증이 극심했다.

    처음 강북 지역에 몰려들었던 피난민들은 대부분 차량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강남 지역에 몰려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빨리 피난을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그 증거로 여기저기 냅다 들이박아서 박살이 나 있는 차량들 하며, 아예 건물의 얇은 벽을 차량이 뚫고 지나간 흔적도 있었다. 강남 지역은 다른 의미로 차량의 무덤이 형성되어 있었다.

    차라리 강북 지역처럼 차량이 가지런하게 정차되어 있기만 했다면 무난하게 지나갔으련만, 박살 나고 뒤집히고 뒤엉킨 차량들 때문에 바이크로 지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덕분에 때아닌 스턴트맨 흉내를 내야 했는데, 비스듬하게 전복된 차량을 발판 삼아 스로틀을 확 감아서 어찌어찌 뛰어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나이트워커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는 건데. 역시 강북에 비해 강남은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강북은 피난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이트워커들 역시 강북을 제집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하지만 강남은 처음부터 지저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 발 빠르게 피난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면 나이트워커들 역시 피난민들을 추격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제는 그렇게 추리를 해 버리면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었다.

    강북에 비해 압도적으로 부유하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강남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들이 확 빠져나간다?

    지저 도시의 대체재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체 무엇이 그들을 다급하게 만들었는지 의문이었다.

    당장 강북에 비해 아파트 단지나 병원, 학교, 마트의 규모부터가 남다른데, 그 모든 것을 내던지고 타지로 도망칠 정도라면 그에 부합하는 이유가 있을 터.

    ‘서울에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서라고 하면 말이 안 되지. 그랬다면 강북의 피난민들 역시 그곳에 정착하지 않고 타지로 도망쳤을 테니까.’

    올림픽대로를 타고 강서구 방면까지 올라온 나는 방향을 조금 꺾어서 다시 시내로 진입했다.

    교통 체증이 극심한 것은 둘째치고, 최소한 생존자 그룹이 있을 만한 유력 후보지 중 하나는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방화역 방면을 따라 개화산역을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김포국제공항에 도달한 나는 잠시 바이크를 세웠다.

    ‘불빛은 없지만 뭔가가 많이 있다.’

    김포국제공항이라면 분명 서울역 못지않은 규모의 생존자 집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일반적인 생존자 그룹이었다면 좀 더 활발하게, 건물 내부를 훤히 밝혀 두고 있었을 테니까.

    ‘애초에 국가 중요 시설이기도 해서 유사시 군대가 철저하게 지키는 장소 중 하나다. 그런 곳에 생존자 집단이 없을 리가 없어.’

    김포공항 주변에는 김포공항역과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호텔까지 있기 때문에 이론상 수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남부 지방의 김해공항이나 제주도까지 오갈 수도 있다.

    비행기를 운용할 연료와 사람만 있다면 타 지역에서 물자를 대량으로 공수해 오는 꿈같은 상황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고 어두워.’

    하지만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들은 많다.

    나이트워커인가 싶다가도, 사람이 없는 장소에 굳이 나이트워커가 우르르 몰려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좀 더 접근해 보았다.

    김포공항 앞의 드넓은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차량들이 많았기 때문에 몸을 숨기며 접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육안으로 분간할 수 있을 만큼 접근한 순간,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멀쩡한 사람은 맞는데 왜 불빛도 없이 움직이는 거지?’

    야투경의 광학렌즈를 조금 조절해서 선명도를 높이니 짐을 들고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위험한 작업이라 불빛이 필요할 법도 하건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 듯 어둠 속을 가뿐하게 헤쳐 나갔다.

    마치 불빛 한 점 없이 척척 움직이던 노원역의 싸이코 종교쟁이들처럼.

    ‘건물 내부에서도 불빛 한점 새어 나오지 않는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야.’

    심지어 몇몇 이들의 복장은 영하 30도를 웃도는 겨울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단출했다. 당장 나만 해도 신소재로 만든 방한복을 입고 있는 마당에, 저들은 가벼운 자켓이나 점퍼를 걸쳤을 뿐이다.

    ‘주변에서 물자를 확보해 공항 내부로 옮기고 있는 것 같은데…… 저 대량의 물자는 어디에 사용하려는 거지?’

    딱 봐도 온기나 불빛이 절실해 보이는 놈들은 아니고, 그런 놈들이 우리처럼 물자 하나에 목매는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 것 같지는 않았다. 즉 모종의 목적이 있어서 저렇게 물자를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잠입해 볼까? 아니면 지금은 무시할까?’

    잠입이야 내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설령 발각된다고 해도 혼자인 만큼 수월하게 빠져나와 몸을 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내게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긴 서울 중심부 장악이 끝나는 대로 사람을 모아서 한 번에 덮쳐야겠군. 운 좋은 새끼들.’

    딱 봐도 구린내를 풀풀 풍기는 놈들로부터 멀어져, 다시 바이크에 탑승했다.

    만약 저놈들이 군용 장비와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어떤 대참사가 벌어질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약 30년 전에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이용해 9.11 테러를 가한 사례도 있으니까.

    저 수상쩍은 놈들에게 귀중한 시설과 장비를 넘겨줄 바에야 우리가 차지하는 게 낫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를 기약하며 미련 없이 김포공항에서 등을 돌린 나는 다시 인천을 향해 나아갔다.

    강서구를 끝으로 서울에서 완전히 벗어나, 인천 계양구에 도달했다. 이곳 역시 서울 강남 지역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도심 내부는 누군가가 소음 요소를 모두 지워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짙은 적막감만이 흘렀다.

    중간중간 바이크에서 내려 사람이 있을 법한 장소를 둘러봤지만, 모두 사람들이 급하게 피난을 떠난 흔적만 있을 뿐, 최근까지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나이트워커라도 불쑥 튀어나왔으면 안심이 될 것 같다는 기괴한 생각을 하면서 어찌어찌 부평까지 흘러 들어왔다. 이대로 서남쪽 방향으로 남하하면 남구에 위치한 인천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인천항보다 영종도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 쪽이 더 궁금했지만, 일단 의뢰받은 일도 있고 하니…….

    피잉!

    “이런 씹?!”

    혹시 모를 소음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비교적 저속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바이크의 앞바퀴를 잡아당겼다.

    그 반동으로 튕겨 나간 나는 허공에서 잠깐 허우적대다가, 가까스로 낙법 자세를 취해 착지했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부딪치고 데굴데굴 구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당연히 ‘쿠당탕!’ 하고 박살 나는 바이크의 소음을 막을 수도, 소음을 뚫고 날아드는 무언가에 완벽하게 대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순수하게 ‘본능’에 따라 억지로 몸을 비틀자 내가 누워 있던 장소에 무언가가 ‘파바박!’ 하고 박혀 들었다. 금이 간 야투경 렌즈 너머로 확인해 보니 고기잡이배에서 사용하는 작살이었다.

    보통은 기계를 이용해 발사하거나, 보조 장비의 도움을 받아 사용하는 작살이 대뜸 지상에서 날아들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아니, 애초에 내가 발각될 여지를 줬던가?’

    우선 넓은 도로에서 벗어나, 비교적 상대가 공격하기 힘든 건물 틈새로 파고들면서 자신의 행적을 복기했다.

    헤드라이트는 껐고, 도심에 진입했을 때부터 저속으로 달리면서 소음을 최소화했다. 또한 발각당하기 쉬운 넓은 대로는 일부러 피해서 이리저리 우회하며 움직였다.

    그런데도 상대가 먼저 내 앞길에 덫을 설치하고 매복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된 영문일까.

    ‘인천에 진입하기 전부터 움직임을 포착당했을 가능성,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행당했을 가능성, 혹은 상대가 내가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감지 능력이 뛰어났을 가능성.’

    콰직!

    또 한 번 콘크리트 벽을 파고드는 작살을 가까스로 피하며 전력으로 내달려서 3m 높이의 담장을 훌쩍 타 넘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상태라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양팔에 착용한 외골격 파츠가 그걸 가능하게 해 주었다.

    ‘저런 작살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건 역시 인천항에 집결했다던 어선 출신인가? 나이트워커나 일반인은 당연히 아니고, 기동음도 없으니 중장갑보병 역시 아니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건물 위를 훑었지만 상대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타닷 하고 울려 퍼지는 미약한 발걸음으로 나를 추격하고 있다는 것만 가늠할 수 있었다.

    총을 사용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란이 벌어질 테고, 기껏 대기업에서 받은 의뢰에 실패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어렵게 쌓은 신뢰도까지 깎아 먹게 된다.

    가능한 나에 대한 정보가 다른 곳으로 샐 일이 없도록 조용히, 직접 처리해야 한다.

    콰직!

    “개새끼가!”

    단숨에 타고 올라가려던 배관에 정확히 작살이 박히면서 건물 위로 올라가려던 내 계획은 실패했다.

    깔끔하게 배관을 포기하고 미친 듯이 뛰어서 맞은편의 건물 유리창을 박살 내고 뛰어들었다. 상대가 나를 추격하겠다면 역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면 된다.

    예상대로 내가 한 상가 건물에 뛰어들어 모습을 감추자 상대는 잠시 건물 주변을 오가는 듯하더니, 곧 내가 숨어든 건물 최상층 유리창을 박살 내고 침투해 왔다.

    혼자서 날 잡을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자신의 존재감을 좀처럼 감추려는 기색이 없었다. 꽤나 얕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그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기계나 보조 장비의 도움을 받아서 쏜 작살이 아니야. 순수하게 근력만으로 집어던진 작살이었다.’

    기계나 보조 장비의 도움을 받아 쏘는 작살은 당연히 회수하기 편하도록 와이어가 연결되어 있는데, 상대가 던진 작살은 전부 와이어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단창 형태의 작살이었다.

    그런 작살을 등에 몇 개나 짊어지고 건물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얇은 콘크리트 벽을 꿰뚫을 수 있을 만한 위력으로 작살을 던져 대는 놈이다. 당연히 자신감이 넘치겠지.

    쿵쿵쿵.

    위층에서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가 계단으로 이어지고, 다시 복도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일부러 내게 들으라는 듯, 개선문을 통과하는 장군처럼 당당한 발걸음이었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상대도 내 움직임을 미리 파악한 것처럼 바로 위층에 도달했을 때는 아예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과감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나 역시 상대가 미지근하게 계단이나 타고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흩날리는 파편과 먼지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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