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사 #
"으으···. 머리 아파···."
사람들의 착각 중 하나가, 수면제를 먹으면 깔끔하게 자고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 훨씬 약한 수면 유도제를 반 개만 먹어도 머리가 쪼개지고 몸이 축 늘어지는 등 상당한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내 상태가 딱 수면제 부작용 같았다. 머리는 어지럽고 깨질 것 같으면서도, 뭔가 졸리고 몸이 축 처진다. 그러면서도 다시 누우면 잠들지는 못하는 더러운 상황.
'근데 내가 왜 수면제를 먹었더라?'
고등학교 때 수면 유도제 반쪽을 먹고, 부작용으로 고생한 이후로는 손도 댄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내 몸은 왜 이런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퍼뜩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 풍경은 내 방이 아니다.
어딘가의 건물 안인 듯, 마치 호텔 방 같은 느낌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보였다. 그리고 옆에 쓰러진 두 사람과, 소파에 앉아 잔을 홀짝이는 한 사람이 보였다.
'저 사람은 뭐지?'
쓰러진 사람이 셋이나 되는 데 혼자서 유유히 차를 마시고 있는 한 사람. 어딜 봐도 수상한 그 남자를 경계하며, 상태가 좋지 않은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섰다.
그런 내 행동에 남자가 반응했다.
"아, 일어나셨군요. 이리 와서 차 한잔 드시죠. 머리가 맑아질 겁니다."
양복을 입은 멀끔한 남자는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수상한 사람의 말을 들을 리가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당신 뭐야. 날 납치해서 어쩔 생각이야?"
납치. 그게 내가 생각한 이 상황이다.
몸에 먹지도 않은 수면제 부작용이 나타났다. 눈을 뜨니 내가 모르는 장소에 널브려져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타의를 의심해야 하고, 눈앞의 남자는 용의자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 의심과 경계를 태연히 흘리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납치할 이유가 있나요? 하연성씨."
"···돈이나 장기를···."
"나이 25세. 현재 구직 중인 백수. 질병은 없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음. 아버지가 암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음."
갑자기 내 프로필을 줄줄 읊은 그는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을 납치할 바에는 다른 사람을 데려오리란 생각은 안 하셨는지?"
날카로운 펙트가 심장에 꽂힌다.
하긴, 집안에 수면제를 뿌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납치한 집단이다. 비단 내가 아니더라도 문제는 없을 터. 굳이 날 납치할 이유는 없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한 푼 값어치 없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래. 정말 몸을 원한다면, 내가 잠들었을 때 처리했겠지. 그렇다고 당장 반항해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TV에서 납치범의 말을 잘 듣는 게 좋다고 했으니.'
경계심을 풀지는 않되, 소파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남자가 권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음?'
그러자 정말 남자의 말대로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찻잎이나 원리는 모르겠지만 일단 몸에 좋은 것 같으니, 전부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조용히 남자를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납치가 아니라고 했... 하셨죠."
다시 반말을 하려다가 태도를 고쳤다. 생각해 보면 이들은 일방적으로 내 목숨 줄을 잡고 있다. 굳이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맞습니다."
"그럼 제가 여기 있는 이유는 뭔가요?"
"본인이 원하셨으니까요."
내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혹시 이 남자는 정신이 나간 걸까? 유력한 가설이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언제 그랬죠?"
"취업을 원하셨잖아요."
문뜩 머릿속에 스팸 문자가 스쳐 지나갔다.
"맙소사. 그럼 그 문자가?"
"저희 회사에서 보낸 문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소원대로 취업을 시켜드린 거고요."
순간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차오르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입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취업을 원하긴 했지만, 이런 정체 모를 장소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다고요! 아니, 그전에 여기가 회사? 어떤 종류의? 무슨 일을 하죠?"
하지만 남자는 대답 대신 여유롭게 차를 홀짝였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면 같이 설명을··· 아, 마침 일어나는군요."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니 아까 살짝 스쳐봤던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나와 같이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비틀비틀 일으켰다.
"으윽. 여긴 어디냐···."
"으으···."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남녀였다. 남자는 양복으로 입고 있었고, 여자는 특이하게도 헐렁헐렁한 도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자, 두 분 다 이리 앉으시죠.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질 겁니다."
둘은 남자를 보고 흠칫하더니, 바짝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나와 같은 모습. 남자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제가 여러분들을 해하려 했다면 잠들었을 때 했을 겁니다. 대화가 끝나면 원래 장소로 돌려 보내드릴 테니, 앉으시죠."
나름 합리적인 말이다. 두 사람도 거기에는 동의는 하는지, 쭈뼛쭈뼛하며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차는 마시지 않는 게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럼, 모두 일어나셨으니, 제 소개를 하죠. 제 이름은 '하운드'. 회사에서 '부장'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하운드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우리를 슥 훑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저희 회사에 대해 모르시는 것 같으니, 거기에 대한 설명을 좀 하겠습니다."
그는 한번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회사는 다차원 파견회사입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차원에서 사원을 뽑아, 필요로 하는 곳에 파견하는 일을 하고 있죠. 그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차원. 다른 세계에서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된 거죠."
남자의 말을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른 차원? 다른 세계? 판타지 책에서나 봤던 단어가 나오자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저희 회사에 사원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기 때문이죠. 뭐, 다양한 질문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개인적인 시간을 드릴 테니, 천천히 질문 하시고··· 저희 회사에 대한 장점부터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각자 불만과 궁금증을 터트릴 새도 없이, 하운드의 말은 계속됐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저희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일의 경중과 달성도에 따라 포인트를 받게 됩니다. 그 포인트를 이용해 회사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죠. 그리고 서비스에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하운드는 양복남에게 시선을 주었다.
"신기한 능력이나 편리한 도구."
그리곤 다음엔 도복녀에게 갔다가.
"자신을 단련하는 방법이나."
마지막으론 나를 보며 말했다.
"병을 치료하는 약 등. 없는 게 없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암 투병 중인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가 어떤 의도로 나를 보고 말했는지, 노골적으로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제길'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하운드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의 말이 거짓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지금은 냉정한 판단보다는 희망을 붙잡고 싶었으니까.
"···."
"···."
그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다른 두 명의 시선이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에서 '일단은 들어 볼까'로 바뀐 기색이 느껴졌다.
거기에 하운드는 한마디를 보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정사원이 되기 전까지, 이 서비스들을 이용하시다가 원하시는 때에 회사를 그만두실 수도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조금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언제든 나갈 수 있다. 그 말은 상당한 안심감을 주었다. 아니, 애당초 그의 말은 뭔가 '믿어볼까?'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논리적이긴 했지만, 분명 의심해볼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그가 진짜를 말한다며 느낀 것이다.
"그래도 원치 않으신다면 지금 당장 원래 있던 장소로 돌려보내 드리지요."
그렇기에 그의 말에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좋습니다. 그럼···."
하운드는 한쪽 구석의 문을 열었다. 그 안쪽에 보이는 것은 간소한 의자와 책상이 전부. 그는 그곳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한 명씩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 셋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누가 먼저 갈 것인지 눈치를 보다, 한 명이 일어났다.
"내가 먼저 하지."
양복 입은 남자였다. 그는 하운드와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문이 열렸다.
"다음 분 들어오시죠."
순간 나와 도복녀는 당황했다.
문이 닫힌 지 1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다음 사람을 부르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 안쪽을 보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없다.'
양복남이 없었다. 문이 닫히고 열린 시간을 생각하면 한걸음 떼기도 어려울 텐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으니 떨어지거나 솟은 것도 아닐 텐데.
"자, 시간이 없으니 제가 선택을 하도록 하죠."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하운드는 도복녀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고, 곧장 열렸다. 물론 안에 도복녀는 사라진 채.
"···허···."
귀신이 곡할 노릇. 이 빠른 전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하운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나를 끌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나를 의자에 앉히고, 하운드는 맞은 편에 앉았다.
"자, 하연성씨, 궁금한 게 많으셨죠? 지금이라면 질문하셔도 됩니다."
갑자기 여유로워진 그가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내게 나쁜 일은 아니니 일단 제쳐놓기로 했다. 그에게 가장 먼저 할 질문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아버지 암 치료 약, 있나요?"
"있습니다. 회사의 포인트로 최소 50 부터, 500 정도 사이죠. 싼 건 부작용이 좀 있고, 비싼 건 부가 효과가 있죠."
그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지금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이 있다는 건 적잖은 희망이 되어준다.
하지만 포인트가 소모되는 게 마음에 걸렸다.
"포인트는 어떻게, 얼마나 얻는 거죠?"
"일에 따라 다릅니다. 하연성씨가 지금 바로 나가면 얻을 수 있는 직책인 '연수생'은 한 자릿수 수준이죠. 하지만 대리만 돼도 한 건에 50~100포인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일이란 어떤 거예요?"
"능력에 맞추어 나타나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마시길."
애매모호한 대답이다. 하운드는 내 표정을 보고 심정을 눈치챘는지, 몇 마디를 덧붙였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나타나는 겁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 청소 같은 잡무가 나오죠. 불가능한 일이나, 일감이 떨어질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즉, 구직 중인 백수도 일할 수는 있는 건가.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잘한 것들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곤 질문을 끝냈다.
"더는 궁금한 게 없으신가요? 그럼, 적성검사를 하죠."
하운드는 사람 머리만 한 수정 구슬을 꺼내 놓았다.
"···이걸로요? 뭘, 어떻게?"
"별거 없습니다. 미래의 당신에게 약간의 조언을 받을 뿐이니까요."
"···허?"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하운드는 내 의문을 해소해주지 않은 채, 손대기를 권했다.
"해 보시면 압니다."
의심스럽지만, 그의 말은 계속 믿음이 간다. 나는 주저하면서도 천천히 손을 끌어 수정 구슬에 대었다.
그러자 구슬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나를 삼켰다.
시야의 상실. 그리고 눈이 돌아왔을 때,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하늘이었다. 내 몸의 감각은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이 조종하듯 이끌려 갔다.
'이건 대체?!'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감각. 내가 보는 것을 조종할 수 없다는 상실감이 불안감을 낳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저 보여주는 감각에 딸려갈 뿐이었다.
그리고 멈춘 곳에는.
나와 닮은 남자가 있었다.
'···누구지?'
얼굴은 나와 닮았다. 하지만 다르다. 다른 사람이다. 난 저렇게 좋은 피부가 아니었고, 날렵한 근육질의 몸매도 아닌 데다가, 균형 잡힌 몸을 가지지도 못했다.
허공의 나를 당당하게 바라보는 그 모습은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너무나도 부러운 모습. 저절로 닮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멋진 남자였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리고 시야가 암전했다.
"···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방. 의자와 수정 구슬이 있고, 맞은편에 하운드가 앉아 있는 장소. 몸에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나는 멍청히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건?"
"당신의 미래입니다."
하운드가 말했다. 미래? 방금 본 그 광경이? 나는 좀 전의 광경을 떠올렸다.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며 보았던 남자. 하지만 남자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게 기억나지는 않을 겁니다. 미래를 본다는 건 꽤 부담이 크니까요. 한마디 정도만 기억날 겁니다."
하운드의 말에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미래에서 그렇게 말했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운드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별종을 보는 듯한 얼굴과 곤혹이 섞여 있는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보통 미래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좋은 재능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기 마련인데··· 이건 꽤 어렵군요."
"허? 그럼 내 미래가 해준 조언은···."
하운드는 분명 이걸 '적성검사'라고 했다. 그 말은 미래에서 나의 뛰어난 재능을 듣고 오는 게 방금 행위의 목적이라는 뜻.
하지만 내가 들은 말은.
"'뭐든지 할 수 있다'라···. 이건 그냥 희망을 주거나, 잘못하면 뭘 해도 쓸모가 없다는 뜻도··· 아, 흠. 그런 뜻은 아닐 겁니다."
하운드가 황급히 수습하긴 했지만, 이미 그의 말을 들은 후였다. 게다가 감추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의 눈에선 희미하게 동정심이 보이는 상황.
한숨이 절로 흘러나온다.
'미래가 어둡다.'
군대에 막 입소한 훈련생이 된 기분이었다.
-------
회사 tip.
회사에 대하여.
다차원 파견회사는 여러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을 특정 목적을 가지고 해결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어떤 초월적인 의지로 의해 만들어진 '회사'는 특별히 지칭하는 말 없이 '회사', 혹은 '다차원 파견 회사'라고 불린다.
이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각자 어떠한 능력들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한다.
회사 내부에는 능력을 사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지만, 거기에 대한 제재는 없다.
회사에 뽑힌 사원들은 모종의 기준을 통해 선발되며, 그 후에는 '일정 기간 안에 일정 수의 의뢰를 완수'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무가 없기 때문에, 드물게 내부의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