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93화 (93/211)
  • 데드존(5)

    -개같은 빨갱이 새끼들!"

    -박뱀! 빨갱이들이 양쪽에서 치고 있습니다!"

    -좆같은 새끼들! 지금까지 어디에 처박혀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거야!

    -우리보다 머릿수가 많으니까 양쪽에서 찍어누르겠다는 심산이야! 너! 그리고 너! 나 따라와!

    -어쩌려고 그러심까?!

    -어쩌긴! 허리를 끊어야지! 양면전선을 파훼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술은 허리끊기라는 거 몰라?!

    "나부터 간다! 알아서 잘 따라와!"

    사실상 롯데리아의 존재의의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기계를 던져서 커다란 유리창을 박살내고, 객실 문짝을 통째로 뜯어서 방패처럼 들었다.

    타타타타! 카앙! 티잉!

    아니나다를까, 을지로역입구 쪽에서 우리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감지한 몇몇 놈들이 즉각 견제 사격을 퍼부어왔다.

    대한민국 남성의 현역 비율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저런 쓰레기들 사이에서도 총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놈들이 많았다.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이쪽을 노리는 핀포인트 사격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무시하고 달려!!"

    내가 먼저 어그로를 끌면서 달려나가자 뒤이어 엑소스켈레톤 착용자들이 순서대로 달려나왔다.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10명 남짓한 별동대가 도로 한복판을 가로질러 전선의 중심부로 파고들자 적들도 꽤나 당황한 듯 했다. 일시적이지만 화력이 이쪽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주변 차량이나 잔해를 적당히 가져와서 엄폐물로 만들어!"

    "으랏차!"

    엑소스켈레톤 착용자는 경차 정도는 가볍게 들어서 던지거나 옮길 수 있었다.

    그런 행위가 가능한 사람이 무려 10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어느덧 도로 한복판에는 차량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물리적으로 보급로가 차단되자 적들은 필사적으로 우리를 방해하기 위해 총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차량이 쌓이면 쌓일수록 소총탄을 쏘는 의미가 없었고, 설령 대구경 탄환을 쏜다고 해도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박격포 뿐일 텐데......

    '당연히 못 쏘겠지.'

    박격포를 길거리 한복판에, 그것도 차량을 쌓아서 만든 장애물 산더미에 쏘는 건 낭비의 극치다. 꼭 필요한 행위라고 해도 고작 박격포만으로 이 차량들을 모두 치워낼 순 없다.

    우리는 차량을 쌓아서 만든 금속 토치카 속에 기어들어가 새로운 양면전선을 형성했다. 나를 포함한 5명은 을지로입구역을, 나머지 5명은 롯데백화점 방향을 향해 일제사격을 가했다.

    타타! 타타타타타!

    역 근처에 자리잡고 있던 놈들은 갑작스럽게 노출된 측면 때문에 제대로 된 엄폐도, 반격도 하지 못 했다.

    우리를 공격하자니 호텔 쪽에서 날아드는 총탄이 무섭고, 호텔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자니 우리가 가하는 공격이 무시못할 정도로 거슬렸던 것이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지속적으로 군수물자를 보급받으며 롯데백화점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던 놈들의 기세가 점차 약해졌다. 역시 본대는 을지로입구쪽에 있던 놈들이었다.

    이쯤되면 때가 무르익었다 싶은 나는 무전기로 여단장과 총경에게 롯데백화점 인근의 적들을 포위해줄 것을 요청했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측은 최소한의 방어 인원만 남기고 대다수의 전투원이 롯데백화점 측면으로 돌아나와 길목을 차단했다.

    우리가 죽어라 방어만 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놈들은 갑작스러운 역공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대로 쌈싸먹어!"

    남대문로 한복판에 고립된 놈들에게 역으로 인해전술을 펼쳐 쌈싸먹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놈들은 결국 숫자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벌집이 되어 하나둘씩 쓰러졌다.

    위쪽으로 도망치자니 우리가 길을 막아버렸고, 아래쪽으로 도망치자니 역으로 치고나온 호텔측 병력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사면초가란 저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지.

    -롯데백화점 앞은 모두 정리했습니다!

    어느 병사의 희망이 담긴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울려퍼졌다. 아직 완벽하게 승기를 잡은 것은 아니지만 승리에 한발짝 다가선 것은 틀림없었다.

    "롯데백화점에서 나온 인원이 이쪽 전선을 이어받아! 호텔과 남대문로에서 동시에 을지로입구역을 압박해! 그리고 너흰 나 따라와!!"

    롯데백화점에서 뛰쳐나온 다수의 전투원에게 이쪽 전선을 맡긴 나는 다시 별동대를 닦달하며 다시 몸을 날렸다.

    나의 과격한 행동에 별동대로 나선 조직원들이 되레 놀란 눈치였다.

    "한성 형님! 이대로 압박만 하면 놈들이 알아서 물러가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굳이 더......!"

    "이대로 놈들을 보내면 몇 번이든 다시 여길 노릴 텐데 후환을 남겨두자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놈들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잔챙이 몇 마리 정도는 보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이미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자기만 슬쩍 몸을 내뺀 놈들도 몇명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을지로입구역 앞에는 저렇게 많은 적들이 바글거리고 있다.

    놈들이 본격적인 롯데호텔 공략을 위해 저곳에 펼쳐둔 군수물자의 양은 상당했다.

    군수물자를 도로 챙기지 않는 한 본대가 쉽사리 몸을 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지금, 이쪽에서 역으로 몰이사냥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 항복! 내래 항복하겠시요! 우리는 기냥 상급동무들의 명령만 따랐을 뿐인......!

    -탕!

    -박 병장님! 이거 전쟁범죄입니다!

    -우릴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야. 길안내 해줄 놈만 빼면 싹 죽여도 상관없어. 아니면 수색작전 중인데 이만한 수의 북한군을 다 포로로 잡아서 데리고 다니자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난 땅굴 작전에서도 다 했던 일이잖아. 대체 뭐가 문제인데?

    -저희는 그런 기억이 없......

    "빠르게 돌아 들어가서 길목 차단해!"

    을지로입구역에 진을 치고 있는 놈들이 차량에 몸을 싣고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이 보였기에 내가 먼저 몸을 던지다시피 지면에 엎드렸다.

    엎드려쏴 자세로 총구를 차량 타이어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탕!

    단발 사격으로 매섭게 날아든 총탄이 정확히 차량의 타이어를 터뜨리면서 움직임을 저지했다.

    크기가 큰 수송 트럭은 조금 더 많은 타이어를 터뜨려야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흔들림없이 안정적으로 사격을 가할 수 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때 나는 한쪽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박격포탄을 보관함에 옮기고 있는 적을 발견했다. 노원역에서 봤던 것처럼 온통 검은 옷에 검은 면사포를 쓰고 있는, 가까이 가면 지독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놈이었다.

    '저걸 깜둥이 새끼라고 하면 레이시즘이겠지? 나는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는 모범시민이니까 오늘부터 네 이름은 표적판이다.'

    타탕! 꽈아아아아앙!!

    놈이 박격포탄을 옮기는 순간을 노려 정확히 사격을 가하자 운 나쁘게도 박격포탄에 총알이 맞아 유폭을 일으켰다.

    찰나였지만 후끈한 열기가 찬 바람을 확 밀어내면서 주변으로 퍼지고, 연쇄폭발로 인한 파편 폭풍과 흙먼지가 삽시간에 주변을 집어삼켰다.

    폭압과 파편에 휩쓸린 적들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사라진 팔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적들도 갑작스러운 폭발에 크게 위축되었는지, 제대로 반격할 여유도 없어보였다.

    -포로는 없다.

    "포로는 없다!"

    탄창이 다 떨어진 소총을 내던지고 대검과 권총을 양손에 쥔채 미친듯이 뛰어들어갔다.

    외골격파츠의 힘을 살려 대검으로 단숨에 숨통이 붙어있는 적의 목을 떨어뜨리고, 뒤늦게 반격을 가하려던 놈에게 권총탄을 쏟아부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놈은 군홧발로 목을 짓밟아서 단숨에 절명시켰고, 어떻게든 방어 태세를 갖춰 대항하려던 놈들에겐 수류탄을 던졌다.

    콰앙! 타탕! 탕! 스컥!

    거의 미친 놈처럼 을지로입구역 근처를 헤집으며 검은 옷과 검은 면사포를 걸치고 있는 역겨운 놈들을 하나하나 처리했다.

    "시대의 순환을 따르지 않고 빛을 갈구하는 불경한 놈......!"

    "비타민 D를 챙기는 게 뭐가 어때서?"

    탕!

    마지막 한 놈의 미간을 꿰뚫었을 때, 나는 고요한 적막감이 내려앉은 지상에서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하고 있던 자들이, 지금은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런 시선들을 본 기억이 있다.

    "......"

    분명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암처럼 끓어넘치는 무언가가 나를 충동적으로 이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상황이 정리되고 살얼음같은 바람을 가만히 맞고 있으려니 어느샌가 진정되었다.

    나는 천천히 자신의 손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내려다보았다.

    대검의 칼날은 누군가의 검은 핏기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고, 권총에선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총연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비단 화약 냄새가 짙은 총연만이 아니었다. 비린내와 썩은내가 합쳐진 듯한 검은 액체들이 서서히 기화하더니, 곧 검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나이트워커를 잡아죽였을 때와 비교하면 검은 연기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만 놈들이 노원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이트워커에게서 뽑아낸 검은 핏물을 체내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나는 문득 호기심이 일어 놈들이 쓰고있던 면사포를 하나하나 걷어보았다.

    이 놈들은 딱히 우리처럼 서치라이트로 특정 장소를 비추지도 않았고, 총의 레일에 전술조명이나 레이저사이트를 부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사격 하나하나가 꽤 정확했다.

    "......"

    면사포를 걷어올리자 그 아래에는 평생 빛을 받지 않고 지낸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가 드러났다. 당연하지만 우리들이 사용하는 야투경 같은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어둠 속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하고 날카로운 사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일까?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한다."

    하지만 선글라스처럼.적절하게 빛을 차단해서 피부나 안구를 보호할 수도 있다.

    "과연. 그래서 검은 옷이나 면사포를 쓰고 다니는 거였나......"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나이트워커들은 모두 알몸이다.

    놈들의 그 창백하고 흰 피부는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빛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과없이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그래서 호텔의 배신자들이 만들었던 디스코 볼을 이용한 다양한 빛 공격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 놈들은 다르다.

    자신들의 약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이트워커가 가진 장점만을 자신들의 몸에 이식하는 것과 동시에 검은 옷과 면사포로 빛에 약하다는 단점을 감췄다.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행위지만, 놈들은 미쳤기에 기꺼이 어둠속에 녹아들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인공적인 빛을 사용하는 우리를 혐오할 수밖에.'

    죽어서도 역겨운 종자들 같으니라고.

    맥이 풀린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전장을 벗어났다. 나를 부르는 조직원들의 목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호텔로 돌아가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드러누웠다.

    갑자기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그때처럼 누군가가 내 팔뚝에 주사를 놔준다면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그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나, 남쪽 동무! 저 아래에선 절대로 인공적인 빛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집어치워 이 새끼야. 어디서 개수작이야? 야, 너흰 작업 계속해.

    (노이즈)

    -끝이...안보이...

    -기계랑...야광봉 연결...떨어...체크

    -깊이가...얼마나...

    -...12km.

    -뭐가...올라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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