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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70화 (170/265)
  • 드워프의 마을, 슈레겔(4)

    * * *

    “공주님이 그걸 어떻게…. 큼흠. 아닙니다.”

    유피테르는 놀란 와중에도 애써 표정을 숨겼다.

    ‘어떻게 그 정보를 세이라 공주가 알고 있는 거지? 정보가 새어나갈 곳은 없을 텐데.’

    성국 해방 전선과 관련된 일을 아는 자는 여섯 사람뿐이었다.

    성녀 프레이야와 그녀의 여동생 에이프릴, 그리고 오스티안을 포함한 네 명의 사제들.

    이 중에서 입이 싸다거나, 쉽게 배신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진 힘을 총동원해 알아낸 사실이니 틀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달라고 성녀에게 따로 부탁까지 해놓았다.

    게다가 시에라 제국은 세아니아 대륙에서 변방에 위치한 곳이었다. 게다가 세이라 공주는 요직에 있는 것도 아닌 국경 기사단 단장일 뿐이었다.

    이 사실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딱 걸렸다는 표정을 해놓으면 수습이 안 된다는 거, 스스로도 알잖아?”

    공주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유피테르를 바라볼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여성 종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3층으로 이루어진 손수레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장애물들을 손쉽게 피해내며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그 모습에서 이런 심부름을 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닌 듯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우와 이거 팬케이크잖아! 10단이라니 이런 건 처음 봤어!”

    진심이 가득 담긴 오흐트의 환호에 묘한 신경전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유피테르와 눈싸움을 하던 세이라 공주는 표정을 풀고는 오흐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동생. 부족하면 더 가져다줄 테니까 많이 먹으렴. 우리 제국은 꿀이 유명하니까 맛있을 거야.”

    “고마워요. 공주님!”

    “나를 부를 때는 세이라 언니겠지?”

    “응응. 언니!”

    세이라 공주가 말하기도 전에 오흐트는 팬케이크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엄청난 비쥬얼을 지닌 건 아니었으나, 팬케이크 위의 꿀은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오흐트의 나이는 이곳에 모인 다른 세 사람의 것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그저 귀여운 어린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물론, 세이라 공주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 꿀. 진짜 너무너무 맛있어.”

    허락이 떨어지자 오흐트는 팬케이크를 큼지막하게 잘라 입에 넣었다. 그러자 약간의 쓴맛과 그걸 덮어버리는 달콤함이 목젖까지 닿았다.

    그녀에게 있어 맛있는 음식을 주는 사람은 신의 사도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면 큰일이 나니 조심하라고 주변에서 조언하고는 했다.

    하지만, 초대 성녀인 그녀는 창조신 레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정도 일도 참지 못한다면 창조신은 옛날 옛적에 화병에 걸려 죽었을 것이다.

    팬케이크 해체 쇼를 보여주는 오흐트를 바라보던 세이라 공주는 흐뭇한 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유피테르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머리를 굴려봐도 나오지 않을 거야. 내 부탁 하나 들어주면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주도록 하지.”

    부탁이라는 말에 유피테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공주의 부탁이라…. 설마 마족을 잡아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성국 해방 전선의 일을 알고 있다면, 유피테르에게 부탁할 건 뻔했다.

    마족 공략

    현재 인류의 힘으로는 마족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 수 위의 마법과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 육체도 무서운데 몬스터까지 자유자재로 부렸다.

    그야말로 ‘기어오는 혼돈’이었다.

    그러나 유피테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드워프의 마을의 문제를 해결해줘.”

    “전 드워프의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스카우트를 위해서 온 것뿐이구요.”

    “당신의 실력이라면 겸사겸사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도 마족과 직접 싸우는 건… 무섭거든요.”

    공주의 제안에 유피테르는 요리조리 대답을 피했다.

    마족의 문제는 분명 해결해야 했지만, 왠지 공주에게 낚이는 것만 같아 찜찜했기 때문이었다.

    기사 같은 성격인 줄만 알았던 그녀가 이런 심리전을 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정보상이 누군지 알기 싫은가 보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세이라 공주는 그런 유피테르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마치, 네 생각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것만 같았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유피테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공주는 드워프 마을의 정보와 성국의 정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유피테르의 패배였다.

    옆에서 정신없이 케이크를 해치우는 오흐트를 흘끗 본 후, 유피테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마족의 문제는 모르겠지만, 드워프를 한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세이라 공주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 하나를 던져주었다.

    유피테르가 서류를 가볍게 받아들자, 그녀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거기에는 드워프 마을에 위치와 간단한 정보들이 쓰여 있어. 그다음은 당신의 능력에 맡길게.”

    * * *

    세이라 공주와 이야기를 끝낸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드워프의 마을을 목표로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서류에 쓰여있던 드워프 마을에 대한 단서를 따라가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는 다른 인간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반나절 만에 드워프 마을이 있다는 광산 도시에 도착했다.

    “그렇게 팬케이크가 맛있었니?”

    “그러엄… 시에라의 꿀은 진짜 깊은 풍미가 있더라. 마스터도 먹었으면 좋았는데. 아, 도착했네.”

    광산 도시로 가는 도중 유피테르는 오흐트를 타박했으나, 그녀는 입맛을 다실 뿐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여기가 맞군.”

    유피테르는 서류와 눈앞에 보이는 지형들을 확인한 후, 드워프의 마을에 들어가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숭!

    엄청난 속도로 화살이 날아왔다.

    “이게 드워프식 인사야? 인사라고 하기에는 좀 살벌한데.”

    오흐트는 중얼거리며 신성 방어막을 만들었다.

    팅ㅡ

    제아무리 드워프가 만든 활과 화살이라고 하더라도 오흐트의 마법을 뚫지는 못했다.

    초대 성녀는 치유력만큼이나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졌었으니까.

    슈슈슉! 슈우우우웅!

    그녀가 공격을 너무 쉽게 막아내자 이번에는 더 많은 수의 화살이 날아왔다. 아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화살 비였다.

    그중에서는 소위 ‘발리스타’라고 불리는 공성용 장비까지 섞여 있었다.

    “소용없다니까.”

    오흐트의 말처럼 신성 방어막은 지나치게 든든했다.

    발리스타의 화살은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평범한 손님은 아닌가 보군.”

    한 늙은 드워프가 양손을 들고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명백한 항복의 의사였다.

    “세이라 공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왔어. 드워프의 마을 안으로 들어갈 허가를 내주길 바래.”

    “세이라 공주가 보냈다는 증거는?”

    유피테르의 말에 드워프가 물었다.

    “이 정도라면 될까?”

    유피테르는 아공간을 열어서 세이라 공주가 빌려준 검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건 확실히 우리가 벼린 검이로군. 그것도 황실에 받친 검이야.”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건가?”

    “좋네. 드워프의 마을은 세이라 황녀의 손님을 환영하네.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겠나?”

    “알겠어.”

    대표로 앞에 나온 드워프가 그렇게 말하자, 주변 수풀 속에 숨어있던 드워프들이 하나둘 바깥으로 나왔다.

    “황실이라니…. 세이라는 공주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 시에라 제국인데 왜, 왕과 공주라고 부르네. 대체 뭐야?”

    “일단 제국이라고 칭하고는 있는데, 사실상 왕국이라고 보는 게 맞는 규모라서 그래.”

    “신기하네.”

    “시에라 제국은 산도 많고 인구도 적은 데다 마법도 선호하지 않아서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유피테르가 오흐트의 의문을 풀어주고 있자, 상의를 끝낸 드워프 대표가 유피테르를 불렀다.

    “기다려줘서 고맙네. 그럼 이제 들어가도록 허지.”

    그렇게 두 사람은 드워프의 안내를 받아 마을 안으로 향했다.

    온갖 함정이 설치된 산속을 뚫고 들어가자 드워프의 마을이 나타났다.

    깡! 깡! 깡!

    마을의 중앙에 가지도 않았는데 거대한 망치질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서로서로 망치를 두드리는 템포가 달랐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걸 들은 오흐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드워프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

    “젊은 친구는 드워프를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먼. 재미있어.”

    사실, 드워프는 엘프만큼 보기 힘든 종족은 아니었다.

    건축과 제작을 좋아하는 그들은 인간 사회에 종종 모습을 보이곤 했다.

    장인의 얼이 새겨진 것들을 보수해야 하기도 했으니까.

    “여기가 장로의 집이네. 외부인이 우리 마을에 오면 이분을 만나는 게 드워프의 예의일세.”

    “고마워.”

    유피테르는 여기까지 안내해준 드워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서는 오흐트를 데리고 장로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데?”

    그러나 드워프의 설명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작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마나 감지를 사용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설마, 함정인가?’

    그가 알기로 드워프는 호전적이지도 지나치게 걱정이 많지도 않았다.

    호탕함.

    이것이야말로 드워프를 설명하는 정확한 키워드였다.

    “마스터. 혹시 뭐 만드느라 잠시 집을 비운 거 아닐까? 그 대장장이들은 원래 화로 앞에서 살잖아.”

    같이 집을 둘러보던 오흐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그치?”

    그러던 중 부스럭 소리와 함께 내며 누군가 집의 문을 열었다.

    “봐봐! 이제 돌아오는 거 같은데.”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느낌이 들자 오흐트가 방방 뛰며 좋아했다.

    처음으로 유피테르보다 빨리 상황을 유추했다는 게 기뻤으니까.

    그러나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안녕하신가. 내가 드워프의 장로 슈발츠라네.”

    장로라고 생각되던 사람은 두 사람이 마주친 바로 그 드워프였다.

    “아까 봤던 드워프 할아버지다!”

    “허허…. 활기차서 좋구만.”

    “속인 것 같지는 않군?”

    “오래간만의 손님이니 잠시 놀라게 해주고 싶었네. 어땠는가?”

    드워프 장로는 가슴을 앞으로 빼고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유피테르는 아이 같은 그 모습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본제로 들어갔다.

    “문제가 뭐야? 당신이 장로이니 누구보다 잘 설명해 줄 수 있겠지.”

    “끄응…. 요새의 인간들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구먼.”

    차가운 태도에 드워프 장로는 축 늘어졌다. 그걸 본 오흐트는 힘을 북돋아 주었다.

    “아냐 아냐 깜짝 놀랐는걸! 마스터는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아.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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