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그 뒤, 3년 동안(3) (208/249)
  •  209화. 그 뒤, 3년 동안(3)

     오래지 않아, 르우벤은 사태의 전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정보라는 게 참 오묘했다. 그렇게나 인력과 자금, 시간을 소모해가며 알아내려 해도 지금까진 도저히 전말을 알아낼 수가 없었거늘.

     하나의 단서가 주어지고, 한 번 물꼬가 트이니 순식간에 원하는 정보가 취합되었다. 그 정보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미친.”

     이 바르디아라는 도시의 시장은, 과거에 상당히 유명한 트레져헌터였다는 모양이다. 자신은 가문을 승계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진작에 독립했었는데, 상위 계승권자들이 모두 내전에 휘말려 죽는 바람에 얼결에 영지의 주인이 되었다고.

     문제는 그가 젊은 시절 유적을 격파하고 얻은 어떠한 거대 ‘구조물’이었다. 너무 거대한 물건이라 개인이 옮길 수가 없어 나중에 마탑에 정보를 넘겨주고 팔려던 것을, 가문을 승계하고 마음이 바뀌어 휘하 병력까지 운용해 영주 저택에 가져다 뒀다는 모양이었다.

     그 ‘구조물’이라는 건, 쉽게 말하자면 이전에 각성자 일행이 시가전에서 활용했던 그 구조물의 상위 호환격인 물건이었다.

     단순히 일정 범위 내에 강력한 결계를 두르는 정도의 성능이 아니었다. 결계사의 자질에 따라선 도시 전체를 뒤덮는 결계조차 생성시키는 것이 가능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성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주체가 되는 결계사의 목숨을 갈아 넣어야 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일회성이기도 했고.

    “이제야 알겠군. 왜 마룡에 의한 피해를 입은 도시가 바르디아가 아닌 블뤼벨인지.”

     마룡은, 지친 것이다. 이곳 바르디아를 뒤덮은 결계를 부술 수 없다는 현실에. 자신의 파괴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그래서 결계가 그 효력을 다해 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향한 것이다.

     즉, 마룡이 가까운 바르디아를 두고 블뤼벨을 향했다는 전제는 애초부터 틀렸다. 마룡은 바르디아를 ‘거쳐서’ 블뤼벨로 향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세이라의 언니는 최상위의 자질을 지닌 결계사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하게 희생당했고.

    “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상황이 있나.

    “…….”

     오래지 않아, 그는 앞으로의 행동 지침을 결정했다.

     그가 곧바로 로엘에게 통신을 넣었다. 그리곤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 거였나. 넌 어쩔 생각인데?]

    “이참에 레인 흉내나 좀 내보려고.”

     장난스러운 대답이지만, 그 발언에 담긴 무게는 절대 작지 않았다. 로엘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승산은?]

    “몰라. 죽을지도 모르지.”

    [그건 안 되는데.]

    “그러니까 가능하면 지원이라도 좀 불러주던지.”

    [곤란하네. 당장 연락한대도 시간 내로 거기까지 도달할 만한 인력이 없는데. 엘리제 파르테인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서 공간 마법을 펼쳐줄 사람도 없고.]

     로카인 파르테인의 경우엔 애초에 통신기를 넘겨주질 않았다. 넘겨준다고 어떻게 부려 먹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지금부터 수하에게 연락을 넣어 로카인에게 대면을 요청, 설득의 과정을 거쳐 바르디아로 데려가라 하면 시간 내로 맞출 수 있을까? 애초에 로카인이 타국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하려 들지도 의문이었다.

    “너라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해서 일단 연락한 거다.”

    [젠장. 하지 말래도 할 거지?]

    “어.”

    [그럼 무조건 이겨. 이겨서 살아남아. 혹시라도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최대한 버텨. 어떻게든 수를 내 볼 테니.]

    “그래.”

     오래지 않아 르우벤은 통신을 마무리 지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는 밀리아를 불러 모종의 지시를 내리고 곧바로 영주성으로 향했다.

     영주성 내부에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첨탑형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 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영주의 거처이기도 한 장소, 즉 ‘영주관’이었다.

     은신 계열 아티펙트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영주성에 잠입한 르우벤은, 영주관 외벽을 따라 빙빙 돌아 올라가며 내부의 기척을 탐지했다.

     이내, 원하던 기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르우벤이 건물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청력을 돋웠다. 마침 영주와 구출 대상이 한데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

    “미안하네. 그렇지만, 자네만 희생하면 이 도시에 거주하는 모두가 구원받게 될 테지.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말길 바라네.”

     르우벤은 주저 없이 건물의 벽을 통째로 부수고 그 내부로 진입했다.

     콰르르르릉!

    “뭐야!”

    “누구냐!”

     퍽! 콰직! 콰드득! 콰르르르르!

     르우벤은 달려드는 병력을 모조리 격파했다. 영주 직속 기사단부터 영지 소속 마법사까지 모두 한데 모여 있었으나, 그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성숙한 여인의 사지를, 몇 명의 병사들이 붙들고 있었다. 르우벤은 그들까지 제압해 구석에 처박았다.

    “후읍.”

    “아, 안 돼! 그건 지금 반드시 필요한!”

     그리고 영주가 당황해서 제지하는 외침을 내뱉는 가운데.

     쿠콰콰콰콰쾅!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실내에 놓인 거대한 구조물을 전격 마법으로 부숴 버렸다.

     쿠르르륵. 콰르르르르.

     방금까지만 해도 구조물이었던 것의 잔해가 바닥을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좌중의 눈빛에 일제히 경악, 그리고 절망이 어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영주, 그러니까 바르디아의 시장이 경악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저게 없으면 재앙을 피할 방법이 없······ 컥!”

     르우벤은 코웃음 치며 영주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영주도 소싯적엔 용병계에 이름 좀 날린 실력자였으나, 르우벤의 공격은 그로선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네가 뭔데 멋대로 남의 희생을 강요해.”

     복부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영주. 르우벤이 그의 멱살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된단 말이다! 고대에 봉인된 마룡이 이 도시를 향하고 있다! 이젠 이 도시에 닥칠 재앙을 막을 방법이 없다! 다 죽게 된다는 말이다! 이게 전부 너 때문이다!”

     르우벤이 영주를 차가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영주는 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듯 말하지만, 그 발언에는 큰 모순점이 있었다.

     그는 마룡이 이 도시를 습격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사전에 그것을 대비하지 않은 것일까.

     간단하다. 그것이 도시에 막대한 손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뭐가 어찌 되었든 마룡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은 바르디아. 그렇기에 토벌군이 구성된다면 그 부담은 바르디아에서 가장 크게 져야만 한다.

     퇴치의 과정에서 소모될 막대한 재화도, 불안감에 도시를 떠나갈 시민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생겨날 막대한 ‘빚’도. 그는 그 어떤 것도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미리 점찍어둔 ‘제물’ 하나만 희생시키면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는 재앙을, 굳이 자신이 떠맡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노러츠의 귀족 아니랄까 봐 성정이 지랄 맞은 작자였다.

     그러나 르우벤은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얼굴 코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으르렁거렸다.

    “그 빌어먹을 논리를 펼치고 싶었더라면, 적어도 그 논리에 희생된 인물의 가족은 제대로 돌봐 줬어야지.”

     이전에 언급되었듯, 원래 역사에서 세이라는 언니의 죽음 이후로 거친 세상에 홀로 내버려졌다. 온갖 고생을 겪어가며 성장했다.

    “무, 무슨 소리냐!”

     물론 지금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영주는 르우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르우벤은 영주를 거칠게 집어 던져 구석에 처박았다. 그리고 그즈음에 맞춰, 밀리아가 세이라를 품에 안고 저택에 당도했다.

    “언니!”

    “세이라!”

     어린 소녀가 도도도 달려가 언니의 품에 쏙 안겼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자매의 감격스러운 재회였다.

    “밀리아. 너는 이 두 사람을 지켜.”

    “홀로 마룡을 상대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르우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사람만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건 쉽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희생될 죄 없는 시민들은?

     거기에 시민들이 희생되면 두 자매가 쓸데없는 죄책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언니 쪽이 짓고 있는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그럴 것만 같다.

    “혼자선 위험합니다. 돕겠습니다.”

    “안 돼. 마룡을 상대하려면 놈의 독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니까.”

     분명 밀리아는 강력한 전력이다. 그렇지만 상대와의 상성이 좋지 않다.

     저 마룡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그녀의 힘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짐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켜.”

     르우벤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표정과는 다르게, 단호한 어투로.

    “내 은인을.”

    “……알겠습니다.”

     밀리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크흐흐.”

     구석에 처박힌 영주가 돌연 괴소를 내뱉었다. 세이라 자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영주가 르우벤을 손가락질하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너 때문이다! 너 때문에! 이곳 도시의 수많은 시민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

    “네 그 알량한 정의 놀음이 대체 몇 사람을 죽게 만들 거라 생각하나! 그들이 너를 원망할 거다! 원혼이 되어 너를 저주할 거다! 이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

    “닥쳐.”

     르우벤이 순식간에 신형을 이동, 영주의 목을 밟았다.

     우드득.

    “뒷수습, 하면 될 것 아니야.”

     한 차례 심호흡.

     직후, 그가 단숨에 신형을 날렸다. 처참하게 파괴된 공간 바깥으로.

     곧바로 영주관의 외벽을 타고 올라 가장 높은 첨탑의 꼭대기에 내려앉은 그가, 인벤토리 툴로부터 ‘마검’을 뽑아 들었다.

     미리 장착하고 있던 ‘블루 드래곤 세트’와 공명해 거친 진동을 토해내는 마검. 그것을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쥔 르우벤이, 고개를 들어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재앙’을 응시했다.

     정말로 놈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 불길한 기운만이 여실히 전해져 왔을 뿐.

     육안으로 확인하기엔 너무 높은 상공을 통해 이곳을 향하고 있을 테니,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있을까.’

     문득 고개를 드는, 마음이 약해지는 생각. 르우벤은 이내 고개를 저어 그것을 털어버렸다.

    ‘아니. 할 수 있느냐가 아니지. 해야 하는 거다.’

     꿈뻑.

     그의 감정에 동조하듯 마검이 ‘눈’을 떴다. 그의 뒤쪽 허공이 크게 갈라지더니, 그 안쪽으로부터 섬뜩한 눈동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구우우우우우우.

     지금 이 순간, 르우벤은 또 하나의 ‘마룡’이 되었다.

     어느새 놈의 기척이 지척까지 다다랐다. 머리 위, 상공에.

     설사 비행형 몬스터나 언데드를 부린다 해도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상공에서부터 급격히 하강해 내려오는 놈의 동체.

     르우벤은 고개를 들었다. 첨탑의 꼭대기를 둘러싼 거치대를 부서져라 손으로 움켜쥐며, 그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크게 입을 벌렸다.

     실시간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적을 향해, 그가 거대한 포효를 터뜨렸다.

     * * *

     그것은 불길하게. 그리고 거대하게.

    ‘마룡’은, 그 자신의 파괴충동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저 아래에 있을 하찮은 미물들을 죽이고, 그들의 터전을 부수고, 그들의 고통 어린 절규를 듣기 위해.

     급격히 낮아지는 고도.

    “크르르르륵.”

     날개를 접고 머리부터 떨어지듯 하강하고 있는 마룡의 시야에, 점으로부터 시작해 어느새 점점 크기를 불려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룡이 그 거대한 아가리를 쩍 하고 벌렸다. 저 아래 위치한 하찮은 생명체들에게 거대한 공포를 선사할 생각이었다.

     용의 포효(Dragon roar).

     모든 생명체의 근원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이 울부짖음이라면.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끓고 있는 이 충동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원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리라!

     그런데.

     그런 마룡의 마음속 외침을 거스르듯. 그 의지를 정면으로 받아치듯.

     저 아래 ‘미물’들이 가득한 도시로부터.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한 타이밍에.

     또 다른 ‘마룡’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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