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46화 (246/265)

카르멘의 계획(1)

* * *

오흐트는 유피테르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믿음에 꼭 보답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바로 초대 성녀 오를레앙이니까.’

칼리스토의 마스터가 세운 계획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왕 그렇게 된 김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고 와.

납치된 것과 마찬가지였는 상황에서 유피테르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슬프지 않았다.

저런 태도야말로 신뢰하고 있다는 두말할 필요 없는 증거였으니.

―아마, 그곳에 4번째 열쇠가 있을 거야.

유피테르가 패스를 확장해주어서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왜 4번째 열쇠가 툭 튀어나오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유피테르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걸어가는 길이었으니.

드르르륵!

관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열리자, 오흐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제로 공간 이동 당하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신성 마나 덕에 쓰러지지 않았으나, 정신을 잃는 게 당연했다.

여러 마족이 관속을 쳐다보았다.

“어이, 이번 놈은 뭔가 좀 상태가 이상한 거 같은데?”

정체를 들켰나 싶었던 오흐트는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진정시켰다.

마족들의 마나로 미루어 볼 때, 여기서 빠져나가는 건 쉬웠다. 하지만, 그러면 유피테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게 되어버렸다.

‘제발, 제발. 그냥 넘어가. 니들 원래 신경 줄이 두껍잖아.’

오흐트의 소망이 먹히기라도 했던 것일까?

“말하지 말고 그냥 일해. 니가 맨날 그러니까 이런 일이나 하는 거라고.”

“웃기시네. 너도 똑같은 일 하고 있으면서.”

“오늘 분량 문제 없으면 난 내일부터 저 안쪽으로 투입된다고.”

“뭐?”

“어, 몰랐냐?”

마족들의 대화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오흐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안쪽에서는 뭐 하는데? 우리야 정해진 자리에 가서 제물들을 옮기는 건데.”

“봐봐. 넌 그 입이 문제라니까! 네가 위로 못 가는 이유가 그거라고. 그냥 시키면 네 하고 따르라고.”

“쳇. 알았다고.”

투덜거린 마족은 점검이 끝났는지 관의 뚜껑을 다시 닫았다. 마나 감지조차 사용하지 않고서.

‘첫 번째 관문은 손쉽게 통과했네. 역시 마스터야.’

유피테르는 그녀가 잡혀간 곳이 리언스 근처라고 말했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가깝다고도 할 수 없는 거리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효과를 유지하고 있는 마법은 그의 실력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어이이이! 이건 통과다!”

툴툴거리던 마족이 크게 소리치자, 마족의 마나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우우웅!

관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어디론 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쾅! 쿵! 탁! 콩!

관 속에서의 여행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체구가 작은 오흐트 몸은 관 속 이곳저곳에 부딪혔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체 비행에 그대로 휘둘렸다.

‘더럽게 아프잖아. 이건 가벼운 디저트로는 참아줄 수 없다고.’

오흐트는 이를 갈며, 유피테르에게 요구할 디저트를 골랐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았기에.

이동 거리는 생각보다 짧았다.

덜커덩 소리를 내던 관의 속도는 어느새 줄어들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관은 그냥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차례를 기다리는 듯했다.

쿵!

굉음과 함께 바닥에 관이 바닥에 착륙했다.

쿠션감은 없었지만, 아까보다는 충격이 덜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겠지.’

눈은 감고 있어도 오흐트의 정신은 여느 때보다 맑았다.

고블린 굴에 들어가도 불굴의 의지만 있으면 살아나올 수 있었다.

지금 상황도 그것과 비슷했다.

힘에 미쳐있는 마족들을 수하로 부리는 자가 결코 평범할 리 없었다.

유피테르의 계획이 있더라도 이걸 성공으로 이끄는 건 오흐트의 몫이었다.

오흐트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을 때,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 상황을 잊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오늘치의 제물인가?”

“예, 예 맞습니다!”

남성의 말에 부하인 듯 보이는 자가 황급히 대답했다.

‘마, 말도 안 돼. 설마….’

오흐트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자였다. 직접 만난 적이 없어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점점 수가 적어지는데? 이런 식으로 마왕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오싹!

마나가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작 그뿐이었는데, 주위의 온도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오흐트도 순간 움찔했다.

자신을 향한 일갈이 아니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았다.

그래도 몸은 정직했다.

파괴적이고 음울한 마나는 지금까지 겪던 것 이상으로 강렬했다.

“카, 카르멘 님 한 번만 용서를 해주….”

그랬다.

제물의 의식을 담당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카르멘이었다.

“용서?”

“예, 예! 제물을 더 가져오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

카르멘은 말 대신 행동으로 뜻을 전했다.

콰드득!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부하 마족의 목소리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얼음의 마나만으로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역시, 마스터의 아버지였네. 그래도 뭔가 좀 바뀐 거 같아. 마족을 저렇게 쉽게 상대한다고?’

카르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다.

에키드나와 손을 잡은 이상 제일 중요한 인물로 거듭났기 때문이었다.

조디악의 마도사라고 해도 마족을 상대로는 몇 수 접어주어야 했다.

인간과 마족 사이에는 노력이나 재능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기에.

그걸 넘으려면 누군가처럼 신의 사랑을 독차지해야만 했다.

또각또각!

대기마저 겁에 질려 있을 때, 정적을 뚫고 구두 소리가 들렸다.

이곳 지형에 익숙한지 그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게 몇 번째야아아. 내 부하를 마음대로 죽이면 안 된다구우?”

“에키드나인가….”

“그래에에. 지금쯤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

새롭게 등장한 이는 바로 에키드나였다.

여유롭고 느긋한 말투를 연기했으나, 초조함이 일부 새어나왔다.

‘정말이었잖아.’

오흐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유피테르는 이 의문의 실종 사건의 배후가 에키드나나 카르멘 중 하나라고 말했었다.

그의 말은 철석같이 믿어도 놀라운 건 사실이었다.

오흐트가 제물로 잠입해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두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주 조금 남았다고.”

“저번에도 그 소리였잖아아. 해달라는 걸 전부 해줬는데 아직도 결과를 못 내에?”

에키드나의 힐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능. 당신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였지이? 근데 지금 상황을 봐. 이거 하나 때문에 시간을 얼마나 낭비하는 거야아.”

에키드나의 말에 카르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열쇠를 너무나 쉽게 얻은 게 문제였나.’

에키드나와 손을 잡은 이후.

카르멘의 삶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아르테미스에 속해 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곧바로 소원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래도 공작 무기를 연구해 서서히 마족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의 진짜 힘은 전투가 아니라 연구였기에. 에키드나가 카르멘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다른 열쇠는 바로 얻어줬잖아아. 정보만 가져다주면 바로 해결해주는 거 아니야아?”

“유피테르 자식보다 더 먼저 열쇠를 갖게 해준 걸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처음으로 카르멘의 말이 길어졌다.

계약에 의해 협력하고 있었으나, 위에 서 있는 건 언제나 에키드나였다.

카르멘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다른 이들처럼 에키드나를 대하지는 못했다.

“봐주는 건 이게 마지막이야아아. 유피가 이곳에 온 이상 시간이 없다구우.”

“나도 안다.”

“그래에?”

그 순간, 에키드나가 카르멘의 앞까지 이동했다.

그림자 마법이었다.

붉은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자, 카르멘은 고개를 돌렸다.

공허한 그 눈동자를 바라볼 자신이 없었기에.

“그래. 당신은 그렇게 내 말만 들으면 돼.”

에키드나는 만족한 듯 뒤를 돌아 그곳을 떠났다. 카르멘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을 맘껏 즐겨라. 마지막에 웃는 건. …내가 될 테니까.”

* * *

에키드나가 떠나고 홀로 남은 카르멘은 작게 중얼거렸다.

“창조신 레아….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열쇠를 만든 거지?”

신과 신의 딸 그리고 유피테르.

이 묘한 삼각관계에 대해 에키드나에게 들은 이후 카르멘은 늘 답을 원했다.

고작 인간에 불과한 그가 감히 신의 뜻을 헤아리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한 세계를 창조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레아.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같은 위치에 서야만 했다.

오크와 인간, 인간과 마족, 마족과 신.

보는 광경이 다르면 서로의 생각이 맞물릴 수 없었다. 그건 꿈에서만 있는 허무한 이야기였다.

“딸을 벌주고 싶다면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굳이 열쇠라는 방법을 택했나.”

신이 만든 열쇠는 기대 이상의 잠재력을 지닌 아티팩트였다.

열쇠의 힘을 강제로 끌어내면 잠깐 동안 신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그건 성국 놈들이 사용하는 신성 마나와는 급이 달랐다.

기적.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현상을 사람의 손으로 펼쳐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마왕을 죽인 유피테르를 심판한다고 해도, 방식이 너무 조잡했다. 이런 세계를 만들어낸 자의 솜씨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 그냥 희망 고문이지 않나.’

구해줄 거라고 믿는 신의 딸과, 어떻게든 신의 딸을 구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유피테르.

이 둘에 대한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롭힘일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가.”

카르멘은 업무로 복귀했다.

제물의 의식은 표현과 다르게 전혀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무작위로 골라온 마족들의 혼을 그대로 봉인석에 불어넣으면 끝이었다.

이 던전을 연구한 끝에 직접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관을 처리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작업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관의 숫자가 좀 적었지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었다.

우웅!

그때, 카르멘의 지팡이가 몸을 떨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옆에 놓여 있던 지팡이에 손을 데었다. 에키드나가 건네주었던 공작무기는 여전히 그의 수중에 있었다.

신이 선물해준 이 아티팩트들은 에고를 지니고 있었다. 지팡이를 쥐는 것만으로도 에고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는 게 가능했다.

“…침입자인가.”

카르멘은 곧바로 마나 감지를 펼쳤다.

그의 성격을 드러내는 듯 촘촘하고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이 완벽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마법식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거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빙산이 한 관의 위에 만들어졌다. 이전과 같은 푸른색이 아닌, 칙칙한 검은색이 섞여 묘한 빛을 발했다.

콰아아아아앙!

빙산이 가라앉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압도적인 질량이었다. 얼음 마나의 특성이 발휘되기도 전에 관들이 모두 폭삭 가라앉았다.

그중에 딱 하나의 관만이 이 무지막지한 폭격 속에서도 무사했다.

“쥐 새끼 주제에 꽤 실력이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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