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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적극적인 개입(2) (231/249)
  •  232화. 적극적인 개입(2)

     촤르르르르륵!

     사슬낫이 거칠게 풀려나가는 소음이 주위를 울렸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내력이 듬뿍 실린 사슬낫이 허공을 가로질러 대형 마수를 휘감아 들어갔다.

    [쿠워어어어!]

     마수가 벗어나려는 듯 크게 발버둥쳤다. 그러나 사슬낫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착착 감겨들어 마수의 전신을 옭죄었다.

     예전, 그러니까 르우벤이 이 사슬낫 아티펙트를 선물로 주겠다며 내장된 성능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던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쓸 일이 많을 거야. 마왕군에는 대형 마물이 많으니까. 그만큼 대형 괴수를 상대하는 데 유용한 물건은 몇 없다?]

     하르넴의 유적을 공략하고 바깥으로 향하는 길에 그런 대화를 나눴었다. 옆에서 로엘이 무슨 방문 판매하냐며 실소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르우벤이 말했던 그 유용성이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이 무슨!”

     대형 마수의 등 위에 올라타 있던 마족 지휘관이 당황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콰르르르르륵!

     그리고, 사슬낫이 거칠게 마수의 외피를 갈아냈다. 피와 살점이 분수처럼 일었다.

    [쿠워어어어어!]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마수.

     레인은 쇠사슬의 길이를 줄이고 그 반동을 이용해 공중으로 크게 도약, 발광하는 마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려 진각을 밟았다.

     콰앙!

     머리 부분이 움푹 패여 들어간 마수가 절명해 자리에 주저앉았다. 등 위의 마족 지휘관이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헉!?”

     순식간에 그런 마족 지휘관의 앞에 서서 가슴께에 일장을 날리는 레인. 인간의 기준으로 치면 초일류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들법한 실력자인 마족 지휘관이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콰과과과과곽!

     마수의 등 위에서 떨어져 내려 뒤쪽의 병사들과 충돌, 그대로 엉겨 붙어 연쇄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마족 지휘관.

     스타트가 좋았다. 레인은 마수의 등 위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거칠게 사슬낫을 휘둘러 마족들을 쓸어냈다. 그림자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개의 줄기가 병사들의 발을 묶어 레인을 보조했다.

    “오오! 굉장한 실력이잖아!”

    “대형 마수를 저렇게 쉽게 잡다니!”

     주위 인간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레인과 함께 선봉장의 역할을 맡은 장수들이 자극을 받았는지 기합을 내지르며 마족 지휘관들을 베어 넘겼다.

     군대와 군대가 맞붙어 막대한 소음이 일어났다. 수없이 피가 흐르고 발밑의 시체가 늘어갔다.

     일단 전황을 놓고 보면 호각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마족의 대군은 강력했지만, 인간의 군세도 어찌어찌 잘 버티는 모양새였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에 국한된 이야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황은 인간군 측에 불리하게 돌아갈 터였다.

     기본적으로 마족의 신체는 인간의 그것에 비해 월등하기에 전쟁의 양상이 장기전으로 흐를수록 체력적인 측면에서 뒤질 수밖에 없었다.

    “감히 우리의 동족을 해치느냐!”

    “너희가 해친 무고한 인간의 숫자가 몇인데 희생을 논하는 것이냐!”

     마족군 측 군단장과 인간의 선봉장이 맞붙어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인간군 측에서 대형 마수와 거인형 마족을 견제하기 위해 골렘을 투입했다.

     각종 마법진으로 한계까지 강화된 투석기에서 연속적으로 거대한 바위가 날아가고, 그것을 마족군 곳곳에 자리 잡은 마왕들이 허공에서 격추시켰다.

     인간군 특공대가 마족군 진형으로 침투, 연원을 알 수 없는 고대의 아티펙트를 소모해 광범위한 테러를 벌였다. 고위 마족들이 인간군 진형으로 침투해 갖가지 권능으로 그들을 유린했다.

     인간의 각종 기병이 적군의 진형을 꿰뚫고 피해를 입힌 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마찬가지로 마족군의 중형 마수 기병이 인간군을 헤집었고, 소형 마수들이 누군가가 부여한 권능을 싣고 달려들어 자폭 테러를 벌였다.

     레인은 그런 거대한 흐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유독 눈에 띄는 활약을 벌였다. 그는 강했고, 막대한 힘을 쏟아내면서도 지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보통의 무인과는 확연히 다른 이질적인 전투법을 구사했다.

    “커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마치 짐승의 그것과도 같이 벌어진 입으로부터,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악!”

    “쿨럭!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음량은 대체 뭐야!”

     그 외침에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하는 마족들이 속출했다. 이제는 완전히 경지에 이른 사자후가 그 위력을 어김없이 과시했다.

    “크힛하하하! 반드시 이 자리에서 없애야 할 놈이로구나!”

    “너, 살아있었던 건가! 대체 그 유적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온 것이냐! 발레포르는 어떻게 됐지?!”

     결국 레인의 활약을 보다 못한 마족 측 최고 지휘관, 마왕이 그에게 달라붙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둘이나.

     그중 하나는 아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한동안 지겨울 정도로 드잡이질을 벌였던 추격대에 포함되어 있었던 자였으니까.

     번개와 태풍을 일으키는 권능을 지닌 마왕, ‘푸르푸르’. 단순 무력 수위로는 다른 마왕들에 비해 약간 쳐지지만, 그 이상으로 특수성이 높은 힘을 지닌 사내이기도 했다.

    “캬하하하하!”

     콰아앙!

     그리고 다른 한 마왕의 경우엔 맞부딪치는 순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온몸을 난도질하려는 듯 수십 수백의 변초를 섞는 마족이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에 대한 설명은 바르바젠으로부터 몇 번이나 전해 들었다.

     미치광이 살인마, ‘글라시아 라볼라스’.

     카카카카카카카카칵!

     그녀는 주위에 아군이 있건 말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네 개의 단검을 교차해 날렸다. 권능을 실었는지 사방으로 검풍이 튀었다.

     마침 레인이 한창 마족군 진영 깊숙이 들어선 상태였던 탓에, 애꿎은 주위 마족들이 피해를 입었다. 푸르푸르가 그 광경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전투에 가세했다.

    “캬하하! 너 정말로 마음에 드는데! 갈가리 찢어서 말린 뒤에 저택에 장식해 두고 싶어!”

    “미치광이라더니.”

     레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정신 이상이 있어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아마 마왕 사이에서도 수위권에 들지 않을까 싶었다.

     솔직히 말해, 글라시아 라볼라스와 푸르푸르를 한꺼번에 상대하자니 굉장히 벅찼다. 그것을 겉으로는 조금도 티 내지 않았지만.

     콰르르르릉!

     쏟아져 내리는 번개의 비를 빠른 움직임으로 회피하는 레인.

     물론 번개가 내리치는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미리 기운을 감지하고 그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 기운의 감지조차 레인이 이룩한 높은 경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터. 개인으로서의 강함은 둘째치고, 가진 힘의 특수성만큼은 굉장히 높은 게 바로 마왕 푸르푸르였다.

     그렇게 레인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그 빈틈을 글라시아 라볼라스가 귀신같이 노렸다. 의외로 두 마왕의 연계가 착착 맞아떨어졌다.

    ‘빌어먹게도 말이지.’

    “카카카캇! 꽤나 힘겨워 보이는구나!”

     안 그래도 정신없건만, 눈앞의 정신병자 여마왕은 끊임없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음을 토해내기까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도발들이었지만 사소한 피로가 누적되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레인은 글라시아 라볼라스의 공격을 받아내는 한편 계속해서 검강을 발출해 푸르푸르를 견제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접전의 와중에도 단 한 번의 실수조차 하지 않았다.

    ‘쯧, 어렵군.’

     그러나 근본적인 전력의 열세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푸르푸르의 견제만 아니었다면 잠시 인류군 진영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전투를 치르면 그만인데, 지금은 그럴 틈조차 내기 어려웠다. 절대 무사히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상대의 의지가 느껴졌다.

    ‘아직까진 그래도 여유가 있지만.’

    “힘드신 것 같은데, 조금 가세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레인의 귓가로 들려오는 한 사내의 목소리가 있었다.

    “……!”

     레인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그곳에, 웬 학사풍의 중년인 하나가 서 있었다.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 사내의 기척을 느끼지조차 못했다. 다만 그것이 사내가 감추고 있던 기척을 드러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순간에 이 자리로 이동해 왔다. 마치 공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그것도 주위에 온갖 마족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이곳 마족 진영 한가운데에.

     레인은 크게 검을 휘둘러 글라시아 라볼라스를 떨쳐냈다. 본래라면 그런다고 해서 쉽게 떨어져 줄 여인이 아니었지만,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중년 사내로부터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일단 신중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년 사내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제가 아무래도 이곳 판에 끼기엔 실력이 좀 모자랍니다. 어디 가서 충분히 대접받을 실력 정도는 되는데, 아무래도 여기엔 워낙 쟁쟁한 분들만 모여계시니.”

    “……?”

    “그러니까 일단 제 안위를 부탁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사내였다. 지원하러 왔다더니 이제는 자신을 지켜달라고 하고 있었다.

     콰릉! 콰르르릉!

     레인은 사내를 들쳐 메고, 쏟아져 내리는 푸르푸르의 전격을 피해 이동하며 물었다.

    “네가 가세하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건가?”

    “그거야 저희 두 사람의 상성이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달렸지요. 잘 맞기만 한다면 상황을 뒤집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그도 그럴 게.”

     학사풍 사내는 주위에 번개가 내리치고 검풍이 날아드는 급박한 상황임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기이할 정도로 느긋한 그의 모습에 오히려 레인의 미간이 한데 모였다.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제 마법은, 시간을 다루니 말입니다.”

     * * *

     로엘은 양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하늘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군 측에 불리하게 진행되겠군.’

     그는 발아래에 펼쳐진 전쟁의 본질을 단숨에 파악했다. 언뜻 백중지세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간에 비해 신체 스펙이 월등한 마족과 체력 승부를 벌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인류군 측은 전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온갖 마도병기와 아티펙트를 소모하고 있다.’

     굉장히 큰 문제였다.

     인류군이 활용하는 골렘도, 마도 공성 병기도, 아티펙트도. 하나하나가 돈 잡아먹는 하마들이었다. 한 번 그것들을 운용하고 소모하는 데 대체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모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마족군 측은 어떠한가. 오로지 다양한 마수와 마족, 그리고 상위 마족의 권능을 이용해 전쟁에 임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경제적인 방식이란 말인가.

     인류군이 계속해서 자원과 물자를 소모해 군을 재정비한다면, 저들은 그냥 월등한 생명력과 회복력으로 군을 재정비한다. 그로 인한 격차는 전쟁이 진행될수록 극심해지리라.

     그러니 인류 측은 가진 전력을 싹싹 긁어모아 단숨에 결판을 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텐데…….

    ‘후방에서는 치킨게임이 한창이란 말이지.’

     이곳 총사령관이 후방 귀족들에 대한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게 괜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듯했다.

     하긴, 전력을 싹싹 긁어다가 한 데 결집시킨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다섯 각성자가 괜히 마음껏 손에 올려두고 주무를 수 있는 통합 제국을 건설한 것이 아니었다.

    “후우.”

     로엘은 일단 그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할 일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이번 전투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는 것. 그리고 초반 한두 번이라도 좋으니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로엘은 공중 병단에 지원해 이 자리에 섰다. 이만한 전투의 흐름을 이끌기 위해선 일단 어떻게든 제공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오는군.”

     마침 적측 공중 병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종 비행형 마수들과 그 위에 자리 잡은 마족들이 내력으로 강화된 눈에 비쳐 들어왔다.

     그 규모만도 아군의 두 배였다. 마계에 서식하는 마수 특유의 흉성까지 놓고 보면 실질적인 전력 차는 그보다도 더할 터.

     심지어 저 규모가 적측 공중 병단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숫자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병력의 우세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병단을 반으로 나눴다는 모양.

    ‘바로 그 적측 전력의 분산에 이쪽의 승기가 있는 거지만.’

     이번 전투를 통해 눈앞에 보이는 공중 병단을 전멸시켜야 했다. 그게 안 되면 그에 준하는 피해라도 입혀야 했다. 물론 아군 측 피해를 최소화해가면서.

     그렇게만 되면 공중 병단에 한해서만큼은 전력의 우세가 뒤집히게 된다. 그렇게 공중전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전장의 흐름을 어느 정도 끌어올 수도 있을 터였다.

     목적의 달성을 위해 로엘은 아직 모든 본 와이번을 꺼내지 않았다. 한 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아공간 안쪽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그 병력은 이후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암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

    [키아아아악!]

     이내 양측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금방이라도 충돌할 것만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 와라.’

     적측 공중병단을 응시하며, 로엘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숨에 집어 삼켜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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