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71화 (171/265)
  • 드워프의 마을, 슈레겔(5)

    * * *

    오흐트는 유피테르와 다르게 깜짝 놀라게 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슈발츠라 이름을 밝힌 드워프의 기행에 온 힘을 다해서 응해주었다.

    “허허허허허…. 꼬마 아가씨는 풍류를 아는구만. 우리 검은 망치 부족과 잘 어울리겠어.”

    장로 드워프 슈발츠는 풍성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서는 잘 만들어진 쇼파에 다가가 풀썩 앉더니 유피테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검은 망치 일족의 문제를 해결해 줄 실력이 자네에게 있는가?”

    “시에라 공주가 우리를 보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거야? 그녀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지. 시에라 공주가 자네를 보냈다는 말은 믿네. 하지만, 방어체계를 막은 건 자네가 아니라 저 옆의 소녀이지 않았는가.”

    드워프의 의문은 그럴듯한 이유를 지니고 있었다.

    ‘네놈들은 모르겠지만, 그 발리스타는 와이번용이었단 말이다! 그걸 아무 상처도 없이 막아서다니. 마치, 고대의 인간들을 보는 것 같지 않으냐.’

    유피테르와 오흐트에게 쏟아진 화살은 미스릴과 합금이었다.

    마법 때문에 기본적인 병장기들의 가치가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드워프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드워프가 벼린 무기는 마나 전도율도 굉장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발리스타는 검은 망치 부족이 비룡을 위해 준비한 최후의 무기였다. 단 한 방으로도 거친 외피를 뚫어버릴 수 있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침입 객들에게 사용하는 건 아까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드워프는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으니까.

    “마스터는 마스터인데?”

    “마스터라…. 그럼 저쪽의 남자는 인간 세상의 귀족인가 보군. 너처럼 어린아이가 호위라니 세상이 말세로군.”

    오흐트가 유피테르를 마스터라고 부르자, 슈발츠는 제멋대로 해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망치 부족은 시에라 제국과도 거래를 했기에, 대륙의 상식에 대해서도 밝았다.

    잘생긴 외모와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닌 유피테르는 요리보고 저리 봐도 귀족이었다. 왜 호위가 하나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오흐트가 혼자서도 그를 지킨 걸 직접 보았으니까.

    ‘설마 또 힘을 증명해라. 이런 느낌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유피테르는 유피테르대로 묘한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지금까지 그의 발길이 닿은 곳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은 곳은 없었다.

    또, 가는 곳에서마다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줘야 하는 식으로 상황이 흘러갔다.

    얼음성에서도, 델포이에서도 심지어 교류전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편견과 싸워왔었다.

    “아니, 마스터는 진짜 마스터야. 마스터가 귀족이긴 하지만? 어라라?”

    오흐트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말이 꼬여버렸다. 그래서 유피테르가 직접 나서 그녀가 하려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귀족이지만 오흐트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아.”

    “그러한가? 하지만, 그런 가녀린 육체로 뭘 할 수 있지?”

    유피테르의 호언장담에도 슈발츠는 시큰둥했다. 구원자가 올 거라는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세이라 공주가 보냈다고 해서 믿어봤는데, 별로 강해 보이지 않았다. 골치 아픈 문제가 저런 샌님 한 명이 더해진다고 해서 해결될 리 없었다.

    ‘드워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힘이 강인한 근육이라고 했었지.’

    자신에게로 향해진 의심의 눈초리를 모를 유피테르가 아니었다. 애초에 눈칫밥이라면 어린 시절 배부를 정도로 겪었었다.

    그런 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실리는 드워프가 근육질의 몸매를 가장 선호한다고 알려주었다. 대장간에서의 일을 하려면 탄탄한 육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며 예술적 감각이나 섬세함은 그 뒤의 이야기라고 덧붙여주었다.

    어차피 이대로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유피테르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검은 망치 부족이라고 했나? 당신들이 자랑하는 대장간을 좀 구경할 수 있을까?”

    “그 말…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겐가.”

    유피테르의 말에 슈발츠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드워프에게 대장간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는 건 그들의 시험을 받겠다는 은어였다.

    아무리 보아도 유피테르의 몸으로 그걸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 슈발츠는 다시 한번 의사를 확인했다.

    “드워프의 시련은 도전 과제도 평가 기준도 우리의 맘대로다. 그런데도 할 겐가?”

    “당연하지. 난 당신이 모르는 것들도 알고 있는 사람이거든.”

    “어린놈이 자신만만하군. 그 기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지켜보마. 따라와라.”

    그렇게 세 사람은 슈발츠의 인도에 따라 대장간으로 향했다.

    쾅! 쾅! 쾅! 쾅!

    드워프의 마을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대장간에 도착하자, 머리를 울리는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마스터.”

    “무슨 일이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드워프의 시험을 통과할 자신은 있어? 괜히 심통 부리면 분위기만 나빠지는 거잖아.”

    초대 성녀였기에 오흐트 역시 드워프의 시련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칼리스토가 되기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 혼란한 시기였다. 대륙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 기미도 보이지 않았었다.

    다양한 종족들이 땅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네 전 마스터는 신이고 현 마스터는 무적이니까.”

    유피테르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장간의 안으로 들어갔다.

    슈발츠는 유피테르와 오흐트를 한 화로 앞으로 이끌었다.

    화로의 안에는 단단해 보이는 쇠막대기가 놓여 있었다.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도록 하는 용도로 보였다.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준비된 재료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슈발츠는 그걸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세이라 공주가 보냈다고 하니 시련을 좀 쉽게 해주도록 하지. 이 정도라면 만족하겠지?”

    “그런 배려 필요 없는데.”

    “정말 버릇이 없군. 네놈이 실패하면 바로 저 화로 속으로 처박아 버릴 테니 그렇게 알아라.”

    “할 수 있다면.”

    선으로 줄넘기를 하는 유피테르의 태도에 슈발츠는 혀를 한번 차고서, 도전할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네놈들이 가진 옹이구멍으로는 모르겠지만, 이건 망치다. 드워프가 한 사람 몫을 한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망치를 이 화로에서 뽑아내어야 한다.”

    “우와! 엄청 뜨거워 보이는데 할아버지들은 괜찮아?”

    “걱정 마라. 우리 드워프에게 있어 이 정도 불은 따뜻할 뿐이니까. 핫핫.”

    “드워프들은 엄청 엄청 대단하네!”

    슈발츠는 질문을 한 오흐트에게 호탕하게 웃어주었다. 물론, 유피테르는 긴장한 기색조차 없이 여유롭게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려도 대화가 끝날 것 같지 않자 유피테르가 먼저 물었다.

    “저 화로에서 망치를 꺼내기만 하면 되는 건가?”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과연 네놈이 할 수 있을까?”

    유피테르는 코웃음을 치는 슈발츠와 응원하는 오흐트를 뒤로 하고서 화로 가까이 다가갔다.

    화르르륵ㅡ

    고작, 몇 발자국 차이인데도 엄청난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가 자랑하는 은발의 머리카락이 홀라당 타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유피테르가 잠깐 발을 멈추자 뒤에서 지켜보던 드워프들이 힘을 모아 그를 놀렸다.

    “워워. 인간은 물러가라! 마족과 손을 잡은 신의 배신자들에게는 시련도 과분하다.”

    “뜨겁나? 뜨겁겠지. 하지만, 그 불꽃은 우리 아들내미도 쉽게 다스리는 거다.”

    그런 분위기를 제지한 건 놀랍게도 슈발츠였다.

    “그만! 신성한 시련 중이다. 지금 집중을 방해하는 건 드높은 드워프의 긍지에 못질하는 거다!”

    그 말에 소란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고리타분하지만, 좋은 구석도 있잖아?’

    유피테르는 속으로 슈발츠에게 감사하며 화로 바로 앞에 섰다.

    두근!

    화로 앞에 서서 망치로 거듭날 재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군.’

    화로 속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던 유피테르는 이내 곧바로 막대기를 손으로 잡았다.

    바로 그 순간, 슈발츠가 소리쳤다.

    “상상해라! 네가 만들고 싶은 망치의 모습을.”

    유피테르는 슈발츠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잡념을 버리자 곁에 있던 드워프들의 웅성거림도 슈발츠의 말도 점점 멀어졌다.

    유피테르가 몇 초 만에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자 비난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말도 안 돼. 벌써 불과 하나가 된 건가? 아직, 1분조차 지나지 않았다고.”

    “저런 능력을 지닌 인간이라니. 드워프라고 해도 믿겠어!”

    그러나 이런 목소리조차 유피테르에게 닿지 않았다. 그걸 눈치 챈 슈발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창조신께서 선물해주신 아티팩트 앞에서도 저런 집중력을 보일 줄이야. 공주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는가.’

    드워프를 창조한 레아는 그들에게 아티팩트를 하나 선물했다.

    상상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냐에 따라 나오는 품질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하는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선물이었다.

    세월이 지나 그건 드워프의 통과 의식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화로도 그중 하나였다.

    ‘망치가 다른 장식을 가질 필요 있나. 망치는 망치다워야 제격이지.’

    Simple is Best.

    유피테르는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외형보다는 성능을 중요시하는 성격이었다.

    화르르륵!

    드워프의 화로에서 불꽃이 강하게 용솟음치면서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상당히 뒤에서 구경하던 오흐트와 다른 드워프들에게까지 닿을 정도였다.

    유피테르가 망치를 꺼내려고 하자 숨을 죽이던 드워프들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저거 봐 인간이 해내려나 본데?”

    “저기서 망치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끝이 아닌 거 알잖아.”

    “그래. 네 아들내미가 만든 망치는 몇 번 두드리니까 유리처럼 부서졌지 아마?”

    “아직 결혼도 못 한 게 어디서 까불어!”

    명작의 탄생은 숨을 죽이면서 쳐다보는 게 상식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유피테르가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거래를 재개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대륙 전쟁 시기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족과 손을 잡은 인간들은 이종족들을 노예처럼 부렸었으니까.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망치가 완성되었다고 확신한 유피테르는 눈을 번쩍 뜨며 막대기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우우우우웅!

    유피테르가 단숨에 망치를 뽑아내자 대장간에 엄청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소식을 듣고 구경을 온 어린 드워프들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걸 본 슈발츠가 드워프들에게 명령했다.

    “어린 드워프들은 당장 이곳에서 나가라.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견뎌 낸 어린 드워프들은 그 말에 툴툴거렸다.

    “에에…. 어른들만 이 좋은 걸 구경하다니 치사해요!”

    “우리도 인간을 보고 싶다고요!”

    하지만, 상황은 어린 드워프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유피테르는 화로에서 완성한 망치를 슈발츠에게 가져 왔다. 망치를 건네주자 대장간에 있던 대부분의 드워프들이 쓰러진 게 눈에 들어왔다.

    모르는 사이 전쟁이라도 났나 싶어 유피테르가 물었다.

    “자, 말했던 대로 망치를 만들어왔어. 쟤네들은 왜 그래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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