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죄송합니다. 귀하는 본 회사에 적합하지 않은 인재로···]
"또 떨어졌어."
발송된 메일의 첫 문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대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36연패."
서류 탈락 31번, 면접 5번. 내가 취직을 시도한 횟수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모두 패배한 게 나, 하연성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학교 4학년 1학기. 아직은 취업 시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전망은 좋지 않다. 이유는 다름 아닌 전공 때문.
'이럴 줄 알았으면 이과로 갈걸.'
문과. 그것도 영상 쪽이 이렇게 문턱이 높은 줄 누가 알았나?
특히 내가 나온 학과는 PD 쪽에 특화되어 있어서, 촬영, 시나리오, 편집 등 깊게 판 것 없이 잡탕이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나 편집 기사로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럼 PD로 가면 되느냐?
뭐, 맞는 말이다. 다만 지방 4년제 PD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고도 그럴 수 있을진 모르겠다.
PD 쪽은 들어가자마자 PD가 아니다. AD 혹은 FD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AD와 FD의 근로 환경이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다.
극단적으로 내가 아는 어떤 형님은 월급 80만 원 받으면서 온갖 잡일에 야근까지 꼬박꼬박했다. 한 달 80만 원. 최저시급도 못한 금액. 하지만 그렇다고 신고할 수는 없다. 방송계통은 의외로 판이 좁아서 소문이 퍼지면 일을 못하는 곳이니까.
그 형님도 그걸 알고 그냥 딱 경력만 보더라. 4~5년 정도 해서 PD까지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사실 지방 4년제가 대부분 그랬기 때문에, 나도 어느 정도 순응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한 달 치료비가 250만 원."
걸린 사람이 집안을 책임지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외에 돈 버는 사람이 없는 우리 집에선 재앙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일반적인 가정이 그렇듯, 나와 동생의 교육비로 집안에 남아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
보험을 들어 놓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서 어머니가 아버지 병수발을 하러 매일 병원에 가는 나날이다.
그렇기에 나는 경력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
'젠장. 그래도 200은 받고 싶다고!'
속에서 울분이 터진다.
뭔가 스펙 쌓아놓은 건 없지만, 그래도 대학 때 만든 영상으로 공모전 상 몇 번은 탔는데 경력으로 쳐주는 곳이 이렇게 없다니!
그것도 영상 관련 쪽에만 넣었는데!
'아, 역시 세상은 학력, 인맥, 금수저인가.'
세상 살기 힘들다. 내가 만든 영상들을 보며 코웃음 치던 면접관들이 생각난다.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하고 짜왔던 시나리오와 연출이 담긴 결정체였지만, 그들의 말은 하나같았다.
-우리 회사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아요.
그야 그렇겠지! 내가 찍은 건 영화 같은 방식이고, 너희가 하는 건 대중방송이니까! 근데 내가 이만큼 할 줄 알면 너희가 조금만 알려줘도 잘한다는 거잖아! 제발 좋은 대학 나왔다고 뉴스를 스펙타클하게 찍는 녀석들을 뽑지 말라고!
한 번 더 속으로 부조리를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나는 힘이 빠져 허무해진 마음으로 축 처진 몸을 다시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원서나 더 넣자. 안되면 좀 더 낮은 곳으로 가면 되겠지. 중소기업들은 사람이 없다 외치니까. ···카메라나 기술은 130까지 보면 그래도 볼 수 있는 데가 많다던가···.'
PD는 몇 년간 고생해도 될까 말까지만, 카메라나 기술은 들어가서 경력만 쌓으면 착실하게 월급이 올라간다. 2~3년만 고생해서 경력을 쌓으면 250까지 볼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안 된다면 공장이라도 들어가야지.'
하지만 공장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선택. 아버지가 처음에 암 진단을 받고, 부모님께 상의를 드렸더니 두 분 다 결사반대를 하신 결정이다. 기술과 경력을 쌓는 거라면 응원하겠지만, 당장에 돈을 벌기 위해서 미래의 가능성을 좁히지 말라고 하셨다.
-돈 벌기 열라 힘들다.
칼복학해서 나보다 한 학기 먼저 졸업한 동기의 푸념을 떠올리며, 취업사이트에 들어갔다.
'아아··· 정말 취업 잘 했으면 좋겠다. 죽도록 할 자신 있는데···.'
아쉬운 속마음을 감추면서 회사 목록들을 확인한 순간.
띠링-.
폰에 문자가 왔다.
'이런 건 또 봐줘야지.'
암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정당한 방법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 거기에 첫 문구가 '소원을 이루어드립니다?''
메시지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간략하게 보여주는 문구만 봐도 이미 스팸의 냄새가 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평소라면 보지도 않고 지웠겠지만.'
가뜩이나 마음도 뒤숭숭한데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니, 재미로 해볼 생각이다.
'어디보자··· 그냥 답장만 하면 되는 건가.'
뭔가 내용이 잔뜩 있었지만, 다 넘기고 마지막에 하는 방법만 살폈다. 그리고 하라는 대로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딱 두 글자. '취업'
그리곤 스마트폰을 치운 채, 컴퓨터로 눈을 돌렸다.
'자, 그럼 다시 구직을···'
그 순간.
나는 강렬하게 쏟아지는 잠에 의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